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41화 (241/345)

# 241

“처음엔 모든 게 어설퍼서 실수가 많았습니다만, 최근에는 경험이 쌓여서 사건 사고가 크게 줄어든 상황입니다. 특히 죄수들 중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였던 화전민들은 규슈의 농토를 받겠다는 의지로 사건 사고는커녕 고분고분 지시를 따르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고 합니다.”

현재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사판에는 부역과 세금을 피해 산으로 도망쳤던 화전민들이 대거 투입된 상태였다.

화전민들은 세금을 내지 않은 죄와 허락도 받지 않고 화전을 일구었다는 죄를 가지고 있었으나 연왕이 폭정을 하던 시기라서 동정의 여지가 있었다.

하여 대한국 정부는 5년 동안 노동하는 노동형으로 처벌을 완화시켜 주고 식솔이 굶어 죽지 않도록 약간의 곡식까지 제공해 주었는데, 그 관대한 조치 덕분인지 화전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근면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계처럼 일하는 것이다.

화전민들의 노력에 감탄한 관료들은 일본 정복이 무사히 끝난 이후, 성과에 따라 농토를 지급해 준다는 약속까지 해 주었다.

그러자 화전민들은 더욱 성실하게 일을 하여, 공사 진척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졌다.

“이 추세가 유지된다면 우리나라도 다음 회 차부터는 마차 여행이라는 걸 할 수 있겠군. 여행가들이 아주 많아지겠어.”

본 게임을 하는 사람이 꼭 전쟁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 콘텐츠를 즐기는 것 말고도 나라 키우기나 역사의 산증인이 되는 등, 본 게임에서도 나름 즐길 거리가 있었다.

그중에서 여행을 하기 위해 본 게임을 시작하는 유저들도 있었는데 여행을 좋아하는 유저들 대부분이 19세기에 유행했던 마차 여행을 즐겨 하였다.

마차를 탄 채로 빼어난 경치를 구경하는 그런 여행 말이다.

하지만 대한국 같은 경우 산이 워낙 많고 도로가 엉망이라 마차 여행에 제한이 따랐다.

여행가들 입장에서는 그리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즐기기 위해 본 게임에 접속하였던 유저들은 며칠도 안 되어 관두고는 하였는데 도로포장이 완료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 같았다.

“예, 치안도 괜찮고 풍경이 좋은 곳도 많이 있으니 여행가들이 많이들 찾아올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도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군.”

호영은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돌려 왼편에서 말을 타고 있는 최인준에게 물었다.

“대한 제국 선포식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선포식 준비는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어떤 행사보다 성대해야 한다, 모든 나라가 우리 대한국을 우러러 볼 수 있을 정도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센추리와 현실의 능력자들이 힘을 합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산이 무지막지하게 소모되기는 하겠지만, 대한국의 위엄을 충분히 보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였다면 돈이 많이 든다는 소리에 인상부터 찡그렸을 것이다.

그는 건국식에서조차 예산 소모를 최소화할 정도로 사치를 꺼리는 사람으로서, 행사에 돈을 쓰느니 군대나 상업에 돈을 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당연히 제국 선포식처럼 보여 주기식 행사에 돈을 쓰는 것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대한국이 제국을 선언한 이후부터 진정한 외교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행사 규모가 시원치 않으면 대한국의 이미지가 안 좋아지고 가난하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었다.

외교를 생각한다면 국가 이미지를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참가 의사를 밝힌 나라는 모두 몇 개지?”

“일단 만주와 연해주에 있는 나라들은 모두 참가 의사를 밝혔습니다.”

“중국은?”

“제나라의 경우는 참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대부분은 불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직도 우리를 무시하는 것인가?”

“그보다는 대한국이 제국을 선언하는 것이 불쾌한 모양입니다.”

“속 좁은 중국 놈들답군.”

호영은 픽 조소를 지었다.

자신이었다면 억지로 참가해서라도 상대를 관찰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 적의 사정을 알면 상대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국은 반도의 소국이 제국을 선언한다는 것이 불쾌하기라도 한 것처럼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그로서는 오히려 환영해 줄 만한 일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캘리포니아 정부를 무너뜨리고 왕국을 건설한 슈워제네거 왕가에서도 사람을 보내기로 하였고, 동남아에서는 태국이 가장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왕실의 일원이 직접 찾아올 것 같습니다.”

“태국이라······.”

역시 일본까지 정복하고 나니 다양한 국가에서 관심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만큼 주변국의 경계심도 커졌지만 말이다.

‘음?’

그때였다.

휘이이이익!

갑자기 무언가가 그를 노리고 날아왔다. 호영은 손을 들어 자신에게 날아온 무언가를 덥석 잡았다.

무언가는 다름 아닌 화살이었다.

“암습이다!”

“꺄아아아악!”

“전하를 지켜라!”

“쫓아! 도망가게 놔두면 안 된다!”

비명과 병사들의 고함 소리로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던 거리가 소란스럽게 변하였다.

무려 대한국의 국왕을 겨냥한 시해 미수 사건이었다.

분위기가 변한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호영은 친위대원들이 다급하게 암살자의 뒤를 쫓는 모습을 보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걸로 스물일곱 번째 암습인가?”

