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70화 (270/345)

# 270

“청나라의 땅을 주는 겁니다.”

“청나라 땅이라면 만주를 말하는 겁니까?”

“아마 그렇게 되겠죠. 정확히는 만주 전체가 아니라 북간도 정도겠지만 말입니다.”

“흠, 확실히······.”

땅을 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 가치가 낮은 땅을 주는 게 좋다.

그리고 호영이 약속할 수 있는 땅 중에서 가치가 낮은 것은 만주였다. 왜냐하면 만주는 아직 그의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이 그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아직 만주는 청나라의 땅인데······.”

“그렇게 따지면 한강 이북도 아직 청나라의 땅입니다.”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차피 땅을 주려면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긴다면 만주 일부를 주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죠.”

“일리 있는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김 위원장에게 회장님의 뜻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성원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꼭 청나라를 무찔러 주십시오. 회장님에게 한국인들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그의 말에 호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지만 억지로 대답하였다.

“······예, 알겠습니다.”

사라진 그의 빈자리를 보며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인들의 미래라······.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호영은 딱히 애국심이나 국민들을 위한다는 숭고한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개인의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었다.

회귀 전에도 그랬고 회귀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존재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크게 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원래라면 지금의 일본 이상으로 패배주의에 찌들었어야 할 나라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활기 넘치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살아왔을 뿐이지만 어찌 되었건 이 나라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말이었다.

‘만약에 대한 제국이 패망하고 청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버린다면 당장은 괜찮아도 몇 년 안에 활기를 잃고 말겠지. 어쩌면 일본처럼 될 수도 있고 말이야.’

호영은 그 생각을 하며 인터넷을 바라보았다.

인터넷에서는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열성적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보다 훨씬 열성적이었다.

네티즌들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그의 어깨에 이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사실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겨야겠어.”

마음을 더욱 강하게 먹은 호영은 센추리에서 매일같이 혈전을 벌이며 북한의 답변을 기다렸다.

이틀 뒤, 마침내 북한의 답변이 왔다.

북간도를 받겠다는 긍정의 답변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틀이 지나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북한 유저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북조선 용병 부대를 장악하고 청나라를 공격하게 될 그날이.

* * *

“형님! 성문이 열리는데요?”

“또 공성 병기를 노리는 건가? 이번에는 우리가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기병들을 가만히 두기에는 너무 아까웠나 봅니다, 흐흐.”

누르하치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평주성을 바라보았다.

성문이 열리더니 아니나 다를까, 기병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이번에도 공성 병기를 노리고 뛰어나온 것일 터.

이틀 전의 야간 기습에서 제법 재미를 봤다고 또다시 시도하려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수성하는 입장이라고 계속 성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으니 이 같은 시도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단지 대비를 철저하게 한 청나라군에게는 무용한 시도일 뿐이었다.

“대포와 공성 병기들을 뒤로 빼라.”

“예, 알겠습니다.”

“총병과 보병 부대도 뒤로 빼고.”

“크으, 형님. 기병끼리 싸우는 겁니까?”

“이참에 청나라 기병의 위용을 보여 줄 필요가 있지 않겠어? 적의 사기도 깎아먹을 겸 말이야.”

누르하치의 말에 수르하치가 콧김을 뿜어냈다.

공성전만 계속하다가 가장 흥미진진한 기병과 기병의 전투를 한다는 생각에 흥분한 것이다.

“그, 형님이 황제라고 부르는 황자 놈에게도 복수를 할 수 있겠군요. 솔직히 보법만 없으면 우리가 이길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말 위에서는 당연히 우리가 이길 것이다.”

수르하치만 이후의 전투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누르하치 역시, 적군과의 전투를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단순히 적 기병들과 싸운다는 이유로 전투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기대하는 것은, 적 기병들과의 전투가 아닌, ‘황제’와의 싸움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승부를 봅시다. 오늘은 나도 피하지 않을 것이니.’

적군의 총사령관이자 황태자라 불리는 대혼이라는 유저를 향해 누르하치는 전의를 불태웠다.

“어 형님들? 보병까지 튀어나오는데요?”

“뭐야? 식량이 떨어지기라도 했나?”

부대를 재배치하던 중, 무르하치가 평주성을 가리키며 외쳤다.

기병들만 성 밖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하였는데, 평주성의 전 병력이 성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마치 총공세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식량은 충분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보다, 적의 지원군이 온 것이 아닐까요?”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굳이 동부 전선의 병력이 아니더라도 아직 대한 제국에는 예비 전력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경상도에만 무려 5만이 넘는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무르하치의 의견에 누르하치는 고개를 내저었다.

“만약 그랬다면 진즉에 우리에게 정보가 전해졌을 거다. 경상도에는 우리에게 정보를 주지 못해 안달인 녀석들이 제법 많으니 말이야.”

청나라는 단순히 전쟁만 잘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정보력도 상당하였는데, 이미 대한 제국에 거대한 정보망을 구축한 상태였다.

