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우리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으니 어떻게든 이용해야 하지 않겠어?”
“……요동국과의 전쟁을 대대적으로 알리겠다는 뜻입니까?”
“맞아. 가만히 있어도 알 사람은 알게 되겠지만 그래도 보다 많은 사람이 아는 게 좋잖아?”
“나쁘지 않은 의견입니다만, 만약 지기라도 한다면…….”
“질 것이라고 생각해?”
잠시 망설이는 얼굴을 하던 원재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지지는 않겠지만 이길 가능성도 그리 높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적지에서 싸워야 하지 않습니까? 원정군의 숫자는 고작해야 천 명이고 요동군은 만 명이 넘습니다. 전력상으로 본다면 족히 10배 이상은 차이 납니다. 요동국이 보유한 무인의 숫자도 적지 않고 말입니다.”
확실히, 요동국과의 전쟁은 명백하게 불리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애초에 병과부터가 요동국이 유리하였고 대한국은 연이어 전쟁을 치른 상황이라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호영은 방어가 아닌 공격을 선택하였다. 안 그래도 불리한 전력이었는데 무리하게 공격을 선택함으로써 더더욱 불리해졌다.
천 명, 그것도 보병에 해당하는 병력이 만 명의 기병과 보병을 보유한 요동국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셈이었다.
원재의 우려도 괜한 것이 아니었다.
“네가 그 정도로 걱정하고 있다면 다른 이들은 더욱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겠군.”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알려야 해. 불리한 전쟁에서 이긴다면 우리의 대한국이 유저들을 넘어 국민 전체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
“그러니 기자회견이든 인터뷰든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해 버려. 발표는 허영만에게 맡기고. 허영만이 이런 일을 잘한다고 했으니 말이야.”
“사장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사장님을 믿어 보겠습니다.”
“믿어 봐. 조금만 지나도 네가 생각했던 것만큼 불리한 전쟁이 아님을 알게 될 거야.”
호영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이번 전쟁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말이다.
원재는 의아해하였지만 호영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기 때문인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 * *
요동국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통항 성은 요동만을 지키는 다롄 성과는 다르게 일종의 변방과도 같았다.
다롄 지역은 중국의 여러 제국들과 교역을 하고 있어서 부유함도 부유함이지만 중앙의 관심이나 지원이 엄청났다.
그래서 요동국의 유저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해당하는 실력가만이 다롄 성의 성주가 될 수 있었다.
반면 통항 성의 경우는 교역도 없었고 중앙의 관심도 미미하여 일종의 한직으로서 잘못을 저질렀거나 실력이 부족한 이들만이 성주로 임명되었다.
통항성의 성주 유당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유당은 실력도 부족하였고 요동국에서 특별히 공을 세운 적도 없었다. 중앙에서 생각하는 그의 가치란 제로에 근접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그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였다.
하지만 고려 봉자, 즉 한국에게 전쟁을 선포하면서 유당의 입지는 달라지게 되었다. 그가 성주로 있는 통항성의 가치가 오르게 된 것이었다.
고작 백 명도 안 되던 주둔병도 무려 오백 명으로 늘어났고 보급기지답게 관리하는 군량도 어마어마해졌다.
병력과 식량이 늘어났으니 자연히 권력은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줄곧 한직에 머물러 있던 유당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천고의 행운이 따라 준 셈이었다.
‘나는 썩 달갑지만은 않은데.’
그러나 당사자인 유당은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전장에서 너무 가까워졌어.’
항상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다니는 유당이지만 사실 그는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이었다. 나름 뛰어난 무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공을 세우지 못했던 것도 전쟁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센추리, 그것도 본 게임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사정이 있었다.
현실에서 어울리고 있는 패거리에게 버림받지 않으려면 센추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걱정이 많은 성격을 가진 유당이었기에 한국과의 전쟁이 벌어졌다는 사실도, 자신이 한국에 가까운 통항성의 성주라는 사실도 달갑지 않아 하였다. 자신도 전쟁의 참화에 휘말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괜한 걱정일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까지 있었던 전쟁들처럼 이번에도 적국의 영토에서 시작되어 적국의 영토에서 끝나는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당은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적과는 달라. 비록 보병은 없지만 무공을 익힌 특수부대를 가지고 있어. 상승군이라서 사기도 대단할 거고. 이번 전쟁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거야.’
그는 요동국의 다른 장수들과 다르게 대한국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번 전쟁이 유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유당의 예상은 불과 며칠도 안 되어 적중하였다.
대한국의 선제공격!
고작 오백 명도 안 되는 일단의 병력이 요동국의 새로운 영토, 낙랑군을 공격한 것이었다.
중국인들은 처음 오백 명도 안 되는 병력을 보고 한국의 만용적인 전술이라 판단하였지만 낙랑군의 칠백 명에 달하는 기병이 대회전에서 무참히 깨지고 난 이후에는 누구도 한국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유당의 걱정처럼 한국은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여 준 것이었다.
‘낙랑군을 공격한 걸로 끝이 아닐 거야. 한국의 왕은 조조 같은 인물이다. 무모하게만 보이지만 사실은 신중하게 판세를 읽고 승부사처럼 과감하게 움직이는 사람이야.’
