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93화 (293/345)

# 293

물론 그렇다고 한영이 말했던 것처럼 중국의 통일 왕조는 절대 아니었지만, 국력이 꽤나 강성한 나라로 알려졌다.

‘어쩐지, 5회 차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나라가 6회 차에는 그리 강해진다는 게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중국 정부 때문이었나.’

호영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한영에게 말했다.

“중국과 손잡으면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뭐요? 우리와 동맹을 맺을 수 있게 해 주겠다는데 지금 그딴 저급한 소리를 하는 것이오?”

“당연한 말을 했을 뿐입니다. 센추리에서 우리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나라가 중국인데, 동맹을 맺으려면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잊어 주겠소.”

“뭘 잊는다는 말씀이시죠?”

“당신이 제나라에게 했던 일이나, 삼국 동맹을 결성했던 일을 잊어 주겠다는 말이오.”

“······.”

“우리나라와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오? 적대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면 로열그룹이나 대한 제국에게 좋을 것이 없을 텐데.”

권위적인 목소리로 인심을 쓰는 듯, 말하고 있었지만 이건 숫제 협박과 다를 게 없었다.

관계를 다시 정립하지 않는다면 로열그룹이나 대한 제국에게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호영은 피식 웃었다.

정말 예상했던 그대로의 반응이었다. 천금을 주어 회유해도 모자랄 판국에 저열한 협박이나 하다니.

센추리에서도 그랬지만 중국이란 나라는 왜 이렇게 단순한 것일까? 이게 대국으로서의 오만일까?

“뭐가 그리 웃기시오?”

노한 기색의 한영을 보며 호영은 웃는 낯짝 그대로 말했다.

“웃기는 제안을 하고 계시니 웃을 수밖에요.”

“감히! 중국을 무시하는 것인가!”

삿대질을 하는 그에게 호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우리 대한 제국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군요. 그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제안이랍시고 하다니 말이야.”

“우리 중국을 이리 무시하고도 네놈이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의 외침에 호영의 경호원들과 측근들이 사나운 얼굴을 하였다.

호영을 위협하는 그의 태도에 분노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호영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신의 측근들을 진정시키고는 한영에게 말했다.

“무엇이든 해 봐. 대신 나도 가만있지 않을 것임은 알아 두고.”

“이, 이자가······!”

호영이 강경하게 반응할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인지, 한영은 당황한 얼굴로 눈을 끔뻑거렸다.

그런 한영을 보며 호영은 피식 웃고는 응접실을 나섰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타협하는 방안도 있었을 텐데······.”

집무실로 향하는 길에 허영만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중국과 대립하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여기서 타협하면 결국 중국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갈 뿐이야. 그러면 센추리에서의 대한 제국은 중국의 속국이 되고 말겠지.”

“그렇지만 중국이 가만있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내일부터 외교적인 압박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영만의 말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중국이라면, 아니 중국에서 권력 서열 7위라던 한영이라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 아니라 당장 오늘부터 한국을 상대로 압력을 행사한다고 해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호영은 중국이라는 거대 권력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견뎌 내야지. 로열그룹의 힘이라면 중국의 압박이든 정부의 압박이든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잖아?”

여전히 자신감을 잃지 않는 호영의 모습을 보며 허영만은 혀를 내둘렀다.

지금 상황을 보면 일개 개인이 국가를, 그것도 중국이라는 초강대국과 맞서 싸우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도 긴장하거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으니, 허영만으로서는 호영의 배포가 놀랍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센추리에서 S랭크가 되었기 때문일까? 왠지 담이 커진 것 같군.’

호영은 허영만의 눈빛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였다.

경지가 오른 이후, 자존감이 많이 오른 것 같다고 말이다.

물론 담이 커져서 만용을 부린 것은 절대 아니었다.

중국의 제안을 당당하게 거부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센추리가 시작된 이후로 한국의 위상이 상승했다는 점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를 하던, 나라였다.

군사력이든, 경제력이든 약소국이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중국이나 미국이 강하게 압박하면 그대로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위치였다.

하지만 센추리가 시작되고 대한 제국이 확장 일변도를 거듭하면서 한국의 위상은 많이 달라졌다.

고작해야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세계 인구 절반 가까이 즐기는 것이 센추리란 가상현실 게임이었다.

센추리를 즐기는 인구가 이리 많으니 센추리에서의 성공이 현실에서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센추리에서 한국은 일본 열도와 만주 대륙, 한반도를 점령함으로써 명실상부 ‘열강’ 대열에 합류하였다.

군사력으로 따지면 10위권, 아니 S랭크 고수를 무려 세 명이나 거느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세계 제일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에 따라 한국의 위상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중국의 외교적 압박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호영의 영향력이 낮았다면 정치권은 로열그룹을 포기하고 중국에게서 무언가를 얻어 내려고 했겠지만 지금의 호영은 대통령조차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한국은 중국과의 외교에서 결코 호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외교적인 압박이 통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최악의 수단을 강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허영만은 여전히 걱정의 끈을 놓지 못하였는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암살을 말하는 건가?”

