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44화 (244/345)

# 244

원목은 아무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능력이야, 최종 면접까지 합격한 인재들이니 한국에서만큼은 최고의 수재들이라 평가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무공 특기나 마법 특기로 합격한 이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말입니다. 불만 사항은, 로열패밀리에 대한 대우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특별히 없는 것 같습니다.”

“5회 차가 기대되는군. 그런데 로열패밀리에는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나? 요즘 말들이 많은 것 같은데.”

“출신에 따라 뭉치는 경우가 많아 100퍼센트 적응했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역시 그런가.”

그 대답에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로열패밀리의 규모가 많이 커져서 그런지 학연이니, 지연이니, 혈연이니 온갖 파벌이 난립하였다.

호영이 파벌을 없애려고 해 본 적도 있지만 그때뿐이었다.

로열패밀리의 중간 간부 자리만 해도 엄청난 이권과 권력이 달려 있었기에 사람의 욕심을 통제하지 않는 한, 파벌 싸움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신입들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오히려 신입들은 상류층 자제들의 비중이 높아 학연이나 지연에 연관되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나마 7인회에 속한 간부들이 파벌 싸움에 개입하지 않아서 다행이군. 만약 이들까지 나서서 파벌 싸움에 개입하였다면 로열패밀리의 단결력과 조직력이 많이 흔들렸을 것인데 말이야.’

역시 충성도 하나로 7인회라는 자리까지 올라온 간부들이라 그런지 호영이 싫어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이러니 호영이 7인회 간부들에게 총애를 보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이라는 공공의 적이 사라지면서 더욱 파벌 싸움이 심화된 것 같군. 아무래도 새로운 공공의 적이 필요할 것 같아.”

언제나 그렇듯 내부를 단결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의 강력한 적이 필요하였다.

지금까지는 일본이 그 역할을 해 주었지만, 식민지로 전락한 일본에게 그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본보다 훨씬 강력한 적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공공의 적은 뭐, 중국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마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 물론 정확한 사정은 5회 차가 되어 봐야 알겠지만 말이야.”

김성근의 말처럼 앞으로 공공의 적은 중국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가 기억하는 대로라면 중국은 5회 차부터 본격적으로 깡패 같은 짓을 하기 시작하니 말이다.

‘뭐, 역사가 많이 바뀌었으니 새로운 적이 생겨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예를 들면 후금이라든가?

호영은 잠시 선포식에서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던 아이신가오로 다이샨에 대해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번에는 준기에게 물었다.

“홍 이사, 경지가 올랐다고 들었는데?”

“예, 드디어 S랭크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모두 회장님 덕분입니다.”

준기가 마치 칭찬을 갈구하는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호영에게 그리 말하니 간부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오오!”

“S랭크라니!”

“그야말로 세계 최강이군요!”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지만 세계 최초의 S랭크라는 것을 생각하면 과장된 반응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S랭크라는 것은, 지금으로썬 세계 최강을 의미하는 랭크였으니 말이다.

‘결국 그리되었나.’

그러나 호영은 모두가 기뻐하는 상황에서 혼자만 쓰게 웃고 있었다.

수하가 세계에서 최초로 S랭크가 된 것은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충성심이 강한 준기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회귀라는 이점을 가지고서 세계 최초의 무인이 된 호영.

그는 무인이 된 순간부터 세계 최강이라는 칭호를 가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강이라는 칭호는 그의 것이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준기라는 천재에게 밀려 이인자가 되었으니 허탈함과 상실감을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이인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어려워지겠지. 5회 차부터 본격적으로 A랭크의 무인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니 말이야.’

그로서는 무척이나 씁쓸한 일이었다.

아무리 무공에 100퍼센트 집중할 수 없었다고는 해도 누구보다 무공에 투자한 시간이 많았던 그다.

남들보다 최소 십수 년 이상은 더 무공에 시간을 투자하였는데, 정작 실력은 정체하고 있으니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은 비밀로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때 충구가 불현듯 말을 꺼냈다.

“무엇을 비밀로 하라는 거지?”

“홍 이사가 S랭크 무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자는 겁니다.”

호영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충구가 호영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이와 같은 말을 꺼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간부들 역시 준기가 호영의 실력을 추월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는지 호영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설마 나를 동정해서 비밀로 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급격히 경색된 분위기 속에 충구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단지, 홍 이사를 대한 제국의 비밀 병기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S랭크를 밝히지 말라고 말한 겁니다.”

“그렇군.”

호영은 표정을 풀고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충구의 말처럼 굳이 S랭크가 되었다는 사실을 밝혀 주변국의 경계심을 높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대한 제국의 무공이 비범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 문제는 홍 이사가 결정할 문제인 것 같군. 홍 이사의 명예가 달려 있는 문제이니 말이야.”

