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319화 (319/345)

# 319

그러나 대한 제국이라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대한 제국은 지금 세계의 금과 은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에 군사적으로도 세계 제일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였다.

인구와 경제, 그리고 군사력과 영토 크기, 심지어 무공 같은 경우는 독보적인 세계 최고였다.

여기에 마법사의 숫자도 가장 많았다.

현대 미국의 위상 정도는 아니지만 센추리에서 대한 제국은 분명 세계 제일 초강대국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었으니 유럽 열강들이 대한 제국과 쉽게 손잡으려 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경계심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 좋은 기회를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북미 진출은 청나라에게 맡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뭐?”

원재의 말에 호영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 좋은 기회를 청나라에게 내주자는 말이 그로서는 황당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청나라가 유럽 열강과 손잡고 북미에 진출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라는 말이냐?”

“만약 관산을 신뢰할 수만 있다면 청나라가 북미에 자리를 잡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이롭지 않겠습니까? 관산이 우리 편이라면 북미에 진출한 청나라도 결국 우리의 위성국가나 다를 게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북미에 위성국가라?

제법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대한 제국이 북미를 진출할 때 소모될 국력을 생각하면 청나라를 대신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청나라의 국력이 너무 강성해질 텐데? 강남에다 북미 서부까지 갖게 되는 셈이잖아.”

이미 중국의 절반에 가까운 영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청나라였다.

인구만 따져도 2억이 넘었는데, 여기서 북미 서부까지 가지게 된다면 제아무리 관산이 호영을 따른다고 해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황제라고 언제나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의 청나라만 봐도 그랬다.

황제가 자신의 궁에서 반군들에게 암살을 당하였다.

그리고 나라는 언제 반군들에게 빼앗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말이다.

만약 청나라가 북미까지 진출했다가 중국인 또는 미국인에게 통제력을 빼앗긴다면 대한 제국으로선 쓸데없이 강적을 만든 셈이 된다.

그것도 무려 두 대륙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적을.

“무엇보다 관산을 100% 믿을 수는 없어.”

충복처럼 행동하던 관산이지만, 출신은 중국의 소수민족인 만주족에, 호영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인물이었다.

호영을 존경하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었지만 존경심 하나로 관산을 100% 신뢰하기에는 호영이 경험한 일이 너무 많았다.

작년에만 배신자를 적지 않게 보았던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배신을 경험한 적이 적지 않았고 말이다.

아무튼, 관산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미 서부라는 광활한 영토를 청나라에게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회장님, 청나라가 강남과 북미 서부를 동시에 가지는 것이 걱정이라면 우리 대한 제국이 강남을 차지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강남을 갖자고?”

“예. 관산이란 자의 충성심이 진짜라면 강남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6회 차에도 강남까지 주겠다는 발언을 하였으니 말입니다.”

호영은 눈을 빛냈다.

원재의 말처럼 6회 차 당시 관산은 강북뿐만이 아니라 강남까지 대한 제국에게 할양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쉽게도 그 당시의 대한 제국은 강북과 위구르, 몽골 초원을 안정시키는 것도 버거울 때라 강남까지 욕심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7회 차인 지금은 다르다.

민족 청소의 영향으로 강북에 거주하는 한족 인구는 1억 이하로 줄어들었고 그마저도 대부분이 봉건제가 실시되는 제후들의 영토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제는 한족을 통치한 것도 만주의 한족까지 포함하면 200년이 넘었기에 경험의 축적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청나라의 통치에 길들여진 강남쯤이야 어렵지 않게 통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확실히 강남은 우리가 갖고 청나라가 북미의 서부를 갖는다면 대한 제국으로선 손해 볼 게 없겠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벽한 계획이었다.

대한 제국은 공짜로 중국 전체를 갖게 되고, 미국 정부를 방해할 수 있으며, 유럽 열강들의 탐욕을 아시아에서 북미로 유도할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관산이 나의 뜻에 따라 준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겠지만.’

아직 청나라가 어떻게 움직일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관산이 그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단 관산에게 전화를 걸어야겠어.”

“강남을 달라고 하실 겁니까?”

“그래야지.”

“만약 요구를 받아 준다면, 청나라는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것입니다. 만주를 주고 강북을 줬으며 앞으로 강남을 주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호영은 피식 웃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비록 전쟁을 치른 적이 있기도 하였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면 청나라는 한국에게 있어 이롭기만 한 나라였으니 말이다.

‘이러면 내가 너무 나쁜 놈인 것 같은데? 강남을 달라는 것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게 모든 것을 바치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 말이야.’

아무튼 관산에게 역제안을 하기로 결정한 호영은 곧장 전화를 걸었다.

결정을 내린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회장님께서 원하신다면 청나라의 국력을 쏟아부어 지금 당장이라도 북미에 진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행히도 관산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역할에 충실하였다.

염치없는 호영의 요구에 망설임 없이 그러겠노라 대답한 것이다.

‘정말 나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마음먹은 것 같군.’