전라도와 경상도를 순행할 때 여섯 번, 규슈와 혼슈에서 스무 번.

그는 지금까지 무려 스물여섯 번의 암습을 경험하였다.

민심이 안정된 본국에서 암습을 당한 것은 의외였지만 그리 유난 떨 일은 아니었다.

“암살자는 친위대에게 맡기고 우리는 수도로 가지.”

“아, 알겠습니다.”

최인준은 이런 일이 처음인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고, 신용우 또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호영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수도로 향하였다.

#제국 선포

수도, 현리.

대한국 만세를 외치며 떠들썩하였던 제물포와 다르게 수도의 분위기는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민심이 안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 호영이 수도로 오는 도중에 암습을 당했기 때문에 분위기가 이렇게 된 것이다.

“바로 궁궐로 가야겠군.”

반겨 주지 않는 수도 시민들을 보고 친위대원들이 다소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였지만 어차피 개선식은 원정군이 모두 돌아오는 여름으로 정해졌기에 아쉬워할 일은 아니었다.

호영은 불안한 눈빛의 수도 시민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고는 궁궐로 향하였다.

‘딱딱하군.’

궁궐의 분위기는 수도 분위기보다 훨씬 삼엄하였다.

전쟁터와 다를 게 없는 혼슈와 규슈에서 1년 넘게 생활했던 호영이야 암습을 새삼스럽게 여기지 않았지만 궁녀들이나 내관들, 관리들은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호영을 죽이려는 것은 왕을 죽이려는 것.

그리고 왕조시대에 왕을 죽이려는 행위는 반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역사상 최악의 폭군이라 불리는 연왕 시대에 반역이 일어났다?

피의 숙청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궁궐의 분위기가 삼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궁녀들과 내관들은 호영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만은 숙청 대상에서 제외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나름 잘 대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를 두려워하는군. 뭐, 저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인가?’

속으로 한숨이 나왔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호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대소 신료들을 만났다.

“송구하옵니다!”

“소신들을 죽여 주시옵소서, 국왕 전하!”

대소 신료들 역시 경직된 분위기로 다짜고짜 사죄의 말을 올렸다.

왕조시대에서 왕을 죽이려는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왕의 잘못이 아닌, 신하들의 잘못이었다.

민심이 안 좋아서 벌어진 일이든, 보안 상태가 허술해서 벌어진 일이든 간에 말이다.

물론 호영은 신하들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이 없었다.

“경들은 잘못한 것이 없으니 모두 고개를 들라.”

“아니옵니다! 소신들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됐다.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

너무도 태연한 호영의 반응에 신료들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호영이 회의를 시작하니 신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간 해 왔던 일들을 보고하기 시작하였다.

“전국에 무공 학교와 마법 학교를 건설하여, 유년기부터 무공과 마법을 배울 수 있는 제도를 갖추었습니다. 재능만 있다면 장학금을 받으면서 무공과 마법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북부 지역의 강무관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였습니다. 강무관은 총 열 개의 교육과정이 있는데, 이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하면 무공과 지략 그리고 애국심을 겸비한 정예 장교가 양성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정규병의 숫자가 5년 내로 20만으로 대폭 늘어날 예정입니다. 참고로 이 숫자는 해군이 제외된 것으로, 해군에 소속된 정규병은 8만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천일염이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물가가 안정되는 것은 물론이요, 북방 국가들과의 무역에서 큰 이득을 볼 것 같습니다.”

“개성 상회의 약초 재배 능력이 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습니다. 인삼을 재배하는 것도 성공하였으며 각종 영약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드디어 비누가 서민들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해졌습니다! 앞으로 위생 수준이 크게 좋아질 것입니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의 주요 작물들을 재배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제부터 기근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기뻐하십시오! 담배와 고추도 이제 대한국에서 재배됩니다. 드디어 김치를 먹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번 회 차부터는 우두 종두법을 사용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두창으로 죽게 되는 인구가 대폭 줄어들 것이니 100년 뒤가 되면 대한국의 인구가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산됩니다.”

“아쉽게도 아티팩트, 아니 마법 물품 생산에는 별다른 진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100년 뒤를 기대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금, 은 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아국에서는 현금으로 마정석을 쓰는 까닭에 금과 은의 가치가 낮은 편이지만 중국과의 무역을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볼 것입니다.”

“3년 전에 있었던 내전으로 소실되었던 마물 가축우리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마정석의 생산력이 5년 이내에 회복될 전망입니다.”

대부분이 현실에서 들었던 보고들이지만 호영은 새삼 뿌듯함을 느꼈다.

그가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에도 이 나라는 발전을 거듭하였다.

최근 3년간의 발전이 지난 100년간의 발전보다 더 유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경들을 보니 한 가지 확신이 생기는군.”

“어떤 확신입니까?”

“그 누구도 이 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호영의 말에 신료들이 화사하게 웃었다.

별거 아닌 말이었지만 신료들에게는 최고의 칭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하께서 제국을 건설하신다면 우리를 무너뜨리기는커녕 우리가 무너뜨리려고 나서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될 것입니다.”

“맞습니다. 이제 우리는 반도의 조그만 나라가 아닙니다. 열도까지 지배한, 명실상부 초강대국입니다. 아국은 더 이상 어떤 나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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