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트 앤 다크-124화 (124/220)

124.

마왕이 적극적으로 내 몸을 핥기 시작했다. 나는 벽에 기댄 채로 쏟아지는 혀의 감촉을 느꼈다.

“아, 아…….”

몸을 점령해 가는 화끈한 감촉, 그것은 내 욕망의 불길을 키우는 기름이면서 누군가에 대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경각심의 찬물이기도 했다. 나는 두 감정이 동시에 몰려오는 것에 절망했다.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보고 있으려니 내 어깨를 빨던 그가 입술을 떼고 은밀한 곳으로 손을 내렸다.

“쉽게 젖어들지 않는군. 오랜만이라 그런가?”

눈을 날카롭게 빛내는 마왕은 나를 추궁하는 것만 같았다. 이내 그는 자신의 성기를 꺼냈다. 인간의 것이 아닌 음험한 그의 살집은 금세 내 벌어진 입 안으로 들어왔다.

“앙증맞은 혀로 잘 빨아 봐.”

“으, 읍…….”

“살살.”

입 안이 터질 것 같았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긴장한 탓인지 입 안은 잘 벌어지지 않았고, 목도 아팠다. 성기의 끝이 아프게 목을 찌르자 결국 눈가를 찡그리며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마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대답지 않아. 좀 더 음란하게 혀를 굴려야지.”

그의 독촉에도 그의 성기에서 느껴지는 모든 감각들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나는 열심히 혀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부족했는지 마왕은 잠시 말이 없었다. 마왕은 곧 턱을 살짝 내리게 하고는 내 입 안에 깊게 성기를 쑤셨다.

“우읏…….”

치고 올라오는 구역감에 인상을 찡그렸지만 마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안에 제 성기를 비비듯 삽입했다. 목을 찌르는 거대한 이물감에 힘을 빼고 있기 잠시, 곧 마왕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성기를 빼냈다.

“아…….”

나는 입술 끝으로 흘러내리는 정액을 느꼈다. 침과 섞인 채로, 느릿하게 흘러내리는 그 액체를 빤히 보고 있던 마왕이 말했다.

“재미없군.”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왕은 내 입술을 닦아 주지 않았다. 희끗한 액체가 내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흥미롭게 바라봤을 뿐이다.

“이렇게나 재미없는데도.”

마왕은 의외란 듯이 말을 덧붙였다.

“여전히 몸을 탐하고 싶다니, 이상한 일이야.”

“…….”

“그렇지 않나?”

마왕은 웃는 듯 마는 듯 입가를 올렸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마왕은 내 눈에서 분명한 의사를 읽었는지 의외로 순순히 물러났다.

“그대가 동하질 않으니 보내 주지. 오늘만큼은.”

인심 썼다는 듯이 말하는 마왕이었다. 나는 안도했다. 마왕은 숨을 돌리는 나를 보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과 떨어져 안도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우린 예전 관계로 돌아가는 거야. 유희 관계로.”

그 외에 다른 경우란 없다는 듯이 마왕이 강조했다. 나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저를 소환하느라 소멸을 재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에레나가 그리 말했나? 뭐, 틀린 말은 아니야.”

마왕은 그 사실이 별로 중요치 않다는 듯이 시큰둥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나는 원래 힘을 잃어 가고 있었어. 그대를 소환하면서 그 과정이 조금 더 빨라졌을 뿐, 달라진 건 없어. 에레나는 차기 마왕이니 그게 더욱 여실하게 느껴졌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생의 끝을 흥미롭게 맞고 있다는 생각뿐이야.”

마왕은 유희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존재인 걸까. 내가 황망하다는 듯이 쳐다보자 마왕이 픽 웃었다.

“심각해지지 마. 설사 죽음을 앞당기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인 그대보단 훨씬 오래 살아갈 테니까.”

마왕은 거만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그대가 걱정할 만큼 나는 약해지지 않았다. 에레나가 강하긴 해도 아직 권좌에 앉아 있는 건 나고, 그녀는 내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 힘의 우위는 내 쪽에 기울어져 있어.”

“그, 근데 그녀가 어째서 당신에게 힘을 공급하는 거죠?”

“내 마기가 불안정해서. 내 마기가 흔들리면 마계가 동요하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영향을 받는다. 에레나는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거지. 제멋대로이긴 해도, 그녀 역시 마왕의 후보자이니까. 마계를 필연적으로 살필 수밖에 없을 거야.”

당신을 좋아해서,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그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라면 그것을 알고도 당당히 무시할 자였으니까.

‘어떡해야 하지.’

나는 쥐가 고양이를 생각하고 있다는 어조로 말하는 마왕을 올려다보았다. 마왕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진정 내가 죽을까 걱정이 되어 물어보는 건가? 아니면 이 유희 관계가 맘에 들지 않아 물어보는 건가.”

“이 유희가…….”

나는 말하고야 말았다.

“더는 유희처럼 와닿지 않아서요. 전…….”

이것은 아론 때문이 아니다. 바로 나 때문이었다.

“전…… 사제이면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즐거웠어요. 훨씬 쾌락을 느꼈고요. 그, 그래서 마왕인 당신과 관계를 하는 게 더 자극적이었어요. 남들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남들을 기만한 채로…… 더 흥미롭게 관계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도 그럴 수 있어.”

