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
#강남 흡수
“경하드립니다!”
서전에서 완승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지휘부의 참모들과 장수들이 무릎을 꿇은 채 호영을 향해 외쳤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수들과 병사들은 따로 있었지만 호영이 제국의 황제인 이상 모든 공은 그의 것인 법이었다.
“모두들 수고가 많았다. 이번 전투는 대한 제국의 군대가 자랑스러운 필승의 군대임을 재차 보여 준 전투였다. 앞으로도 제장들은 맹호 군단장처럼 압도적이고 위력적인 모습만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호영은 제장들을 치하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쟁의식을 이끌어 냈다.
서로 경쟁하며 더 나은 모습을 보여 달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러자 장수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호승심을 불태웠다. 명령만 내리면 당장이라도 적진으로 뛰어들 기세였다.
“폐하! 소장에게도 기회를 내려 주십시오!”
“경지를 높인 것은 맹호 군단장뿐만이 아닙니다. 소장도 화경이 되었습니다.”
“양주 지역은 소장에게 맡겨 주십시오! 몽골 기병들이라면 열흘도 채 걸리지 않아 양주 지역의 반군을 진압할 수 있습니다!”
김성근부터, 오다와 테무르까지.
국적을 불문하고 호승심이 강하거나 야망이 큰 장수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업적과 능력을 알렸다.
어떻게든 호영의 마음을 사로잡아 한 번이라도 더 출전할 기회를 가지려는 것이다.
‘이럴 때는 부담이 가기도 하지만…….’
하나같이 쟁쟁하기 그지없는 장수들이었다.
아직도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 호영으로선 그들의 충성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호영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야.’
비록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드높은 명성을 가진 명장들이 그를 떠받들며 충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손을 들어 장수들을 진정시킨 호영은 고개를 돌려 참모진에게 물었다.
“선봉이 강남의 꽤 깊숙한 곳까지 진출하였는데, 청나라의 황족들과 장수들의 반응은 어떻지?”
맹호 군단장, 황보균이 서전에서 승리로 장식하고 남진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권력 다툼과 반청복명 운동으로 전국이 소란스러운 상황이라 해도 청나라의 모든 세력들은 한국군의 남진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청나라의 모든 세력을 전복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대한 제국이었기 때문이다.
“의외로 반응이 적대적이지가 않았습니다.”
“적대적이지 않다고?”
“예, 아무래도 황족들 중에 친한파가 많지 않습니까? 만주족 장수들은 강북의 만주족들과 혈연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고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군의 남진을 외세의 개입으로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유저들이야 아직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7회 차의 대한 제국과 청나라의 관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우호적이었다.
본래 한 하늘 아래 태양은 두 개일 수가 없다는 말처럼 두 나라의 관계는 안 좋아야 정상이었지만, 200년 동안 형제 국가로서 동맹 관계를 이어 가니 자연스럽게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형제 국가니 200년의 친선 관계니 그런 것보단 청나라의 내정이 불안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겉으로만 보자면 대한 제국의 국력에 그나마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 청나라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지배계급과 중간 지배계급 그리고 피지배계급의 인구가 적절하게 나뉜 대한 제국과 다르게 청나라는 여전히 소수의 인구로 절대 다수의 피지배계급을 지배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내정이 불안하다는 것인데, 청나라는 이 불안한 내정 때문에 100년 동안 대한 제국의 천하 질서에 줄곧 순응하였다.
내정이 불안한 상태에서 대한 제국과 맞서 싸운다고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고, 무엇보다 청나라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한족을 가장 경계의 대상으로 여겼기에 대한 제국과 굳이 적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유일한 걱정거리가 황족들의 반발이었는데 황족들의 반발이 적다니 다행이군.”
솔직히 한족의 비밀결사들이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청나라에서야 워낙 반청복명 운동의 규모가 커 반란 진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규모만 비대할 뿐, 오합지졸에 불과한 반란군이었다.
각개격파를 한다면 선봉군으로 출전한 맹호 군단만으로도 충분히 진압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청나라 군부와 황실의 반발은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다간 청나라 전체와 전쟁을 하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영에게 운이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후손들이 정치, 외교를 잘했던 탓인지 청나라 군부는 대한 제국에게 우호적이었다.
일단 청나라 전체와 전쟁을 하게 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 셈이었다.
“물론 반발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대한 제국과의 관계가 어떻건 황제가 되는 게 더 중요한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장남, 순친왕의 경우는 대한 제국에게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며 여론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아마 순친왕을 따르는 만주족 장수들은 우리 군을 적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순친왕을 따르는 장수들이 얼마나 된다고 했지?”
“최소 30만 이상, 최대 50만 정도의 군사력이 순친왕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30만에서 50만 사이라면 너무 차이가 큰 거 아닌가?”
“혼란이 워낙 커서 중립을 지키던 장수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대한 제국의 군사를 보고 외세의 개입이라 판단하는 자들이 많을지, 아니면 형제 국가의 지원이라 판단하는 자들이 많을지 그걸 알 수가 없다는 말이로군.”
