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324화 (324/345)

# 324

하지만 그런 하워드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고개를 조아리며 태연하게 말문을 열었다.

“용병이지만 극도로 정예한 무사들입니다. 경지로 따지면 B랭크를 넘어서는 고수이기도 하고요.”

“B랭크!”

“선발대로 B랭크 고수 오십 명, C랭크 무인 천 명을 보내겠습니다.”

그 말에 하워드는 기함을 할 수밖에 없었다.

B랭크 쉰 명에, C랭크가 천 명이라니.

이게 무슨 용병이고 소수 인원이란 말인가!

‘도대체 대한 제국의 국력은 어느 정도이기에 이 정도의 군사력을 선발대로 보낸다는 것이지?’

서양인은 무공에 재능이 없는 것인지 미국에서도 오랜 시간 동안 무공을 연구하였지만 크게 진전은 없었다.

S랭크는커녕 A랭크의 고수도 극히 드물 정도였다.

미국에서는 B랭크만 되도 마스터라 부르며 검의 달인으로 알아주었는데, 한국에서는 무려 B랭크의 고수를 쉰 명이나 보내 준다고 하였다.

하워드로선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이 언제쯤 도착할 수 있는가?”

“일주일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빨리 도착한다고?”

“태평양에 거주하는 무사들이니,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

본토도 아니고 태평양에 거주하는 무사들의 랭크가 그렇게 높을 줄이야.

하워드는 대한 제국의 국력에 새삼 놀라워하였지만 어쨌든 그로선 나쁜 일이 아니었다.

B랭크 쉰 명에 C랭크 천 명이라면 적어도 슈워제네거 왕국이 담당하는 전선에 한해서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 *

호영은 조그만 언덕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10만에 달하는 태평천국의 군대와 흑기군의 군대가 이리저리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 반해 5만에 불과한 친위 군단은 기계적이고 정교한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었다.

“작전은?”

“폐하께서 명령을 내리시면 곧바로 작전이 시행될 것입니다.”

“그런가.”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호영은 참모진에게 기이한 명령을 내렸다.

“주작 팀에게 지금 당장 작전을 시행하라고 전해라.”

“충!”

악씨 세가의 가주를 암살하는 데 성공하였던 주작 팀.

호영은 바로 그 주작 팀에게 또 하나의 작전을 지시하였다.

바로 적의 지휘부를 제거하는 작전이었다.

“바로 결과가 눈에 들어오는군.”

“아무래도 흑기군의 지휘부를 제거하는 작전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

“태평천국의 지휘부는 제거된 것 같으니 이번 작전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적진을 바라보니 중앙이 크게 어수선하였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태평천국의 지휘부가 몰살된 것 같았다.

아쉽게도 적의 우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작전이 실패했거나, 흑기군의 위기 대응 능력이 뛰어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전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려라.”

“충!”

호영은 흑기군의 반응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적군의 주공은 8만의 병력을 동원한 태평천국이었다.

태평천국이 흔들리고 있으니 전투를 시작해도 문제 될 게 없으리라.

그리고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마법 병단이 원거리에서 마법을 날리는 것으로 시작된 전투는 한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지휘 체계가 붕괴된 태평천국은 한국의 마법 공격에 이미 사기를 잃고 말았다.

애초에 천지회가 몰락하고 패잔병 신세로 전락한 태평천국이었다.

처음부터 사기가 극도로 낮았는데 지휘부까지 무너지니 여기저기서 도망자가 속출하였다.

결정적으로 친위 군단이 자랑하는 기마 부대가 출전하자, 태평천국은 완전히 무너졌다.

농민병으로 이루어진 태평천국으로선 도저히 중장 기병을 막아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흑기군이 도주하고 있습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도망치는 거 하나는 누구보다 빠른 것 같군.”

검은색 의복에 검은색 깃발을 든 흑기군의 모습은 꽤나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이 전투에서 하는 행동이란 도주하는 것뿐이었다.

반군 중에서 나름 정예로 알려진 흑기군이지만 대한 제국의 군대 앞에서는 그저 오합지졸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칠 곳이 없을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흑기군의 뒷모습을 보며 호영은 조소를 지었다.

절강성의 반군을 모조리 몰살시킬 수 있는 기회를 그가 놓칠 리는 없었다.

겨우 5만에 달하는 병력으로 반군을 진압하려 했던 것은 사실 포위망을 완성시키기 위함이었다.

지금 흑기군이 도주하는 장소엔 3만의 병력이 매복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병력이 기병으로 이루어진 흑기군이라지만, 이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전투가 끝이 났습니다. 아군의 완승입니다!”

“경하드립니다!”

호영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상했던 승리였기에 큰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물론 그래도 기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부상자를 치료하고 전장을 정리해라.”

“예. 알겠습니다.”

“흑기군은 깔끔하게 처리했나?”

“지휘부 일부가 도주에 성공하였습니다.”

“끈질기군.”

“하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대세는 호영에게 완전히 넘어온 상태였으니.

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조직력을 갖춘 반군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계속 추격하도록. 어차피 이제 우리 군을 방해할 자들은 없으니까.”

“충!”

다음 날이 되자 호영이 지휘하는 10만의 한국군은 다시 서쪽으로 진격하였다.

