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
“EU의 원정군이 도착하기 전에 이스라엘을 무너뜨릴 수 있겠나?”
이란이 최근 들어 외교적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지만 이란만 예외였을 뿐, 이미 제국에서는 아랍권의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특히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동맹이나 다를 게 없는 관계가 되어 있었는데, 이스라엘을 치는데도 협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능성은 반반일 것 같습니다.”
“반반이라······. 병력을 더 지원한다면?”
“그러면 당연히 가능성은 오를 것입니다만, 아랍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의문입니다. 지금 파병해 있는 군대만으로도 아랍의 국가들은 경계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쯧.”
호영은 혀를 찼다.
마음 같아서는 100만 이상의 대규모 병력을 지원해 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아랍권 국가들이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아랍권에서는 100만의 대군이라면 나라를 전복시키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역시 정치는 복잡해.’
단순히 힘으로만 정복 전쟁을 한다면 당장이라도 세계 정복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한 제국의 국력은 그만큼 강성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힘으로 세계 정복을 해 봤자, 몽골의 전성기보다 짧은 전성기를 맞이할 뿐이었다.
그가 꿈꾸는 것은 세계를 영원히 지배하는 것.
고작해야 2회 차도 못 가서 멸망한다면 세계를 정복한다 해도 의미가 없었다.
“일단 지켜봐야겠군. EU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못한다면 그때 우리의 지원군을 보내도 되는 일이니까.”
어차피 EU와의 힘 싸움은 질 리가 없었다.
소모전이 될 것이라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지만 상대측인 EU도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니 피차일반이었다.
물론 그동안 아랍에서 엄청난 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겠지만 그건 호영의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애초에 아랍 국가들의 힘이 약해지면 대한 제국으로서도 나쁜 일이 아니었고 말이다.
‘전쟁이 끝나고 기회가 생긴다면 그들도 집어삼켜야지.’
그의 목적은 세계 평화가 아닌 세계 지배.
지금 당장은 동맹 관계라 해도 아랍 역시 언젠가는 지배해야 할 대상이었다.
“남미도 그냥 지켜봅니까?”
“20만 정도의 원정군이면 충분하다. 어차피 EU에서도 아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니 남미에는 얼마 안 보낼 거야.”
당연한 이야기였다.
제아무리 남미라는 식민지의 가치가 상당하다고 해도 아랍을 빼앗겨 유럽까지 사정권이 닿는 것보단 나았다.
그러니 유럽에 집결해 있는 EU의 원정군은 대부분이 아랍으로 향할 것이다.
많아 봐야 50만 정도가 남미로 향하지 않을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원정군 모집 및, 남미, 아랍 국가들과의 동맹 체결을 지시한 호영은 그대로 회의를 끝마쳤다.
아니, 끝마치려고 했다.
“폐하!”
“무슨 일이냐?”
“유럽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EU가 사신을 보냈다고?”
“예, 그렇습니다!”
호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EU에서 사람을 보낼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면 제아무리 전쟁 중이라고 하나, 외교 채널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
남한과 북한도 70년이 넘게 전쟁하였지만 외교 채널은 존재하였고 냉전 시대의 소련과 미국 역시 외교 채널이 존재하였다.
즉, 적대 관계라는 이유로 외교를 아예 단절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라는 뜻이었다.
“이제 와서 항복하려는 것은 아닐 테고, 뭔 말을 하려는지가 궁금하군.”
딱히 특별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전쟁을 그만 두고 적당히 타협하자는 말을 하지 않을까?
‘예상대로군.’
나흘이 지나 황궁에 도착한 EU의 전권 대사는 그의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말을 하였다.
“이득도 없는 전쟁을 언제까지 하실 생각이십니까? EU를 완전히 무너뜨리지 못하는 이상, 전쟁은 불필요한 희생만 불러들일 따름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저희와 불가침조약을 맺으시지요.”
“만약 불가침조약을 맺는다면 영토는 어떻게 나누지?”
“북아메리카를 드리겠습니다. 대신, 남아메리카는 저희가 갖겠습니다.”
“인도와 아랍은?”
“······두 지역은 당연히 EU의 세력권 아닙니까?”
“왜 그게 당연한 거지?”
“······.”
“그럼 중앙아시아는? 아직 원나라와 러시아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둘의 전쟁이 끝나면 어떻게 할 거지?”
“······중앙아시아까지는 대한 제국의 영역으로 인정하겠습니다. 대신, 러시아는······.”
“그럴 수는 없지. 동원한 병력이 얼만데. 그리고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기만 하고 전쟁을 끝내라는 건가?”
“폐하께서는 그럼 어떻게 하시자는 겁니까?”
“너희야말로 지금 뭐 하자는 거지? 협상하자고 왔으면서 무엇 하나 주지 않겠다니.”
“북아메리카를 드린다고 했지 않습니까?”
호영은 피식 웃었다.
북미?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필요 없었다.
북미에 진출한 것은 대한 제국이 아니라 만주국이었기 때문이다.
“제후국 하나를 도우겠다고 제국 전체가 손해를 볼 수는 없잖아? 인도와 아랍, 그리고 러시아를 제국의 세력권으로 인정한다면 그때 불가침조약을 맺어 주도록 하지.”
