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04화 (204/345)

# 204

아이누가 이번 전쟁의 일등 공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아이누 세력을 끌어들인 게 바로 호영의 눈앞에 있는 대군사라는 직함을 가진 강충구였다.

“하하하, 뭐 별거 아니었습니다.”

“아이누가 참전한 덕분에 전쟁이 한 달 이상 단축되었다는데 별거 아니기는.”

“제가 겸손을 떠는 것은 아니고, 솔직히 말해 정보부장이 북해도의 정보를 알려 줘서 아이누들을 생각해 낼 수 있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자랑을 늘어놓았을 텐데, 원재의 도움이 크긴 하였는지 충구는 그 같은 말을 하였다.

그러자 호영은 원재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말했다.

“하긴, 정보부장이 시기적절하게 적의 정보를 얻어 낸 것도 승패에 큰 영향을 끼쳤어. 순현도 왕실 정보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했고 말이야.”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둘 다 너무 겸손한 거 아닌가?”

원재는 그렇다 치고 충구까지 겸손한 태도를 보이니 호영으로선 어색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어쨌든 북해도를 점령에 성공했으니 참모들이 세웠던 계획대로 열도 점령을 진행하면 되겠지?”

그 같은 물음에 충구는 긍정을 표했는데, 원재는 목소리를 낮추며 우려를 표했다.

“한 가지를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거지?”

“외국의 반응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뜨겁습니다.”

“심각할 정도인가?”

“일본이야 당연히 아주 요란스러운 상황이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반응도 심상치 않습니다. 대한국의 행보에 경각심을 갖기 시작하였는데, 러시아에서조차 대한국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원재의 대답에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대한국이 외국으로 진출하기 무섭게 주변국에서 견제가 들어왔다.

무슨 악의 세력이나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는 것 같았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이 모양이라니. 앞으로 얼마나 심한 견제가 들어올지 걱정스러울 정도야.’

일본 정복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내년이면 일본 혼슈에도 진출하여 동북부 정도는 차지할 예정이었다.

그 이후에는 당연히 열도 전체를 정복할 예정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주변국이 벌써부터 호들갑을 떨며 견제를 해 대니 일본을 점령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일본 자체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말이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국외의 반응과는 반대로, 국내의 여론은 대한국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충구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여론은 원래부터 우리 편이 아니었나?”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민주주의나 자유주의를 신봉하던 이들도 우리 편으로 넘어왔다는 게 중요합니다.”

“반란이 일어날 확률이 조금 줄었겠어.”

호영이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니 충구가 정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닙니다. 이제 병력을 모집하는 것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고 자금이 부족해져도 국채를 발행하여 쉽게 자금을 충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반란 같은 것은 이제 유저들 선에서 정리될 겁니다.”

“NPC들의 반란도?”

“당연히 그렇지 않겠습니까? 유저들은 이제 철저하게 애국심으로 무장되었습니다. 현실의 한국에는 애국심이 없어도 센추리의 대한국에는 애국심을 가진 유저들이 아마 적지 않게 있을 겁니다.”

“애국심이라……. 그 정도인가?”

“예, 직접 겪어 보시면 전하께서도 분명 놀라실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일본에게 당했던 뼈아픈 역사를 대한국이 나서서 복수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유저들이 크게 지지해 줄 것임은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충구의 말을 들어 보면 유저들의 반응은 호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뜨거운 것 같았다.

단순히 지지도가 올라가는 수준을 뛰어넘어 아예 센추리의 대한국을 자신들의 진짜 조국이라 생각하는 유저들이 등장한 것이다.

‘요즘 유저 수도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는데, 이들이 전부 애국심으로 무장한 유저들이라면 확실히 장난 아니기는 하겠어.’

물론 유저 수가 많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당장에 중국이나 일본만 봐도 유저 수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내전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애국심으로 무장한’ 유저들이라면 다르다.

나라를 사랑하니 나라의 체제나 통제에 저항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만에 하나 나라가 위기에 처한다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꺼이 싸워 줬다.

한마디로 호영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준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국의 유저들이 그랬다.

몇몇 유저들은 호영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 추앙, 숭배, 복종하고 있을 정도였다.

일본의 북해도를 점령한 게 그만큼 한국 유저들로 하여금 강렬한 희열감을 안겨 준 것 같았다.

“그런데 미국의 반응은 어때?”

“예?”

“미국의 반응은 어떠냐고.”

갑작스러운 호영의 질문에 충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신은 모른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원재가 말했다.

“아직 미국의 여론은 외국에 무관심한 상태입니다. 그나마 관심 있는 곳도 유럽이나 캐나다, 멕시코뿐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전쟁에는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미국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외국에 관심을 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미국이 곧 있으면 일본으로 진출하게 되지.’

회귀 전의 역사를 떠올려 보면 미국은 머지않아 일본 정확히는 북해도 지역에 진출하게 될 것이다.

물론 진출이라고 해 봤자 군사적인 진출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의 미국이 초강대국이라고는 하나, 센추리의 미국은 그저 마법이 발달해 있고 인구가 많으며 땅덩어리가 조금 큰 나라에 불과하였다.

