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그래서 호영은 준기도, 김성근도 아닌 노부카쓰를 부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언어적으로도 문제 될 것이 없었고 병력을 통솔하는 능력 역시 황제였던 이답게 출중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 될 것이 있다면 충성심인데, 호영은 이미 노부카쓰에게 복종 맹세를 받은 상태였다.
물론 복종을 맹세했다고 100퍼센트 믿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노부카쓰의 성격이라면 어느 정도는 믿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뭐 배신을 한다고 해도 로열패밀리가 군의 수뇌부를 장악하고 있는 이상 문제 될 것은 없었고 말이다.
“총병 3천, 창병 3천, 기병 3천, 궁병 2천, 총 1만 1천의 병력이 출정 준비를 완료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출정식을 해야겠군.”
“김성근 장군을 부르겠습니다.”
노부카쓰가 사람을 부르기 위해 부관을 보냈는데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 사령부로 거한이 뛰어들어 왔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문 부서지겠다.”
“하하, 죄송하게 됐습니다.”
“병사들의 준비는 다 되었나?”
“물론입니다! 준비가 너무 잘되어서 아침부터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영은 과장되게 말하는 김성근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매일 청나라, 청나라 노래를 부르던 김성근이었다.
언제는 호영에게 말도 하지 않고 내지로 떠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영지까지 버려 가며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원목에게 크게 혼난 뒤로는 호영의 황위 경쟁을 돕는 데 집중하였지만, 영주들과 전쟁을 벌여도 그답지 않게 지겨워하는 기색만 보였다.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 김성근이다 보니 선발대의 장수로 가장 먼저 청나라와 싸우러 가게 되자 아주 좋아서 미칠 것 같은 얼굴을 하였다.
지금도 주인이 공을 던져 주기만을 기다리는 개처럼 호영의 지시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가 다 되었다면 출정하도록.”
더 기다리게 했다가는 주인을 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호영은 곧장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김성근이 세상 다 가진 얼굴을 하고 대답했다.
“흐흐, 준비는 오래전에 끝났으니 그럼 지금 바로 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내지에 도착하면 황제가 도발할 수 있으니 주의해라.”
“그거야 계속 강조하셨던 거 아닙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장이 잘 처신하겠습니다. 흐흐, 아무튼 소장은 이만 가 볼 테니, 전하께서는 천천히 오십시오. 충성!”
사라지는 김성근의 뒷모습을 보며 호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영지도 가졌고 작위도 자작인 주제에 무엇을 더 갖겠다고 저리 전쟁을 좋아하는지 그로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괜찮겠습니까?”
“어떤 걸 묻는 거지?”
“김성근 장군의 성격이라면 본국에서 마찰이 일어날 수도 있을 텐데.”
4만의 병력을 이끌고 합류한 제3 군단장 미와 백작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참고로 제1 군단장은 노부카쓰가 겸임하고 있었고 제2 군단장은 초씨 백작 가문의 수장인 초성이 임명되었다.
“마찰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한 제국에는 더 이상 나와 대적하려고 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제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말이야.”
호영은 미와 백작의 우려에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장수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조하는 얼굴을 하였다.
장수들 역시 제국 정부나 황제와의 충돌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솔직히 김성근이 사고 한번 쳐 줘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우리의 힘을 적당히 보여 줄 수 있으니 말이야.’
아직 본국에서는 그의 힘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숫자만 많은 오합지졸을 거느리고 있다 생각하는 이들이 아마 절반 가까이는 될 터.
그러니만큼 김성근을 통해 힘의 우열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고다 가문이 내지로 갔다니 골치 아프게 됐습니다.”
“귀찮게 되기는 했지.”
“더군다나 고다 진이 지지하는 대방이라는 황자는 남방군의 만인대장이 됐다고 들었습니다.”
3군단 1사단장 미치이 히사유키의 물음에 호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황제가 나를 견제하려는 생각인지 대방을 키우기 시작했어. 만인대장이란 직책도 직책이지만 일부러 유리한 전쟁에 보내 승리할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하더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전하를 견제할 생각만 하다니. 지독한 권력자로군요.”
“원래부터 그런 인간이었으니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심하기 그지없는 군주였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데, 정작 군주라는 사람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호영으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황제였다.
“둘 중 하나를 암살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누구를 암살하자는 거냐?”
“고다 진 아니면, 대방이라는 황자를 암살하면 황제의 수작도 의미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대방은 만인대장이고 고다 진은 8천의 일본군을 통솔하는 장수다. 그들이 사라진다면 나쁘지는 않겠지만 결코 쉽지 않을 텐데?”
“전투라면 몰라도 암살은 자신 있습니다.”
“그렇군. 경은 용병 연합을 다스렸었지.”
하기야, 히사유키는 한때 낭인 조직의 수장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암살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낭인 조직은 전투 용병으로서 활동하기도 하지만 마치 전국시대의 자객들처럼 암살이나 테러도 곧잘 하였다.
그러니 3대 낭인 조직 중 하나였던 용병 연합의 히사유키라면 암살이나 테러에 자신 있어 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한데 고다 진은 경의 동료였던 것으로 아는데, 괜찮은가?”
