# 167
‘하지만 최진수 네놈은 결국 굴복을 선택할 것이다. 예전부터 너는 난관을 만나면 목숨을 걸고 뛰어넘을 생각보다는 우회하거나 포기할 생각부터 먼저 하던 놈이니까.’
* * *
예상했던 대로 다음 날이 되자 최진수는 호영의 남작이 되는 것을 선택하였다.
대한국에게, 아니 호영에게 굴복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철군하라.”
협상이 마무리되기 무섭게 호영은 철군을 명령하였다. 이제 다시 수도로 귀환하려는 것이었다.
“간부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왜? 신라와의 협상이 마음에 안 들어서?”
철군을 준비하던 중, 충구가 호영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간부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말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또다시 전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습니다.”
“돌격대는?”
“간부들과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로군.”
유저들이라고 전쟁을 무조건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전쟁을 좋아하는 유저들이라도 휴식기 없이 이어지는 전쟁에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란 엄청난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용병들은?”
“그들이야 전쟁 수당도 넉넉하게 받았고 전쟁에서 얻은 공헌도 점수도 있기 때문에 딱히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애초에 용병들은 중국과의 전쟁에 무조건 참전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용병들만 따로 철군시켜도 괜찮겠어.”
“예?”
“간부들과 친위대 그리고 돌격대는 지금 바로 함선에 탑승시켜라.”
충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갑작스러운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배로 병력을 이동시키려는 겁니까? 하지만 해군의 수송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는 걸로 압니다만.”
“그래서 용병들은 제외하려는 거다.”
그 말에 충구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전하께서는…… 선제공격을 계획하고 계시는 겁니까?”
호영은 속으로 감탄하였다. 충구의 머리 회전 속도가 무척이나 빠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눈치챌 줄은 예상 못 했다.
“맞아. 적이 선전포고까지 하며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데 굳이 기다려 줄 필요는 없지.”
가능하다면 평화를 지양해야겠지만 만약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자국의 영토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적국의 영토에서 치르는 것이 좋았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으로서,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가능한 피해를 줄여야 했다.
요동국의 영토에서 전쟁을 치른다면 대한국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리라.
“작전은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는 겁니까?”
“일단 돌격대를 개성 부근에 상륙시켜 평안도 지역으로 진출한 요동국을 공격할 생각이다.”
일본군이 배를 타고 넘어와 한국을 공격했듯, 호영 역시 배를 이용하여 요동국을 공격할 계획이었다.
첫 번째 목표는 요동국의 새로운 점령지인 낙랑군이었다. 이곳에 대략 2천 가량의 요동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돌격대가 이들을 요격할 것이었다.
“그리고 친위대와 간부들은 계속 북상하여 요동국의 수도를 직접 공략한다.”
“……!”
낙랑군이 첫 번째 목표라면 두 번째 목표는 바로 요동국의 수도였다.
이것은 일종의 성동격서라고 볼 수 있었는데, 돌격대가 동쪽에서 적을 유인하면 호영이 친위대와 로열패밀리를 이끌고 적의 수도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너무 무모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요동국의 병력은 수천이 넘습니다. 거기에 무림 세력이라며 무공을 보유한 세가나 문파도 존재하고요. 아무리 전하와 친위대가 막강한 무력을 가졌다고 해도 오백 명이 안 되는 숫자론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무공이 가장 뛰어난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중국의 강북 지역에서 통용되는 이야기일 뿐, 만주나 내몽골 같은 변방의 무공은 우리와 비교해도 보잘것없는 수준이야. 그러니 무인들 간의 싸움이라면 우리가 질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병사들과의 전투도 문제 될 게 없는 것이, 병사들의 숫자는 무인들 앞에서 크게 의미가 없어. 일본과의 전쟁에서 돌격대가 보여 주었듯이 불리해지면 잠깐 전장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면 돼.”
“그거야 무인들이 병사들보다 기동력이 우월했기에 가능했던 전략 아닙니까? 요동국의 주된 병종은 기병입니다. 기동력에서 밀리는데 과연 제때 치고 빠지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내가 왜 돌격대를 낙랑군에 보내려는 줄 아나?”
뜬금없는 물음에 충구는 잠시 눈을 끔뻑거리다가 간신히 대답하였다.
“그들의 무공이 약하기 때문입니까?”
“아니. 그보다는 돌격대원들이 말을 탈 줄 모른다는 게 크지. 친위대나 간부들은 작년부터 승마를 연습했잖아?”
“……!”
“비록 요동국의 유저들보다는 승마술이 부족하겠지만 어쨌든 말을 탄다면 체력을 비축하기가 용이해질 거야. 그리고 체력만 보존할 수 있다면 기병을 상대로도 치고 빠지는 전술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전하께서는 설마 중국의 침략을 예상하고 간부들에게 승마술을 연습시킨 것입니까?”
충구가 경악을 담은 눈으로 그렇게 묻자 호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머지않아 한반도에 말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로열패밀리로 하여금 승마 연습을 하게 만들었지만 3회 차에 요동국이 침략하리라는 사실은 예상치 못했다.
