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07화 (207/345)

# 207

“필요하다면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

호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대통령이 자신의 사유재산을 강매시킬 수도 있다는 말을 하였으니 호영으로선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호영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송 사장, 지금 국민과 정부 그리고 의회는 대한 길드의 독주에 심각할 정도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한 길드가 소유한 토지의 절반 정도를 개인이나 기업, 길드 등에 파세요. 물론 나라에 팔아 주면 더 고맙고요.”

“죄송하지만 대통령님, 대한 길드의 토지는 엄연한 사유재산입니다. 저는 대한 길드의 토지를 다른 이에게 판매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면 정부는 헌법 제120조 제1항 천연자원의 국공유화와 헌법 제125조의 대외 무역의 규제와 조정에 근거하여 대한 길드의 토지 일부와 무역을 규제하거나 국유화할 것입니다.”

“대통령님, 지금 저에게 협박이라도 하시려는 것입니까?”

호영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고개를 내저으며 차분하게 호영을 설득하였다.

“송 사장,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란 모든 국민의, 모든 국민에 의한, 모든 국민을 위한 정치 형태입니다. 송 사장의 대한 길드는 민주주의 체제에 어울리지 않아요. 만약 대한 길드처럼 거대한 세력이 아무런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일개 개인에 의해 운영된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겁니다.”

그의 말을 들어 보면 대한 길드가 엄청난 잘못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과연 정치인다운 언행이었다.

물론, 대통령의 말이 완전히 억지인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의 말대로 만약 지금의 체제가 굳혀진다면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란 허울에 불과해질 것이다.

대한 길드를 소유하고 있는 호영이 이 나라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될 것이니 말이다.

“그게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나라를 위해서, 위대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부디 양보해 주세요.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 송 사장에게도 좋은 일이잖아요?”

이번에는 협박이 아닌, 설득을 하였지만 호영의 선택이 달라질 일은 없었다.

“저는 누군가를 위해 제 자신의 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대통령인 제가 부탁한다고 해도 말인가요?”

“예.”

호영의 단호한 대답에 대통령이 입술을 깨물고는 호영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호영도 대통령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정치인으로서 수십 년을 살아온 대통령과 부족장과 국왕으로서 십수 년을 살아온 호영의 기 싸움이었다.

기백 자체는 호영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는 국왕, 부족장뿐만이 아니라, 무인으로서도 살아왔기에 기백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기백도 만만치 않았다. 흥선대원군을 닮아서 그런지 기백도 흥선대원군의 그것을 쏙 빼닮았다.

둘은 그야말로 불꽃 튀는 기 싸움을 벌였다.

“하아.”

그러나 두 사람의 기 싸움은 대통령이 한숨을 내쉬면서 끝이 났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어요. 송 사장이 저의 부탁을 거절하리라는 것을. 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정부가 대한 길드를 위해 무엇을 해 주었다고, 이제 와서 땅을 달라는데 주겠어요?”

“······.”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비록 지금까지는 센추리의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해서 대한 길드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지만 이제는 아니거든요. 물론 송 사장은 이런 저를 염치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에요.”

대통령의 말에 호영은 눈을 빛냈다.

확실히 염치없게 느껴지는 말이긴 하였다.

이제 와서 정부가 신경을 써 준다고 해도 대한 길드에게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다만,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하리라는 것은 예상외였다.

“송 사장, 오늘은 협상 첫날에 불과해요. 서로 간만 본 것이죠. 그러니 앞으로 몇 번이고 만나 서로 의견을 조율해 봅시다. 계속 의견을 조율하다 보면 정부와 대한 길드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대통령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불러 주신다면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역시 송 사장은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대통령님이 억지를 부리실 줄 알았습니다.”

“억지요? 아, 제가 고집이 센 편이기는 하죠, 하하, 그래도 저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송 사장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를 왜······?”

“간담회 때 말했잖아요, 송 사장이 만든 대한 길드가 우리나라의 주권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제가 송 사장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없는 것도 바로 대한 길드의 활약상을 보고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렇습니까?”

대한 길드의 활약상을 듣지 않았다고 과연 자신을 함부로 대할 수 있었는가 싶지만 호영은 씩 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그로선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대통령과 충돌할 수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고집불통이라느니 독불장군이라느니 왕고집이 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냥 언론이 만든 이미지였나?’

호영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 대통령이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아니, 지금의 경우는 요구가 아니라 거래라고 해야 될까요?”

“어떤 거래를 원하십니까?”

“최소한의 명분을 저에게 주세요. 그렇다면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회나 정부의 압력을 최대한 막아 드리겠습니다.”

그런 거래라면 호영도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정치계의 압력을 막아 주는 것은, 센추리에 집중하고 싶어 하는 호영으로선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거래 조건이었으니 말이다.

