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
오히려 시작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바로 청나라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 까닭이었다.
현재 대한 제국의 세력권은 전라도, 강화도, 경상도까지로 밀려난 상황.
한강 이북의 경우는 전쟁 초기에 빼앗겼었고 최근에는 경기도에 이어 충청도와 강원도까지 빼앗겼다.
이제는 주요 식량 생산 지역인 전라도와 황제가 위치한 경상도까지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는데, 빠르면 두 달 늦어도 세 달 안에 지원을 가지 않는다면 대한 제국은 그대로 패망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호영으로선 다급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본국의 수송 함대를 불러오려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일본을 통일하자마자 병력을 이동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떨어질 것 같지 않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내지로 가면 황제와 권력 다툼을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그의 존재를 용납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제의 분노 따위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하였다.
‘부디 지원군을 반란군으로 모는 어처구니없는 짓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황제에 대한 기대감이라고는 일말도 없는 그로선 황제가 자신을 역적으로 몰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 * *
동부의 고다 가문과 서부의 세리자와 가문이 사라지자 일본 통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끝났다.
통일 전쟁에서 입은 피해가 3만이 채 안 될 정도로, 압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지원군으로만 최소 10만 이상을 동원할 수 있다!’
호영은 자신이 해낸 성과에 흡족해하며 전 일본의 영주들로 하여금 집결 명령을 내렸다.
휘하의 정예 병력을 모두 이끌고 오다 가문의 본성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자 순식간에 오다 가문의 본성 앞으로 10만이 넘는 군사들이 집결하였다. 모두 일본 영주들의 사병으로서 위기에 빠진 대한 제국을 구원할 지원군들이었다.
“이환, 병사들의 숫자가 정확히 어떻게 되지?”
“기뻐하십시오, 전하. 무려 15만이 넘는, 15만 5,200명이 집결하였습니다.”
전형적인 책사 외형을 가진 미청년이 부채를 살랑거리며 호영의 물음에 답하였다.
사내의 이름은 이환.
내지에서 굴지의 명문가로 손꼽히는 이씨 가문의 장자였다.
“15만이라······. 엄청난 병력이군.”
“그렇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무공을 익힌 정예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전부 무공을 익혔다고?”
“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장수들 중에는 초절정을 넘어서는 고수가 제법 있습니다.”
“그건 나도 들었다. 로열패밀리를 제외하고서도 A급의 무인이 몇 명 있다는 사실을.”
만약 이환이 NPC였다면 로열패밀리가 무엇인지 몰랐겠지만 그는 NPC가 아니었다.
유저, 그것도 로열패밀리에 소속된 유저였다.
강충구!
바로 그가 호영의 지낭이라 할 수 있는 강충구였던 것이다.
“하지만 A급의 무인들을 전부 내지로 데려갈 수는 없을 텐데? 초보자의 섬에서만 활동하던 야규 쥬베가 일본 해방 전선에 합류했고 모리 모토나리와 무카이 토시아키도 음지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어. 이제 일본 해방 전선의 전력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야.”
호영이 거론한 세 사람은 모두 A급 무인으로 알려진 고수들이었다.
그중에 아규 쥬베는 호영과 거의 동등한 수준의 무위를 가졌다고 추측되는데, 그것만으로도 일본 해방 전선의 전력은 무척이나 위협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게릴라전을 시도한다면 아규 쥬베가 혼자 나선다 해도 엄청난 피해를 강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영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충구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일본에만 20만이 넘는 병력을 남기고 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A급 무인이 부족하더라도 병력이 많으니 어떻게든 일본을 사수해 낼 것입니다.”
“경이 그렇게 자신한다면 이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예, 지금은 일본 해방 전선에 대해 걱정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그저 청나라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그 말에 호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껏 기대를 배신한 적이 없었던 충구다. 이번에도 그의 의견을 믿어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기야, 지금은 일본 해방 전선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지. 청나라 때문에 나라가 멸망할 판이니까.’
점점 남쪽으로 밀려나고 있는 대한 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일본 해방 전선 따위를 신경 쓸 것이 아니었다.
“제1 군단장 오다 노부카쓰, 전하의 부름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하하하! 전하, 저 김성근이 왔습니다!”
“신, 초성 자작이 전하를 뵙습니다.”
청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던 도중, 때마침 원정군을 지휘할 장수들이 그를 찾아왔다.
마치 연합군처럼 두 나라가 섞여 있었는데 전부 일본이나 한국에서 무명을 떨치는 자들로서, 뭐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장수들이었다.
호영은 그들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들을 보면 전쟁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단장 이상의 지휘관은 전부 온 것 같군. 그렇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하지.”
“크으, 회의는 질색인데.”
작게 투덜거리는 김성근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호영은 개의치 않고서 말문을 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재 누르하치가 전선에서 사라졌다. 본국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는데, 일단 가장 먼저 누르하치에 대해서 회의를 해야 할 것 같다.”
“뭐, 다른 나라가 침공하여 회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부가 불안정해져서 돌아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김성근과 노부카쓰가 한마디씩 던지자 충구가 고개를 내저었다.
“만약 그랬다면 정보 팀이 놓쳤을 리 없습니다.”
