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19화 (219/345)

# 219

“어떤 계획인지 소신도 알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다.”

지금까지야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일본에 나가 있는 장수들에게조차 계획을 알려 주지 못했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일단 일본 제국의 경우는 자멸하게 될 것이다.”

“교토의 일본 제국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자멸이라······.”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순현을 보고서 호영이 덧붙여 말했다.

“천황과 쇼군이 충돌하게 될 것이다.”

“허어. 천황과 쇼군이 충돌한다면, 천황이 쇼군에게 반기를 드는 것입니까?”

“곧 그렇게 될 예정이다. 그리고 단순히 반기를 드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죽고 죽이는 유혈 사태가 일어나게 될 것이야.”

순현은 믿기지 않은 얼굴을 하였다.

간사이에 위치한 일본 제국은 무려 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나긴 역사에서 천황과 쇼군이 무력으로 충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쇼군이 정권을 철저하게 장악하였기 때문이다.

“유혈 사태라니. 과연 그런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평시도 아니고 전시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천황은 NPC다. 그리고 NPC인 천황은 바다 건너의 대한국보다 바로 눈앞에 있는 쇼군을 더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지. 우리는 바로 그 점을 이용했다.”

“이미 준비가 다 된 것입니까?”

“한 달 전부터 준비를 해 놓았다.”

“아무리 한 달 동안 준비했다고는 해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동북부에서 했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니 어느 정도 천황의 친위 세력이 모이더군. 유저들 중에서도 NPC인 천황을 지지하는 이들이 의외로 적지 않은 것 같았어. 물론 그때는 좌익이나 친한 세력이라면 이번에는 극우 세력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야.”

천황이라고 해 봤자 현실의 일왕 가와는 전혀 무관한 사이였다.

하지만 성씨부터 시작해서 상징성까지 일왕가와 상당히 유사하였는데, 그 때문에 몇몇 극우 유저들이 천황을 지지하고 있었다.

우습게도 대한국을 가장 적대시하였던 극우 세력이 이번에는 천황의 편이 되어 대한국을 도우려는 것이다.

물론 극우 세력으로서는 대한국을 도울 의도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허어, 그렇게 쉽게 천황의 친위 세력이 만들어지다니. 쇼군의 장악력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정말 예상외입니다.”

“쇼군의 장악력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천황에게는 명분이 있었어.”

“어떤 명분입니까?”

“우리가 쳐들어온 것.”

“아······ 일종의 종교적인 이유입니까?”

“그렇지. 쇼군이 얼마나 통치를 잘못했으면 외세의 군대가 쳐들어오냐면서 하늘의 뜻은 자신에게 있다고 선전하더군.”

“그런 게 명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일본이잖아.”

“그렇군요.”

일본이어서 통한다는 그 한마디에 순현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호영은 그런 순현을 보고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물론 명분 이외에도 극우 세력의 야욕이 큰 영향을 끼쳤지. 그들은 이번 기회에 자신들이 일본 제국의 정권을 장악하고 그 이후에 일본 전체를 지배할 생각을 하고 있어. 내전만 일삼던 기존의 군주들이 불만스러웠던 거지.”

“극우에게도 우리가 명분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침공에 일본이 합심해서 막아야 한다는 그런 명분이 말이죠.”

“맞아. 물론 결과는 정반대로, 극우 세력으로 인해 혼란만 더해지겠지만 말이야.”

그때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황보관이 감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 어떻게 일본 우익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그놈들 완전 꼴통이던데.”

“운이 좋았지.”

“에이, 이 정도면 실력이죠.”

김성근도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이야 어렵지 않았겠지만 실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전하께서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10만에 달하는 적군을 제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아, 그러네. 이대로만 간다면 진짜 저보다 큰 공을 세운 셈이 되겠는데요?”

두 사람의 칭찬에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가 생각해도 확실히 대단한 공을 세우기는 했어. 5회 차에 있었던 천황의 친위 쿠데타를 100년이나 빠르게 일으킨 셈이니 말이야.’

출정하기 전, 참모들과 연신 회의를 거듭하며 승산을 높이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중에 일본 제국을 분열시키는 것은 호영이 제안한 계획이었는데, 처음에는 참모들도 가능성이 낮다고 여겼었다.

일본 제국의 쇼군은 직책만 쇼군이지 사실상 황제와 다를 게 없는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영은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천황의 지지 세력을 끌어모았고, 결국 한 달도 안되어 쇼군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을 형성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었지만 이번 전쟁에서 일본 제국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다면 돈은 아깝지 않았다.

“교토의 일본 제국이 그렇다면 나머지 국가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두 사람이 감탄할 때, 순현은 냉철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츄고쿠와 시코쿠의 경우 북조선과 후금을 이용할 생각이다.”

“두 나라를 어떤 식으로······?”

“현재 제해권은 우리나라가 완전히 장악한 상태다.”

“예, 후쿠오카 해전을 기점으로 제해권이 완전히 넘어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제해권이 넘어온 이상, 언제든지 상륙작전을 감행할 수가 있지. 그래서 나는 츄고쿠 지역에는 후금의 용병을, 시코쿠 지역에는 북조선의 용병을 상륙시킬 생각이다.”

“두 나라에서 용병이 과연 어느 정도나 모이겠습니까?”

“이미 모집은 끝내 놓았고 옮기기만 하면 되니 그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모집을 벌써 끝내 놓았다는 말씀이십니까?”

순현이 입을 떡 벌렸다.