애초에 회귀 전에도 없었던 일을 예상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궁기병이 없다는 게 다행이로군.’
대한국에게 다행인 것은 3회 차인 지금, 유저들 중에서 말을 탄 채 활을 쏠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궁기병은 무인들이라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병과였다. 정면 승부를 한다면야 단거리로는 말보다도 날렵한 무인들이 순식간에 승리를 따내겠지만 정면 승부를 피하고 영악하게 나온다면 무인들이 극도로 불리해진다.
멀리서 화살만 날린 채 체력전을 유도한다면 무인들로서는 이길 방도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무공의 수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요동국에 궁기병이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요동국의 수도를 공격하는 것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음, 전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충구 역시 다른 간부들처럼 호영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였기에 더 이상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호영이 파격적인 행보는 자주 보이지만 결코 무리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는 어디에서 움직이면 되겠습니까?”
“너는 수도를 지켜야지. 이번 전쟁은 속도전이 될 거라서 애초에 따라갈 수도 없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간부들에게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충구가 물러나고 철군 준비에 박차를 가할 때였다.
“의병장들이 전하께 알현을 청하였습니다.”
한창 요동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원재 대신, 비서 임무를 맡고 있는 재현이라는 유저의 말이었다.
“왜?”
“중국과의 전쟁에서 자신들도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의병장들이?”
“예, 그렇습니다.”
“흐음, 크게 필요는 없을 텐데. 데려가 봤자 최진수에게만 좋은 일이 될 테고.”
신라를 분열시키기 위해서라도 의병장들은 신라에 남아 있어야 했다. 애초에 의병장들의 전투력도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호영은 한편으로 다른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야. 도움은 안 되겠지만 어쨌든 경상도의 유저들이 중국과 맞서기 위해 참전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긍정적이게 비칠 테니까.’
중국의 침공을 맞서기 위해 한국 유저들이 대한국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다면?
일종의 대의명분을 얻게 되는 셈이었다. 한국을 대표하여 중국을 막아 낸다는 대의명분 말이다.
그리고 이 같은 대의명분은 대한국이 한국의 유일한 나라로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었다.
“의병장들의 참전은 거절하는 것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일단 받아 줘. 나름 쓸모가 있을 것 같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재현이 물러나자 호영은 혼자 상념에 잠겼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요동국과의 전쟁. 앞으로의 계획은 모두 짜 놓았지만 미비한 점이 분명 있을 것이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완벽을 기하고 싶었기에 여유가 있는 지금 계획을 다듬어 나갔다.
* * *
요동국의 영토로 직접 쳐들어갈 원정군이 울산만에서 출항하여 서해로 이동하는 동안 호영은 센추리에서나 현실에서나 오직 작전을 구상하는 것에만 열중하였다.
오늘도 열심히 머리를 써 가며 전쟁 계획을 세우는데 옆에서 원재가 자신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감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요동국의 선전포고로 이 정도나 주목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센추리를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진짜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인 줄 알겠습니다.”
그의 휴대폰에는 기사 하나가 띄워져 있었다. 호영이 힐끔 보니 기사 제목이 무려 ‘일본에 한국을 도발하는 중국, 그들의 최후는?’이었다.
제목이 호영의 입장에서는 꽤나 요란스럽게 느껴졌는데, 기사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경상도를 약탈하던 일본군을 한국군이 모조리 수장시켰고 감히 명분도 없이 선전포고를 한 중국 역시 한국군이 직접 응징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선동적으로 느껴지는 글이었는데 인터넷 상에서 흔히 말하는 ‘국뽕’을 자극하는 종류였다.
“그만큼 센추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뜻이겠지.”
호영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요동국과의 전쟁은 센추리에서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그중에서 가장 큰 변화가 바로 센추리를 향한 여론이었다.
이전의 여론은 그저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면 일본에 이어 중국과 전쟁이 벌어지자 마치 국가의 명예가 달려 있는 하나의 대회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일본에 이어 한국을 도발하는 중국, 그들의 최후는?’ 같은 국뽕을 자극하는 기사도 여러 개 올라왔고 수천수만 명의 네티즌들이 댓글을 올리며 관심을 보냈다.
초보자의 섬에 있는 대한 길드에 대한 가입 문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말이다.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것도 무려 방송 3사에서 말입니다.”
“인터뷰라…….”
“영화 제의도 있었습니다. 사장님이 대한국을 건국하는 과정부터 일본을 무찌를 때까지의 영웅담을 영화로 담으려는 것 같은데……. 영화가 만들어지건 만들어지지 않건 이번 전쟁이 승리로 끝이 난다면 사장님은 웬만한 스포츠 영웅들보다 더 인기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원재의 그 같은 말에 호영은 혀를 내둘렀다.
‘벌써부터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될 줄이야. 이렇게나 센추리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과거의 나는 왜 한참이 지나서야 센추리를 알게 된 것일까? 뭐, 내가 역사를 바꿔서 인기가 많아진 것이기도 하겠지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호영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자회견을 준비해야겠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