그 말에 두 사람이 입을 꾹 다물었는데 이번에는 충구가 의견을 내놓았다.
“어쩌면 외교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외교?”
“청나라는 러시아와 몽골 그리고 중국. 이렇게 세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습니까? 대한 제국을 계속 공격하려면 후방의 안정이 필요하니 협상을 위해 누르하치가 직접 나섰을 가능성도 낮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그럴 가능성도 있겠어.”
사실 청나라가 아직까지 대한 제국을 멸망시키지 못한 이유는 충구가 말했던 세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였다.
동방의 러시아는 여전히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중국과 몽골은 만주를 장악한 청나라로서도 경시할 수 없는 상대들이었다.
만약 중국이나 몽골이 없었다면 청나라는 대한 제국과의 전쟁에서 최소 10만, 최대 20만의 군사력을 더 동원할 수 있었으리라.
“근데 경의 말이 사실이라면 누르하치가 더 많은 군사들을 데리고 복귀할 수도 있겠군. 최정예인 팔기군까지 대동한 채 말이야.”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충구의 말에 장수들이 침음을 흘렸다.
안 그래도 막강하기 그지없었던 적이 더 강해져서 돌아오는 셈이니 장수들 입장에서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든 장수들이 탄식한 것은 아니었다.
“하하하, 재미있게 됐군요! 얼마나 끌고 올지 참 기대가 됩니다. 흐흐.”
“전하. 소장에게 누르하치를 맡겨 주십시오. 만주의 지배자와 한번 자웅을 겨뤄 보고 싶습니다.”
“명령을 내려 주신다면 지금 당장 누르하치를 죽이겠습니다.”
김성근, 노부카쓰, 초성.
이 세 사람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았으면서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태도로 앞다투어 말했다.
그러자 침체되어 가던 장수들의 분위기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저희들이 나선다면 제아무리 팔기군이 대단하다 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뭐, 누르하치의 참전이 걱정스럽다면 그 전에 청나라군을 깨부수면 되지 않겠습니까?”
슌지, 타로 형제의 말에 장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였다.
팔기군이 증원된다 해도 승리는 아군의 것이라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호영은 자신감을 잃지 않은 장수들의 모습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싸워 보기도 전에 지는 군대가 적지 않는데, 적어도 그의 군대는 그런 군대가 아닌 것 같았다.
‘하기야, 두 나라의 수준급 인재가 모였으니 기세가 넘치면 넘쳤지 모자랄 일은 없는 게 당연해.’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고는 말문을 열었다.
“오오가 자작의 말처럼 누르하치가 위협적이라면 그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청나라군을 분쇄하면 된다. 즉, 서둘러서 출정해야 한다는 뜻이지.”
호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성근이 끼어들며 외쳤다.
“전하! 소장을 먼저 보내 주십시오! 소장이 선발대가 되어 청나라군을 깨부수겠습니다!”
“선발대는 저, 황보훈가 맡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영지도 잃고 작위도 잃었으니 기회라도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반응은 호영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기에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였다.
“선발은 부대의 병과와 훈련 상태를 보고 판단하겠다. 어차피 오늘은 휴식을 해야 할 것이니, 내일이 될 때까지 기다리도록.”
그렇게 두 사람을 침묵시킨 호영은 선발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후속군보다 겨우 사흘에서 열흘 정도 일찍 출발하는 것에 불과하였지만, 선발대의 역할은 의외로 막중하였다.
일단 전시 상황에서 며칠이라는 시간은 전쟁의 흐름을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점도 있었고, 무엇보다 선발대가 어떤 모습을 보여 주냐에 따라 내지 사람들의 평가가 달라질 것이기에 무척 중요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냥 뭐, 청나라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라는 말 아닙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흐흐, 어렵지 않은 일이군요. 소장에게 맡겨 주신다면 단숨에 청나라군을 압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내일까지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큼! 큼! 송구합니다, 전하. 소장이 흥분한 것 같습니다.”
머쓱한 얼굴로 입을 다무는 김성근의 모습을 보며 호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한결같은 모습이군. 누가 전쟁에 미친놈 아니랄까봐 물론, 그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뒤로도 회의 겸 호영의 설명은 계속 진행되었다.
설명이야 선발대의 역할이나 내지에서의 행동 방침이 대부분이라면 회의 내용은 대체로 청나라군과 맞서 싸울 때 사용할 전술이나 전략, 부대 운용이었다.
회의가 시작되고 30분 정도 지났을까? 슬슬, 결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술은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테르시오 방진을 적극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전략은 지금 대한 제국이 사용하고 있는 수비 전략을 공격 전략으로 전환하여 회전에서 적을 섬멸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부대 운용의 경우야 네 사람, 즉 호영과 노부카쓰, 초성 그리고 미와 백작을 중심으로 편성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말이다.
“전선은 크게 두 곳으로 나눌 계획이다. 내가 직접 친정하는 전선과 나머지 백작들이 주관하는 전선으로.”
“두 전선이라면 일전에 말씀하셨던 서부 전선과 동부 전선입니까?”
“아마 그렇게 되겠지. 물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겠지만 말이야.”
만약 그가 세운 전략대로 청나라군을 밀고 올라가게 된다면 전선은 크게 서부와 동부로 나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