목적지는 청나라의 수도였다.

‘반군 진압이 끝났으니 이제 황권 다툼을 종결시킬 때다.’

호영이 절강성에서 반군을 진압하는 동안, 그가 청국 각지로 파견시킨 여러 장수들도 반군 진압에 성공을 거두었다.

워낙 반군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아직도 10만이 넘는 반군이 여기저기서 활개를 치고 있었지만 그들이 대세에 영향을 끼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호영은 반군 진압을 이쯤에서 멈추고 이제부터는 황권 다툼에 주력하고자 하였다.

강남을 갖기 위해서는 결국 청나라 정부와의 합의가 중요하였고 청나라 정부와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혁흔을 황위에 올릴 필요가 있었다.

혁흔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대한 제국에게 강남을 바치겠다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황권 다툼은 현재 누가 유리하지?”

“폐하께서 순식간에 반군을 토벌하여, 만주족 장수들이 겁을 먹었는지 공친왕을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문관들은 여전히 순친왕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 대세는 공친왕에게로 완전히 넘어온 듯싶습니다.”

“그렇군.”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관산의 능력이 능력인지라 호영이 반군을 토벌하는 동안 내부를 거의 다 장악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스스로 황제까지 된 인물인데 황권 다툼이야 호영의 지원이 없었더라도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깔끔한 게 좋겠지.’

혁흔이 북미 이주를 주장했을 때 최대한 반발을 줄이려면 그를 반대하는 자들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었다.

“순친왕을 지지하는 문관들 중에 한족의 수는 어느 정도지?”

“8할 이상이 한족입니다.”

“한족들만 공친왕을 지지한다면 황위 다툼은 그걸로 끝이 나겠군.”

“물론 그렇기는 하겠습니다만······ 한족들이 과연 공친왕을 지지하겠습니까? 안 그래도 우리 때문에 공친왕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 같은데······.”

당연하겠지만 반군은 전부 한족 출신이었다.

그리고 대한 제국은 한족 출신의 반군을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반란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한족 출신으로서 한족을 마구잡이로 때려잡는 대한 제국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대한 제국이 적극 지원하고 있는 혁흔에 대한 감정도 부정적일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기적이다. 자신의 손해만 아니라면, 자신에게 이익만 된다면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어.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NPC들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유저들은 입장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우리와 손잡으면 매국노가 될 판인데, 과연 중화주의로 무장한 중국 유저들이 그런 선택을 할까요?”

“유저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일 것이야. 왜냐면 업적 점수를 대규모로 쌓을 수 있는 기회이니까.”

다른 대륙으로 이주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나라를 세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업적 점수를 노리는 유저들로선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동안 업적 점수를 쌓을 기회가 한족들로선 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 터.

‘물론 중화주의를 주장하며 반대하는 이의 숫자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놈들이야 조용히 처리하면 되는 일이지.’

닌자의 나라, 일본을 지배하면서 암살이라면 어떤 나라에게도 뒤지지 않은 대한 제국이다.

피지배계급인 한족 몇 명 죽이는 일쯤이야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족 팔기와 녹영군, 그리고 한족 출신의 문관들에게 접촉해 보도록. 유저들이라면 돈을 써서라도 회유하고.”

“충!”

호영은 그렇게 반군에 가담하지 않은 한족들을 회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제 곧 청나라 수도 난창입니다.”

서쪽으로 진격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덧 청나라의 수도 근처에 도착하였다.

포양호라는 중국 최대 크기의 호수만 건너면 곧바로 청나라의 수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배들이 보입니다! 수백 척은 되어 보이는 대규모 함대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편은 아니겠지?”

“아군이 탑승할 배는 저 도선장에 있습니다.”

호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해가 있을 것이라곤 예상했던 일이지만 저리 거창하게 방해할 줄이야.

“물귀신이 되고 싶었나 보군.”

그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 호수를 장악한 대규모 함대에서 배 하나가 선착하였다.

하얀 깃발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사신을 보낸 것 같았다.

예상대로 만주족 장수 한 명이 거친 발걸음으로 다가와서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국의 황제 폐하께서는 반군 진압이 끝나셨으면 이만 본국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저리 큰 목소리로 외치면 자존심이 상해서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가는데. 물론 애초에 돌아갈 생각도 없었지만.”

호영이 조소를 짓고 있을 때 만주족 장수가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빨리 꺼져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좋게 돌려 말한 것이다.

하지만 만주족 장수의 외침은 공허하기 그지없었다.

대한 제국의 군부 장성들은 어디서 개가 짖냐는 표정으로 심드렁한 기색이었고 병사들은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혁흔도 아니고 혁현의 부하 따위는 대한 제국에게 있어 우습기 그지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무시하고 배에 탑승해라.”

“지금 바로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잠시 이동을 멈추었던 대한 제국의 병사들은 호영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배에 탑승하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만주족 장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익!”

결국 분기를 참지 못한 만주족 장수가 이리 외쳤다.

“건너려 해도 절대 건너지 못할 것이오! 우리가 용납지 않을 것이니까!”

확실히, 수백 척의 함선이 작정하고 막아 선다면 대한 제국으로서도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혁흔이 준비한 함선의 수도 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육군만으로 수전을 치르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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