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물론 전투 마법이라고 해 봤자 아군의 함선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시대에 전투 마법의 사거리는 기껏해 봐야 300미터가 한계였으니까.
하지만 방어 마법을 일으켜 천보노 공격의 대미지를 최소화하거나, 풍계 마법을 사용하여 이동속도를 높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였다.
일본군은 바로 그 마법들을 주로 사용하며 대한국의 함대에 빠르게 접근하였다.
“활을 쏴라! 접근을 막으란 말이다!”
“백병전을 준비해라!”
결국 일본군의 접근을 허락하고 말았다.
천보노를 열심히 쏘았지만 일본군은 그야말로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들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내가 나설 때인가.’
호영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창을 들었다.
구경꾼의 역할밖에 할 수 없을 때는 불안하기만 하였다.
언제나 전장을 지배하는 역할만 하다가 구경만 하려니 어색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군이 백병전을 시도하고 아군도 어쩔 수 없이 백병전을 허락하는 상황이 오니 그는 오히려 쾌재를 불렀다.
백병전이 시작된다는 것은 그가 활약할 여지가 생겨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쿠웅!
마침내 최선두에 있던 대장선이 적선과 부딪쳤다.
백병전이 시작된 것이다.
“반도 놈들을 죽여라! 멀리서 화살밖에 쏠 줄 모르는 나약한 것들이다!”
“우와아아아!”
함성을 터뜨리고는 병장기를 앞으로 내밀며 달려드는 일본군.
무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곡예를 부리며 배를 건넜다.
그야말로 피에 굶주린 아귀를 보는 것 같았다.
부우웅! 서걱!
하지만 그들은 대장선으로 넘어오기 무섭게 바다로 수장되었다.
대장선에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고수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 사령관, 지금까지 잘해 주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나에게 맡겨라.”
“충!”
호영은 강파도에게 그리 말하고는 곧장 적선으로 넘어갔다. 역으로 적선을 공략하려는 것이다.
“죽어라!”
“도요타 왕국 만세!”
적선으로 넘어가니 사방에서 일본군이 달려들었다.
일본군도 호영이 주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고작해야 백 명 정도인가.’
하지만 한 배에 타고 있는 일본군의 숫자는 많아 봐야 기백에 불과하였다.
작은 배에는 전투원이 백 명도 안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기백에 불과한 숫자로 호영을 어찌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최소 수천은 있어야 호영을 막을 수 있으리라.
서걱! 서걱!
순식간에 일본군을 학살한 호영은 어제 대마도에서 보여 주었던 등평도수의 신기를 다시 선보이며 다른 배로 이동하였다.
“마, 막아!”
“오니다! 오니!”
일본군은 경악하는 얼굴로 화살이나 마법을 쏘아 내며 호영을 막아 내려 하였지만 응집된 화력이 아니고서야 호영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최소 천 이상의 궁수나 백에 가까운 마법사가 일제히 공격한다면 어느 정도 견제되었겠지만 아까도 말했듯 한 배에 탄 전투원은 최대 기백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마법사의 숫자는 배 하나당 세 명, 많으면 열 명 정도였다.
궁수 또한 그리 많다고 볼 수 없었으니 A+랭크의 호영을 막아서는 것은 요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A+랭크의 경지는 바다에서 더 무적인 것 같은데?’
물론 등평도수의 경우 마력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소모되었기에 계속 지금처럼 싸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보여 준 호영의 활약만으로 일본군의 기세를 꺾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퇴각하라! 퇴각하라!”
여전히 대한국의 함대보다 많은, 200척에 가까운 함선이 남아 있었지만 일본군은 다급히 배를 선회하고서는 도주하기 시작했다.
패주.
호영의 무력을 보고서 도주를 선택한 것이다.
“이겼군.”
“우와아아아아!”
아군이 내지르는 함성에 호영은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더욱 열렬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고작해야 20척 정도의 피해를 본, 완벽한 승리였다.
* * *
쾅!
“무능한 것들, 고작 한 줌밖에 안 되는 반도들을 처리하지 못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야마토 제국의 황제, 오다 노부히데의 호통에 제장들은 자라목이 되어 진땀을 흘렸다.
전투병만 5만을 동원한 전쟁이었다.
경쟁국이었던 나가노 왕국과 동영 왕국의 군사력까지 합치면 10만이 넘었다.
정예 병력 10만이 동원되었는데 변방으로 취급받던 동북부를 여태껏 점령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노부히데로선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폐하, 적에게는 A급을 넘어서는 무술가가 있습니다.”
“그래 봤자 한 놈이다. 한 놈을 어쩌지 못해 5만이 넘는 대군이 보름이 넘도록 허둥대고 있다는 말이냐?”
야마토 제국의 제일 지략가라 불리는 마스다 도시오가 애써 변명을 해 보았지만 노부히데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동북부에 남아 있는 나라는 두 개뿐.
그런데 보름이 넘도록 이 두 나라를 어쩌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수도만 점령하면 끝나는 일인데 그 쉬운 일을 못하고 있었으니 노부히데의 입장에서는 그저 어처구니없을 따름이었다.
“규슈의 해적 놈들이 모조리 수장당했다! 이제 곧 조선 놈들이 쳐들어온다는 말이다!”
“······.”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후쿠오카 해전.
함선만 무려 500척이 넘게 동원한 이 해전에서 일본은 압도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규슈 함대의 절반 이상이 궤멸되었던 것이다.
이 해전을 계기로 일본의 제해권은 완전히 상실하였다.
그리고 제해권이 상실되었다는 말은 조선, 즉 대한국이 언제든지 일본을 상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무려 5만을 동원하여 전쟁을 벌이고 있는 야마토 제국으로선 후방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나흘 주겠다. 나흘 안에 동북부의 반도들을 처리하도록. 만약 하지 못하겠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할복하고!”