이번 전쟁에 두 나라의 용병을 참전시킬 생각을 했다는 것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은 일본과 전혀 무관한 나라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모집이 벌써 끝났다는 사실이었다.

아군이 눈치채기도 전에 용병을 모집하다니, 실로 놀라운 행동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야, 스케일이 엄청난데요? 북조선에 후금이라니!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돈을 엄청 썼겠네요.”

황보관은 다른 의미로 감탄하였다.

호영의 자금력에 감탄한 것이다.

동북부에서 친한 세력을 만들 때도 족히 천억에 가까운 돈을 사용했다.

몸값 비싼 유저들을 수천이나 동원하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머나먼 만주에서 용병을 모집하였으니 더욱 많은 돈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돈은 의외로 많이 쓰지 않았다.”

“정말요?”

“일본과 싸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상당한 숫자의 용병이 모이더군. 물론 그 안에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겠지만 말이야.”

사실이었다.

3회 차 당시 일본이 한국을 침공할 때 ‘재미있을 것 같아서’ 용병으로 참전한 유저들이 많았듯이, 북조선이나 후금에서도 재미 삼아 용병이 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아무래도 만인의 적, ‘일본’과 싸워 본다는 것이 꽤나 재미있게 느껴졌으리라.

“참고로 두 나라뿐만이 아니라 제나라의 용병들도 제법 많이 모였다.”

“제나라라고요? 헐!”

호영의 말에 황보관이 크게 경악하였다.

제나라 출신이다 보니, 난데없는 제나라의 참전에 당황한 것이다.

“제나라는 어디를 공격하는 것입니까?”

“규슈를 공격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일종의 복수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규슈는 왜구의 소굴이고, 반대로 제나라는 유독 왜구에게 당한 것이 많은 나라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더 쉽게 모집되었다.”

북조선과 후금에서도 그랬지만 제나라에서 유독 용병 모집이 수월하였다.

순현이 한 말처럼 ‘복수’를 위해 용병이 되겠다는 유저가 많아서 그런데, 무려 5만에 달하는 용병이 모집되었다.

아마 시간만 많았으면 중국 특유의 물량이 몰려와 10만, 아니 20만을 모집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세 나라의 용병들이 있다면 확실히 이번 전쟁도 해볼 만한 것 같습니다.”

전쟁의 규모를 키우는 것에 반대하던 순현도 호영이 세운 계획을 듣고 나자 찬성 의사를 표했다.

일본 전체를 정복하는 것이 나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우리가 우리의 역할만 제대로 해 준다면 이 전쟁은 무조건 이긴다.”

“또 무엇을 해야 하나요?”

황보관의 질문에 호영이 힘 있는 어조로 말했다.

“야마토 제국의 후방군을 처리한다.”

“나가노가 아니라 야마토 제국입니까?”

“그래, 중앙군이 나가노와 동영을 맡고 있는 동안 우리는 야마토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켜야 한다.”

“아예 멸망시킨다는 말씀이십니까?”

“멸망을 못 시키더라도 최소한 외부의 일에 신경 쓸 수 없게는 만들어 줘야지.”

“쉽지 않겠군요.”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호영이 나선 이상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5회 차가 되면 달라지겠지만 일단 4회 차까지 A+ 고수는 전략 핵무기와 다를 게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활약해 줘야 한다.”

“야마토 제국의 후방군 그러니까, 후쿠시마 방면을 지나고 있는 3만의 야마토 군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겠지요?”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성근이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치며 말했다.

“별거 아니군요! 숫자 차이라고 해 봤자 고작해야 10배 아닙니까?”

10배 차이를 두고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김성근의 모습에 호영은 씩 웃음을 지었다. 그 역시 김성근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희승이랑 김현이 동영군 총사령관을 암살하다가 당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김성근과 순현 그리고 황보관이 있다.’

누군가는 오만의 극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친위대와 호영 그리고 S랭크의 자질을 가진 무인들이 있는 이상, 10배 차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

* * *

한국인들이 모가미 대첩이라 부르는 전투의 결과로 나가노 왕국과 동영 왕국은 물론이요, 일본 전체가 충격받았다.

1만도 안 되는 한국군에 5만에 가까운 대군이 몰살당하다니!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던 찰나에 전해진 비보였기에 더욱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일본 군주들은 병사들처럼 겁에 질리거나 전의를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한국을 더욱 경계하며 전쟁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물론 나가노 왕국과 동영 왕국의 경우는 시간 끌 것도 없이 곧바로 출정에 나섰다.

도야마에 상륙한 대한국의 원정군을 치기 위해 군을 움직인 것이다.

참고로 두 나라가 군을 움직이는 동안 도야마 해변에 상륙한 대한국의 군대는 도야마 전체를 장악하고서 수성 준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마치 자기 영토라도 되는 것처럼 공격이 아닌 수비를 준비한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이 같은 대한국의 행동에 나가노 왕국은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노한 나가노 왕국군은 동영 왕국의 2만 병력이 도착하기도 전에 대한국에게 선제공격을 가하였다.

자신들만으로 대한국을 상대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한국에서 가리고 가려서 뽑은 3만의 원정군은 수비군으로서 비교적 전투력이 떨어지는 2선의 병사들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강했다.

3만 대 3만으로 병력은 서로 동등하였지만 전투력은 대한국 쪽이 압도적이었다.

나가노군은 3천의 피해를 보고서 급히 군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동영군이 도착하여 전세가 다시 역전되나 싶었지만 대한국이 수비에만 집중하니 전투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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