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88화 (288/345)

# 288

B랭크의 무인만 수백 명이 궁궐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습격자의 무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심상치 않다니?”

“어느 황문 할 것 없이, 근무를 서는 경계자들이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습격자들의 무공이 범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흠.”

“무엇보다, 습격자들에게서 중국어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호영은 더 이상 자신감을 내비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목숨이었다.

아무리 친위 군단 소속의 근위 사단을 신뢰하고 자신의 무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만에 하나란 것이 있는 법이었다.

하여 그는 지체하지 않고 근위병들에게 말했다.

“뭐 하고 있나. 어서 가지.”

그렇게 호영은 신속한 발걸음으로 궁을 빠져나가기 위해 움직였다.

“조금 늦었나 보군.”

“예? 폐하,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요?”

경공이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던 호영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B랭크의 근위 장교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에 방쯔의 왕이 있다!”

낯선 목소리는 중국어로 뭐라 외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중국어가 들려왔다.

황궁 전체의 상황이 어떤지는 몰라도 최소한 호영의 침소 근처는 습격자들로 뒤덮인 모양새였다.

‘확실히······ 수준이 높아 보이네.’

근위병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전투를 대비할 때 호영도 자신의 창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예리한 눈으로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였다.

습격자들은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실력자들로 보였다.

특히 가장 앞에서 검을 높이 들고 달려드는 자의 무공 실력은 최소 A랭크로 보였고 그 외에도 A랭크 무인이 최소 세 명은 되어 보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B랭크 무인이었는데, 창과 검, 도 등 다양한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이 상대하기가 꽤나 까다로울 것 같았다.

‘정리하자면 아군이 지원하러 와 주지 않을시, 무조건 진다는 것이로군.’

위기였다. 단순히 목숨만 위협받는 위기가 아니었다.

만에 하나 여기서 습격자들에게 당한다면 한국의 명예는 물론 그의 명예도 땅에 처박히고 만다.

다른 곳도 아니고 자신의 궁궐에서 암살을 당하는 것이니 말이다.

호영은 혀를 차고 창을 강하게 쥐었다.

창을 쥐는 것은 오랜만이지만 어색함은 없었다.

어색하기는커녕 이전보다 더 잘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치솟았다.

“제나라의 원수!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호영이 전투 태세를 갖출 때, 습격자 중 한 명이 어색한 한국어로 외쳤다.

“망국의 잔당인가?”

“우린 제나라의 충의 열사들이다!”

“충의 열사건 뭐건 간에 실력들이 대단한 것 같은데 왜 짐을 노리는 거지?”

만약 저들이 전장으로 갔다면 어떤 전장이든 흐름을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뛰어난 자들이었으니 호영으로선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노릴 거면 누르하치를 노릴 것이지 왜 하필 자신을 노린단 말인가.

물론 전선에 나가 있는 누르하치보다 후방에 있는 호영을 노리는 게 보다 가능성 있는 일이니 중국의 입장에서는 그리 이상한 선택이 아니었다.

“방쯔들만 없었어도 전쟁은 이겼을 거다!”

“고작 그 이유 하나로 바다를 건너오다니. 근성 하나는 대단하네.”

호영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창을 들어 올렸다. 더 이상은 문답무용이었다.

상대 역시 길게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었는지 동시에 달려들고 있었다.

“폐하! 피하십시오! 이곳은 소장이 막겠습니다!”

무휼이 어디선가 뛰어와서는 그렇게 외쳤으나, 호영은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아까도 느꼈지만 기이할 정도로 자신감이 샘솟아 올랐다.

습격자들의 무위가 보통이 아님을 확인했음에도 자신감은 여전했다.

이유는 그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오랜만에 창을 들어서 마음껏 휘둘러 보겠다는 마음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건, 마음이 이렇게까지 원하는데 마냥 피하고만 싶지는 않았다.

그도 가끔씩은 이성보다 감성에 충실하고 싶을 때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정 안 될 것 같으면 그때 도망쳐도 그만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는 보법과 경공까지도 A랭크였으니 말이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셨지, 나는 이미 S랭크에 오를 실력이지만 센추리를 게임으로 생각하는 바람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대검을 든 중국인이 가장 먼저 호영에게 달려들었다.

무휼이 앞으로 나서 막았지만 다른 이들이 문제였다.

무휼과 근위 장교들이 막지 못한 A랭크의 무인 두 명이 동시에 호영을 공격하였다.

깡! 깡!

검기와 창기가 부딪치고 화려한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호영이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당황한 두 사람이 뭐라 외쳤지만 호영은 무덤덤한 얼굴로 아까 했던 생각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내가 무공에 진지하지 못했나 생각했지. 하지만 아버님께서 내게 해 주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어.’

잠시 당황하였던 두 사람은 다시 검기를 사용하고는 호영의 양옆에서 동시에 공격하였다.

이번 공격은 아까처럼 막는 게 불가능하였다.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공격이기에 하나를 막으면 반드시 다른 하나에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영은 이번에도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다.

휙!

그가 피해를 보지 않은 이유야 단순했다.

걸음을 몇 발짝 옮기는 것으로 두 사람의 공격을 완전히 피해 냈던 까닭이었다.

“이놈이!”

“방쯔 따위가!”