“폐하, 그건 너무 일방적입니다! 아랍은 몰라도 인도라니요! 절대 들어줄 수 없는 조건입니다!”
EU의 전권 대사라는 자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호영의 제안을 거부하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EU는 연합 조직이었다.
단일한 정치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대한 제국과 협상하는 것을 반대하는 세력도 적지 않았고, 협상 조건에 대해서도 일일이 따지고 드는 세력이 많았다.
특히 영토 분할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자국의 식민지나 이권을 빼앗기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협상은 이대로 결렬하면 되겠군.”
“끝까지, 저희와 전쟁을 하겠다는 겁니까?”
“못할 것도 없지. EU에서도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고 있지 않나?”
그 말에 EU의 전권 대사는 움찔하였지만 이내 험악한 얼굴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제안하겠습니다. 아랍까지는 대한 제국의 세력권으로 인정하겠습니다. 그 대신 러시아와 인도, 남미는 더 이상 노리지 마십시오.”
“계속 노리겠다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후회?”
호영은 코웃음을 쳤다.
누가 과연 후회하게 될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항복했으면 남미와 아프리카는 지켰을 것이다. 세계 이인자 자리는 계속 유지했을 것이고.’
뭐, 그조차도 9회 차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8회 차가 끝날 때까지만 지금의 것을 유지해도 성공한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제 와서 아무런 의미 없는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더 이상 이야기해 봤자 평행선만 달릴 것 같군요.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당당하게 물러나는 EU 전권 대사의 뒷모습에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나 마음에 안 드는 족속들이었다.
‘어떻게든 한 방 먹여 주고 싶은데.’
아랍에서, 그리고 남미에서 한 방 먹여 줄 예정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한 기분이었다.
EU로 하여금 충격과 공포를 선사시켜 줄 그런 공격을 하고 싶었다.
‘차르 암살만 성공하면 된다.’
차르가 갑자기 죽는다면 EU의 지도자들도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자신들도 암살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대한 제국이 러시아를 집어삼키고 유럽의 동부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포를 느낄 것이다.
아랍의 공세를 막는 것도 힘들어 하고 있는데, 러시아까지 무너진다면 EU로서도 더 이상 여력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니 말이다.
“작전이 시행되었다고?”
때마침 그날 저녁, 호영이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졌다.
차르 암살 작전이 마침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예! 지금 막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호영은 애써 차분해지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는 게 쉽지 않았다.
이번 작전이 실패한다고 해도 다시 시도하면 된다는 생각도 해 봤지만, 이왕이면 지금 성공하는 게 좋았다.
대한 제국이라고 S랭크 무인의 숫자가 무한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부디 성공해야 할 텐데.’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호영이 8회 차에 자신의 호위를 담당하는 근위대장이 된 준기를 불렀다.
“준기야.”
“예. 말씀하십시오.”
“차르 암살은 어떻게 되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네 제자들이잖아.”
“······.”
“아니다. 내가 쓸데없는 질문을 했어.”
준기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며 호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패해도 상관없다고 계속 되뇌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나도 약해진 건가?’
지난번의 실패로 조금 위축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S랭크 무인이 줄어든다는 사실에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고 말이다.
“폐하!”
전령이 다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을 보며 호영은 애써 태연한 기색으로 물었다.
“결과가 나왔느냐?”
“예! 성공했다고 합니다!”
“휴우!”
호영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차분함을 유지했던 그가 표정 관리를 못 할 정도의 기쁜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내 숨을 가다듬으며 평정을 되찾고는 전령에게 물었다.
“피해는?”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러시아 차르를 죽인 것은 확실한가? 저번처럼 대역을 죽인 것은 아니겠지?”
“이번에는 철저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100% 확실하다고 합니다.”
그 말에 호영은 쾌재를 불렀다.
차르 암살에 성공한 것도 기쁘기 그지없는데 희생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소식은 그를 더욱 기쁘게 만들었다.
‘EU 지도자들의 얼굴이 어떨지 궁금하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호영은, 곧바로 회의를 소집하였다.
늦은 새벽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러시아의 지도자가 죽은 것은 단순히 러시아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세계정세가 요동칠 만한, 전 세계적 이슈였다.
당연히 대한 제국으로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차르 암살이 죽었으니 지금이 북진할 기회다.”
북진!
호영은 신료들과 장수들이 도착하기 무섭게 그와 같은 말을 꺼냈다.
그러자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장수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가슴에 댔다.
명령만 내리면 지금 당장이라도 북진을 하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
“시간 끌 것 없다. 지금 당장 북진해라!”
“충!”
그런 장수들을 보며 호영은 북진을 선언하였다.
마침내 러시아 영토로 진격하라 명령을 내린 것이다.
***
차르 암살이 성공한 이후, 한국군은 원나라군과 함께 북진을 거듭하였다.
이전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진격하였는데, 러시아군은 제대로 방어해 내지 못하였다.
러시아의 지배자였던 차르가 죽었기 때문이다.
비약을 먹은 광전사들이야, 차르의 죽음과 관계없이 열성적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광전사들을 지휘하는 장교들이 문제였다.
차르도 죽었고 차르의 황태자도 죽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부재한 상황이란 뜻이었다.
러시아의 수도 정계는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그리고 장교들은 신분 자체가 러시아의 귀족이니만큼, 어수선해진 수도의 상황을 보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