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
그의 아바타, 대진은 앞으로 왕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로열패밀리의 아바타들 역시 왕의 신하로서 또는 관료로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 줄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호영과 유저들이 사라진다 해도 대한국의 영속성은 유지된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일뿐인가.’
이제 100여 년의 시간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되었다. 100년의 시간 동안 무공과 마법, 그리고 문명이 크게 발전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또 하나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4회 차부터는 본격적으로 외국의 세력들과 전쟁을 하게 될 것이야.”
그것은 바로 전쟁이었다.
“전쟁은 3회 차에서도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요동국이나 도요타 왕국, 쇼니가와 했던 전쟁은 국지전에 가까웠지. 하지만 4회 차는 다를 거다.”
“나라 전체와 전쟁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일본이나 중국과?”
호영이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자 원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외국과의 전면전이라니!
지금까지 치렀던 전쟁들과는 스케일부터가 달랐다. 그야말로 역사에 없던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나도 한 치 앞을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이 바보가 아닌 이상, 나를 가만 놔두지는 않겠지. 나라 전체를 한 세력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야.’
역사는 이제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기 때문에 그 또한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4회 차에 거대한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사실은 예측할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호영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져 버렸기 때문이다.
일본, 중국, 대만, 심지어 연해주의 러시아 세력조차도 작게는 다섯 개, 많게는 수십 개의 세력으로 쪼개져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따져 보아도 하나의 세력이 나라 전체를 차지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더군다나 호영의 경우는 북한까지 포함하여 사실상 두 개의 나라를 차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두 나라의 영토가 주변국에 비해 작은 편이라고 해도 엄청난 세력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주변국으로서도 당연히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위기감을 해소하기 위해 군사행동을 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물론 만에 하나 다른 나라가 움직이지 않는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가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힘을 하나로 모으지 않고 계속해서 내전을 이어 간다면 나는 일본이든 중국이든 어느 곳으로든 세력을 넓힐 거다.’
그렇기에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의 스케일이 그 정도로 커진다면 대한국의 영토도 훨씬 넓어지겠군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말입니다.”
“이긴다면 그렇겠지.”
“그럼, 로열패밀리를 더욱 늘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당연히 유저의 숫자를 늘릴 필요성이 있었다.
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돌격대를 새로운 로열패밀리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모험가나 관료들 중에서도 몇 명 넣을 것이고.”
“일부는 대한 길드에서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한 길드?”
“현재 가장 어수선한 곳이지 않습니까? 변절자도 많이 나오고 있고 말입니다. 일단 길드 간부들만이라도 로열패밀리로 흡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변절자라…….”
호영은 씁쓸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재벌들의 공세에 곳곳에서 변절자가 나오고 있었다. 엔터에서 일하는 연예인들이 이직하는 것이야 약과에 불과했다.
1회 차부터 함께했던 로열패밀리가 배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도 돈 몇 푼 때문에 말이다.
‘끝까지 나를 따라 주었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배신자를 용서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빌어먹을! 재벌들만 아니었어도.’
물론 안타까운 감정보다 재벌들에 대한 분노가 더 컸지만 말이다.
“표정이 안 좋으십니다.”
“그냥, 재벌들 때문에 짜증이 나서.”
“요즘도 많이 시끄럽다고 들었습니다.”
원재는 본래 정보 팀장으로서 현실의 정보 수집을 담당하였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오직 센추리 내부에서의 정보 관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대한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그만큼 담당해야 할 영역이 넓어졌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아무튼 그 같은 선택의 결과로 원재는 현실의 소식에 어 두워졌다. 바깥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벌들이 언론을 총동원하였어.”
“전처럼 센추리가 위험하다는 식의 언론 플레이를 하였습니까?”
“그보다는 대한 길드를 공기업으로 삼아야 한다느니, 국가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느니, 그런 개 같은 소리를 지껄이더군.”
“허, 정말 개소리군요.”
호영의 말에 원재가 험악한 얼굴을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야. 정치권에서도 우리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정치권에서 말입니까?”
“허영만의 말로는 그것도 재벌들이 한 짓이라는데, 아무튼 여당은 몰라도 야당은 우리를 적대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아.”
“참 황당하군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애국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라가 아닌 자신의 이익이니까.”
“후우.”
원재는 한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결연한 눈을 하고는 호영에게 말했다.
“소신에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전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의 눈빛은 왠지 재벌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면 진짜 죽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너는 지금처럼 센추리에 집중하는 게 나를 도우는 거야.”
“하지만 당장에 중요한 것은 현실의 일이지 않습니까?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센추리에서는 무력이 부족하여 전하의 검이 되어 주지 못했지만 현실에서는 소신도 전하의 검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겠습니다.”
