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338화 (338/345)

# 338

“아닙니다. 군사를 직접 파견해야 합니다. EU에서도 마법사나 사제들을 파견하지 않았습니까? 포병 장교들도 꽤나 많이 파견했다 들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제후국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지원을 해야 하느냐?’라는 의견엔 설왕설래하였다.

절반은 식량 및 무기 지원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하였고 나머지 절반은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제후국들의 국력이라면 식량 정도만 지원해도 충분할 것 같기는 해. 제후국들도 결코 약한 나라들은 아니니 말이야. 하지만 이 전쟁에는 대한 제국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 마찬가지로 EU의 자존심도 걸려 있고. 그러니 앞으로의 전쟁은 더욱 격렬해질 거야.’

동남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규모만 커졌지 원나라나 만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EU와 대한 제국 간의 대리전 양상이라는 말이었다.

그렇다 보니 총력전까지는 아니어도 최대한의 지원을 해 줄 필요가 있었다.

EU의 입장에서는 북미와 중앙아시아에서의 대리전이 지고 있으니 동남아시아에서만큼은 어떻게든 이기려고 온갖 수단을 사용할 것이니 말이다.

“폐하, 굳이 제후국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호영이 군사적인 지원을 염두에 두고 있을 때, 내무 장관 홍국영이란 자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지원을 하지 않으면? 가만히 지켜만 보라는 것이냐?”

“아닙니다. 소신의 뜻은, 제후국들을 지원할 필요도 없이 그냥 제국이 직접 응징하면 어떻겠냐는 말입니다.”

그 말에 호영은 눈을 크게 떴다.

“대리전이 아니라 전면전을 하라는 말이로군.”

“예. 소신의 생각으로는 굳이 동남아시아에서 대리전을 치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EU에서 더욱 공격적으로 나올 텐데?”

홍국영은 무심한 어조로 대꾸하였다.

“상관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동남아시아는 우리 제국의 안방이나 마찬가지인데.”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중앙아시아나 북미 같은 경우야 대규모 병력을 지원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라 대리전을 한 것이지만 굳이 동남아시아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대한 제국이 직접 군사를 동원해도 상관이 없을 거라는 뜻이었다.

“만약 내무 장관님의 말대로 군사를 파견하여 베트남이나 태국의 땅을 점령한다면 그 땅은 누구의 것이 되는 겁니까?”

“당연히 제국의 것이 되어야지요.”

충구의 물음에 홍국영이 당연한 질문을 한다는 듯, 시큰둥하게 대답하였다.

“제국에서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려 한다면 제후국들이 반발할 것입니다.”

“우리가 제후국들의 눈치를 볼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 그들은 제국의 충신들이자 공신들입니다. 제후국의 영토는 공신에게 하사한 공신전이나 다름없고 말입니다.”

“충신이라면 제국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을 환영해야겠지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럼 적을 무찌르고도 제국은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겁니까? 우리 제국이 언제부터 제후국들의 눈치를 살펴 전리품도 주장하지 못하게 된 겁니까?”

“애초에 우리 군이 직접 저들을 응징할 필요가 없습니다. 동남아시아는 지금까지처럼 제후국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제후국들과 갈등을 빚을 수는 없습니다.”

“EU는 저들에게 무기를 팔아먹으며 경제적으로 막대한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제국은 어떻습니까? 원나라에게, 그리고 만주국에게 엄청난 지원을 해 주고 있지만 대국의 관대함을 보여 주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두 나라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동남아시아에서도 그러라니. 제국이 부유하다고 무한한 자원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제국의 영토에서 전투를 치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익입니다.”

“굳이 제후국이 아니더라도 제국의 영토에서 전투를 치를 일은 없습니다. 적이 쳐들어오기 전에 완전히 박살을 낼 테니 말입니다.”

갑자기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며 의견을 다투었다.

사실 두 사람의 대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명재상이라 불리며 관료 출신의 NPC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홍국영과 문관 유저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충구는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호영이 중심을 잘 잡고 있어서 의견 다툼 정도로 끝나는 것이지, 호영이 아니었다면 둘 중 하나는 진즉에 사퇴를 하였을 것이다.

잠시 두 사람의 대립을 지켜보던 호영은 홍국영에게 물었다.

“내무 장관은 제국이 동남아시아로 영토를 넓혀야 한다는 입장인가.”

“예.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영토라도 넓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원나라의 전쟁도 끝나지 않았고 만주국의 전쟁도 끝나지 않았어. 그런데 동남아시아에서 전면전을 한다면 제국으로서도 부담이 상당할 텐데?”

“제국의 국력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신은 동남아시아뿐만이 아니라, 시베리아도 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전선을 줄여야 할 상황에 오히려 늘리자고 주장하다니.

“시베리아?”

“러시아에서 철도를 건설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시기를 놓치면 시베리아는 완전히 러시아의 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호영이 보기에 홍국영은 영토를 넓히지 못해서 안달 난 사람 같았다.

NPC들에게는 그저 춥고 황량한 땅으로 알려진 시베리아까지 노리자고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왠지 끌리는 제안이긴 해. 8회 차에서도 어쨌든 영토를 넓히기는 해야 하니까.’

그 역시 EU와 대리전을 하다가 8회 차를 끝낼 생각은 없었다.

물론 대리전에서 계속 승리를 따낸다면 결국 대한 제국의 영향력이 강해지기는 할 것이다.

