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66화 (266/345)

# 266

“황보훈!”

“예, 전하.”

친위 기병 사단장, 황보훈이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호영의 부름에 답하였다.

“기병들을 준비시켜라. 지금 당장 출정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웃는 얼굴로 명을 받은 황보훈이 기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출정 명령을 내리기 위함이었다.

“예비 병력은 참모장, 이환이 통솔한다.”

“충!”

지휘권을 충구에게 양도한 호영은 말을 타고 전방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무휼을 비롯하여 친위 군단 소속의 기병들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보병으로 활동하였던 의병 출신의 기병들이 그런 호영의 뒤를 따랐다.

“적 기병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군의 기병이 움직이니 적 기병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마찬가지로 1만의 기병이었다.

“단숨에 깨부순다.”

호영은 자신의 뒤에 있는 아군의 전투력이 정면에서 달려오고 있는 적군에 비해 약하다는 사실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와 무휼 그리고 황보훈이 선봉에 선 이상, 부대의 전투력이 조금 밀리는 정도는 문제 될 게 없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호영 혼자서도 적군의 기병 전체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호영과 기병들이 창을 들고 기세 좋게 달려가고 있는 그때 적군은 조금씩 속도를 줄이더니 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아군을 향해 활을 쏘았다.

휘휘휙!

순식간에 수백의 기병들이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화살에 맞고 쓰러진 기병들은 대부분이 의병들이었는데 말을 타는 실력도 좋지 않았고 무장도 충실하지 못해 허무하게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호영은 이를 악물면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궁기병의 비율이 높은 청나라군이니 이렇게 활로 대응하는 것 정도야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다.

“이럇!”

의병 출신의 기병들이 주춤거릴 때, 호영과 황보훈을 비롯한 소수의 무인들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전부 B급 이상의 무인으로서 화살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러자 당황하는 것은 활을 쏘기 위해 선두에서 다시 후미로 이동하던 청나라군이었다.

원래라면 화살 세례를 당한 적들이 피해를 입고 주춤하여 자연스럽게 거리가 벌어졌어야 하는데 아무리 활을 쏴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거리가 가까워지기만 하였으니, 그들로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죽어라!”

“이 오랑캐 놈들!”

청나라군은 결국 호영에게 뒤를 잡히고 말았다.

몽골군이 사용하던 전술로서 원래라면 무적이나 다를 게 없었지만, 이곳은 무공이 존재하는 세계였다.

가장 가까이에서 쏘는 화살조차 막을 수 있는 무인들이 수두룩하게 존재하는 세계였기에 그들의 선회 전술은 파훼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앙!

2천 명 정도 되는 중기병이 대항을 해 봤지만 호영이 선봉에 선 군대는 언제나 그렇듯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었다.

단숨에 중기병의 대열을 깨부수고는 여전히 활을 날리고 있는 경기병들에게 달려갔다.

경기병들은 그런 호영의 모습에 당황하여 등을 돌리고 도망쳤지만 황자의 말은 속도 하나만큼은 청나라의 군마를 압도하였다.

서걱, 서걱!

중기병을 상대할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활은 잘 쓸 줄 몰라도 근접전은 취약한 편에 속하는 청나라 기병들이었다.

애초에 그들이 사용하는 전술 자체가 백병전에 휘말리지 않고서 어떻게든 활로서 적을 제압하는 것이었으니 근접전이 약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호영은 거의 학살에 가깝게 경기병의 중앙을 파괴시키고는 그대로 우측, 적의 좌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적들 중에 더 이상 그를 막아 세울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

유일하게 기병만이 막아 세울 수 있었는데 이미 전멸까지는 아니어도 큰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호영의 뒤를 따르는 기병들이 적의 수를 착실하게 줄여 준 것이다.

아마 적 기병은 이번 전투가 끝날 때가 될 즈음에야 피해를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오크를 죽여라!”

콰아앙!

이번에도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그의 말이 오크들을 짓밟았다.

“취이익!”

-췩, 췩!

오크들은 특유의 괴성을 지르며 저항하였지만 정면에 1만의 적을 둔 상태에서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경기병처럼 순식간에 쓸려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대열이 붕괴되었다.

5천의 오크 부대가 대열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5천의 청나라 보병들도 사기를 잃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남방군을 지휘하는 만인대장, 원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보병들로 하여금 총돌격 명령을 내린 것이다.

앞에서는 원율의 보병들이, 측면에서는 호영의 기병들이 달려들고 있는 상황.

오크를 비롯한 청나라 보병들은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쫓아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좌군까지 무너지는 상황에서 적의 지휘부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전군으로 하여금 퇴각 명령을 내렸는데, 호영은 지쳐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기병들을 내버려 두고는 소수의 인원만 데리고서 추격전에 나섰다.

적의 피해를 강요시켜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추격전이라는 가장 좋은 기회를 낭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전하! 적의 지원군이 도착하였습니다. 지금 즉시 성으로 회군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호영의 곁으로 다급하게 뛰어온 전령이 그 같은 보고를 하였다.

“지원군이 도착했다고?”

“예, 저기를 보십시오!”

고개를 돌려 전령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저 정도의 규모라면 최소 10만······ 기병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3만 이상인가? 하지만······ 아직은 확실한 게 없다. 적의 지원군이 아닐 수도 있어.’

호영은 고민했다.