“예. 중국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괜히 중국이 깡패라고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처럼 중국은 어쩌면 호영의 신변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현실에서 암살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방공호에서 살아야겠군.”

호영이 농담 따먹기 하듯, 웃는 얼굴로 말했다. 중국의 위협 정도는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회장님!”

“농담이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로열그룹과 우리 경호 회사인 로열 가드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어.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도 나를 저격할 수 없을 거라고 말이야.”

헛된 자신감은 아니었다.

적어도 한국에서라면 로열그룹과 로열 가드를 뚫고 호영을 제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로열그룹의 힘은 국정원이나 경찰 같은 정부기관에도 미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로열패밀리가 있잖아? 만약 내가 당한다면 로열패밀리가 대신 복수해 줄 것을 세상이 다 알고 있으니, 누구든 나를 함부로 저격하지 못할 거야.”

그 말에 허영만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물론 속으로는 ‘중국이라면 무슨 미친 짓을 할지도 모릅니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도 호영은 생각이 있었다.

‘주석이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

회귀 전의 중국은 왜 한반도를 집어삼키지 못했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올해 3월. 중화 인민공화국의 황제라 부르는 이가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절대자의 죽음으로 중국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이고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같은 혼란 속에서 한국이나 호영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 * *

6회 차가 시작되었다.

호영은 전심전력을 다해 튜토리얼에 임하였는데 다행히 5회 차 같은 변수는 발생하지 않았다.

튜토리얼에서 우승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황제로 시작할 수 있겠어. 다행이야.’

호영은 ‘왕의 권한’이란 스킬을 가진 아바타를 보고 안심하였다.

우승하는 것까진 문제가 없었지만 아바타를 선택할 때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황제의 나이가 80대가 넘는다거나, 대씨 일족에게 황위가 없다거나, 등등의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왕의 권한’을 가진 아바타는 나이도 적당하고 스킬이나 스텟 상태도 적당한 것이, 황제로서 부족함이 없는 인물인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지.’

워낙 변수가 많은 게임이라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얻어맞을지 모른다. 방심은 절대 금물이란 의미였다.

호영은 그래서 모든 게 확실해질 때까지 절대 방심하지 않기로 하였다.

일단 본 게임에 접속하고는 아바타의 위신, 제국의 영향력, 그리고 외국의 상황 등을 파악해 나갔다.

정보력의 수준이 예전과는 차원이 달랐기에 호영은 불과 하루 만에 6회 차에서 알아 둬야 될 주요 정보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주요 정보를 파악한 호영은 현실에서 로열패밀리의 간부들을 소집하였다. 6회 차 때 어떤 계획을 사용할지 회의하기 위함이었다.

“폐하께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내분 같은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구주나, 북해도 등의 외지도 안정적으로 통치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일본 해방 전선 같은 반제국주의 세력이 존재하지만 제국 통치에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회 차가 시작되면 가장 부담되는 것이 바로 반란이었다.

한국 같은 경우도 거의 매번 반란을 경험하였는데, 다행히 6회 차에서는 반란이 일어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황제의 권력이 절대적이고 제국의 지배력이 건재하며 정치는 대단히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NPC들의 봉기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는데, 호영의 새로운 아바타인 ‘대호’가 미리 준비를 해 놨었다.

제법 현명한 통치자였던 대호.

그는 유저들의 세상이 올 때를 대비하여 NPC들로 하여금 마음의 준비를 시켰는데 자신이 설령 유저의 아바타가 된다 해도 이전과 다름없이 복종하라는 명령을 남겼다.

그 덕분에 호영은 대호의 아바타가 되었으면서도 NPC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내부 상황은 그야말로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을 정도로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청나라와 명나라입니다.”

호영은 쓰게 웃었다.

안 좋은 예상은 항상 들어맞는다는 말이 정답이었던 것인지, 중국의 상황은 호영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강북은 청나라가, 강남은 명나라가 지배하는 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청나라야 이민족 왕조이니 그리 위협적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위협은 역시 명나라입니다.”

충구의 말에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였다.

신생 국가인 명나라는 비록 그 역사는 짧았지만, ‘열강’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강대국이었다.

오나라와 월나라를 흡수하고 초나라의 영토 절반을 빼앗았으며 대리국을 속국으로 삼은 명나라.

영토의 크기도 크기지만 그 막대한 인구와 생산력은 세계에서도 거의 최고 수준이라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명나라가 두려운 점은, 지배계급이 한족이라는 점이었다.

여진족이 지배하는 청나라와 한족이 지배하는 명나라.

두 나라의 국력은 겉으로만 봐서는 청나라가 압도하는 것 같았지만 전면전에 나선다면 오히려 명나라가 압도하게 될 것이다.

지배계급이 한족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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