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
“그렇사옵니다, 폐하.”
쏜살같이 흘러간 시간이지만, 호영은 결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청나라에게 100년에 가까운 세월의 지배를 받았던 강북을 6회 차가 끝나기 전에 완전히 한국의 영토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가 통치한 강북은 봉건제로 인해 20%가 제후들의 영지로 찢어진 강북이었지만 그래도 그 업적은 결코 낮게 평가할 수준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호영의 업적은 강북과 위구르, 몽골에 국한되지 않았다.
아시아, 아니 어쩌면 세계 전체라고 할 수 있는 규모의 영역에 영향력을 확장시켰다.
이제 센추리를 즐기는 세계의 유저들은 어느 나라가 가장 강성한 나라인지를 확실하게 알았다.
대한 제국!
현실의 미국이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라면 센추리에서는 대한 제국이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란 사실을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은 것이다.
심지어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아예 한국의 속국을 자처하였다.
마치 고대 중국에게 그랬듯, 한국을 동아시아의 패자로 인정한 셈이었다.
“태평양으로 보낸 함대는 지금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동아시아를 한국의 영향권 아래로 둔 호영은 더욱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더 넓은 세계로 진출하고자 한 것이다.
강남, 인도, 중앙아시아, 러시아, 태평양 등등.
여러 선택지 중에 호영이 선택한 것은 바로 북미 진출의 발판지가 되어 줄 태평양이었다.
참고로 지금의 태평양은 누구의 땅이라고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이 세계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북미와 남미의 여력 있는 국가들이 금과 은 그 외의 각종 특산물을 싣고 한국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는데 태평양의 섬들은 중계무역을 하는 중립 국가로 성장하였다.
물론 중립 국가라고 해 봐야 군사력이 5만도 안 되는 약소국들로, 호영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점령할 수 있는 나라들이었다.
그리고 호영은 태평양의 가치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력이 생기자 곧바로 대규모 함대를 출전시켰다.
태평양을 집어삼키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현재 세 개로 나뉜 함대 중에, 남태평양을 담당하는 두 개의 함대가 북마리아나 제도를 순차적으로 점령해 가고 있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 같은 국가들과는 충돌이 없었나?”
“예. 아직 두 나라는 자잘한 섬을 관리할 여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파푸아뉴기니도 마찬가지라서 남태평양에서는 아국을 방해할 나라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북태평양이 문제겠어.”
“그렇습니다. 일단 하와이 제도까지의 거리가 거리인 만큼 이동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함선이 꾸준히 발전하였고 태평양은 이름의 어원부터 그러하듯 ‘고요하고 평화로운’ 바다였다.
서양에서 주로 쓰이는 갤리온이나 전열함보다는 못하지만 한국의 함선으로도 대양을 건너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원체 대규모 함대고 거리가 거리다 보니 이동이 쉽지만은 않았다.
규모가 커지면 고려해야 될 사항이 많아지는 법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의 간섭입니다.”
“미국이라······.”
호영은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중국이란 공공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미국과 일종의 동맹 관계를 맺었던 호영이다.
미국의 지원으로 한영을 죽일 수 있었고 중국을 내전이라는 어둡고 깊은 수렁 속에 빠뜨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미국과의 동맹에서 이득을 봤으면 이득을 봤지, 손해를 본 일은 없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의 간섭과 요구는 늘어만 갔다.
현실에서는 로열 그룹의 힘을 빌리는가 하며, 이제 센추리에서까지 대한 제국에게 간섭하려 들고 있었다.
‘점점 안하무인해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중국이 없어졌기 때문인가.’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 미국과 동맹한 것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호영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요즘 들어 미국의 간섭이 지나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쯧.”
호영은 혀를 차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짐은 현실에서는 몰라도 센추리에서만큼은 절대 미국의 간섭을 받지 아니할 거다. 그러니, 미국의 요구는 무시하도록.”
“하오면 7회 차에는 예정대로 북미에 진출하실 것이옵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가 북미에 진출해야지만 미국의 과도한 간섭을 막아 낼 수 있을 거니까.”
센추리에서 미국 같은, 세계 전체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초강대국이 된다면 미국도 더 이상 호영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센추리의 인기는 더해갔고 인기가 많아질수록 세계 경제의 ‘쏠림 현상’이 더욱 가속될 것이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 동안에는 북미에 진출할 방법을 최대한 강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미 백년대계는 오래전에 완성했기 때문에 더 이상 회의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회의가 끝나자 호영은 오랜만에 황궁 나들이에 나섰다.
한때 순나라의 황궁이었고 이제는 대한 제국의 황궁이 된 자금성.
현리의 황궁과는 다르게 크기부터가 웅장하였다.
순나라는 기껏해 봐야 강북의 삼강 중 하나였을 뿐인데 사치는 엄청 부렸던 것 같았다.
뭐, 그게 중국이란 나라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제 천하제일의 대국이 되었으니 황궁이 큰 것은 나쁘게 볼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현리의 황궁은 제국의 황궁으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으니까.
