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84화 (184/345)

# 184

마정석만 해도 마법의 발전에 기여한 역할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호영은 이렇게 마법을 발전시키기 위해 엄청난 자금과 노력을 투자하였다. 지금 대한국의 마법 역사는 그로부터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습게도 4회 차가 되니 그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마법사들이 적으로 돌아서 있었다.

한국 최대의 마법사 세력이라 불리는 영남 마도학파. 그들이 반군의 편에 서게 된 것이다.

‘자유분방한 마법사가 폭군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조금 허무하군.’

호영은 씁쓸하게 웃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떠나간 버스에 미련을 두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은 없었다.

“지금 당장 공성전을 하는 것은 무리겠어.”

“뭐, 저 정도쯤은 충분히 점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우리에게 성벽이란 크게 의미 있는 것이 아닌데.”

한국처럼 경공이 발달한 나라의 무인이라면 5미터 이하의 성벽은 어렵지 않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물론 수성하는 쪽에서도 무인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반군의 숫자는 5천이 넘어. 쉽게 볼 상대는 아니야. 더군다나 마법사들도 있고.”

반군의 무인들은 친위대원들과 비교했을 때 형편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재능이야 어떨지 몰라도 제대로 된 심법을 익힌 이가 전무한 실정이었다.

만약 반군의 무인들이 친위대와 동등한 숫자로 맞붙는다면 4배 이상의 숫자가 필요할 정도였다.

그런데 반군의 무인은 고작해야 백여 명에 불과했다.

무인 전력은 호영 쪽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반군에게는 마법사가 있었다.

마법사의 수준이야 아직까지는 그리 눈여겨볼 수준이 아니라지만, 마법이라는 것은 수성전에서 큰 변수가 될 터.

“무엇보다 우리는 무리해서 움직일 이유가 없다. 기다리기만 하면 곧 끝날 전쟁이니까.”

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호영으로선 모험을 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다 이긴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포위만 하는 것입니까?”

“남방군이 도착할 때까지는.”

“한 이틀 정도 쉴 수 있겠군요.”

“이틀이 지나면 모든 게 결판이 날 것이다.”

조금씩 내전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 * *

이틀이 지나자 마침내 남방군이 도착했다.

모두 합해 1만 6천의 병력이었다.

“남방군 대장, 나대용이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대장군 중에 유일하게 NPC인 나대용이 무릎을 꿇은 채 그렇게 외쳤다.

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적들은 모두 소탕하였느냐?”

“한 명도 남겨 두지 않고 모조리 멸하였습니다!”

“수고했다.”

“감읍하옵니다! 전하.”

수고했다는 한마디에 성은이라도 입은 것처럼 연신 감사를 표하는 나대용.

호영으로서는 어째, 건국왕이었던 ‘대왕’ 시절이나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대한국의 전성기를 만들었던 ‘진왕’ 시절보다 경외를 받고 있는 기분이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경외심이나 존경심이라기보다는 공포에서 비롯된 복종심이라고 봐야겠지만 말이다.

“대군사가 급히 보고해야 될 사안이 있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전하.”

참고로 충구는 호영이 아닌 나대용의 보좌를 맡았다.

즉, 남방군과 함께 움직였다는 것이다.

NPC인 나대용을 감시하기 위함이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지략이 대규모 전투에서 더욱 요긴하게 쓰이기에 당연한 인사 조치라고 할 수 있었다.

“무슨 일 때문이지?”

“남방에서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남방이라면······.”

“예, 일본입니다.”

충구의 말에 호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일본이라는 나라에 호의적인 감정이 없었던 호영이지만 작년에 두 차례의 침략을 겪은 이후 반일 감정까지 생겨났다.

이제는 일본이라는 말만 들어도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였다.

“설마 일본이 쳐들어오는 건가?”

“그렇습니다. 대마도에 일본군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쪽바리 새끼들, 빈틈이 생기니 아귀처럼 달려드는구나.”

결국 그의 입에서 상스러운 소리까지 나왔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내전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일본군이 쳐들어오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규모는 어느 정도 될 것 같으냐?”

“현재까지 대마도에 집결한 일본군의 숫자만 1만이 넘습니다. 그리고 열도에서 끊임없이 용병을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2만, 어쩌면 3만에 가까운 일본군이 침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내정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2~3만의 일본군이 쳐들어온다면 제아무리 호영이라고 해도 막기가 쉽지 않았다.

일본군을 상대하는 동안에 후방에서 다시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괜히 시간을 끌었나?’

반란이 확산되기 전에 진압을 끝내 놓았으면 일본군의 침공 따위야 가소롭게 느껴졌을 터.

호영은 잠시 후회하였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쳐 내야 할 반골들을 미리 쳐 놓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지금은 그래도 후방에서 귀찮게 할 세력들이 거의 전멸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한 그는 충구에게 물었다.

“강 제독은 어디에 있지?”

“부산진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수군만으로 상륙을 저지할 수 있을까?”

“지금 수군의 상황도 육군 못지않게 어수선하여 아무래도 상륙을 저지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라도로 상륙할지, 경상도로 상륙할지 아니면 충청도나 경기도에 상륙할지 정확히 특정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아쉬운 일이었다. 해군 전력이 강했다면 일본군이 상륙하기도 전에 바다에서 박살 낼 수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애초에 대마도를 계속 점거하고 있었다면 일본이 침공할 생각도 하지 못했겠지. 뭐, 이제 와서 의미 없는 이야기지만.’

