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54화 (254/345)

# 254

현재 일본에 위치한 로열패밀리들은 한곳으로 힘을 집결하지 않고 자신의 본거지에서 힘을 기르고 있는 상태였다.

괜히 한곳으로 집결하여 일본 유저들에게 표적이 되지 않게끔 하려는 의도였는데, 호영은 그들에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른 영주들이나 황자들처럼 난세에 끼어들어 세력을 확장하라는 지시였다.

‘일본 유저와 NPC들이 힘을 합치지만 않는다면 이 전쟁은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다.’

황자들과 영주들 그리고 일본 유저들까지.

만약 이들이 힘을 합친다면 제아무리 호영이라도 6개월 안에 그들 모두를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분열된 상태이고 이대로만 간다면 본섬 각지에서 세력을 기른 로열패밀리와 오다 백작 가문을 중심으로 세력을 기른 호영에게 합병되고 말 것이다.

* * *

“사, 살려 줘!”

“도망치지 마라! 자리를 사수해라!”

“시끄러! 나는 살 거야!”

단 한 번의 접전으로 한국군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무기를 버린 채 비명을 지르거나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자들이 속출하였다.

뛰어난 수준의 무인들조차도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였는지 적군의 눈치를 살폈다.

도주할 타이밍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적군, 즉 팔기군이라 불리는 청나라 정예부대는 그런 한국군의 모습을 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일개 병사들조차 무공을 익힌 최정예 군대가 오합지졸보다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대한 제국의 수도도 나의 것이 되겠구나. 하하하!”

누르하치. 청나라의 4대 황제인 그는 대소를 터뜨리다가 그대로 활을 들어 올렸다.

황제지만 그 역시 기마민족의 전사였다.

휘이잉!

그의 손에서 뻗어 나간 화살은 정확하게 적장의 심장을 관통하였다.

말을 탄 채 달리고 있었지만 화살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걸로 열 명째인가.”

누르하치는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활을 내렸다.

지휘관을 무려 열 명이나 쏘아 죽였다. 그가 청나라의 황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누르하치에게 감히 비웃음을 흘리는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누르하치의 친동생 수르하치였다.

“크하하하! 형님, 겨우 열 명으로 만족하는 겁니까?”

누르하치는 자신을 감히 비웃었다고 화내거나 자존심 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동생의 재롱을 보고 기뻐하는 형을 보는 것 같았다.

“너는 몇 명을 죽였는데 그러느냐?”

“저는 벌써 스무 명도 넘게 잡았습니다. 크하하하하!”

그러자 이번에는 뒤에서 비웃음이 들려왔다.

“에이, 수르하치 형님도 자랑할 정도는 아닌데요?”

그의 이름은 무르하치. 마찬가지로 누르하치의 친동생이었다.

“네놈은 몇 명인데!”

“저는 스물여섯 명째입니다. 하하하!”

무르하치의 도발에 수르하치가 번개처럼 활을 쏘았다.

휙휙휙!

순식간에 일곱 명이 죽임을 당하였다.

“이놈이! 나는 이걸로 스물일곱 명이 됐다. 어떠냐!”

“흐흐, 죄송하지만 저는 이미 서른 명째입니다.”

“이 거지 같은. 활은 더럽게 잘 쏘는구나!”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은 둘의 모습에 누르하치는 미소를 지었다.

자랑스러운 초원의 전사들에게 전쟁이란 게임과도 같은 것. 전장에서 장난을 친다고 뭐라 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일반 병사가 군기 빠진 모습을 보여 준다면 즉결 처형했겠지만 말이다.

“깔짝깔짝, 활을 쏴서 십 명 단위를 세어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나를 따라라! 적의 중앙을 완전히 밀어 버리겠다!”

누르하치는 그렇게 외치고는 창을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가 앞장서니 말에는 마갑을, 몸에는 철 갑옷을 쓴 5천의 중갑 기병들이 뒤를 따랐다.

“형님, 같이 갑시다!”

“아, 이러면 또 내가 지게 되는데. 그냥 활로 승부를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어어! 형님들 저도 기다려 줘요!”

무르하치와 수르하치가 다급히 말을 움직였다.

형이자 황제인 누르하치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내기에서 이기기 위함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세 형제가 이끄는 청나라군의 정면에는 창병으로 이루어진 한국군이 있었다.

화살이 쏟아지고 중갑 기병들이 달려드는데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창병들이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던 안균이라는 이름의 무능한 장수가 이끄는 한국군과는 달리, 지위가 낮은 장수가 이끄는 한국군이었는데 그들이 오히려 더 정예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리를 막기에는 창이 너무 짧군!”

누르하치는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어느덧 그의 말이 한국군과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다다랐다.

이제 몇 초만 지나도 누르하치의 몸은 한국군이 만든 창의 숲에 꿰뚫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 그의 말이 하늘에 붕 떠올랐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그의 말은 창의 숲을 그대로 뛰어넘었다.

콰지직!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며 다섯 명을 죽였다.

그야말로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말의 움직임이었다.

“오추, 잘했다!”

누르하치는 애마의 활약에 즐거운 미소를 짓고는 자신의 창을 휘둘렀다.

그러자 누르하치의 주변은 물론이고 방원 삼 장 안에 있는 모든 병사들이 피를 흩뿌렸다.

그의 창 공격에 수십 명이 당한 것이다.

“형님! 너무 비겁한 거 아닙니까! 여기서 무진창법을 사용하다니요!”

“헥헥헥, 수르하치 형님. 어차피 의미 없는 것 같습니다. 이미 내기는 글렀다고요.”

“시끄러워! 나도 무진창법만 사용한다면······.”

“형님이 무슨 무진창법입니까? 도법을 익히는 주제에.”