“아…….”

마왕은 내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어둠에 휩싸인 남자에게선 위험한 매력이 넘실거렸다. 자칫 눈을 홀려 버릴 것 같은 위험한 매력은, 그러나 항상 가시가 있었다.

“지금도 위선자들을 비웃으며 나와 관계할 수 있다.”

“맞아요……. 그걸 알아서 더 못 하겠어요.”

“어째서?”

“전, 사제로서의 제 일이 좋으니까요…….”

마왕은 멈칫했다. 그는 내 대답이 상당히 놀랍다는 얼굴이었다.

“이건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제가 마물을 처단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이 좋다는 걸 말하는 거니까요.”

마왕은 내게서 거짓을 찾으려는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동안 생각하고 쌓였던 감정들을 털어놓으려고 했다.

“처음에는 마물을 상대하면서 당신과 관계하는 게 좋다고 느껴졌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마물이 나타나면 늘 당신이 떠오르고 마음이 무거워져요. 사람들이 고통받는 걸 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던 건가, 이렇게 살아가도 되나 죄책감이 들고…….”

“말레드레드, 그대는 신의 충실한 사제가 아니잖아.”

정신 차리라는 듯이 꾸짖는 마왕에게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맞아요. 전 그런 사제가 아니에요. 영원히 아닐 거예요.”

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늘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고 행동하려 했다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그래서 분명하게 말하는 거예요.”

내 진심을, 내가 진정 바라는 바를. 나는 마음속에 있는 것을 꺼내 놓았다.

“이 유희가 즐겁지 않다고. 더는 원치 않는다고.”

“……흠.”

마왕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붉은 눈빛은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잔혹하기도 했고, 나를 외면할 것처럼 무심하기도 했다. 아마도 분노와 실망감이 교차하는 그의 마음속이 비친 것이었겠지만 그 침묵이 너무도 싸늘해 나는 잠시 얼어붙은 것처럼 있어야 했다.

마왕이 이윽고 입술을 열었다.

“이 고백으로 내가 유희를 끝내자고 말할 것이라 기대했다면 너무 순진한데.”

“……일단 말은 해 봐야 하잖아요.”

내 울적한 대꾸에 마왕은 조금 웃음을 터트렸다.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웃음 같았다. 마왕은 내 머리에 한 손을 올려 은발을 조금 쓰다듬더니 차분히 말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어, 말레드레드. 그대는 소녀가 아닌 여자니 분명히 알고 있겠지.”

노곤하게 파고드는 목소리로 감미로웠다. 위협적이진 않은 어조였지만 말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마왕은 상기하란 듯이 말했다.

“그대가 얻은 쾌락은 그대의 자유와 양심을 대가로 해서 받은 것이야. 그러니, 무언가를 깨달았다고 이 관계를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 이미 그대는 선택했어. 죽음과 맞바꿔서, 나와 이런 관계가 되겠다고 제 입으로 말했지. 그러니 아무리 발버둥 치고, 다리를 벌리지 않겠다고 애써도 이 관계를 무를 순 없는 거야.”

“…….”

“계약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니까. 이미 말했다시피.”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참담한 표정으로. 마왕은 다독이듯이 나를 더욱 안쓰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현실을 받아들여. 이왕이면 즐기는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실에 순응하는 일은 내가 잘하는 것 중 하나였으나, 지금 그러겠노라고 답할 만큼 비위가 좋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마왕은 말이 없는 나를 끌어안은 채로, 무심한 듯 말했다.

“싫어하지 마. 좋아하지 않는 상대의 다리를 억지로 벌려서 관계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대처럼 소리 지르고 더 해 달라고 다리를 벌리며 음탕하게 속살을 내보이는 쪽이 훨씬 취향이지.”

“…….”

“그러니까 잘 생각해 봐. 뭐가 그대에게 더 이로운 것인지.”

마왕은 손을 휘둘렀다. 검은 마기가 그에게서 빠져나와 내 주변으로 뭉쳐 들고 있었다.

“어떤 게 더 삶을 즐겁게 해 줄 것인지.”

그가 시야에서 없어졌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나는 여관 침대였고, 복통이 있는 상태였다.

나는 침대에 엎드렸다. 배를 알싸하게 만드는 통증보다, 목을 조였던 아릿한 아픔보다,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나를 더욱 괴롭게 하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복통이 사라진 걸 느꼈다. 복통이 사라지자 머릿속도 한층 맑아진 느낌이었다.

훈련도 없는 시간. 무엇을 해야 할까. 멍하니 있던 나는 씻으러 공용 화장실로 향했다. 이미 그곳에는 여자들이 여럿 있었다. 곧 시선들이 내게 달라붙었다. 이런 여관에서 보기 힘든 외모와 몸매라는 듯 놀란 시선들이 앞다투어 달라붙었다가, 이내 반응이 없자 관심이 식은 듯 사라졌다. 나는 증기가 올라오는 나무 욕조로 여유롭게 향할 수 있었다.

첨벙.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갔다. 욱신거리는 근육의 통증들도 옅어지고, 굳었던 마음도 조금 풀어질 때, 여관 주인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누가 아가씨를 찾아왔는데요, 급하다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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