“예, 그렇습니다.”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예상했던 문제였다.
강남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목적을 세웠으면서 청나라군의 반발이 아예 없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였으니 말이다.
“우리까지 남하한다면 주저하던 이들이 더욱 확실하게 결정을 내리겠군.”
“예. 아마, 순친왕을 지지하게 될 것입니다.”
선봉군인 맹호 군단이 남진하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을 드러내던 만주족 장수들이다.
수십만 대군이 남하하게 된다면 당연히 극단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호영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
“오히려 우리의 군세를 보고 굴복할 수도 있지 않은가? 대세가 공친왕 혁흔 쪽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하며 말이야.”
“…….”
공친왕 혁흔과 순친왕 혁현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혁흔을 지지하는 대한 제국의 황제가 무려 수십만의 군대를 이끌고 남하했다?
애국심이나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한 이들이 아니라면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은 대체로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될 터.
하나는 중립을 선택하여 사태를 관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혁흔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호영은 혁흔에게 굴복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였다.
‘지금의 청나라군은 썩을 대로 썩었다.’
6회 차의 청나라군도 그랬지만 7회 차의 청나라군은 그야말로 망국의 군대가 무엇인지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말을 탈 줄 모르는 이가 팔기군의 장수로 있을 정도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아무튼 그렇게 썩을 대로 썩은 청나라군이기에 호영의 위엄에 저항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기껏해 봐야 원재가 말했던 혁현을 지지하는 장수 몇 명만이 저항에 나설 것이다.
대충 30만 정도 되는 병력이 말이다.
“물론 청나라군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이 말했던 대로, 순친왕의 군사가 늘어 봐야 겨우 50만 정도이지 않은가? 그 정도라면 어차피 문제 될 것은 없을 거야.”
호영이 지나치게 방심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충언을 올리려던 원재는 호영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말처럼 어차피 혁현의 군대는 대한 제국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처음 계획을 세웠을 때 작금의 청나라군이라면 100만까지는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을 정도니 말이다.
“아무튼, 알겠다. 청국의 사정이 그러하다면 우리 군은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겠어.”
호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었다.
몇몇 장수가 자신들을 먼저 출정시켜 달라며 떠들어 댔던 것이다.
“이놈들, 조용하지 못하겠느냐!”
갑작스러운 호통 소리에 좌중은 침묵하였다.
가장 시끄럽던 김성근도 그 순간만큼은 침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호통을 일으킨 이의 기세가 사뭇 대단했기 때문이다.
근위대장, 황보림.
장수들에게 호통을 친 이는 바로 황보 세가의 가주였다.
‘NPC인데도 불구하고 장수들이 황보림에게 꼼짝을 못하는군.’
단순히 나이가 많고 S랭크의 무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호영의 배려로 이인자에 버금가는 권력과 권위를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김성근! 네놈은 도대체 뭐가 그리 잘났다고 계속 날뛰는 것이냐! 그 알량한 이름을 믿고 나대는 것이야? 개나 소나 김성근이란 이름을 사용하는데?”
“…….”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황보림은 자신이 이인자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나 평소 마음에 안 들어 하던 김성근을 이 잡듯 잡았다.
이번 기회에 김성근을 단단히 혼낼 생각인 것 같았다.
‘S랭크 무인이라 이전에 갖고 있던 권력을 유지시켜 주었더니 요즘 들어 너무 오만해진 것 같단 말이지.’
벌써 7회 차가 되었지만 NPC와 유저 간의 갈등은 여전하였다.
대한 제국뿐만이 아니라 아마 세계 모든 나라가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대한 제국의 경우 호영이 중용을 잘 지켜서 아직까지는 큰 충돌이 벌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 오만방자해진 황보림을 가만히 놔두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이 중요한 시기에 끔찍한 내분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 *
어색한 분위기로 회의가 파토나자 호영은 황보림과 단둘이 독대하는 자리를 가졌다.
“경의 장남인 맹호 군단장의 활약으로 강남 진출의 교두보가 마련되었다.”
그가 처음 서두로 꺼낸 말은 황보균에 대한 것이다.
황보림의 자식이자 호영의 최측근인 황보균에 대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풀어 내려는 것이다.
“소장의 아들에게 활약할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짐은 이번 전쟁이 끝나면 황보 세가를 제후로 임명할 것이다. 경이나, 경의 장남이 세운 군공을 생각하면 당연한 보상이라 할 수 있지.”
그 말에 황보림은 미소를 숨기지 못하였다.
역대 호영의 곁을 호위하던 근위대장들은 대개 과묵하면서 무표정한 경우가 많았는데 황보림은 예외였다.
황보림은 욕심이 제법 많은 편이었고 그 욕심을 숨기는 편도 아니었다.
“다만, 짐이 한 가지 당부 겸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부탁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무엇이든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다름 아니라, 짐이 이번에 새로 뽑은 신진 장수들과 최대한 원만하게 지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