“이, 이놈이! 네놈은 검을 익히지 않느냐!”

누르하치는 두 동생의 대화를 무시하고는 기계처럼 적을 베어 나갔다.

그가 선언했던 대로 이미 그는 십 단위를 넘어 백 단위의 적을 베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고서 베고 또 벴다.

어느덧 200을 넘어 300을 죽였을 때쯤 되자, 한국군이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적이 도망친다! 잡아라!”

“이겼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마침내 청나라군은 승리하였다.

3배가 넘게 차이 나는 한국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한 것이다.

‘이걸로 더 이상 우리의 진격을 막을 군대는 없겠군.’

누르하치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청나라와 대한 제국의 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개성 인근에서 3만의 중앙군을 상대로 압승을 거둔 청나라군은 지체하지 않고 남진을 거듭하였다.

투석기와 대포를 비롯한 각종 공성 병기를 끌고 가느라 이동속도는 조금 느렸지만 그래도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대한 제국의 수도, 현리에 당도하였다.

“평주성만큼이나 거대한 성이군.”

“하지만 실용성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평주성에서도 병력이 부족하여 결국엔 스스로 물러났지 않습니까?”

청나라 제일의 명장, 다륭아의 말에 누르하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눈앞에 보이는 거성은 사람을 압도시키는 위용을 가졌지만 실용성은 그리 크다고 볼 수 없었다.

지나치게 넓은 성은 지나치게 많은 수비병을 필요로 하는 까닭이었다.

“함락시키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예비 병력이 상당하기 때문에, 한 달 정도는 두드려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일주일을 주겠다. 일주일 안에 대한 제국의 수도를 함락시켜라.”

누르하치는 그가 존경하는 위대한 정복자처럼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다륭아는 가슴에 주먹을 올리며 명을 받들었다.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일주일 안에 현리를 점령해 내겠습니다.”

“좋다. 지금 바로 공성전을 시작하도록!”

“충!”

그렇게 공성전이 시작되려는 순간, 전령들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후방에서 의병들이 거병하였습니다. 그냥 의병이 아니라, 전부 무공을 익혔는데 정규병보다 강합니다! 노예로 잡아 놓았던 놈들도 의병 부대에 합류하였습니다.”

“러시아 놈들의 움직임이 수상합니다! 군사 도발을 하는 것이, 아무래도 대한 제국과 밀약을 맺은 것 같습니다!”

수하들의 보고에 누르하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쉽게는 안 된다는 건가?”

대한 제국이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은 그야말로 이빨 빠진 호랑이와 다를 게 없었다.

최정예라 불리던 북방군은 북조선 유민들의 반란으로 위에서는 청나라, 아래에서는 반란군으로 샌드위치 당하였고 중앙군은 무공과 화포만 믿다가 기병을 활용한 청나라의 전략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멸하였다.

아직 중앙군 일부와 남방군이 남았지만 한국군이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리 위협적이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한 제국은 청나라군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랑이는 괜히 호랑이가 아닌 것인지, 시간이 지나자 청나라에게 위협이 되는 발악을 시도하려 했다.

후방에서 들고일어나는 의병들이 그랬고 연해주에서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는 러시아 세력이 그랬다.

“하나 이것들로는 나를 막을 수 없다.”

그는 조소를 짓고는 웅장한 높이의 성벽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대한 제국의 정복왕이시여, 반도를 지키고 싶다면 하루빨리 돌아오는 게 좋을 겁니다. 초원의 늑대들은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

나라가 건국되고 단 한 번도 외침을 받은 적이 없다는 대한 제국의 수도 현리.

이제 그 수도가 함락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 * *

“쏴라!”

타타탕!

검은 연기가 잔뜩 피어오르며 화약 냄새가 진동하였다.

하지만 정작 조총을 쏜 병사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은 채 화약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화약을 장전할 때 뒤에 있던 두 번째 조의 병사들이, 일제히 벼락같은 총성을 토해 냈다.

타타탕!

마찬가지로 두 번째 조의 병사들은 자신의 사격이 끝나자 자리에 앉아 화약을 장전했고, 뒤이어 세 번째 조의 병사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이른바 삼단 사격 전법이었다.

조총의 느린 장전을 보완하는 전법으로 조총의 위력을 극대화하였다.

결과는 정면에 보이는 대로였다.

전멸.

총병들을 향해 달려들던 2천 명의 기병들이 단숨에 전멸하였다.

고작 5배밖에 차이 안 나는 1만 명의 총병들에게 전멸을 당한 것이다.

“조총이라······. 확실히 쓸모는 있구나.”

“무인들한테는 크게 의미가 없겠지만, 일반 병사들을 상대로는 상당한 위력을 자랑합니다. 훈련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한 달이면 충분하고 말입니다.”

노부카쓰의 대답에 호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5회 차부터 일본은 물론이요, 내지에서도 흔히 쓰이기 시작한 무기, 조총.

비록 노부카쓰의 말처럼 무인들에게는 크게 위협이 안 될지 몰라도, 일반 병사들을 상대로는 굉장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아니, 무인들이라고 해도 C급 이하라면 조금 위험하려나?’

현재 본섬에서 쓰이고 있는 조총은 강선이 파여 있지 않은 활강식 조총이었다.

그리고 활강식 조총의 탄속은 초속 400미터이 채 안 되었다.

만화에서처럼 총알을 칼로 튕겨 낼 수 있는 속도는 아니지만, 현대의 권총탄보다 느린 속도였기에 B급 이상의 무인이라면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실력 있는 무인의 경우 마법으로 만든 방어구를 입는데, 이 방어구의 성능이 5회 차가 되면서 경이적으로 상승했다.

활강식 조총으로는 바로 코앞에서 쏘지 않는 이상, 큰 대미지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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