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26화 (226/345)

# 226

기사 제목을 보고서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일 전쟁이 벌어지고 나서 매일같이 올라오는 흔하디흔한 기사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게 왜?”

“내용을 보시면 알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기사 내용을 살피니 확실히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다른 기사들과 달리, 대한국의 팽창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려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우리가 팽창할수록 정부의 영향력은 상실된다고?”

“민주주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하, 황당하군.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 거지?”

“이것도 한번 보시겠습니까?”

허영만이 다시금 휴대폰을 내밀어 기사를 보여 주었다.

대한국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대통령은 무엇을 했나?

제목부터가 자극적이기 그지없는 기사였다.

“우리가 아닌 대통령을 공격하는 내용 같은데?”

“결과적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지?”

“대통령과 우리의 사이를 이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영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짓자 허영만이 다른 기사들을 연이어 보여 주었다.

현실의 권력을 넘어선 가상의 권력?

충격! 대통령이 일개 개인과 굴욕적인 협상을 하다!

제2의 비선실세? 송씨, 청와대 출입과 관련해 특혜 논란!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철도공사 등의 공기업에서 정부의 지분은 고작 27퍼센트?

무능한 정부, 이대로 일개 개인에게 국가 전체의 시스템을 넘길 것인가?

기사들을 보는 호영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바보가 아니라면 이 기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허 이사의 말대로군. 누군가가 대통령과 우리 사이를 이간하고 있어. 덤으로 대한국과 대한 길드의 위상에 흠집을 내려 하고 있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정확한 목적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우리를 노리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일본 점령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하필 이런 시기에 방해를 하는군.”

호영은 인상을 찡그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누구?”

-청와대 관계자입니다.

“어서 오시라고 해라.”

청와대 관계자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그만큼 청와대와의 접촉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로열 그룹 회장, 송호영이오?”

“아직 회장이라 부를 정도는 아닙니다만.”

“남들이 다 회장이라고 부르던데 회장이 아니라니? 정부를 얕잡아볼 정도로 재력이 강하면서 말이야. 억지로 겸손한 척하면 오히려 재수 없다는 것도 몰라요?”

“······.”

노인, 민제훈 특보의 말에 호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꼬장꼬장해 보이는 첫 인상을 보고 안 좋은 예상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청와대 관계자라는 자가 호영에게 대놓고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정부를 얕잡아보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걸 또 내 입으로 말해야 하나?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그 센추리? 아무튼 이상한 게임 가지고 대통령님을 압박했다면서요! 내가 다 듣고 왔으니 변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다시 말문이 막힐 뻔하였지만 가까스로 대답하였다.

“대통령님을 압박한 적은 없습니다. 저희 로열사는 정부와 공정한 거래를 통해 상호 발전을 추구하였습니다.”

“공정한 거래라니! 가상에 존재하는 땅을 가지고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비싸게 팔았으면서! 거참, 이 사람 안 되겠네?”

“······그래서 하시려는 말씀이 뭡니까?”

호영이 딱딱한 목소리로 그리 물으니 민제훈이 호통을 치듯 말했다.

“정부의 통제에 따르시오!”

“예?”

“가상에서 제멋대로 행동하지 말고, 정부의 통제에 따르라는 말이오! 그래야 가상 권력이 현실의 권력을 넘본다는 헛소리가 안 나올 테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말이 안 된다는 거요!”

“대한 길드와 대한국은 정부의 손을 타지 않고 만들어진 길드와 국가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정부의 통제에 따르라는 겁니까?”

“허!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이오? 대통령님이 얼마나 큰일을 하시는데 그깟 가상현실을 신경 쓰지 못했다고 비난을 하다니!”

그런 민제훈의 모습을 보며 호영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말이 안 통하는군.’

민제훈은 불합리하고 낡은 기준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꼰대’였다.

센추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만은 없겠지.’

상대가 청와대 관계자인 만큼, 말이 안 통하더라도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야만 하였다.

호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비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정부의 통제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정말 오만하구려, 정부를 이렇게도 무시하다니.”

“계속해서 저의 말을 안 좋게 해석하시는데, 저는 정부를 무시한 적도 비난한 적도 없습니다.”

“됐고! 말이 안 통하는 기업인 것만 확실히 알겠네요.”

민제훈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말이 안 통하는데 여기 계속 있어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소! 나는 갈 테니, 어디 한번 정부 없이 잘 살아 보시오!”

쾅!

불쾌한 티를 팍팍 내며 걸어 나가는 민제훈의 뒷모습을 보고 호영은 헛웃음을 흘렸다.

“황당하네, 아직도 저런 사람이 있다니.”

“외골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봤지만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를 찾아온 목적이 대체 뭐였던 거지? 나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은 아닐 테고.”

