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
“하지만 단순히 지키는 것으로 그치는 전쟁인 것은 아니다. 만약 일본을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면 나는 과실을 독차지하지 않을 것이다. 공을 세운 자들에게 공평히 나눠 줄 것이다. 100년 전에 기사들과 남작들에게 장원을 하사하였던 것처럼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들에게 작위와 봉지를 하사해 줄 것이다!”
그 말에 병사들은 마치 전율에 휩싸인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병사들만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니었다.
장수들과 참모 그리고 유저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작위를 얻어 영주가 되는 것!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꿈과 목표였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싸워라! 공을 세운다면 전쟁 영웅이 되어 명예를 얻을 것이고 작위와 봉지를 하사받아 권력과 부를 얻을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국왕 전하 만세! 대한국 만세!”
흥분의 도가니가 된 병사들을 향해 호영은 위엄 어린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모두 출정하라!”
그렇게 부산진에서 3만에 달하는 병력이 출정에 나섰다.
* * *
“대마도군.”
원정군은 반나절도 안되어 일본의 섬, 대마도에 도착하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처음 계획했던 대로 간다.”
해군 총사령관, 강파도의 질문에 호영은 무심한 얼굴로 답하고는 자신의 창을 들었다.
“적이다! 조선이 쳐들어왔다!”
대마도의 일본군은 원정군을 보고 침착하게 방어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호영이 별안간 바다로 뛰어내렸다.
“헉! 전하!”
“아니? 이 무슨!”
아군마저 당황할 수밖에 없는 돌발 행동이었다.
하지만 강파도를 비롯한 원정군의 지휘부는 그 같은 모습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호영이 지휘부와는 사전에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다.
타다닥, 타다닥!
무협지에는 흔히 등평도수라 불리는 경지가 있다.
오직 무공의 힘으로 강을 건너는 경지를 말하는데, 지금 호영이 바로 그 등평도수의 신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바다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무신이다! 인간이 아니야!”
“다, 당황하지 마라! 고작해야 한 놈이다!”
“저걸 어떻게 이겨!”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믿기 어려운 광경에, 일본군은 패닉에 빠졌다.
아무리 짧은 거리라고는 하지만 인간이 바다 위를 달리다니!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경지가 되어야 가능한 신기란 말인가?
일본군으로선 호영이 신이든, 초고수든 간에 절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대마도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의 병력은 고작해야 2천.
그리고 항구에는 고작해야 삼백에 불과한 병사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데 삼백으로 등평도수의 신기를 보여 주는 고수를 상대한다?
아무리 대마도에 남아 있는 일본군이 죽음을 불사하기로 맹세한 자들이라지만 개죽음을 당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망쳐! 유격전이 무조건 답이야!”
그래서 대부분의 일본군은 도주를 선택하였다.
결사 항전을 하더라도 다른 장소에서 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호영은 도망치는 일본군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무공이 강하다는 것은 이동속도도 압도적으로 빠르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호영은 순식간에 일본군의 뒤를 쫓아서 도망치는 일본군을 몰살시켰다.
변방에 해당하는 일본군이라 그런지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선해라! 오늘 안에 대마도를 정복한다!”
항구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한 호영이 바다를 향해 그렇게 외치자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일단의 병력이 하선하였다.
가벼운 복장을 착용하고 있는 그들의 정체는 바로 친위대였다.
“바로 가자.”
“충.”
호영은 친위대를 이끌고 곧바로 대마도 중심부를 공격하였고, 그의 말대로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대마도를 점령할 수 있었다.
참고로 대마도의 도주는 대마도의 지형을 이용하여 유격전을 펼치려고 하였지만 이 역시 친위대의 압도적인 전투력에 의해 무산되었다.
나중이면 몰라도 아직까지는 무공의 힘이 확실하게 전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일본 해군과의 전투가 있을 것이다.”
대마도에도 유저들은 있었을 것이니 점령 소식은 오늘 내로 일본에 전해질 것이다.
아니, 이미 전해졌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대마도 점령 소식을 들은 일본 해군은 곧바로 대한국의 해군을 요격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해군의 존재 의의는 결국 적군의 상륙을 막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본 해군의 규모가 훨씬 크다는데 정말 괜찮겠어?”
강파도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하니 호영이 우려가 되었는지 다시금 물었다.
그러자 강파도가 갑자기 사극 톤으로 말했다.
“신에게는 무려 130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
호영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느닷없이 성웅, 이순신을 따라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하긴, 회귀 전에도 지독한 이순신 팬이었지. 뭐, 실제로 이순신만큼 대단한 해전 실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황당함을 느꼈지만 호영은 이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의 실력을 알고 있으니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여도 그저 믿음직스럽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 * *
다음 날이 되자 원정군은 다시 출항에 나섰다.
이번 목적지는 후쿠오카였다.
“많군.”
“족히 500척은 넘어 보입니다.”
“500척이라······.”
출항에 나선 지 이틀.
규슈 인근에 도착하니 정체불명의 함선들이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해군이었다.
“도요타 왕국과 시마즈 왕국의 함선이 대부분이네.”
“두 나라가 규슈 해군, 아니 일본 전체의 해군에서 압도적인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섬나라라 해군이 강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중국의 해안선을 약탈하는 규슈 지역의 세력들을 제외하고는 해군력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했다.