“명분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저에게 상당한 압박을 가해 오고 있어요. 센추리에서 국토교통부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이유로 말이에요.”

그 말에 호영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건설이나 교통에 관해 지분을 원하시는 겁니까?”

“바로 그거예요. 초보자의 섬에서도 이제 철도가 생겨나고 있다죠? 철도나 항공 같은 경우는 나라가 관리해야 하는데, 국유화를 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지분을 얻으면 어느 정도 명분이 생기거든요.”

지분을 내주는 조건이라면 호영으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대한 길드는 최근 들어 도심을 개발하거나 교통 인프라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에 상당히 어려워하고 있었다.

해마다 영토와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기에 행정적으로 부담이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몇몇 간부들의 경우는 자신들이 정부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의문을 드러낼 정도였다.

그렇기에 정부가 나서서 행정을 대신 처리해 준다면 대한 길드에게도, 유저들에게도 그리고 정부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다.

‘기업으로 따지면 대한 길드는 일종의 대주주로 남고 정부는 경영자로서 경영을 대신하는 셈이지.’

결정을 내린 호영은 ‘지분을 제 가격에만 매입해 주신다면 팔 의향이 있다.’라고 말했고, 대통령은 흔쾌히 대답했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 주셨는데 당연히 제 가격에 주고 사야죠, 하하하.”

대한 길드가 끝까지 모든 사업을 독점하고자 했다면 정부로서도 난처했을 것이다.

가상에서 일어난 일이니 제재할 방법도 없었고, 그렇다 해서 가만히 놔두기에는 대한 길드의 영향력이 정부의 그것을 넘어설 수 있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만에 하나 대한 길드가 다른 나라로 귀화하기라도 한다면 대통령이 계속 말했던 대한민국의 주권은 완전히 상실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센추리는 머지않아 현실을 지배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상현실 게임이니만큼, 센추리에서 독보적인 세력을 갖춘 대한 길드의 가치도 엄청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호영이 유화적으로 나오니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안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그 이후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협상 아닌 협상을 이어 갔다.

“자세한 사항은 실무자들이 처리하는 걸로 하고 저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대신, 빠른 시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예, 꼭 와 주세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호영은 대통령과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누고는 그대로 청와대를 나섰다.

#미국

청와대에서 대통령과의 독대를 마치고 로열사의 본사로 돌아오니 허영만이 마중 나와 있었다.

“대통령과의 독대는 어땠습니까?”

“나쁘지 않았어. 처음에는 무리한 요구를 하나 싶더니,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니 그대로 포기하더라.”

“그렇습니까? 의외군요.”

“대신, 공공사업에 대한 지분을 얼마 달라고 요구해서 허 이사가 말했던 대로 최대 30퍼센트까지 줄 수 있다고 했어.”

“잘하셨습니다. 어차피 공공사업의 경우는 정부의 조력이 필요하니 말입니다.”

“그 외에도 나중에 몇 번이고 만나서 의견을 조율해 보자고 하던데. 우리가 정부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을 거라며 말이야.”

그 말에 허영만은 탄성을 내지르며 말했다.

“좋은 일이군요. 대통령과 자주 독대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너무 정치와 가까워진다는 것이지.”

“뭐, 그것은 어쩔 수 없죠. 어차피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정치는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센추리의 유저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정치, 사회, 경제와도 밀접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센추리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대한 길드 역시 정치계, 경제계와 밀접해진다.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정치계와 깊은 연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달라졌으니 어쩌면 대통령의 권력은 내후년까지 유지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동맹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있어.’

오늘 대통령과 독대해 보니 이야기가 제법 잘 통했다.

앞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으리라.

“대통령과는 계속 만나서 의견을 조율하면 될 것 같고. 그런데 허 이사는 왜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지?”

“지금 사장님의 집무실에 손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손님?”

“사업가 겸 모델인 패트릭 슈워제네거라는 미국에서 온 손님입니다.”

호영은 처음 들어 보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슈워제네거라면 혹시 그 할리우드의 영화배우? 정확한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아무튼 그 사람과 관련이 있나?”

“예, 아주 유명한 영화배우로서 대략 15년 전에 캘리포니아주지사였던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아들입니다. 참고로 패트릭 슈워제네거 역시 영화와 드라마를 몇 편 찍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왜 나를 찾아왔지?”

“슈워제네거 가문은 센추리의 캘리포니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센추리에서 무언가 협상하기 위해 사장님을 찾아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집합이라고는 센추리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아.”

허영만의 말에 호영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일종의 사자를 보낸 거구나.’

3회 차에는 태평양, 4회 차에는 일본까지 진출을 시도하는 캘리포니아주의 세력들.

지금까지는 미국의 교역선이 북해도 인근에 난파되어 우연히 양국 간에 교역이 시작된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현실에서 미리 접촉하였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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