만약 적의 지원군이 당도한 것이 맞다면 지금 당장 퇴각해야만 하였다.

조금이라도 늦어진다면 그대로 성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서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저 먼지구름이 적의 지원군이 맞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먼지 정도야 얼마든지 속임수로 사용할 수 있었던 탓이다.

고민을 하던 호영은 이내 결단을 내렸다.

“물러나라.”

“알겠습니다. 그럼 추격 명령을 철회하겠습니다.”

회군.

결국 그는 추격전을 포기하고 성으로 복귀하는 선택을 하였다.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모르겠군. 적의 지원군이 오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적을 죽였어야 하는데.’

호영은 입술을 깨물고 점점 다가오는 먼지구름을 바라보았다.

과연 저것이 적의 지원군이 맞는지 아직도 의문이었다.

만약 아니라면? 자신이 속은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그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무능한 황자가 될 것이다.

아군 중에서는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 않겠지만 청나라군의 장수들은 전투를 벌일 때마다 그를 놀려댈 것이 분명하였다.

청나라군은 적장을 도발하기 위해 저속한 언어를 곧잘 사용하였으니 말이다.

“기, 기병이 3만이 넘어 보입니다!”

“보병도 있습니다! 최소 1만!”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멀리서 보이던 먼지구름은 적의 지원군이 맞았다.

그것도 2, 3만의 지원군이 아닌, 무려 5만에 달하는 지원군이었다.

* * *

“누르하치가 직접 오다니.”

“거기다 5만이야······. 지금 저기에 10만이 넘는 적군이 있다고.”

적의 지원군이 도착하자 평주성의 수비병들은 크게 당혹했다.

누르하치가 직접, 더군다나 청나라 최정예라 불리는 팔기군 3만에 대포를 보유한 2만의 북조선 병력까지 거느리고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그중에서 의병들이 가장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미 그들은 누르하치와 부딪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누르하치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상대인지도 잘 알고 있었고 말이다.

의병들로선 누르하치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조금씩 가지고 있었으니 누르하치의 등장에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전하, 누르하치가 대포까지 끌고서 직접 온 이유는 아무래도······.”

“그래. 아마 나와 똑같겠지. 이 전쟁을 단숨에 끝내려는 거야. 청나라도 장기전을 원하지는 않을 테니까.”

“하면 전하의 목숨을 노릴 것 같습니다. 평주성보다 중요한 것이 전하의 목숨이니 말입니다.”

“반대로 나는 누르하치의 목숨을 노릴 거다. 누르하치만 죽인다면 이 전쟁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어.”

호영과 충구가 그 같은 대화를 나눌 때, 적의 진영에서 변화가 생겼다.

스무 명이 조금 넘는 기병 무리가 갑자기 성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자는 누르하치인데, 누르하치가 왜······?”

충구가 성 앞으로 다가오는 기병 무리에서 정 가운데에 있는 사내를 가리켰다.

청나라 특유의 변발을 한 사내였는데, 외모는 특색이 없었지만 행동이 당당하고 거침없어 보였다.

저 위풍당당하기 그지없는 사내가 바로 청나라의 황제, 누르하치였다.

“황제는 어디에 있소!”

모두가 당황하며 누르하치를 지켜보는 가운데 누르하치가 뜬금없이 황제를 찾았다.

호영은 의아했지만 무심한 어조로 대꾸하였다.

“황제 폐하는 이곳에 없다.”

“거짓말하지 마시오! 여기에 황제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으니. 아, 당신이 대한국의 황제시구려?”

“나는 황제가 아니라 황자, 대혼이다.”

“대혼이라······. 내가 아는 황제의 이름이 대혼이니 당신이 황제인 게 분명하오!”

미친 것인가?

누르하치의 말에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일부 유저들은 생각이 달랐다.

호영보고 황제라고 부르는 이유는 호영의 존재를 눈치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즉, 황자 대혼이 호영인 것을 알아차렸다는 뜻이었다.

‘하기야, 모를 수가 없겠지. 이미 한국과 일본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니 말이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누르하치에게 물었다.

“내가 누구든 간에 청나라의 황제가 직접 이곳에 온 이유가 뭐지?”

“거, 목 빠지겠소. 일단 내려와서 대화합시다!”

“······지금 나보고 성 아래로 내려가라는 건가?”

“나는 대한 제국의 황제가 겁쟁이는 아닐 거라 믿고 있소.”

“······.”

그 도발에 충구가 조용한 목소리로 충고하였다.

“누르하치의 실력은 B급을 넘어섰다고 하니, 어쩌면 전하의 목숨을 노리려는 수작일 수도 있습니다.”

함정일 수도 있다는 그 의견에 호영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아무리 일국의 군주라고 해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특히 청나라 같은 경우는 설령 비겁한 계략을 부린다 해도 이기기만 한다면 그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전쟁의 달인들답게 오직 승리만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나를 노린다면 죽는 것은 누르하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만용을 부리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도록.”

딱히 누르하치의 도발에 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호영은 단지 스무 명이 조금 넘는 기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을 뿐이었다.

‘누르하치랑 주변에 있는 자들이 B급에서 A급 정도의 실력으로 보이지만, 무휼과 황보훈이 힘을 보태 준다면 오히려 이쪽이 유리하다.’

물론 저 기병들 중에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고수가 실력을 감추고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만에 하나 그런 고수가 있다면 애초에 이 전쟁은 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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