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
그런데 로열 그룹과의 전면전이 시작되면 엄청난 손해가 발생하게 된다.
로열 그룹에는 대한 길드와 대한국이 있었으니까.
그렇다 보니 로열 그룹과의 전면전은 이재후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전면전, 즉 ‘파워 게임’을 한다고 100퍼센트 이길 자신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다면 안 실장에게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어느 대기업에서든 오너와 오너 일가를 위해 ‘더럽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자들이 존재하였다.
성삼에서는 안 실장이라는 자가 바로 그런 존재였는데, 회장의 지시만 내려지면 그야말로 어떤 범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범죄에는 살인, 납치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윤수혁이 안 실장에게 지시를 내리겠다고 말한 것도 살인 교사나 납치를 하겠다는 의미와 다를 게 없었다.
즉, 그는 로열 그룹의 회장이나 측근, 가족 등을 납치하거나 암살할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다.
“안 실장에게 이미 말을 해 봤는데 어려울 것 같다고 하네요. 일국의 정상만큼이나 경호가 삼엄하다나? 미사일을 떨어뜨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답니다.”
“······그렇습니까?”
이재후의 말에 윤수혁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로열 그룹을 표적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이 제법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인 것도 아니었기에 빠르게 표정을 수습하였다.
“비서실장,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뭔가 신선한 방법 좀 생각해 보세요.”
“센추리에서 방해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의 주 무대에서 견제하자고요?”
“주 무대인 만큼 방해를 받으면 타격이 클 것입니다.”
“흐음, 어떻게요?”
“일본과의 전쟁이 아직 완전하게 끝난 것은 아니라고 하니, 일본에서 활동하는 세력들을 지원하면 나름대로 방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윤수혁의 말에 이재후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였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네요. 이미 완패를 겪은 일본이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대한국이 그동안 보여 준 모습을 생각하면 크게 의미 없는 견제예요.”
“그렇다면 다른 나라를 끌어들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를 끌어들여야 할까요?”
“규슈에 제나라의 용병들이 10만 가까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제나라를 끌어들인다면 대한국을 방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나라라······. 하지만 대한국과 제나라는 사이가 꽤나 좋다고 들었는데요.”
“몇 배의 이익을 보장해 준다면 사이가 어떻든 간에 크게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중국인들은 대한국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 말에 이재후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한번 시도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일본 점령군의 용병으로 참여하고 있는 유저들과 한번 접촉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이왕이면 보다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싶은데.”
“로열 그룹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려면 우리 그룹이 움직여야 합니다.”
“꼭 그래야 하나요? 우리가 움직이면 우리도 손해를 봐야 하잖아요?”
“······.”
가만히 있는 상대에게 전쟁을 선포한 주제에 손해는 죽어도 보기 싫어하는 이재후의 모습이 윤수혁으로선 어처구니없게 느껴졌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말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이제이밖에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이제요?”
“몇몇 재벌들이, 몇 달 전에 로열 그룹과 충돌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아, SJ 그룹과 대현 그룹이 그때 수모를 당했죠?”
“그렇습니다. 이미 로열 그룹에 의해 굴욕을 겪은 재벌들이 있으니 회장님께서 조금만 도발을 해 주신다면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나쁘지 않군요. 확실히 이이제이를 시도해 볼만한 것 같아요.”
이재후의 입장에선 자신의 그룹만 손해를 보지 않는다면 다른 재벌들이 어떻게 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 이이제이는 시도해도 잃을 게 없는 계책이었다.
물론 성삼 그룹이 일을 꾸몄다는 사실을 로열 그룹이 알아차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로열 그룹과의 전면전이 시작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로열 그룹이 성삼 그룹의 행사를 알아차릴 수는 없을 것이다.
상류층 출신이 아닌 로열 그룹은 정보력에서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테나 신호처럼 로열 그룹의 세력이 되기로 작정한 재벌들한테만 소식이 전해지지 않게 하면 된다.’
윤수혁이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할 때 이재후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꼭 재벌들하고만 싸움을 붙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예?”
“정부와도 싸움을 붙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대통령이 로열 그룹을 편애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윤수혁이 부정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니 이재후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로열 그룹을 좋게 본다고 해도, 주변에서 싸움을 붙인다면 결국 사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꽤나 복잡한 작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겠죠. 언론도 움직여야 하니까. 하지만 대통령도 우리의 적이고 로열 그룹도 우리의 적이니 서로 싸우게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얻게 될 거예요.”
맞는 말이었다.
대통령과 로열 그룹의 송 회장.
이 두 사람이 대립하게 된다면 성삼 그룹으로선 잃어 가던 지배력과 영향력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로열 그룹은 승천하던 기세가 한 방에 꺾이게 될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변수가 너무 많다. 자칫하면 대통령과 로열 그룹의 사이가 오히려 더 좋아질 수도 있어. 둘이 힘을 합쳐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고.’
윤수혁은 당장이라도 이재후의 계획을 말리고 싶었다.