군사 정보는 물론이요, 궁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암투까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지원군이 움직이는 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형님! 뭐가 되었건 뭔 상관입니까? 그냥 쳐부수면 될 것을.”

“그래, 네 말이 맞다. 설령 지원군이 더해졌다고 해도 우리를 이길 수는 없겠지.”

누르하치는 피식 웃었다.

무식하게도 느껴졌지만 어찌 되었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적의 술수가 무엇이든 그대로 깨부수면 그만이었다.

지금 그의 수중에는 무려 10만에 가까운 군대가 있었으니, 두려울 게 없었다.

“부대들을 재배치해야겠어. 보병을 다시 앞으로 전진시키도록.”

“알겠습니다!”

본래는 기병끼리 맞부딪치려고 하였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보병들을 동원하는 수밖에.

아직 진영을 갖출 시간은 충분했다.

전쟁으로 단련된 북조선 용병 부대와 오크 보병 부대는 1분도 안 되어 대형을 갖출 수 있는 정예 중의 정예였다.

적군과의 거리가 제법 남아 있는 만큼, 지금 당장 움직인다면 진영을 갖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콰아아앙!

“으아아아아!”

그때였다. 뒤에서 난데없이 포성이 들려오더니 후미에서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정예 중의 정예인 정황기, 즉 황제 친속 부대의 비명이었다.

“폐하! 아군 진영에서 대포알이 날아왔습니다!”

“포격에 군마들이 미쳐서 날뛰고 있습니다!”

평주성의 기병 부대를 마중하기 위해 기병 부대를 전진 배치시키며 포병 부대 및 공성 부대는 후방에다 배치시킨 청나라군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아군 포병이 쏜 것이 분명한 대포알이 기병들을 향해 날아왔다.

누르하치가 아직 사격 명령조차 내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뭘 하고 있느냐! 어서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려라!”

누르하치가 당황하고 있는 두 동생에게 그리 외치는 순간, 포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콰앙, 쾅, 쾅!

이번에도 아군을 향한 포성이었다.

‘······설마!’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누르하치가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후미에 있던 기병들은 여전히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누르하치가 보려는 것은 바로 뒤편에 있는 기병들이 아니었다.

그들 너머에 있는 보병들의 움직임을 보고자 하였다.

‘이놈들이 감히!’

설마설마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본래라면 적과의 회전을 위해 정면으로 움직였어야 할 북조선 용병 부대, 그들이 아군을 향해 대포를 쏘고 있는 포병 부대가 위치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청나라군의 퇴로를 막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후방에 진영을 펼쳐라! 북조선 놈들이 배신했다!”

“형님,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북조선 용병 부대가 대한 제국의 편에 섰다는 말이다!”

“헉!”

수르하치가 기함을 질렀다.

북조선 용병 부대가 배신하다니!

이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북조선 용병의 숫자는 무려 3만이나 되었다.

평주성 앞에 집결해 있는 청나라군의 숫자는 총 10만인데 북조선 용병이 빠진다는 것은 30퍼센트에 달하는 병력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전투에서 이 같은 피해가 발생했다면 해당 군대는 이미 전멸한 것이나 다를 게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3만의 병력이 배신을 하여 적의 편에 섰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마이너스 3만이 아니라 마이너스 6만, 어쩌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형님!”

“지금은 일단 퇴각할 때다. 보병들과 오크들을 한곳으로 불러 모아라. 팔기군이 퇴로를 열 것이다.”

“알겠습니다.”

두 동생은 물론이요, 청나라군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졌지만 누르하치만큼은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청나라군도 조금씩 동요를 가라앉히고 퇴각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한국군은 그들의 퇴각을 허용해 줄 생각이 없다는 듯, 속보를 하여 빠르게 거리를 좁혀 왔다.

타타탕!

이윽고 사거리 안에 들어오자 한국군의 총병 부대가 사격을 시작했다.

오크들은 한국군의 조총 사격에 무방비하게 죽어 나갔다.

북조선 총병 부대가 없다 보니,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백여 마리의 오크가 일방적으로 죽어 나간 이후에야 퇴각 준비를 끝마친 청나라군은 누르하치의 명령에 따라 순차적으로 퇴각에 나섰다.

하지만 대포알이 쏟아지고 총알과 화살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퇴각이 쉽지만은 않았다.

더군다나 일부 보병은 기동력이 너무 느렸기에 어쩔 수 없이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청나라군은 1만 5천가량의 피해를 입고 가까스로 군을 물릴 수 있었다.

“빌어먹을! 북조선 놈들만 아니었으면!”

“형님, 제가 지금 당장 북조선 유민들을 잡아 오겠습니다. 한국 놈들은 몰라도 그놈들만큼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수르하치와 무르하치가 분노 어린 표정으로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누르하치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북조선 용병 부대가 배신한 것은 그로서도 분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누르하치는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느니 앞으로의 행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었다.

압도적으로 불리해진 전쟁.

이 전쟁을 다시 뒤엎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평양까지 물러나야겠어.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한 번 승부를 보고······ 만약 거기서 패배한다면 몽골을 불러들이는 수밖에.’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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