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
“그러면 피해가 클 텐데?”
“대의를 위해서라면 약간의 피해 정도는 감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피해를 복구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냉정한 말이었다. 하지만 경호 역시 호영을 황제로 만들 수만 있다면 제국이 피해 보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제국이 아니라 호영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분석 팀장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저들의 애국심을 생각하면 청나라의 공격을 방관하는 건 안 될 일이야.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도 방어에 적극 참여해야 돼.”
“그렇습니까?”
“다른 의견들 없나?”
경호가 묻자 다시 여러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청나라의 황제가 유저라는데 현실에서 협상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공격하지 않는다고 약조만 한다면 굳이 우리를 치지 않을 것 같은데.”
“청나라 황제는 유저라는 정보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잖아? 협상을 하려면 일단 만나야 하는데 어떻게 만날 건데?”
“사이트에다 공개적으로 협상을 제안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약점을 전 세계에다 알리자는 거야?”
“아.”
“그리고 애초에 내가 청나라 황제였더라도 대한 제국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데 협상이 가능하겠어? 4회 차까지 우리는 계속 팽창해 왔잖아. 솔직히 지금도 대륙을 노리고 있고 말이야.”
“······.”
“새로운 의견 없나?”
그의 물음에 누군가는 ‘황제를 암살하자.’라고 하였고 또 누군가는 ‘회장님을 한국으로 모셔 오자.’라고 하였다.
하지만 경호는 두 의견을 모두 기각시켰다.
“지금 상황에서 황제를 암살시켜 봤자 우리에게 득 될 것은 아무것도 없어. 회장님이 황태자가 된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은 열 명이 넘는 황자들 중에 가장 존재감이 없는 황자시잖아. 뭐, 로열패밀리를 총동원한다면 어떻게든 황제로 만들 수 있겠지만 그동안 청나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사실 로열 그룹의 힘이라면 황제를 암살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황제의 무공이 무지막지하게 강한 것도 아니었고, 24시간 A급 무인들의 경호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로열 그룹에서 무공을 담당하는 실력자들을 총동원하여 암살에 나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황제를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황제를 암살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황제가 죽으면 내란이 일어나 대한 제국이 분열될 가능성이 컸다.
호영이 황태자가 된 상황이 아니라면 황제는 되도록 살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회장님을 한반도로 모셔 오는 것도 지금으로썬 불가능한 일이야. 황제도 황제지만 일본의 유저들이 회장님을 노리고 있는데 어떻게 모셔 와? 일단 지금은 회장님의 존재를 최대한 숨겨야 돼. 다른 세력이 회장님의 존재를 눈치채면 안 되니까.”
호영을 내지로 불러오자는 의견도 그런 이유로 기각시켰다.
안 그래도 적이 많은 상황. 벌써부터 호영의 아바타를 공개할 필요는 없었다.
‘마땅한 의견이 없군. 하긴, 아직은 제대로 된 전략을 세우기에는 다소 이른 시점이기는 하지.’
그때 전략 팀의 신입으로 보이는 이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반란을 일으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경호가 인상을 찡그릴 때, 전략 팀 부장이 노성을 터뜨렸다.
“갑자기 그게 무슨 멍청한 소리야! 명분도 없는 상황에서 반란은 무슨 반란! 대한 제국을 멸망시키고 싶은 거야?”
“어차피 유저들이 우리를 따르는 데 명분이야 뭐 없어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대한 제국의 국력을 우습게 생각하는 거냐? 명분 없이 유저들만으로 전복시킬 수 있는 나라가 아니야! A급 NPC들이 몇 명인데!”
둘의 모습을 보고 경호는 생각했다.
단순히 황제나 청나라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보면 가장 큰 걱정거리는 유저들이었다.
5회 차가 된 지금까지도 로열 그룹을 적대하는 유저들이 적지 않았고, 대한 제국을 적대하는 유저들도 제법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전략 팀의 신입처럼 로열패밀리 내부에서도 혈기가 넘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유저들이 적지 않았다.
반란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유저들 말이다.
대한 제국을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이 혼란을 일으킨다면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질 수밖에 없을 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경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호영을 보필하는 입장에서 하루빨리 호영을 황제가 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황제의 권력은 막강했고 대한 제국의 국력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성했다.
지금처럼 로열패밀리의 주요 멤버들이 감금되어 있는 상황에서라면 로열 그룹의 힘을 총동원하더라도 황위를 찬탈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5회 차의 대한 제국은 이전처럼 개인의 무력으로 나라를 뒤엎을 수 있는 그런 국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침부터 고생이 많네.”
문이 열리더니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호를 비롯한 지휘 본부의 간부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아까 전략 팀의 신입이 본부장과 부장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만 보면 알 수 있듯, 로열 그룹의 군기는 그리 엄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고 느슨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회장을 대할 때만큼은 여느 대기업 못지않았다. 특히 팀장 이상의 직위를 가진 간부들은 마치 주군을 대하는 것처럼 깍듯하게 대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경호 같은 경우는 호영의 후임 출신으로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영과 형, 동생으로 지냈지만 지금은 다른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행동 하나하나가 깍듯하기 그지없었다.