실질적인 영토야 그대로겠지만 국가의 위신이나 경제력, 외교력 등은 크게 확장될 터.

하지만 그렇게 강해져 봤자 대한 제국에게는 여전히 EU라는 경쟁자가 존재한다.

그가 바라는 유일무이한 절대 강자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뭐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내무 장관의 말대로 움직일 수는 없겠지만.’

제아무리 영토 확장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고 해도 전선을 이 이상 넓힐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적어도 원나라나 동남아시아 전선이 진정되고 난 이후에 시베리아를 노리는 게 좋았다.

“지금 시점에 시베리아까지 노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제국의 국력이라면······.”

“물론 제국의 국력이라면 네 개의 전선도 감당할 수 있겠지. 하나, 그것은 EU도 마찬가지다. 아직 그들은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잊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러시아를 후원했다지만 직접 군사를 동원하지는 않았고 북미에서도 식민지 왕국들이 십만 단위의 병력으로 공세를 가했을 뿐이었다.

그나마 동남아시아에서는 기사단이니, 마법 병단이니, 심지어 교황청의 사제들까지 파견하였지만 규모로 따지면 10만이 채 안 된다.

EU에는 아직 여력이 상당히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하니 지금 당장은 전선을 늘리는 행위는 자제해야 했다.

나중에 있을 EU와의 소모전을 대비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그 대신, 경이 말했던 대로 동남아시아에서는 제국군이 직접 적군과 싸울 것이다.”

“정복 전쟁을 개시하는 겁니까?”

“필요하다면.”

호영의 말에 군부 장성들이 어깨를 들썩였다.

정복 전쟁이 개시될 수도 있다는 말에 흥분한 것이다.

강남을 차지한 이후, 대한 제국의 영토는 변화가 없었다.

아니, 소빙하기를 대비한다는 이유로 북방의 영토를 버렸으니 오히려 영토가 줄었다고 봐도 좋았다.

그렇다 보니 군부의 장성들은 전쟁에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가끔 제후국으로 파견 갈 때만 전쟁을 경험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국의 황제인 호영이 정복 전쟁의 개시를 논하였으니 군부 장성들로선 흥분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과 대만이 말을 안 듣고 있는데 이참에 그들의 영토를 차지하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 봐야겠어.’

호영은 무장들의 기대대로 동남아시아에서 영토를 확장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적의 땅만을 노릴 생각은 없었는데, 제후국 중에서도 조선이나 대만처럼 제국의 지시에 불응하는 국가의 땅도 노릴 생각이었다.

이참에 동남아시아에서 영토를 크게 확장하려는 것이다.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황제 폐하!”

홍국영도 호영의 결정에 만족하였는지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유저 출신의 신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유저든 NPC든 가릴 것 없이 전부가 그렇게 외쳤다.

***

동남아시아로 군대를 파견시키기 위해 원정군을 집결시켰다.

대략 100만 정도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호영은 불가피한 이유로 원정군의 규모를 2배로 늘려야 했다.

유저들이 원정군에 참여하기 위해 벌떼처럼 몰려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저들만 무려 50만이 넘게 몰려왔고, 일본과 중국 심지어 대만 유저까지 원정군 참여를 문의하였다.

그중에서 중국 유저들의 경우 무려 200만이 넘는 숫자가 원정군에 참여하기를 희망하였다.

7회 차까지만 해도 호영에게 적대적이었던 중국 유저들이 이제는 대한 제국의 원정군에 참여하려고 할 정도로 호영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호영도 원정군의 규모를 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에 그들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200만이 넘는 중국 유저가 반군이나 EU 세력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나 원정군에 데려가는 것은 아니었다.

제국군은 비록 100년간의 평화로 전쟁 경험이 부족하였지만 그래도 제국군은 제국군이었다.

그 어느 나라의 군대보다 정예하다는 뜻이었다.

하여, 무공을 심사하는 식으로 최대한 가려 뽑기 위해 노력하였다.

당연하겠지만 한국어가 가능한지에 대한 검증도 철저하게 하였는데, 의사소통이 안 되면 통솔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무공과 한국어 가능 여부 등을 검사하며 원정군을 뽑으니 순수 전투병으로만 230만의 대군이 만들어졌다.

불과 한 달도 안 돼서 수백만의 대군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도 병사 전원이 삼류 이상의 무인으로 이루어진 대군 말이다.

EU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인구 대국인 대한 제국에서만 할 수 있는 군사 동원 능력이었다.

“러시아에서 추가로 200만에 달하는 대군이 원나라를 침략하였습니다. 화랑대를 통솔하는 풍월주도 새로이 침공하는 러시아군은 막을 수 없었는지 다급하게 군을 물렸습니다!”

하지만 원정군이 집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오직 대한 제국에서만 가능할 거라고 판단했던 군사 동원 능력이 러시아에서도 가능하다고 증명된 것이다.

“200만이라니! 아직도 러시아에 그만한 여력이 남아 있었습니까?”

“그럴 리가요. 분명 EU가 뒤에서 지원한 결과일 겁니다! 안 그래도 정보국에서 EU의 러시아 지원이 늘어났다는 보고가 있었지 않습니까?”

“아무리 EU의 지원이 있었다지만 200만이라니.”

“러시아의 비기를 생각하면 그리 이상하게 생각할 일도 아닙니다. 일반 농민도 하루 만에 광전사로 만들어 내지 않습니까?”

“허! 그러면 큰일 아닙니까? 저들 200만을 죽인다고 끝이 아니라는 소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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