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89화 (289/345)

# 289

‘내가 생각해도 너무 강해진 것 같군. 이렇게 힘이 넘칠 줄이야.’

물론 두 무인이 쉽게 당한 이유는 자신의 주 무기를 잃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조금 더 버틸 수 있었을 터.

그러나 호영의 힘이 강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제 그는 전장에 단독으로 출전해도 충분한 성과를 내보일 수 있는 절대 고수가 된 것이다.

“폐하?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호영이 자신의 무력에 만족하고 있을 때 어느덧 상황이 종료되었는지 무휼이 다가와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습격자들은 호영을 죽이는 것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지원이 도착하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멸하였던 것이다.

호영이 상대하였던 무인들이 가장 마지막에 남은 습격자들이었다.

“짐은 괜찮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무엇이 송구스럽다는 거지?”

“침입자들이 폐하를 공격할 때까지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게 소장의 무능 때문이옵니다.”

무휼은 무릎을 꿇으며 자신의 죄를 밝혔다.

확실히, 침입자들을 막아 내지 못한 그의 잘못은 크다고 볼 수 있었다.

자칫하면 제국의 황제인 호영이 적의 손에 죽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침입자들의 무공이 고강하여 누가 책임자로 있든 막아 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건 의미가 없는 이야기였다.

상대가 누구건 궁을 침입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 친위 군단의 수장이 책임을 져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원래였다면 징계를 내리는 게 맞긴 하지. 무휼의 잘못이 설령 없었다고 해도 말이야.’

하지만 호영은 온화하게 미소를 지었다.

S랭크가 되었는데 무휼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되었으니, 일어나라.”

“폐하, 소장은 죄인이옵니다. 죽여 주십시오, 폐하!”

“경을 죽이다니. 절대 그럴 수 없다. 솔직하게 말해서 짐은 오히려 경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게 어인 말씀이신지?”

의아해하는 무휼에게 호영은 아무 말 없이 검강을 일으켰다.

“······!”

“거, 검강!”

바로 눈앞에서 검강을 지켜본 무휼뿐만이 아니라 주변을 지키던 근위병들도 경악에 찬 얼굴을 하였다.

그들의 주군이, S랭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검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설마 경지에 오르신 것입니까?”

호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휼과 근위병들이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겨, 경하드립니다!”

“경하드립니다!”

습격자들이 누구인지, 책임자를 어찌 벌할지, 그런 것은 더 이상 안중에도 없었다.

대한 제국의 황제가 S랭크의 무인이 되었다는 사실만 중요할 따름이었다.

* * *

멸망한 제나라의 잔당이 궁궐을 침입한 이후로 궁궐의 경비는 이전보다 훨씬 삼엄해졌다.

A랭크의 장수들조차 돌아가며 번을 설 정도였다.

호영이 S랭크에 도달하여 경비가 크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이후의 황제들까지 S랭크일 거라는 보장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님.”

“확실히 경지가 오르긴 오른 것 같구나.”

하지만 경비가 삼엄해진 것이 무색하게, 그의 장인인 박선후는 너무도 쉽게 호영의 침소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것인지, 침소 밖은 여전히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아버님이 S랭크의 무인이라지만 이렇게 쉽게 뚫리다니.’

호영은 이번에는 기필코 경계 근무자들에게 징계를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박선후에게 말했다.

“예. 모두 아버님 덕분입니다.”

“나 때문이라고?”

“아버님이 조언해 주신 덕분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 뭐가 되었건 잘되었구나. 축하한다.”

박선후가 특유의 무덤덤한 목소리로 축하 인사를 건네자 호영은 그답지 않게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그의 미소가 의외였는지 박선후의 눈이 조금 커졌다.

호영은 그런 박선후에게 다시금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저의 침소까지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내가 너를 찾아오는 이유는 이전과 다르지 않다.”

“전쟁에 내보내 달라는 말을 하시려 오신 것은 아닐 테고. 설마······ 대련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저와?”

박선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호영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입을 다문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박선후와의 대결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이제는 S랭크이지 않은가?’

4회 차까지 언제나 세계 최강이었던 그는 준기가 S랭크에 오르고, 5회 차가 되면서 조금씩 자긍심을 잃어 갔다.

A랭크로는 세계 최강을 자처할 수도 없었고 여포처럼 전장을 지배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제부로 상황은 또다시 바뀌었다.

다시 세계 최강의 자리를 회복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 최강 중의 한 명’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좋습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었던 일이었습니다.”

호영의 대답에 박선후가 씩 웃음을 지었다.

그의 대답이 꽤나 만족스럽게 들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웃고 있는 그의 얼굴과는 다르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은가?”

“······.”

결코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박선후의 말에 호영은 순간 식은땀을 흘렸다.

확실히, 박선후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호영의 신분이 무엇이건 크게 신경 쓸 것 같지가 않았다.

황제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아버님과의 대결에서 죽을 수 있다 한들,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경험이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S랭크의 무인과 상대해 보겠는가?

물론 준기가 있었지만 실력 차이가 확연했을 때가 아닌 이상, 준기도 전심전력으로 대결에 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충신으로서 황제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박선후와 대결을 하는 게 미래를 위해 좋았다.

지금 그가 이 자리에서 죽는 게 차라리, 나중에 다른 나라의 S랭크 무인에게 죽는 것보다 나은 일일 것이니 말이다.

