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320화 (320/345)

# 320

참고로 평 장군은 빨간색 두건을 차고 있는 거구의 사내로, 무려 3만이란 군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흐흐흐! 내가 이런 대접을 받다니! 농민공의 아들이었던 나 따위가!’

평 장군, 아니 평옥은 입이 귀에 걸릴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현실에서는 농민의 아들에 불과한 평옥이 이곳 센추리에서는 홍건군을 이끄는 장군이었다.

당당한 중화의 영웅이 된 셈이니, 그야말로 신분을 몇 계단이나 상승한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어.’

그가 한 일이라고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불러 모아 탐관오리를 가장 먼저 죽인 것뿐이었다.

현실에서도 농민공의 아들인데 센추리에서도 빈농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들어 아무런 계획도 없이 탐관오리를 죽인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원래라면 관리를 죽였다는 이유로 가혹한 형벌을 받거나 그대로 죽임을 당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비밀결사들의 손에 청 황제가 죽고 전국적인 반청복명 운동이 일어나면서 평옥의 상황은 극적으로 전개되었다.

수천 단위의 농민들이 갑자기 그를 중심으로 집결하더니 그를 붙잡아야 할 청나라 병사들은 도리어 투항을 하거나 도주를 해 버렸다.

빈농 출신인 그가 한순간에 신분이 급상승하게 된 것이다.

‘만약 강북에 있는 한족이 아바타가 되었다면 답이 없었을 거야.’

어떻게 보면 가장 큰 행운은 아바타의 거주지가 강북이 아니라 강남이라는 점이었다.

현재 강북은 사회체제가 극도로 안정되어 있었다.

중국 유저들이 대거 유입되었는데도 그러하였는데, 그만큼 대한 제국의 지배력과 통치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만약에 평옥이 강북에서 플레이해야 했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관리를 죽이는 것?

강남에서야 가족들이건 친구들이건 전부 잃을 게 없는 인생들이라 평옥의 미친 짓에 동참한 것이지만, 강북에서 그랬다가는 오히려 가족들에게 맞아 죽었을 것이다.

결국 평옥은 4년이란 시간 내내 소작농으로서만 살아가며 업적 점수는 고작 몇 포인트 얻는 게 끝이지 않았을까?

이렇듯, 똑같은 한족이어도 대한 제국에게 지배받는 한족과 청나라에게 지배받는 한족은 여러모로 달랐다.

“고작해야 이류 무인밖에 안 되는 자가 3만의 잡병을 끌고 왔다고 유세 떠는 모습이 퍽이나 우습게 보이는군.”

“뭐요?”

훈훈하던 분위기는 한 사내의 말에 급격히 가라앉았다.

평옥에게 도발적인 언행을 한 사내는 평옥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거구였는데, 생긴 것이 마치 산적 같았다.

이마에 쓰고 있는 누런 두건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였다.

“지금 나에게 시비 거는 것이오?”

“시비가 아니라 알아서 짜져 있으라는 말이다. 네깟 놈이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 기분이 더러우니 말이야.”

“……이자가 정녕!”

쾅!

분함을 참지 못한 평옥이 팔걸이에 주먹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국지 시대는 이미 옛적에 지났는데 노란 두건이나 쓰고 있는 황건적 따위가 감히!’

그가 누런 두건의 사내, 하만에게 다가가려 할 때 천지회의 관 선생이라는 이가 말을 열었다.

“자 자, 진정하시지요. 아군끼리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평옥은 관 선생의 말에 발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연신 그를 치켜세워 주던 관 선생이지만, 사실 두 사람의 세력 차이는 월등하였다.

홍건군이야 강소성과 안휘서 일부에 한해서 세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관 선생의 천지회는 그야말로 전국구 세력이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천지회는 반청복명의 주동자 격이라 할 수 있었고 청 황제를 암살을 계획한 것도 천지회였으니 청나라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천지회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흥!”

하만도 관 선생이 나선 상황에서 더 이상 도발을 할 수는 없었는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관 선생, 한국이 진짜로 청나라에 군사를 파병할까요?”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을 때, 태평천국의 모귀가 관 선생에게 물었다.

관 선생은 모귀의 물음에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하였다.

“대한 제국에서 군사를 집결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분명 머지않아 남진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곳, 건업을 점령하기 위해 온 것이고 말입니다.”

그들이 건업을 공격하는 이유는 건업의 위치가 대한 제국의 남진을 막아 내기에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허허. 정말 믿기지가 않는군요. 황자들의 권력 암투가 북쪽의 호랑이까지 끌어들이는 계기가 될 줄이야.”

“저 역시 황자 혁흔이 그런 만행을 저지를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천지회도 사실 대한 제국의 파병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야말로 기절초풍하듯 경악을 하였다.

아무리 황태자와 비교했을 때 세력이 턱없이 밀린다고는 하나, 외세를 불러오는 선택을 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특히 천지회 같은 경우는 황자 혁흔과의 한시적인 동맹도 고민하고 있었던 만큼 더욱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반청복명 운동의 여파로 세력이 크게 늘어나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상태였다.

물론 그 세력이 전부 천지회의 세력인 것은 아니었고 또한 대한 제국과 전면전은 여전히 무리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건업을 우리 중화 동맹이 점령한다면 잠시 동안은 대한 제국의 남진을 막아 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그 이후가 문제겠지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중화 동맹의 세력은 더욱 커지지 않겠습니까? 강북에도 중화 동맹이 태동하고 있으니, 장기전으로 가면 우리 중화 동맹이 이길 것입니다.”