성사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였는데, 아무래도 관산의 호영에 대한 충성심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았다.

어쩌면 관산의 충성심은 로열패밀리의 멤버들이 보내는 충성심보다 훨씬 두텁고 확고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속으로 나중에 기회가 되면 관산을 로열패밀리로 받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호영이 관산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진출할 필요는 없다. 원정군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릴 것이니 말이야. 그리고 공개적으로는 아니지만, 대한 제국이 뒤에서 지원해 줄 계획도 가지고 있다. 물론 네가 원치 않는다면…….”

-대한 제국의 지원이 아무래도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재 반군들 때문에 원정을 보낼 상황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아예 우리가 군을 파병하여 반군을 대신 진압해 주는 것이 어떨까?”

-예?

“6회 차에 몽골족의 반란을 대신 진압해 주었던 것처럼 이번 회 차에도 똑같이 하면 되잖아? 애초에 반청복명을 주장하는 자들은 대한 제국의 적이기도 하고 말이야.”

호영은 관산에게 대놓고 청나라 내분에 관여하겠다는 뜻을 전하였다.

어차피 강남을 할양받을 것이니 문제 될 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저야 고마운 일이지만, 회장님을 너무 고생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반군을 진압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강남을 공짜로 먹는 입장에서 그 정도야 고생의 축에도 끼지 않는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반란군을 진압하는 것만으로 강남을 얻는다면 이보다 수지타산이 남는 장사가 또 없었다.

반란군이라고 해 봐야 200만의 군사력을 가진 청나라보다는 훨씬 약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송호영 회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센추리에 접속하는 즉시, 대한 제국에게 정식으로 파병을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대답을 듣자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며 쾌재를 불렀다.

센추리에서 관산의 신분은 청나라 황자였다.

그리고 현재 청나라는 황제도 정하지 못하고 국론이 분열된 상황이었다.

이때 청나라 황자인 관산이 정식으로 대한 제국에게 지원을 요청한다면 대한 제국은 확실한 명분을 가지고 청나라의 내정에 간섭할 수가 있었다.

물론 내정에 간섭하는 과정에서 관산을 황제로 만들 필요가 있겠지만,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극도로 단련된 한국의 군대에게, 황제의 죽음과 반청복명 운동으로 혼란에 빠진 청나라 군부를 장악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던 것이다.

“고맙다, 나의 뜻에 따라 줘서.”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송호영 회장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쁠 따름입니다. 혹시라도 더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이 정도쯤 되니 호영도 관산의 정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 역시 나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라. 이제 너도 로열패밀리의 일원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저, 정말입니까?

“너 혼자서 나에게 중국 전체를 안겨 주었다고 볼 수 있는데 로열패밀리의 멤버가 되는 것쯤이야 당연한 일이지.”

로열패밀리가 현재 로열 그룹과 대한 제국, 대한 길드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너 서클이 되었지만 관산의 공이라면 로열패밀리 멤버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호영의 말처럼 대한 제국이 중국을 차지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은 바로 관산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한 말로 겨우 멤버가 되는 것으로 보상이 끝이라면 내가 나쁜 놈이겠지.’

제아무리 관산이 외국인이라지만 이 정도의 공을 세웠는데 보상을 시시한 걸로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신상필벌은 대한 제국뿐만이 아니라, 로열 그룹 내부에서도 통용되는 절대적인 법칙이었으니 말이다.

7인회와 한 번쯤 상의를 해 봐야 할 일이겠지만 일반 멤버가 아니라 로열패밀리의 간부 자리 정도는 줘야 할 것 같았다.

로열패밀리 간부 자리는 로열 그룹에서만 연봉으로 200억 이상을 받고 실질적인 권력도 엄청나니 관산의 공을 포상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는 관산의 목소리를 들으며 호영은 흐뭇하게 웃었다.

* * *

빨간색 두건을 찬 거구의 사내가 눈앞에 보이는 성을 가리키며 외쳤다.

“모두 돌격해라!”

우와아아아아!

그러자 마찬가지로 빨간색 두건을 차고 있는 장정들이 창과 검을 들고 성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꽤나 기세가 좋아 보였는데, 그들이 바로 청나라에서 ‘홍건적’이라 불리는 반란군들이었다.

“이렇게 3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 장군 덕분에 건업을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성전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성벽 주변과 다르게 지휘부는 평화롭고 훈훈한 분위기가 가득하였다.

지휘부에는 총 다섯 명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이번 ‘건업 점령전’을 담당할 중화의 영웅들이었다.

“하하, 아닙니다. 홍건군은 반청복명의 기치를 내건 중화의 군대인데 어찌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홍건군의 주 활동 영역에서 한참을 벗어나 원정을 오지 않았습니까? 평 장군의 대의는 실로 존경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맞습니다. 평 장군이야말로 중화의 영웅입니다!”

관 선생이라 불리는 천지회의 인물과 모귀라 불리는 태평천국의 인물이 연신 평 장군이라는 자를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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