요동국은 갑작스러운 대한국의 공격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지원군을 파병할 것인지, 이참에 남침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유당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오히려 공격이 아닌 방어를 걱정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대한국이 낙랑군을 공격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만약 나의 생각이 맞는다면…… 한국이 노릴 곳은 바로 이곳, 통항 성이다.”
유당이 불안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다.
“서, 성주님!”
“무슨 일이야?”
“저기를 보십시오! 남쪽 절벽에서 정체를 모르는 무리가 경공을 쓰며 달려오고 있습니다!”
“겨, 경공? 고수들만 할 수 있다는 그 경공이라고?”
부관의 외침에 고개를 돌린 유당은 이내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대한국이 통항 성을 노릴 수도 있다고 짐작하였지만 하필 지금일 줄은, 그것도 저런 어마어마한 고수들을 동원하였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경공을 사용하는 수백 명의 고수라니……. 무공의 종주국이라는 중원에서조차 저 정도의 숫자를 동원하는 것은 불가능할 텐데…….’
중국에서도 경공이나 보법을 사용할 줄 아는 고수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경공을 사용할 정도면 어디에서나 나름대로 인정받는 고수였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고수라 불리는 실력자가 수십도 아니고 수백 단위로 단체 생활을 할 리가 없었다.
고수라면 대체로 문파나 세가 그도 아니라면 관부의 권력자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유당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처럼 수백의 고수가 함께 움직이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성주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벌써 성벽까지 도달하였습니다!”
“…….”
“시간이 없습니다!”
부관의 독촉에도 유당은 끝끝내 아무 명령도 내리지 못하였다.
이번 전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예측하였고 자신이 지키는 통항 성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예측하였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유당이라는 존재는 결국 전쟁을 두려워하는 필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길 수 없어. 우리의 패배는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거야.’
그는 패배감에 찌든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승승장구
“살려 달라고?”
호영의 말이 통역병을 맡게 된 친위대원의 입을 거쳐 중국어로 통역되었다.
“예, 부디 살려 주십시오.”
마찬가지로 통항 성 성주의 입에서 흘러나온 중국어가 친위대원의 입을 거쳐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통역병을 통해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영은 상대의 말이 이해가 안 갔던 것인지 다시금 물었다.
“항복하겠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한국의 포로가 되겠습니다.”
“왜지? 너는 유저잖아?”
“……살고 싶습니다.”
그 대답에 호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중국, 그것도 요동국의 문화를 생각하면 한국인인 자신에게 투항을 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만 느껴졌지만 천 명이 있으면 천 가지의 사정이 존재한다는 말처럼 통항 성의 성주에게도 그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목적은 도성이다. 중국에게 공포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생존자는 남겨 두어선 안 된다.’
성주에게 무슨 사정이 있든 결과는 하나였다.
처형.
“살려 줄 수는 없다.”
“어, 어째서……! 투항하는 적군을 살려 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투항하지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결사항전으로 싸운다는 말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호영은 애초부터 적군의 투항을 받아 낼 생각이 없었다.
이곳은 그의 땅도 아니고 그의 백성이 존재하는 곳도 아니었다. 피를 본다고 잃을 것은 없다는 뜻.
성주가 한 말처럼 적군이 격렬하게 저항한다는 점이 유일한 문제인데, 두려움을 심어 줘서 싸울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4회 차 때는 투항을 받아 주지. 하지만 이번 회 차의 목적은 정복이 아니라 초토화다.”
“그럴 수가…….”
“더 이상 들을 말도 해 줄 말도 없는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끝내지. 우현.”
“예.”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호영의 명령에 우현이라는 이름의 친위대원은 성주에게 다가가더니 짐짝처럼 들어 올리고는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 어딘가가 어디인지는 비명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마필은 얼마나 모았지?”
방금 전에 자신이 내린 명령으로 사람이 죽었음에도 호영은 아무렇지 않은지 무표정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얼굴을 한 친위대원이 호영의 물음에 답하였다.
“총 928필의 말을 획득하였습니다.”
“인당 두 마리를 끌게 할 수 있겠군.”
요동국의 전쟁에 동원한 원정군의 숫자는 모두 사백마흔일곱 명. 본래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제법 죽어 사백 명도 안 되었다가, 초보자의 섬에서 급하게 충원하여 사백쉰 명으로 맞출 수 있었다.
어쨌든 말이 928필이니 사백마흔일곱 명의 원정군이 개인당 두 마리의 말을 끌 수가 있게 되었다.
몽골이 전성기 시절에 이끌었던 군대처럼 세 마리나 네 마리까지는 아니어도 두 마리라면 충분한 기동력을 확보한 셈이었다.
“수습이 끝났다면 곧바로 출정을 준비시키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불을 지르는 것은 잊지 말고.”
“잊지 않겠습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속전속결이었다.
전투는 최대한 빠르게 끝내고 포로는 모조리 죽이며 거점은 완전히 망가뜨리는 것. 그리고 현지 수급으로 식량이나 병장기를 보급하고 곧장 작전 지역에서 이탈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