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8
중국 정부의 사람이 호영에게 직접 찾아와서 어르고 달랜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중국 정부는 어떠한 도발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마치 한국이나 로열 그룹을 포기한 것처럼 말이다.
“워낙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그런 것이겠지. 아직도 주석을 정하지 못한 채 권력 다툼을 하고 있잖아?”
윤원목의 의심을 듣고 호영은 태연하게 대꾸하였다.
그로선 중국 정부의 반응을 수상하게 여길 이유가 없었다. 호영이 생각하기에 중국 정부는 지금 외국의 일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석이 죽은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난 시점.
이전 같았으면 이미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하여 내부 혼란을 수습하고 있어야 할 시기였다. 물론 평범한 나라였다면 부통령이나 총리가 혼란을 수습하였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중국의 정치는 후진적이라서, 제도적인 지도자 선출 방식이 존재하나 그보다는 관행이 우선시되었다.
즉, 투표나 명확한 법률 규정으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만의 복잡한 관행으로 지도자를 선출한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전 주석이었던, 5세대 지도자까지는 후진적인 정치 제도를 가진 나라치고, 권력 승계가 대단히 안정적이었다.
지도자의 후계자를 미리 정해 두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원로라 불리는 자들이 권력 승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주석의 후계자가 죽은 상태에다, 막후에서 공산당을 지도하던 원로들까지 권력을 잃은 상황이었다.
6세대 지도자를 선출할 제도적인 장치도, 막후의 실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렇다 보니, 권력 서열이 10위 안에 있는 자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6세대 지도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불태웠다.
무려 15억을 다스리는 지배자가 되는 것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히 실력자들의 권력 다툼으로 중국 정계는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외국과의 분쟁에서도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중국 정부가 호영에게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명나라가 빈사 상태에 빠졌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국 정부가 과연 명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겠습니까?”
윤원목의 말대로 지금 명나라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무려 100만에 달하는 병력이 소속되어 있는 중군도독부의 도독, 왕전이 죽은 이후 중군도독부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호영은 중군도독부의 혼란을 놓치지 않고 강행군을 펼쳐 각개격파를 하였는데, 100만에 달하는 중군도독부가 무너지는 것도 순식간의 일이었다.
중군도독부가 무너지니 나머지 도독부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호영은 다시 속도를 높여 남하를 거듭하였고 얼마 전에는 명나라의 수도가 있는 절강성에 다다를 수 있었다.
참고로 명나라의 우군도독부 역시 추가로 파병된 한국군에 의해 와해되기 직전 상태에 이르렀다.
해안가에 배치되어 있던 우군도독부가 상륙하는 한국군을 막지 못하고 붕괴된 것이다.
벌써 두 개의 도독부가 무너지고 이제 세 개의 도독부밖에 남지 않은 상태가 되니 명나라는 그야말로 멸망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만약에 수도가 빼앗기고 황제가 포로로 붙잡힌다면 그대로 나라가 무너졌을 터.
그래도 생각이 없지는 않은지, 황제가 파천하여 복건성을 넘어 남쪽 끝인 광동성으로까지 이동하였지만, 위기는 여전했다.
이제 유저들은 물론이요, NPC들까지 명나라의 멸망을 기정사실로 두고 있었다.
“물론 가만히 지켜보지만은 않겠지. 하지만 중국 정부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아?”
호영도 중국 정부가 집요하게 나설 것을 경계하고 있기는 하나, 불안감을 가지지는 않았다.
내부 권력 다툼에 정신이 쏠린 중국 정부가 지금에 와서 로열 그룹이나 호영에게 어찌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도 왠지 중국 정부의 낌새가 수상······.”
끼이익! 쾅!
그때였다.
갑자기 호영이 탑승한 차량이 급정거를 하며 앞차를 들이박았다.
“뭐 하는 것이야! 회장님께서 타고 계시거늘!”
윤원목이 운전기사 겸, 경호를 맡고 있는 자신의 부하에게 성을 내자 그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사고가 났습니다.”
“사고?”
“예. 회장님의 경호 차량이 아무래도 트럭에 치인 것 같습니다.”
호영의 경호는 무척이나 삼엄하였다.
마치 대통령이 이동할 때처럼 경호 차량을 몇 대나 대동할 정도였는데, 호영과 원목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경호 차량 중에 한 대가 트럭에 치이는 큰 사고가 났다.
무슨 이유로 사고가 난 것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트럭에 제대로 치였는지, 경호 차량은 거의 폐차되다시피 한 것 같았다.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심상치 않은 사고를 보며 호영이 원목에게 말했다.
경호 차량에 탑승한 인원은 전부 로열 가드 소속의 경호원들이었다.
즉, 호영의 수하나 다를 게 없는 인원들이 탑승해 있다는 말이었다.
호영으로선 자신의 수하들이 끔찍한 사고를 당했으니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기에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원목은 고개를 내젓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그의 휴대폰 화면에는 CCTV로 보이는 영상이 틀어져 있었는데, 호영이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왜냐하면 정면의 경호 차량과 추돌한 트럭에서 의문의 사내들이 권총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손에 쥐고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차 돌려라.”