위험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서실장에 불과한 그가 이재후의 결정을 막아 세울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역할을 이행하였다.
* * *
동영 왕국의 수도, 나고야를 무너뜨린 이후 호영은 곧바로 배에 탑승하였다.
시코쿠 지역과 츄고쿠 지역을 공략하기 위함이었다.
참고로 간사이 지방의 일본 제국은 동북부 연합군의 총사령관, 미와 미사요시에게 맡겼다.
장수 출신에다가 일본인으로서 오다 노부히데, 고다 진, 미치이 히사유키, 세리자와 가모 등과 대화가 가능하니 그에게 맡긴 것이다.
“한참 재미 보려니까 오네.”
“아깝다. 조금 더 있고 싶었는데.”
호영이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츄고쿠 지역에 도착하니 후금의 기마 용병들이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3만의 지원군 덕분에 일본군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지만 남방 기후에 매료된 후금의 용병들은 전쟁이 빨리 끝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돈도 벌고 약탈도 즐길 겸, 전쟁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충구의 말대로, 조금만 늦었으면 정착을 시도했을 수도 있었겠군. 정말 운이 좋았어.’
용병들의 반응을 본 호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지쳤다는 이유로 동영 왕국에서 꾸물거렸다면 츄고쿠 지역은 지금쯤 후금 용병들의 손에 완전히 넘어갔을 수도 있었다.
표정들만 봐도 후금 용병들이 츄고쿠 지역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 하는지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왕자, 수고했다.”
“돈을 받고 하는 건데 수고는요. 그보다 악수 좀 해 주십시오.”
“악수?”
“제가 전하의 팬입니다.”
“만주족 중에 나의 팬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애신각라의 후손으로서 전하와 같은 위대한 정복자를 존경하지 않을 수는 없지요.”
“위대한 정복자라니. 아부가 대단하군.”
호영은 피식 웃으며 후금의 왕자, 아이신가오로 다이샨과 악수를 하고는 다시 군을 움직여 이번에는 시코쿠로 향하였다.
“북조선 전사들의 활약이 놀라웠다고 들었다.”
“쪽바리 아새끼들, 별거 아니라요.”
“어쨌든 수고가 많았다.”
“다음에 또 불러 주시라요, 언제든 달려올 테니.”
다행히 시코쿠 지역을 담당하는 북조선 용병들의 경우 호영의 등장에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적어도 북조선 용병들은 후금 용병들처럼 시코쿠 지역에 정착하기를 원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규슈 하나인가?”
후금 용병들과 북조선 용병들 덕분에 두 지역을 손쉽게 점령한 호영은 바로 다음 지역을 노렸다.
간사이 지방의 일본 제국조차 바람 앞의 촛불이 된 상황에서 남아 있는 지역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규슈.
이제 규슈만 점령하면 일본 전역이 대한국의 것이 된다.
그야말로 열도 전체를 점령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제나라 용병들의 소식이 끊겼다는 거죠.”
갑작스러운 충구의 말에 호영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사이 일본군에게 당한 것이 아닐까?”
“차라리 당한 것이라면 좋겠습니다만, 규슈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아니, 전투는커녕 종전이라도 한 것처럼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정말 뜬금없군.”
다 이긴 전쟁에서 생각지 못한 변수가 나타났다.
제나라 용병들의 소식이 갑작스럽게 끊겨 버린 것이다.
규슈 침공을 계획하고 있던 대한국의 입장에서는 실로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 배신하기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북조선이나 후금도 아니고 하필 제나라 용병들이 배신을 하다니. 믿기지가 않는군. 배신을 해서 무엇을 얻는다고?’
가장 우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이고 북조선이나 후금에 비교하면 나라 자체도 부유한 편에 속하기에 제나라 용병들이 배신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한 호영이었다.
그래서 호영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대군사, 계획대로 규슈를 침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일단은 규슈의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호영은 그 말을 듣자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충구의 말대로 기다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급하게 군을 움직였다가 최악의 가정대로 제나라 용병들이 배신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그동안 현실에 좀 가 있어야겠어. 어차피 제나라 용병들이 배신했다고 하더라도 혼슈가 위험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이야.”
“예, 쉬고 오십시오. 센추리에는 소신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거 참 믿음직스럽군.”
충구의 말에 호영은 피식 웃고는 그대로 로그아웃하였다.
일본 정복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진 상황이라 답답하기 그지없었지만 센추리에 계속 있어 봤자 달라질 것은 없었다.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못하고 강행군을 했으니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부 정돈을 할 필요성도 있었고 말이다.
* * *
뜻밖의 변수가 생겨 현실에서 휴식을 취하려던 호영은 허영만의 급한 연락을 받고 본사로 출근하였다.
‘내가 바라던 대로 권력자가 되었는데,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서는 허영만을 향해 물었다.
“허 이사,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거야?”
허영만은 호영의 물음에 자신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보여 주었다.
“이걸 보십시오.”
대한국, 일본을 상대로 완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