으르렁거리며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노부히데의 모습에 제장들은 그저 굳어진 얼굴로 ‘하이!’를 외칠 뿐이었다.
“폐하! 폐하!”
그때 왜소한 체구의 무장이 갑자기 달려와서는 노부히데의 정면에서 부복하였다.
“무슨 일이냐!”
“나가노 왕국과 동영 왕국이 회군한다고 합니다!”
“뭣이!”
쾅!
노부히데는 팔걸이를 내리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놈들이 왜 벌써 회군을 한다는 말이냐!”
나가노 왕국과 동영 왕국.
이 두 나라는 현재 아키타 방면을 책임지고 있었다.
야마토 제국이 담당하고 있는 이와테와 아오모리 지역에 동일본 왕국이 있듯이, 아키타 지역에도 초카이라는 이름의 왕국이 있어 두 나라가 힘을 합쳐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두 나라가 회군한다면 야마토 제국으로선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위기에서 벗어난 초카이 왕국이 동일본 왕국을 응원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본 왕국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있는 야마토 제국이었으니 초카이 왕국 군의 참전은 무척 부담스러웠다.
“조, 조선군이 도야마에 상륙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고······.”
콰직!
그 말에 노부히데는 더욱 화가 나 팔걸이를 아예 부서뜨렸지만 심호흡을 하며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노부히데는 자신이 존경하는 오다 노부나가처럼 포악하고 성급한 성격을 가졌으나 한편으로는 명석한 판단력과 결단력 등을 가졌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그는 능력 있는 지도자였던 것이다.
“도야마에 상륙한 조선군은 몇 명이냐?”
그가 냉정을 되찾고 그 같은 질문을 던지니 황당한 대답이 들려왔다.
“대략 3만 정도라고 합니다.”
“허, 3만?”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3만이라니?
‘조선 놈들이 우리를 아주 우습게 보는 모양이야. 한 줌도 안 되는 병력으로 일본, 그것도 혼슈에 상륙하다니!’
혼슈의 2강 3중 5약에서 3중에 해당하는 나라들도 최소 4만 이상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2강에 속한 야마토 제국의 경우는 보유하고 있는 정규군만 무려 10만에 가까웠다.
그렇다 보니 노부히데로선 대한국의 행동이 같잖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3만으로는 일본은커녕 혼슈도 어찌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에서였다.
“흥! 고작해야 3만으로 이렇게 호들갑을 떨다니. 나가노와 동영 놈들도 이제 한물간 것 같구나.”
두 나라가 이번 전쟁에서 동원한 군사력은 모두 합해서 5만.
그리고 본국에도 최소 2만 이상 주둔하고 있었다.
점령군을 회군시키지 않고 본국에 있는 군사력만으로도 3만의 조선군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오니의 왕이 참전했다고 합니다.”
“······!”
오니의 왕, 즉 대한국의 국왕이 친정하였다는 소식에 노부히데는 물론이요, 장수들 전체가 당혹해하였다.
3만이라는 병력보다 국왕이라는 단 한 명의 존재를 더욱 위협적으로 생각하는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하치노헤의 수호신이라는 대한국 무인의 실력을 이미 견식 하였다.
만부부당이라 불리는 그 터무니없는 실력을 말이다.
“폐하! 오니의 왕이 참전하였다면 아국도 어서 회군을 하여야 합니다!”
“소장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후방을 괴롭히는 게릴라 부대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인데 오니의 왕까지 추가된다면 본국도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장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회군을 주장하였다.
도야마에 상륙한 대한국의 원정군 때문이 아니라, 그 원정군을 이끄는 대한국의 국왕이라는 존재 때문에 말이다.
“시끄럽다!”
그러나 노부히데는 호통을 치며 장수들의 의견을 물리쳤다.
“겁쟁이 같은 것들이, 고작해야 오니의 왕 하나 때문에 회군한다는 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느냐!”
“하, 하지만 폐하!”
“됐다! 아국은 절대 회군하지 않을 것이다!”
“······.”
장수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야마토 제국에서 노부히데의 뜻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더 이상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장수들의 모습을 보며 노부히데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선을 상대하는 것은 나가노와 동영으로 충분하다. 그들이 조선을 상대할 때 우리는 동북부를 계속 공격한다.”
노부히데는 아직 동북부 정복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노부히데의 야망을 실현하려면 동북부 점령은 꼭 달성해야 할 민족적 과업이었다.
동북부의 반도를 모조리 쓸어 내야 일본 전체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만약 회군하지 않는다면 동일본과 초카이 왕국을 동시에 상대해야 합니다.”
“본국에 남아 있는 군사력을 보낸다면 그깟 반도 따위가 무엇이 두렵겠느냐!”
5만의 병력으로 동일본 왕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노부히데였다.
추가로 5만의 병력이 파견된다면 동일본 왕국보다 조금 약하다고 알려진 초카이 왕국의 참전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두 나라를 한 번에 쓸어버리는 것도 가능하리라.
“하나 그들은 수비를 담당하는 병력이지 않습니까? 그들까지 동북부로 보내면 본국이 너무 위험해집니다.”
마스다 도시오가 우려의 뜻을 표하자 장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였다.
동북부를 토벌하기 위해 군주들이 잠시 뜻을 합쳤다지만 전국시대에서 다른 세력을 신뢰하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었다.
만약 본국에 있는 군사력까지 끌어모아 원정에 나선다면 동영이든 나가노든 아니면 다른 나라든 간에 빈집털이를 할 가능성이 있었다.
야마토 제국도 그렇게 빈집털이를 하며 세력을 키워 온 국가였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조선이 쳐들어온 상황에서 누가 우리를 건들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