히사유키가 적절한 시점에 투항한 터라 어쩔 수 없이 중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히사유키라는 인물은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동료였던 다른 용병 조직들의 수장을 배신하고 혼자 배를 갈아탔으니 더욱더 그러했다.
그래서 떠보듯이 고다 진을 죽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었는데, 히사유키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소장은 이미 황자 전하의 사람입니다. 황자 전하가 적대하는 자들이라면 당연히 소장에게도 적일뿐입니다.”
“경의 생각이 그렇다면야······. 제장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대방이나 고다 진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히사유키가 암살에 나서 준다면 호영으로선 손해 볼 일이 없었다.
만약 암살에 실패한다면 호영에게 어느 정도 타격이 있기는 하겠지만 내지의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반대로 암살에 성공한다면 황제의 견제가 실패로 끝나는 셈이니 얻는 게 적지는 않을 것이다.
“소신이 생각하기에 굳이 두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때 참모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게 된 충구가 말문을 열었다.
“어째서입니까?”
“두 사람이 전쟁에서 열심히 싸워 주고 있지 않습니까?”
충구의 반대에 히사유키가 조금 언짢은 기색으로 물으니 충구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열심히 싸워 준다니요?”
“고다 진은 현재 자신이 지지하는 대방을 황태자로 만들기 위해 무리하면서까지 전투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강원도 전선이 유리하게 바뀌어 가고 있지요. 고다 진은 그야말로 우리를 위해 활약해 주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고다 진이 승리할수록 대방의 명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대방의 명성이 계속 높아지면 황태자 자리를 대방에게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빼앗긴다면 그때 되찾으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 청나라와의 전쟁에 주력해야 할 때입니다. 권력 다툼이야 나중에 언제든 할 수 있으니 지금은 고다 진이 활약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나을 겁니다.”
“나중이 되면 늦을 수도 있습니다.”
충구가 특유의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나중에도 할 수 있습니다. 고다 진이 전장에서 아무리 활약을 해도 우리보다 강해질 수는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
히사유키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모장의 말이 맞다. 지금 굳이 고다 진이나 대방을 죽일 필요는 없어. 그들이 전장에서 활약을 할수록 우리에게 이익이니 말이야.”
“만약 황제가 실성을 하여 남방군이나 중앙군을 전부 대방에게 준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때면 나라가 둘로 쪼개질 수도 있는데.”
“그때가 되면 뭐 다른 방법이 있나. 내가 황제가 되는 수밖에.”
“······!”
“지금이야 명분이 없어서 황제를 가만 놔두는 것이지만 그 정도로 막무가내 짓을 한다면 어쩔 수 없잖아?”
어차피 유교라는 학문이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였다.
명분만 있다면 부친에게 반역을 저질러도 여론이 최악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아무튼, 고다 진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는 것으로 하고 누르하치는 어디 갔는지 알아냈나?”
호영의 물음에 충구가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하였다.
“몽골에 갔다고 합니다.”
“몽골?”
“확실치는 않지만 일단 들어오는 정보가 그렇습니다.”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군.”
전쟁 초기까지만 해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맹위를 떨쳤던 누르하치였다.
누르하치가 친정하는 전장은 절대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누르하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정작 고착 상태에 빠진 지금, 전장에서 누르하치의 모습이 사라졌다. 청나라 입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누르하치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몽골에 가 있었다고? 왜 하필 지금? 정말 몽골이랑 동맹이라도 하려는 건가?’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인지 누르하치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단순히 생각하면 동맹을 구하러 떠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몽골 입장에서는 오히려 대한 제국과 동맹을 하면 했지 청나라와 동맹을 맺을 이유는 없었다.
원교근공이라는 말이 있듯, 보통 멀리 있는 나라와 친해지고 가까이에 있는 나라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속셈이 무엇인지는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하고, 그러면 누르하치가 언제쯤 내지로 다시 돌아올 것 같으냐?”
“최소 열흘 이상은 걸릴 것 같습니다.”
“열흘이라면 그리 길지는 않구나.”
“하지만 전세를 역전시키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충구의 대답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누르하치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밀리기만 하였던 전쟁이 조금씩 고착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고다 진이 강원도에서 맹위를 떨치며 북진하고 있었고 곧 있으면 선발대를 지휘하는 김성근이 전장으로 뛰어들 것이니 전세를 역전시키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누르하치가 도착하기 전에 전장의 흐름을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
호영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2군단장, 초성을 바라보았다.
유일무이한 S랭크 무인, 초성!
그가 계획보다 조금 더 일찍 출정에 나선다면 전장의 흐름을 바꾸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 * *
선발대가 출정하고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다섯 번의 큰 전투가 있었는데 모두 대한 제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고다 진, 김성근, 초성, 히사유키 등등 일본에서 넘어온 장수들이 맹활약을 펼친 것이다.
대회전에서의 승리는 수십 번이 넘는 공성전과 유격전에서 얻을 수 없었던 것을 일격에 움켜쥐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