“······글쎄요. 저 사람도 어쨌든 정치인이니 이곳을 찾아온 이유도 결국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었겠습니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정치적인 목적이라······. 왠지 불안하군. 이상한 사고를 칠 것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회장님도 그렇게 느꼈습니까? 저도 이상하게 그 사람이 사고를 칠 것 같습니다.”

* * *

두 사람의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하였다.

로열 그룹, ‘정부의 도움,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

민제훈 특별 보좌관의 망언? ‘로열 그룹은 빨갱이 기업’

대한 길드! 독립선언을 하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이 같은 기사들이 빗발치듯 쏟아져 나왔다. 민제훈, 그가 기자들에게 소스를 흘린 것이다.

기자들은 그 소스를 듣고 기다렸다는 듯 기사들을 써 재꼈고 말이다.

‘상황이 너무 작위적이다. 우리 그룹과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던 민제훈 특보가 갑자기 찾아온 것부터가 너무 수상해.’

마치 짜 맞춰진 듯 흘러가는 상황을 보고 호영은 생각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상대로 개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민제훈 특보는 결코 혼자 움직인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있어. 그러니, 주모자가 누군지 파악해라.”

호영은 한기가 서린 목소리로 허영만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마자 허영만에게 물었다.

“누구지? 이틀이 지났으니 이제는 윤곽이 잡혔을 거 아니야?”

“재벌들입니다.”

그 말에 호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시작인가? 지겨운 것들이군.’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귀찮게 구는 재벌들.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말 집요하기 그지없었다.

호영은 다시 한숨을 내쉬려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설마 제나라 용병들의 소식이 끊긴 것도 재벌들 때문인가?”

“예?”

“규슈의 소식이 끊겼다. 제나라 용병 부대의 중추를 장악하고 있던 용병 지휘관들도 갑자기 연락을 끊었고 말이야.”

“제가 생각하기에도 재벌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재벌들도 현실에서 아무리 공격한다 해도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로열 그룹이 가진 힘의 원천은 어디까지나 센추리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재벌들이 센추리에서 방해 공작을 시도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현실에서 이런 짓거리를 하는 것도 짜증이 나는데 센추리에서까지 방해를 하려고 들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호영은 이를 악물며 재벌들을 향해 복수를 다짐하였다.

그는 이번 기회에 누가 진정한 강자인지를 똑똑히 보여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센추리보다 현실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대통령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좋을 게 없으니 말입니다.”

“맞는 말이군.”

허영만의 말에 호영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힘의 원천은 센추리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해도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센추리 유저들이라고 가상에서만 생활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현실도 어느 정도는 관리해 줄 필요성이 있었다.

특히 대통령과의 관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재벌들의 수작질에 대통령과의 관계가 어긋나게 된다면 로열 그룹도 적지 않은 손실을 보게 되리라.

“아무래도 대통령과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지금 당장.”

호영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끌 것 없이, 지금 당장 대통령 측과 이야기를 나누어 볼 생각이었다. 괜히 시간을 끌면 쓸데없는 오해만 생길 것이니 말이다.

* * *

아쉽게도 호영의 경우 청와대 출입과 관련해 특혜 논란이 일어나고 있어, 대통령과 독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 대통령도 이번 사태를 중요하게 여긴 것인지,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정성원 홍보 기획 비서관을 보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인데 오랜만 같지가 않군요. 언론을 통해 송 회장님의 이야기를 매일같이 듣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입니까?”

“일본을 상대로 연전연승하였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으니 좋은 소식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최근의 경우는 예외입니다만······.”

정성원이 말끝을 흐리며 그렇게 말하자 호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호영이라고 모를 수 없었다. 애초에 그 일 때문에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려 하였으니 말이다.

“언론이 무엇을 노리는지, 특보님도 아실 거라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감히 우리 정부와 로열 그룹을 노리고 분탕질하는 것이 아닙니까?”

호영은 속으로 안도하였다.

다행히 대통령은 이번 일로 호영이나 로열 그룹에 악감정을 가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최악은 피했다.’

그때 정성원이 묘한 얼굴을 하고서 물었다.

“송 회장께서는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입니까?”

“당연히 반격에 나설 생각입니다.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주먹을 불끈 쥐며 그렇게 답하니 정성원이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주동자가 누군지는 아시고 계십니까?”

“이전에 한번 충돌했던 대현이나 SJ 같은 대기업이라고 들었습니다. 뭐, 언론 기득권도 부화뇌동한 것 같지만 말입니다.”

“아닙니다.”

“예?”

“그들은 주동자가 아닙니다. 그저 손발에 불과합니다.”

정성원의 말에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SJ나 대현 같은 대기업이 손발이라니. 주동자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대기업들을 손발로 다룰 수 있단 말인가.

“성삼. 우리 정권을 레임덕으로 만들려 했던 것은 바로 성삼 그룹입니다.”

그가 오싹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성삼이라고요? 하지만 성삼은 로열 그룹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기업입니다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