너무도 쉽게 공격이 막히자, 두 사람은 몹시 분개하여 다시 달려들었는데 이어지는 전개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 역시 호영과 마찬가지로 A+ 랭크의 초고수인데도 단 한 번의 공격도 성공시키지 못하였다.

“설마, 경지가 오른 것인가?”

경지가 같다면 이렇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호영은 이미 S랭크에 도달했다는 뜻.

하지만 S랭크로 판단하기엔 호영의 실력은 너무 어중간해 보였다.

애초에 호영이 S랭크의 무인이었다면 진즉에 ‘검강’을 사용했을 터.

두 사람은 그래서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검을 든 채 주저하고 있을 때 호영은 혼자 상념을 이어 나갔다.

‘아버님의 말대로, 나는 이곳을 무의식적으로 게임이라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서 정신력이나 상단전이란 개념을 무시하였던 거지.’

깨달음이란 것을 얻어야지만 S랭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러나 깨달음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디에 있느냐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호영은 센추리 세상이 그저 잘 구현된 가상현실로만 생각하였다.

수억에 달하는 NPC와, 진짜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현실적으로 구현된 마나라는 에너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계속 가상현실이라고만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무공에 진전이 없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A랭크까지야 게임이라 인식하든 현실이라 인식하든 별로 상관이 없겠지만 진정으로 ‘격’을 높이는 경지인 S랭크부터는 센추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아주 컸다.

호영처럼 센추리를 게임이라고만 인식한다면 10년이 지나든, 100년이 지나든 진전을 볼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보인다. 정신, 어쩌면 영혼이라 부를 무언가가. 만약 내가 아직도 이곳을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면 저것을 착각이라 생각했겠지. 준기처럼 재능이 좋았다면 저것을 깨달음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그는 자신의 머릿속이라 여겨지는 신체 내부에서 지금까지 파악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였다.

처음 발견한 것이기에 호영도 저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협지에서 나오는 이야기대로라면 아마 이것이 ‘상단전’이라 부르는 또 하나의 단전일 것이다.

실제로 호영이 머릿속에 있는 그것에다 마나를 주입하니 진짜 단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마나를 마구 흡수하였다.

아니, 그의 마나만 흡수하는 것이 아니었다.

운기조식을 하는 중도 아니건만, 대자연의 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만약 스텟으로 표기한다면 최소 100, 어쩌면 200이 넘을 마나량이었다.

“아아!”

본래 이 정도의 기를 단기간에 흡수한다면 기맥에 큰 손상을 입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어딘가 아프기는커녕 그 어떤 때보다 고양되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같은 기분은 금방 끝났다.

시간으로 따지면 몇 초 만에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 양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래도······ 상단전의 마나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늘을 나는 기분은 더 이상 느낄 수 없었지만 호영은 미소를 지었다.

말로만 듣던 상단전의 개방.

S랭크의 상징이라고 들었던 그 상단전 개방을 방금 그가 하였다. 한마디로 1회 차부터 줄곧 막혀 있던 A랭크의 벽이 마침내 무너진 것이다.

“나도 드디어 S랭크가 된 것인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까처럼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볍고 상쾌하였다.

수십 년 동안 묵혔던 때를 마침내 털어 낸 기분이었다.

“감히 우리 앞에서 웃음을 짓다니!”

“경지가 무엇이건 놈을 죽이자!”

호영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자, 그와 대치하던 두 사람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달려드는 상황에서도 호영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 달린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쾅! 콰앙!

아까와 비슷하게 호영은 창을 들어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러나 공격을 막는 것까지는 비슷해도 결과는 전혀 달랐다.

흠집도 나지 않은 호영의 창과 다르게 두 사람의 무기는 모두 박살이 난 것이다.

“거, 검강!”

“이럴 수가! 방쯔의 왕이 경지에 올랐다니!”

만약 가짜 검강, 그러니까 검기를 눈덩이처럼 뭉쳐서 만든 검강이었다면 두 사람의 검을 부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짜 검강은 검기로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영의 검강은 두 사람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무기를 부수었다.

호영이 사용한 검강이 진짜 검강이란 사실을 의미하였다.

‘역시, 검강인가.’

내색하지 않았지만 호영도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를 보고 감탄하였다.

괜히 S랭크의 상징이 아니었다.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호영은 자신과 대치하고 있는 두 명의 무인을 바라보았다.

그와 고작해야 한 수밖에 차이 나지 않은 고수들이, 기이할 정도로 쉽게만 느껴졌다.

단숨에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합!”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막기만 하던 호영은 드디어 반격에 나섰다.

그러자 두 명의 무인이 움찔 물러나려 하는데, 안타깝게도 속도에서 밀렸다.

서걱! 깡!

둘 중 한 명은 호영의 공격을 피하려다가 팔을 잃었고 다른 한 명은 반으로 부서진 검에다 가짜 검강을 일으켜 가까스로 막아 냈다.

하지만 호영의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는 자신의 힘을 파악하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방쯔! 더러운 방쯔 놈이!”

이미 팔을 잃었던 무인은 두 합 만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다른 한 명 또한 오래 버티지 못하였다.

시간으로 따지면 10초도 지나지 않아 A랭크의 초고수 두 사람을 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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