“괜찮습니다. 대결해 주십시오, 아버님.”

“황제지만 무인이라는 건가. 좋아. 아주 제대로 해 주마.”

‘아주’를 강조하는 박선후를 보며 호영은 순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였다.

하지만 장인어른 앞에서 선택을 번복할 수는 없는 일.

그는 속으로 앓는 소리를 하고는 침소 밖으로 나갔다.

“폐하? 헉! 누구냐!”

“비상! 비상!”

박선후와 함께 침소를 나서니 근위병들이 경악을 토했다.

불과 얼마 전에 외부인의 침입을 허용하였는데 또다시 같은 일이 발생하였으니 경악할 수밖에 없으리라.

“소란 떨 거 없다, 짐이 부른 귀빈이니.”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박선후의 침입을 허용한 근위병들이 호영은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그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대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만큼, 소란은 피하는 게 좋았다.

그렇게 근위병들을 물리친 호영은 자신의 연무장에서 창을 든 채 박선후에게 겨루었다.

“바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시간 끌 거 없지. 바로 시작하자.”

순간, 박선후의 모습이 사라졌다. 보법을 극성으로 전개한 것이다.

하지만 호영 역시 경지를 넘어선 무인이었다.

만약 경지를 넘기 전이었다면 뒤늦게 반응하였겠지만 상단전이 열리고 그의 반사 신경은 극도로 발달되었다.

상단전에 마나가 남아 있는 한, 현대의 총알조차 아무렇지 않게 피할 수 있으리라.

‘지독하리만치 빠르고, 지독하리만치 강하군.’

음속을 넘어서는 총알도 가뿐하게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호영이지만 박선후의 공격은 피하는 게 쉽지 않았다.

무공이 무슨 절대 무공이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호영도 S랭크의 무인이고 S랭크의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무공에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다만 선후의 속도와 기세가 남달랐다.

공격을 피하기 위해 보법을 전개할 때마다 사방에서 압박감이 가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버틸 수 있다!’

호영이 속으로 자신감을 내비칠 때, 박선후가 마침내 S랭크 무인으로서의 위용을 보여 주기 시작하였다.

그가 보여 준 것은 다름 아닌, 호영도 사용한 바가 있는 ‘검강’이었다.

S랭크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검강은 확실히 그 공격력이 엄청 났다.

보법으로 공격을 피하려고 하였던 호영은 영문도 모른 채 피를 봐야 했다.

회피는 깔끔하게 성공하였는데, 팔에 상처가 난 것이다.

“검강을 피하려면 무조건 호신강기를 사용해라. 나 정도의 무인이 사용한 검강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 말을 듣고 호영은 확신했다.

박선후의 무공이 준기의 것보다 훨씬 고강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안 그래도 피하기 어려웠던 박선후의 공격이 더욱 피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 중요할 따름이었다.

‘아직 호신강기는 사용하기가 까다롭다.

사용한다 해도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을 뿐일 테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금부터 반격을 해야겠어.’

박선후의 말을 듣자마자 호영은 그 같은 결정을 내렸다.

방어가 아닌 공격을 선택한 것이다.

파바박!

이 순간 호영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비록 보법이 S랭크 무인이 쓰기에 여러모로 부족한 보법이었지만 그래도 A랭크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빨라졌다.

S랭크 무인이 A랭크 무인을 여럿 상대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민첩성 때문이리라.

물론 검강의 힘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나도 대결을 몇 번 해 본 적은 없지만······.”

하지만 그의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도 박선후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경지에 오른 무인들 간의 대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아무리 변칙적인 공격을 시도해도 경지에 오르면 다 보이거든.”

“······.”

“그러니 내기의 소모를 최소화해라. 지금처럼 사용했다간, 1시간도 못 버텨. 최소 5시간은 싸워야 결판이 나는데 말이야.”

호영의 연속 공격을 여유롭게 피해 낸 박선후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였다.

“물론 너처럼 어정쩡한 상태라면 이런 시도도 통할 수 있겠지만.”

쾅!

그때 박선후가 지면을 박살 냈다. 발에 내기를 싣는 것만으로 수류탄이 터진 것처럼 지면이 폭발한 것이다.

“컥!”

갑작스러운 폭발에 시계가 제한될 때, 뒤에서 갑자기 주먹이 날아왔다.

다급히 호신강기를 일으켰지만 아직 익숙지 않았기에 피해는 상당했다.

“눈이 좋아졌다고 너무 눈으로만 적을 좇으려 하지도 마라. 분명 사기적인 눈이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하니까.”

박선후의 말에 호영은 주저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힘의 우위가 압도적임을 확인하였으니 더 이상의 대결은 무의미하였다.

그가 해야 할 것은 그저 박선후의 가르침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것뿐이었다.

‘방심하지 말라고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시네.’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진정한 초인이 되어 더 이상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는 그와 같은 초인이 존재하였다.

벌써 그 초인이 여러 명이 된 이상, 그는 다시금 경각심을 일깨우지 않을 수 없었다.

“6회 차에는 더 강해져 있길 바란다. 그래야 너와의 대결이 조금은 재미있어질 것이니 말이야.”

“가시는 것입니까?”

“이제 나도 수련을 해야 할 시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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