내전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해군력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 이번 해전만 이겨 내면 더 이상 일본의 해군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
“예, 아마 저게 일본이 사력을 다해 끌어모은 최대의 해군력일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전투가 되겠군.”
호영은 비장하게 중얼거렸다.
만약 이번 해전에서 패배한다면 혼슈 동북부를 지원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원정군 5만 명이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물론 육군의 경우 수송선에 태워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지만, 일본 함선의 이동속도와 아국 함선의 이동속도를 생각하면 수송선까지 추격당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군선 130척으로 어떻게든 적의 함대를 무찔러야 했다.
‘대한국의 운명이 걸려 있는 전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 해.’
주먹을 불끈 쥔 호영은 강파도가 군선을 배치하며 작전을 지휘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해전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운 그였기에 이번에는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좌익은 속도를 높여라! 학익진처럼 질서정연하게 들어가야 한다!”
“사거리를 잘 계산해! 무기는 아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후미는 어서 바깥쪽으로 이동해라! 포위를 완성시켜야 한다!”
강파도는 쉴 새 없이 명령을 내리며 전장을 조율하였다.
참고로 군선 간의 통신체계는 유저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북이나 연 같은 기존의 통신체계를 이용하기도 하였지만 유저들이 로그인과 로그아웃을 반복하는 것만큼 신속하고 정확한 통신체계는 없었다.
사무실 하나를 해군 지휘실로 탈바꿈시켜 실시간으로 작전을 중계하고 있었기에 강파도가 명령을 내리면 즉시 현장에 반영되는 체제였다.
‘양측 다 자로 잰 것처럼 일자로 뻗었군. 그런데 이러면 누가 유리한 거지?’
기백에 달하는 군선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으니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호영으로선 감탄하기보다는 우려가 되었다.
해군 지휘관의 자질부터 시작해서 함선과 병기까지 모든 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전쟁이라는 게 워낙 변수가 많다 보니 걱정이 없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믿어야 한다.’
호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때 강파도가 갑자기 큰 목소리로 외쳤다.
“방포하라!”
방포?
순간 대포가 쏘아지길 기대하였지만 포탄 소리는 끝까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들려오는 것은 ‘팅, 팅’ 하며 무언가가 날아가는 소리였다.
화살, 정확히는 통나무처럼 거대한 화살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4회 차에는 화약이 개발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대한국에는 대포를 대신하여 천보노라는 엄청난 무기가 있었다.
방금 쏘아진 거대한 화살도 바로 이 천보노가 쏜 것인데, 사거리가 무려 1킬로미터에 달할 정도였다.
‘이름만 천보노지 유럽에서 흔히 쓰이는 강화 발리스타로군. 아직은 1킬로미터가 한계라는 게 아쉬워. 마법을 조금 더 잘 썼다면 2킬로미터도 가능했을 텐데.’
호영은 천보노의 사거리를 살짝 아쉬워하였지만 거대한 화살이 만들어 낸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선봉으로 급속 항진하고 있던 일본 군선들이 거대한 화살을 맞고서 침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20척이 넘는 선박이 침몰하니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강파도는 차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계속 쏴라! 지금이 기회다!”
팅! 팅!
그의 명령에 사수들은 천보노를 조작하여 연거푸 화살을 날렸다.
그러자 일본 측에서도 반격을 시도하였는데, 돌이나 항아리 그리고 작은 화살이 날아왔다.
“투석기인가? 확실히 병기의 차이가 압도적이군.”
안택선이나 몇몇 대형 군선 위에 투석기를 배치한 일본군이지만 대한국의 천보노와 비교하면 효율이 아주 안 좋았다.
사거리도 사거리지만 명중률이 그야말로 극악이었던 것이다. 거의 백 번을 쏘아야 한번 맞을까말까 한 것 같았다.
‘저 정도면 크게 의미가 없는 반격인 것 같은데?’
일본군은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만 있었다.
활이나 석궁까지 써 가며 반격을 해 왔지만 아직 700미터 이상의 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크게 의미가 없었다.
‘일본도 기술력은 충분할 텐데 이 정도로 차이 나는 것은······ 아무래도 마법의 영향이 크겠네.’
양국 모두 마법이 어느 정도 발전된 나라들이다.
하지만 발전의 방향은 전혀 달랐는데, 간단하게 비교하자면 제작 마법과 전투 마법의 차이라고 볼 수 있었다.
즉, 대한국의 경우 전투 마법보다는 아티팩트 같은 제작 마법이 발전하였다면 일본의 경우 전투 마법만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법의 발전 방향이 다르다 보니 검이나 창 같은 일반적인 병기부터 투석기나 발리스타 같은 대형 공성 병기까지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제작 마법을 발전시킨 대한국의 병기들은 겉으로만 보면 중세에 머물러 있지만 스펙 자체는 거의 르네상스 시대에 버금가는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이겼다고 봐도 될 것 같은데?”
호영은 그렇게 아국의 승리를 점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도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돌격, 무조건 돌격이다!”
“거리만 좁히면 우리가 이긴다! 백병전으로 가야 한다!”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반자이 돌격처럼 천보노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돌격하였던 것이다.
물론 아무 대비 없이 돌격만 했다면 대한국으로선 어떠한 위협도 느끼지 못했을 거다.
배가 닿기도 전에 모조리 수장시킬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일본군은 자신들이 자부하는 전투 마법을 사용하였다. 동양에서만큼은 최고라고 불리는 바로 그 전투 마법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