“예?”
“차 돌리라고!”
원목은 마침내 어떤 상황인지를 깨달았는지 운전기사에게 유턴을 지시하였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 건가?”
차가 유턴하여 사고 지역과 어느 정도 벌어지자, 호영이 낮은 목소리로 원목에게 물었다.
그러자 원목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 중국 놈들이 미친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나를 암살하려 들 줄이야.”
“주석이 죽은 이후 더욱 정신이 나간 것 같습니다.”
호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 정부가 이렇게 대놓고 호영을 죽이려 하였으니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가 고민스러웠다.
이 정도면 한국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인데 말이다.
‘진짜 전쟁이라도 해야 하나?’
센추리가 아닌 현실에서 전쟁이라니. 그가 제아무리 전쟁의 달인이라지만 현실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 부담스러운 수준을 넘어 역부족이랄까?
애초에 군대를 소유하지 않은 그로선 전쟁에 관여할 수조차 없겠지만 말이다.
“회장님! 뒤에도 막혔습니다!”
호영이 전쟁을 생각하며 눈가를 찌푸릴 때, 운전기사가 다시금 차를 멈춰 세웠다.
이번에도 트럭 한 대가 도로를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작정하고 노리는 것 같습니다.”
“로열 가드는 언제쯤 도착하지?”
“5분 안에 도착할 것입니다.”
“5분이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무공도, 총도 없다는 게 문제였다.
과연 중국의 특수부대로 보이는 이들의 습격을 총도 없이 막아 낼 수 있을까?
‘어쩌면 오늘이 내 제삿날이 될 수도 있겠군.’
호영은 겉으로는 침착한 얼굴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오늘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중국 정부가 이렇게까지 나왔다는 것은 호영을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이겠다는 굳은 의지였기 때문이다.
탕! 탕!
창문 밖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소음기를 썼는지 소리는 의외로 작았지만 총탄이 호영의 차량을 향한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절대 나가지 마십시오. 권총쯤은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점점 근접해서 사격을 해 왔지만 원목의 말대로 호영이 탑승한 방탄 차량은 권총 총격 정도는 버텨 낼 수 있었다.
물론 러시아 마피아들이 주로 사용한다는 장갑차 비슷한 형태의 방탄 대형차처럼 폭탄까지 막아 내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한국에서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였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권총만 동원한 것이 아니었다.
호영의 차량이 방탄 차량인 것을 예상하였는지 폭탄으로 보이는 시커먼 물체까지 동원하였다.
쾅! 쾅!
예상했던 대로 중국인들이 손에 쥐고 있던 것은 폭탄이 맞았다.
어떤 방식의 폭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수류탄처럼 호영의 차량을 향해 던져서 폭발을 일으켰다.
“회장님!”
“윽.”
운전기사가 다급하게 후진하였지만 폭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순식간에 차량이 전복되었고 호영은 뒤집혀진 차량에서 신음을 흘렸다.
“괜찮으십니까?”
“죽지는 않았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찰과상을 입었는지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물론 폭탄에 당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살아난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중국인들은 확실한 처리를 원했는지 재차 트럭을 동원하였다.
전복되어 있는 호영의 차량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한 것이다.
‘이렇게 죽는 것인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트럭을 보고 호영은 죽음을 직감하였다.
차가 아무리 방탄 차량이고 그의 운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저렇게 맹렬히 돌진하는 트럭과 치인다면 죽을 수밖에 없으리라.
“어?”
죽음을 기다리던 호영은 총탄을 맞으며 달려오는 로열 가드 소속의 경호 차량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마치 기사 돌격을 하는 것처럼 그의 경호 차량이 트럭을 향해 마주 돌진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트럭과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트럭과 정면충돌한다면 경호 차량은 물론이요, 차에 탑승해 있는 모든 이들이 죽게 될 터였다.
‘설마 나를 구하기 위해?’
호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센추리에서야 자신을 향한 충성이 당연하게 느꼈지만 이곳은 현실이었다.
현실에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가 목숨을 희생하다니. 감동적이면서도 왠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회장님. 부탁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자들에게 꼭 좀, 복수를 해 주십시오.”
원목이 격앙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역시도 호영처럼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물론이다. 설령 상대가 중국 정부라 해도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트럭과 경호 차량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며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록 지금은 이렇게 전복된 차량에서 무기력하게 경호원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이곳에서 살아남기만 한다면, 절대 용서치 않으리라.
상대가 개인이든, 중국이란 나라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복을 할 것이다.
* * *
호영은 검은 양복을 입고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로열 가드 소속 경호원들의 장례식이었다.
다행히도 호영을 향한 중국의 테러는 실패로 끝이 났다.
로열 가드의 지원과 경찰의 등장으로 테러를 일으켰던 중국인들은 트럭을 탄 채 도주하였고 호영은 전복된 차량에서 무사히 구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