그는 혀를 차며 나대용에게 말했다.

“나 장군, 일본군이 상륙하기 전에 함양성을 점령해야겠다.”

“하오시면?”

“내일 바로 공격을 시작할 테니 병사들로 하여금 공성전을 준비시키도록.”

일본군의 침략이 예정된 지금, 반군을 진압하는 데 마냥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가능하면 내일 안에 진압을 끝마치리라.

“······공성 장비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공성전을 시작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친위대가 성문을 열어 줄 것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호영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친위 기사단만으로 성 전체를 점령하는 것은 무리수일 수 있어도 성문만 점령하는 것이라면 어려울 게 없었다.

* * *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그의 자신감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화살이 쏟아지고 간간이 공격 마법이 쏟아지는 아수라장을 뚫고서 성벽을 타고 올라간 호영과 친위대.

그들이 성문을 점령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성문이 열렸다!”

“전하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가자!”

성문이 열리기 무섭게 수천의 병력이 성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성안으로 들어온 병력만 반도의 수보다 많아 보였다.

“전부 말에 타라. 우리는 곧장 관아로 달려간다.”

호영은 지휘관으로 보이는 장수 몇몇을 제거하고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그 정도의 실력자가 시가전을 벌이는 것은 전력 낭비였다. 차라리 그 시간에 혁명군 총대장이라 불리는 반란군 수괴를 잡는 게 나았다.

말에 올라탄 호영은 친위 기사단만 이끌고서 곧바로 관아를 향해 달려갔다.

“전하, 민간인으로 보이는 인파가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때였다.

한참 달려가던 호영의 정면으로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무장을 하지 않은, 민간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길을 열어라!”

“반도라면 투항해라!”

길을 가로막는 민간인들을 향해 친위대원들이 짜증 어린 표정으로 그렇게 외치니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들려왔다.

“대한국의 왕은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다가오면 인질들을 죽이겠다!”

민간인들이 한 말이 아니었다. 그들의 뒤에서 창을 겨누고 있는 반도들이 한 말이었다.

“혁명을 하겠다는 놈들이 백성을 인질로 사용하다니.”

“이 미친 새끼들이 더러운 짓만 골라서 하네?”

반군의 비열하기 짝이 없는 작태에 친위대원들이 분노하였다.

“전하! 신경 쓰실 거 없습니다! 어차피 전쟁에는 희생이 뒤따르는 법, 그냥 뚫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때 김성근이 외쳤다. 인질을 포기하라는 외침이었다.

하지만 호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에서 내렸다.

“기다려라.”

히이잉.

“저놈들은 지금 시간 끌려는 것입니다!”

“알고 있다.”

김성근의 말에 호영은 무덤덤하게 대꾸하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다가오지 마라!”

“한 발자국이라도 더 다가오면 인질들을 죽일 것이다!”

그가 다가오자 반군이 경계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호영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있는 모양새였다.

호영은 피식 웃으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연기는 그만해도 좋다. 로열패밀리는 지금 즉시 반도들을 제거해라.”

“반도들을 제거하겠습니다!”

“충!”

그의 외침에 적진에서 ‘충’ 소리가 들려왔다. 어처구니없게도 반군 안에서 일단의 무리가 호영의 명령을 복창한 것이다.

모두가 어리둥절할 때, 갑자기 반군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났다. 수십 명의 반군이 창을 거꾸로 든 것이다.

“전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잠입해 있던 로열패밀리가 작전을 시행한 것이다.”

“우와, 언제 또 스파이까지 파견했습니까? 무슨 영화라도 찍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단할 것은 없다. 아무튼, 길이 열렸으니 친위 기사단은 지금 바로 돌격해라.”

요원들의 활약으로 가로막혀 있던 길이 열려지자 호영은 다시 말을 타고는 성의 중심부로 이동하였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었다.

그저 가끔씩 겁 없는 반군이 등장했다가 순식간에 격퇴당할 뿐이었다.

마침내 관아 앞에 도착하자 김성근이 외쳤다. 투항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관아를 점거하고 있는 반군 지도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항복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권주를 마다하는군! 전하, 공격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공격하라.”

호영에게서 공격 명령이 하달되자 김성근은 선두로 달려가서는 발을 내질렀다.

콰직!

그의 발길질에 관아의 문이 사정없이 박살 났다.

“으악!”

문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반군이 뒤로 나가떨어졌는데, 김성근은 가소롭다는 양 피식 웃고는 그대로 관아 내부로 진입하였다.

호영도 김성근의 뒤를 따라 관아 안으로 들어서니 사방에서 반군이 달려들었다.

“지겨울 정도로 발악하네. 소용없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건가.”

무인이 제법 섞여 있었는지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그래 봤자 로열패밀리의 1군은커녕 2군에도 못 미치는 E급 무인들이었다.

한국에서 재능 있고 실력 있는 무인들은 모조리 대한 길드와 대한국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다른 세력의 무인들은 이처럼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원 역사와 비슷한 수준이군. 확실히 무공의 발전이 빠르긴 빨라.’

호영은 창검이 날아오는 상황에서 그렇게 여유로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휙휙.

하지만 그의 여유는 확실히 이유가 있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창검을 가뿐하게 피해 주고는 창을 크게 휘두르는 호영.

그가 창을 휘두르자 반군이 ‘억!’ 소리를 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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