“······그렇습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세계 최초’, ‘세계 최강’이라는 영예였다. 평범한 사람들도 가지고 싶어 하는 칭호인데, 무인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회장님, 저는 회장님의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준기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하였다. 여느 때처럼 모든 결정권을 호영에게 넘긴 것이다.

‘S랭크가 되었으니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쳐도 뭐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텐데······. 준기는 정말 한결같군.’

변함없는 준기의 모습을 보니 호영은 괜스레 자책감이 들었다.

더할 나위 없이 충성적인 준기를 질투했다는 사실에 자책감을 느낀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은 감추는 게 좋겠군.”

“알겠습니다.”

애써 무표정함을 연기하며 그렇게 말하니 준기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하였다.

준기를 잠시 눈여겨본 호영이 고개를 돌려 충구에게 물었다.

“강 이사, 구주는 5회 차에도 대한 제국의 영토로 남을 것 같나?”

“구주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령 혼슈의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혼슈가 빼앗긴다 해도 구주는 대한 제국의 땅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자신감이 대단하군.”

“제가 마지막으로 접속하였을 때, 구주의 민심은 대한 제국으로 완벽히 넘어온 상태였습니다. 구주의 백성들은 스스로 일본인이라는 자각도 없기 때문에 혼슈가 어찌 변하든 간에 대한 제국의 백성으로 남을 것입니다.”

“강 이사가 그렇게 자신하니 한번 믿어 보겠다.”

“언제나처럼 회장님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충구를 보며 호영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허세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충구는 그동안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

이번에도 그를 믿는다고 해서 손해 볼 일은 없으리라.

“유저들의 여론을 돌리는 건은 어떻게 되었지?”

“아, 그 일본 여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호영의 새로운 질문에 충구는 잠시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평소보다 조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대한 제국을 향한 적대감을 줄인다는 1차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일본 유저들은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어서, 대한 제국을 무찌르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다른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

“예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지만, 일본 여론이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귀족이 되어 대한 제국을 내부에서 장악하자는 뭐 그런 황당한 여론인데, 한마디로 말해서 나라가 아닌 정권을 빼앗자는 여론이 생겨나는 중입니다.”

“대한 제국의 귀족이 되어 역모를 하겠다는 생각인가. 5회 차가 되면 혼슈의 영지전이 무척이나 치열해지겠군.”

확실히 일본 여론이 충구가 말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다면 5회 차의 영지전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한국 유저들은 물론이요, 일본 유저들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영주가 되겠다고 설칠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닌 게, 대한 제국의 귀족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짐에 따라 일본 해방 전선의 세력이 약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일본 해방 전선에 소속되어 있다면 귀족이 될 수 없으니 그런 것인가?”

“예, 아마, 5회 차가 되면 일본 해방 전선은 일본 유저들에 의해 와해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4회 차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일종의 독립투사 단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해방 전선이라는 단체의 주적은 대한 제국이 아닌, 같은 일본인이었다.

대한 제국으로 인해 입은 피해보다 같은 일본인에게 입은 피해가 훨씬 크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혼슈의 일본 해방 전선은 오다 노부히데, 고다 진, 세리자와 가모 같은 일본 귀족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토벌하였다.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인데, 5회 차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임을 생각하면 일본 해방 전선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좋게 봐야 할지, 나쁘게 봐야 할지 모르겠군.”

“그들이 영지전에 시간을 소모할 때 우리는 대한 제국 전체를 장악하면 되니 나쁘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반기를 들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그 말에 호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구의 말이 맞았다.

일본 유저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든 간에 호영이 대한 제국 정부를 장악하기만 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군사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던 4회 차 때도 일본을 점령하는데 성공한 대한 제국이었다.

5회 차 때는 국력이 훨씬 더 강해져 있을 것이니만큼 혼슈의 귀족들이 어떤 생각을 하건 의미가 없었다.

반기를 들면 그때 쓸어버리면 그만이니 말이다.

“민 대표.”

혼슈 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충구와의 대화를 끝낸 호영은 이 자리에서 가장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민건우를 불렀다.

“예, 회장님.”

“대한 길드는 어떻게 잘 다스리고 있나?”

호영의 질문에 건우는 쑥스러운지 볼을 긁적이며 답했다.

“뭐, 그냥 평소처럼 하고 있습니다.”

“길드원의 수가 많이 늘어났는데 문제는 없었고?”

“다들 제 말을 잘 따라 줘서······ 어려운 점은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건우는 유비 같은 스타일인데, 카리스마가 아닌 덕으로 유저들을 다스려 인기가 아주 많았다.

또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과 다툼을 중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무척이나 뛰어났는데, 무력보다는 정치력이 더 중요한 길드장으로서의 역할을 100퍼센트 해냈다고 볼 수 있었다.

조금 가벼워 보이는 인상과 다르게 그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5회 차가 되면 길드원의 수가 더 많아질 것이다. 물론 간부들도 그만큼 많아지겠지만 어찌 되었건, 어려움이 생긴다면 언제든 말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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