물론 유저들 같은 경우는 자금성이란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느니, 중국의 황궁을 굳이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다느니 말들이 많기는 했다.
호영이야 그런 것을 크게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라서 오직 효율성과 행정 편의를 위해 자금성을 황궁으로 사용하였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북경의 시민들이 우리를 어찌 생각할지가 의문이군.’
갑작스럽게 바뀌어 버린 지배자.
북경의 한족들은 과연 한국의 지배에 순응하고 있을지, 아니면 불응하고 있을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호영은 호기심이 생기자 곧바로 자신의 최측근인 원재와 함께 암행에 나섰다.
“수도도 많이 바뀌었구나.”
“아무래도 한국에서 넘어온 인구가 많고 제국의 수도가 되었기에 유동 인구도 많아졌습니다.”
대한 제국이 청나라에게서 강북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나라가 바뀌고 수도가 바뀌었는데 변화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인구였다.
30만에 불과했던 북경의 인구는 2년이 지난 오늘, 거의 80만에 육박했다.
그리고 이 인구는 지금도 한창 성장 중이라 100년이 지나면 백만이 넘는 인구가 될 수도 있었다.
다른 변화가 또 있다면, ‘역동성’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때 순나라의 수도였으나 청나라의 발호로 몰락한 도시가 되어 버린 북경.
하지만 한국이 다시 북경을 수도로 두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활발하고 역동적인 도시로 변하였다.
지금 호영이 걷고 있는 북경의 거리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유동 인구가 늘어나기는 했어.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아졌고.”
“이제 10년만 지나도 북경은 제국의 수도로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면모를 보여 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경 민심은 어떠한가? 한국에서 넘어온 한국인들 말고, 본래 이곳에서 살아가던 시민들의 민심 말이야.”
늘어난 인구나 역동성 같은 경우는 이미 호영도 보고를 통해 알고 있던 바였다.
워커홀릭인 호영이 수도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할 리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민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시민들의 마음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물론 내무부에서는 민심 상태가 양호하다고 보고하였지만 그거야 확인하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었다.
“소신을 따라오십시오. 북경 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것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민심이 어떠냐는 호영의 질문에 원재가 그렇게 말하며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호영은 원재의 뒤를 따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곳곳에서 건설 붐이 일어나고 있었고 백인이나 동남아 계열의 외국인도 많이 보였다.
이 도시의 주인이자 제국의 황제인 호영으로선 실로 뿌듯하게 느껴지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북경뿐만이 아니라, 강북의 주요 도시들도 전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했지? 그렇다고 기존의 도시들이 몰락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전쟁이 멈추고 뛰어난 지도자가 등장하니 나라 전체가 발전을 거듭하였다. 특히나 강북의 발전이 놀라웠다.
본래 강북의 한족들은 이민족 왕조에게 충성하지 아니하여 틈만 나면 치안을 어지럽히거나 세금을 내지 않으려 해서 발전은커녕 퇴보를 하고는 하는데, 대한 제국의 통치에는 의외로 순응하였다.
뭐, 그게 겉으로 순응하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속 깊이 순응하는 것인지 몰라 이렇게 암행에 나온 것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점점 변두리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북경의 한족들은 도시 외각에서 주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외각에서? 그들이 본래 북경의 주인이었는데 말이냐?”
호영은 인상을 찡그렸다.
대한 제국이 점령자로서 북경에 들어왔으니 기존 북경 시민들에 대한 차별이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만 호영은 기존 북경 시민들을 대할 때 최대한 관대히 대하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바 있었다.
앞으로 북경은 대한 제국의 영원한 수도가 될 도시였다.
기존 북경의 한족을 차별하거나 학살하여 영원한 수도의 역사에 오명을 남길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한족들은 크게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외각으로 쫓겨났는데 불만이 없을 리가.”
“저들을 보십시오.”
다시금 인상을 찌푸리려던 호영에게 원재가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남녀노소가 의자에 앉은 채, 무언가를 열심히 필기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들이 필기하는 것은 한글이었다.
한국의 근간을 이루는 것 중 하나인 한글을 이렇게 열심히 필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외각으로 쫓겨났지만 북경의 한족들은 한국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면 바로 한국인이 될 수 있죠.”
“저들이 하는 것이 그럼 한글 공부라는 말이냐?”
“예. 어린아이들부터, 노인과 여성들까지 전부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주 열성적으로 말입니다.”
“······.”
“황제 폐하, 북경 민심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몰락해 가는 도시에서 굶주리고 살아가던 북경 시민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치안도 어지러워 온갖 범죄가 기승을 부렸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누구 하나 굶주리지 않고 치안도 잘되어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저들은 한국의 지배계급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한국의 통치에 불만을 가질 북경 시민은 별로 없을 겁니다.”
공부하는 기세만 봐도 교육열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족이었던 북경 시민들은 저렇게 필사적으로 자신의 민족을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잘하고 있기는 한가 보구나.’
호영은 그제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렇게 직접 확인을 해 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