관 선생의 말에 모귀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기.”

그때였다.

팔짱을 끼며 침묵을 지키던 천마신교의 사내가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관 선생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사내, 진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기가 느껴진다.”

“살기라고요?”

“고수다. 어쩌면 나보다 강한 고수.”

“……헉!”

진천의 말에 좌중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무공을 익히지 못한 관 선생과 이류 무인인 평옥을 제외하면 전부 절정 이상의 무공을 가진 고수들이었는데 셋 중에서 진천이 가장 강했다.

진천은 무려 초절정의 초고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진천이 자신보다 강한 고수가 나타났다고 말하니 좌중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절정의 무인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변방에 화경급의 고수가 나타났다는 의미였으니 경악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똑똑, 계십니까?”

갑자기 뒤에서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기척도 없이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난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나는 황보 세가의 황보균이라고 합니다.”

“황보 세가?”

“황보균이라고?”

“그게 누구야!”

제나라가 멸망하면서 황보 세가도 이미 몰락한 상태였다.

물론 관 선생 같은 경우는 황보 세가가 어떤 세가였는지 기억하고 있었지만, 왜 여기에 황보 세가의 사람이 있는지 연관성을 찾아내지는 못하였다.

오직 한 명.

천마신교의 진천만이 무언가 아는 얼굴로 질문을 던질 따름이었다.

“제나라 오대 세가였던 황보 세가에서 대한 제국의 황제를 따르는 고수가 있었다는데, 혹 그대가 그 고수인가?”

“호오. 오래전에 멸망한 제나라 시절의 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바로 그 고수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와 같은 초절정의 고수였다고 들었는데.”

“정말 자세히 아시는군요. 얼마 전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뭐, 그 이유로 이렇게 머나먼 강남까지 억지로 끌려오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억지로 끌려왔다고, 그대 같은 화경 고수가?”

줄곧 무표정하였던 진천이 처음으로 황당한 얼굴을 하였다.

그로선 S랭크의 무인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너무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화경이란 경지는 황제의 권력조차 무시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황제 폐하께서도 화경 고수이시거든요.”

“……그렇군.”

순간 말문을 잃은 진천이 나직하게 탄식하였다.

대한 제국의 국력을 새삼스레 실감하게 된 것이다.

한편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머지 네 사람은 긴장된 얼굴로 무기를 든 채 합격할 준비를 하였다.

진천에게서 상대의 경지가 S랭크라는 사실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죽어 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관 선생의 경우 지원을 부르기 위해 로그아웃을 하였다.

지휘부 주변을 지키던 병사들이 너무 조용하자 다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현실에서 지원군을 부르려 는 것이다.

“이제 슬슬 싸워 볼까요? 너무 시간을 끈 것 같은데.”

황보균이 한 발자국 움직이자 진천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뒤로 물러났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좁은 천막에서 도망칠 곳은 없었다.

결국 성격이 급한 하만이 참지 못하고 황보균에게 달려들었다.

어차피 도망칠 곳도 없으니 일단 싸워 보자는 판단이었다.

“컥.”

하지만 실력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겨우 1초도 버티지 못하고 목이 베인 채 죽음을 맞이한 하만이었다.

하기야, 절정의 실력으로는 가짜 검강조차 막아 내기가 쉽지 않으니 진짜 검강을 사용하는 화경급의 고수에게 당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용맹하게 달려들었던 하만과 달리 모귀는 욕설을 내뱉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저 혼자라도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는 수작이었다.

“쯧쯧, 그런다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서걱!

그러나 보법까지 화경급인 황보균 앞에서 도주가 가능할 리 없었다.

태평천국의 고수 모귀도 그렇게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제 남은 사람은 세 명.

세 명 역시 상반된 반응을 보여 주었다.

“당신도 자랑스러운 중화 민족이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저희와 함께하시지요. 함께하신다면 중화 15억의 영웅이 되실 수 있을 겁니다!”

관 선생은 이런 상황에서 황보균을 회유하려 하였다.

이미 황보균이 옛적에 버린 중화사상을 들먹이며 말이다.

“화경 고수의 검을 보고 죽을 수 있어 영광이군.”

진천 같은 경우는 무인다운 면모를 보여 주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목숨만 살려 주신다면 홍건군 3만을 이끌고 대한 제국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셋 중에 가장 용맹하게 생긴 평옥은 오히려 무릎을 꿇고서 그리 외쳤다.

현실이 아닌 센추리임에도 마치 진짜 목숨이 달려 있는 것처럼 절실한 모습이었다.

“한 명쯤은 살려 두는 게 낫다고 하셨는데, 이러면 누구를 살려야 하나?”

황보균은 잠시 고민하였다.

이 중에 한 명은 살려 줘야 할 것 같은데 누구를 살리는 게 대한 제국의 이익이 될지 판단이 안 섰기 때문이다.

“홍건군이라……. 당신이 낫겠어.”

마침내 황보균은 결정을 내렸다.

재빠르게 무릎을 꿇고서 항복을 선택한 평옥을 살려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겨우 목숨을 구재한 평옥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홍건군을 지휘하는 장군으로서 굴욕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살아났으니 말이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