호영을 친한 형이 아닌, 그룹의 총수로 대하는 것이다.
“대책 회의 중인가?”
“예, 그렇습니다!”
“결과는?”
“아직 회장님이 만족하실 만한 대책은 강구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거까지야. 어떻게 보면 내가 황제가 되지 못해서 생긴 일인데. 아무튼 대책은 계속 강구하도록 하고, 본부장만 따라 들어오도록.”
“예!”
“알겠습니다!”
여유롭게 지시를 내리고는 집무실로 들어가는 호영.
‘회장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가 있으시구나. 역시, 대단하신 분이야.’
그때 경호의 귓가에 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부장, 안 들어오나?”
“아! 가, 갑니다.”
경호는 본부장으로서 체면을 차릴 새도 없이 급하게 호영의 뒤를 따라 회장 집무실로 들어갔다.
* * *
집무실에 들어선 호영은 자신의 의자에 앉고는 경호에게 물었다.
“분위기는 어때? 많이 안 좋은가?”
“조금 뒤숭숭하기는 한데,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다행이네.”
“하지만 일반 유저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 이야기는 들었다. 반란을 일으키려는 유저들도 적지 않다지?”
“예, 아직까지는 저희의 통제에 따라 주고 있지만 시간이 지체된다면 최소 1만 이상의 유저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경호의 대답에 호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예상했던 일이었다.
5회 차가 시작된 지도 센추리 시간으로 무려 3주가 지난 상황이었다. 유저들도 대한 제국의 국력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이전 회 차처럼 막무가내로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에 불과하였다.
대한 제국의 황제가 호영이 아닌 NPC라는 사실이 알려졌기에 유저들은 반란이 성공할 수도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NPC는 비교적 만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머지않은 시일에 전국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일단 유저들의 반란 같은 경우는 황제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지. 내가 지금 당장 내지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말이야.”
안타깝지만 반란이 일어나도 호영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있는 곳은 내지, 즉 한반도가 아닌 일본 혼슈였던 까닭이다.
“회장님께서는 언제쯤 내지로 돌아오실 계획입니까?”
“혼슈를 장악한 이후에 내지로 돌아갈 생각이다.”
“예? 혼슈를 장악하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영지전을 이용해야지.”
“하지만 회장님의 정체가 발각되면 안 되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유저라는 사실을 최대한 숨겨야 할 것인데, 영지전을 하면 너무 눈에 띄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공왕이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괜찮다. 어차피 내가 아니더라도 어그로를 끌어 줄 사람은 많으니까.”
“······?”
경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호영은 교토의 공왕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한국 유저들이 대한 제국의 황제를 우습게 여기고 반란을 계획하고 있다면 일본 유저들 같은 경우는 영지전을 통해 세력을 키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지전은 귀족이나 황자만 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유저들은 귀족보다는 황자의 밑에서 싸울 생각을 하였다.
영지전에서 승리한 황자가 최종적으로 황위를 잇게 될 확률이 높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렇다 보니 호영의 입장에서는 공왕의 관심을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NPC지만 그 대신 ‘어그로’를 끌어 줄 황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교토의 공왕 따위야 언제든 죽이면 그만이다.’
황제라면 제국의 혼란 때문에라도 죽여서는 안 됐지만, 나머지는 달랐다. 그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면 언제든 제거하리라.
“그런데 청나라에 대해서는 분석이 끝났나?”
“예, 거의 끝냈습니다.”
“본부장이 생각하기에 어떤 것 같아? 청나라가 쳐들어올까?”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쳐들어올 가능성이 95퍼센트 이상일 것 같습니다.”
“95퍼센트? 그 정도인가?”
“이미 남진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고 청나라가 복속한 오크족의 경우는 이미 압록강 너머에 배치된 상황입니다.”
“그 정도면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겠군.”
호영은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이번 회 차의 주적은 중국이 되리라 생각했건만······ 설마 청나라가 이렇게까지 발호할 줄이야.’
회귀 전에도 청나라가 건국되기는 하였지만 이렇게 존재감이 강렬하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만주 대부분을 지배하는 나라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호영은 조금 난감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적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작년에 세워 두었던 계획은 전부 파기할 수밖에 없었다.
“청나라의 침공이 임박한 이상, 계획을 앞당길 수밖에 없겠군.”
“예?”
의아해하는 경호를 두고 호영은 몸을 일으켰다.
“지휘 본부에서는 계속 대책을 세우도록. 대책이 세워지면 즉각 보고하고.”
“회장님께서는?”
“나는 다시 센추리에 접속해야겠어. 시간이 없거든.”
호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청나라가 침공하기 전에 일본을 장악해야 된다.’
아바타가 황제로 선택되었다면 여유가 있었을 텐데 일개 황자 신분이다 보니 여유를 부릴 수 없게 되었다.
지금도 원래라면 쉬는 시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청나라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계획을 앞당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 * *
호영은 뒷짐을 진 채 시장 거리를 걸었다.
‘많이 달라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