호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원재의 충직함에 감탄하였다. 준기나 원목의 충직함도 이에 못지않다지만, 어찌 되었건 호영의 입장에선 감탄스럽기 짝이 없는 충성심이었다.
‘목숨을 바치라면 바칠 수도 있을 것 같군.’
하지만 아무리 원재가 결사적인 태도를 보인다 해도 호영의 결정이 달라질 일은 없었다.
“안 돼. 다른 간부들이 현실에 주력하는 동안 너라도 센추리에 남아 있어야지.”
“…….”
“현실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센추리다. 그러니 원재야, 현실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센추리에 집중해.”
“……알겠습니다. 전하의 뜻이 그러시다면 소신은 센추리에서 전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겠습니다.”
비장하게 느껴지는 대답에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지금 하는 대로만 하면 될 텐데?’
하지만 굳이 센추리에 집중하겠다는 원재의 뜻을 막을 이유는 없었다. 호영은 원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조금만 더 고생해 줘. 4회 차가 시작되면 나도 다시 센추리에 집중할 테니까.”
“예!”
그렇게 원재를 치하한 호영은 그 뒤로도 센추리에서 고생하고 있는 유저들을 격려해 주었다. 무공 수련에 집중하고 있는 친위대와 돌격대를 시작으로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유저들과 도로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유저들까지.
물론 용병 조합과 모험가 조합, 그리고 상인 조합과 마법사 조합의 조합장들을 격려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원재는 이를 악물고서 말했다.
“전하께서 급한 일이 생기셨다며 다시 로그아웃을 하셨다. 이번에도 아마 재벌들 때문일 것이야.”
“…….”
“나는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생각이 없다. 감히 국왕 전하를 대적한 재벌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척!
일단의 사내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서 원재를 향해 외쳤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로열패밀리에는 두 명의 광신도가 있었다. 두 광신도의 이름은 바로 윤원목과 우원재였다.
이 두 사람은 광신도답게 호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윤원목의 경우는 주로 현실에서 호영의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들을 박멸하였고, 우원재의 경우는 주로 센추리에서 국왕이나 왕족을 위협하는 세력들을 말살하였다.
그들은 대체로 호영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지만 간혹 호영의 명령에 구애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재벌의 편에 선 변절자들의 후예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척살해라.”
“받들겠습니다!”
본 게임에서도 변절자는 존재하였다. 변절자가 아니더라도 모험가나 일반 유저들 중에 재벌의 편에 선 이들이 적지 않았다.
원재는 바로 그들을 척살하라 명령하였다.
‘우리를 적대하고도 업적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느냐?’
재벌들이 센추리의 절대 강자, 호영을 상대로 강하게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에게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믿는 구석이란 다름 아닌, 3회 차 때 활약한 전쟁 영웅들이었다.
쇼니가와의 전쟁, 요동국과의 전쟁 그리고 도요타 왕국과의 전쟁까지.
3회 차에는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전쟁이 연이어 벌어졌다. 그리고 이 거대한 전쟁에서는 무수한 전쟁 영웅들을 탄생시켰다.
대부분은 호영의 휘하에 있는 유저들이지만 호영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전쟁 영웅들도 분명히 존재하였다.
재벌들이 노린 것이 바로 이 전쟁 영웅들이었다.
스케일이 큰 전쟁에서 활약했다면 자연히 업적 점수도 어마어마하게 받게 될 터.
당연하겠지만 업적 점수를 많이 얻으면 초보자의 섬에 있는 땅도 그만큼 많이 구입할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대한 길드의 독점 구조가 무너진다는 것.
재벌들로선 대한 길드에 매달려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니 호영을 상대로 강하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 못 한 것이 있었다. 바로 원재라는 인물이었다.
‘변절자든, 재벌들이든 우리를 적대한 이들은 초보자의 섬에 있는 단 한 평의 땅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 * *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가 낯설었는지 호영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 주부터 갑자기 잠잠해졌군.”
로테 그룹을 비롯한 다섯 개의 재벌 그룹.
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공격을 가해 왔다.
언론을 이용해 ‘대한 길드’에 대해 비난했고 로비를 통해 정치적으로 알력을 행사했다.
지연이나 학연, 혈연을 이용해 인재를 빼앗아 가는 식으로 공격하기도 하였다. 호영은 그들의 공격에 대응하느라 단 하루도 방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3회 차가 끝나기 무섭게 분위기가 반전하였다.
매일같이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신문이나 방송들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고, 야당 정치인들도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잠잠해졌다.
마치 공세를 포기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제 그들도 깨달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 이상 우리를 공격해 봤자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충구의 생각도 호영과 같았는지 그와 같은 말을 하였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하지만 그때 허영만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들이 공세를 멈춘 것은 단지, 저희처럼 4회 차를 준비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허영만이 하는 말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허 팀장의 말대로라면 4회 차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공격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