멕시코나 캐나다라면 모를까, 아시아에 군사를 보낼 수 있는 수준의 나라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튼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속해 있는 미국 세력이 교역을 하고자 1년 안에 북해도로 진출할 예정이었다.

호영이 미국의 반응을 물어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회귀 전과는 다르게 대한국이 북해도를 차지한 상태였으니 앞으로 미국의 행보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었다.

미국이 일본 진출을 포기하고 대한국과 교역하는 것에 만족한다면 상관없겠지만 규슈나 혼슈로 교역을 시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가 북해도를 점령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미국과 일본의 교역을 막는 것이니만큼, 두 나라 간의 접촉을 어떻게든 막을 필요가 있었다.

설사 무력을 써서라도 말이다.

‘다행히 우리의 일에 무관심하다니, 북해도에서 교역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겠어. 물론 내년이 되어 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호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 이사와 상의할 것이 있어서, 나는 이만 가 봐야겠어.”

“예.”

“잘 다녀오십시오.”

현실보다는 센추리에 주력하기로 한,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호영은 그대로 로그아웃 하였다.

* * *

대한국이 북해도를 정복한 것은 현실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었다.

9시 뉴스에도 나왔을 정도로 화제가 되었는데, 그로 인해 로열사는 언론사들의 취재 요청에 몸살을 앓았다.

그나마 허 팀장, 아니 이제 이사가 된 허영만 이사가 거창하게 기자 회견을 열고서야 귀찮게 구는 경우가 적어졌다.

-……이런 이유로 북한의 길드를 조사해야 하니, 대한 길드에서 최고라 불리는 무인들을 불러 주시오.

언론들만 귀찮게 구는 것은 아니었다. 정부기관에서도 호영과 로열사를 귀찮게 만들었다.

초보자의 섬 곳곳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느니, 범죄자를 잡는 데 협조해 달라느니, 국방부에 무료로 무공을 가르쳐 달라느니.

그리고 지금처럼 아예 무인을 빌려 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하였다.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연하겠지만 호영은 정부의 요구를 무작정 들어주지는 않았다.

들어줄 수 있는 요구는 들어주되, 무인을 빌려 달라든가 보유한 영토를 팔라는 식의 요구들은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내가 누군지 모르시오?

“본인의 입으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국정원의 제1 차장이시라고.”

-그런데도 감히 협조를 안 해 주신다는 것이오?

호영은 조소를 지었다.

‘아직도 내게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정보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주제에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북한 길드를 조사하는 것은 민간인들이 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무공을 익힌 자들이 다 당신 길드에 있는데 어떻게 해, 그럼?

“돈을 내고 무공을 배우시면 되지 않습니까?”

-이익! 지금 나랑 장난치는 것이오?

“왜 장난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작전이 다음 주인데 무공을 이제 와서 어떻게 배우라는 것이오!

“그러니 진작부터 무공을 배우지 그러셨습니까?”

-나를 놀리는 것이오? 대한 길드를 소유하고 있다더니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소!

“차장님이야말로 예의가 없으신 것 같습니다만. 부탁을 전화로 하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까지 하시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앞으로는 부탁을 하시려면 예의를 갖추어 주십시오. 저희는 어디까지나 민간단체이고 국정원의 명령에 따라 주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뚜, 뚜…….

“여보세요? 여보세요? 허, 끊었네.”

호영은 자신의 휴대폰을 내려다보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계속하더니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 버린 것이다.

그로선 황당할 따름이었다.

“언론이 잠잠해지나 싶더니 정부가 말썽이네. 세금도 겁나게 뜯어 가더니 말이야.”

“세금 문제야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합니다. 비록 가상현실에서의 경제활동이라지만 규모가 지나칠 정도로 커졌으니 말입니다.”

허영만의 말에 호영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 그 정도는 나도 이해해 줄 수는 있어. 나도 나름 성실한 납세자니까 말이야. 하지만 문제는 검찰청과 국정원의 요구지.”

가상현실이 사람들의 실생활을 장악하는 상황이 오자, 정부의 행정 부처들도 어쩔 수 없이 가상현실에 진출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기획재정부 소속의 국세청과 관세청이 센추리에 진출하였고, 교육부,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등도 그 뒤를 따랐다.

정부의 행정 부처 대부분이 센추리에 지부를 세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행정 부처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니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도 센추리에 지부를 세우게 되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센추리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대한국의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인 대한 길드라 그로 인해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저는 전에도 말했듯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들어주지 않아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지.”

호영이 인상을 찡그리자 허영만은 태연하게 답했다.

“국정원이나 검찰청의 반응은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들의 협박은 일종의 허장성세와도 같습니다.”

“너무 그들을 만만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허영만의 여유에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전에 재벌들과 충돌이 벌어졌을 때 호영의 측근들 중 가장 우려했던 것이 바로 허영만이었다.

완벽주의자답게 사소한 것조차 우려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가장 경계해야 될 정부와의 충돌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호영으로선 의아할 수밖에 없는 반응이었다.

“여론이 우리의 편이지 않습니까?”

“……그거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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