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임 라이프 크라이
거대한 기둥이 높다란 천장을 향해 뻗어 있고, 아무런 조각도 없는 새하얀 대리석의 바닥이 있다.
그런 거대한 신전의 내부에는 단 한 명의 사제만이 서 있었다.
절대신 아라한의 신전. 이 신전이 이 세상이 현실이 아님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말해준다. 절대신 아라한의 신전의 모든 사제는 똑같이 생겼으니까.
게다가 절대신 아라한의 신전은 단지 2가지 기능만을 가지고 있다. 찾아온 플레이어들을 레벨 업 시켜 주고, 능력치를 주는 것. 그리고 플레이어들에게 로그아웃의 힘을 주는 것. 단지 그 기능뿐.
다른 신전들은 NPC들의 삶에 관여하고, NPC들과 같이 이 세계의 구조를 지탱한다. 하지만 절대신 아라한 신전의 사제는 신전을 벗어나지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른 NPC들과 섞이지 않는다. 다른 NPC들 역시 이 절대신 아라한의 신전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신전은 오로지 플레이어들을 위한 곳이다. 그렇기에 다른 여러 NPC들은 이 신전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신전의 중앙에는 제법 큰 석조 수조가 있다. 마치 큰 그릇처럼 생긴 그것에는 물이 담겨 있고, 그 앞에 사제가 서 있었다.
나는 그 사제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저의 능력을 향상시키기를 원합니다.”
내 말에 사제의 손이 내 앞에서 번쩍였다.
“그대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자격이 충분합니다.”
빛이 번뜩이고, 무언가가 내 안에 가득하게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레벨 업의 기분은 참 기이하다.
“그대는 열다섯 번째의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시기를.”
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한,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신관은 나에게 대답해주었다.
열다섯 번째 단계. 즉, 레벨 15가 되었다는 말이다.
요새 고블린이 많이 출몰하여 그것을 다수 잡았더니 레벨 15가 된 모양이다. 저번에 확인했을 당시에 내 레벨은 12였는데.
인터넷의 여러 정보 사이트에 의하면 현재 이 게임의 최고의 고수는 레벨 21이다. 나 역시 다크 게이머로서 게임에 잔뼈가 굵어서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감사합니다. 제 능력치를 보고 싶습니다.”
“이리로 오십시오.”
사제는 나를 물이 담겨진 수조로 안내했다. 사제가 손을 흔들자 물의 표면이 검게 변하며 내 이름이 떠올랐다. 또한 그 이름 밑으로 내 능력치가 떠올랐다.
[라임 등급:15
종족:인간 성별:남자
키:175 속성:무(無)
힘:11 체력:10
오감력:14 마력:15
불의 속성력:5 물의 속성력:5
바람의 속성력:5 흙의 속성력:5]
그곳에는 힘, 체력, 오감력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힘은 11, 체력은 10, 오감력은 14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이 내 신체의 기본적 능력이다. 맨 처음 이 게임을 시작했을 때는 모두 9였다.
그 밑으로는 또 다른 능력치가 나타나 있었다. 마력 15, 불의 속성력 5, 물의 속성력 5, 바람의 속성력 5라는 식으로, 육체의 순수한 힘이 아닌 또 다른 힘의 능력치들이었다. 속성력의 종류는 다양했는데, 모든 것이 5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능력치를 확인하고 나는 사제에게 말을 걸었다.
“감사합니다. 휴식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이리로 오십시오.”
사제를 따라 안쪽의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에는 관 같은 것이 가득 있었다.
“편안한 꿈 꾸시기를.”
사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하실에서 나갔다.
나는 가득한 관들 중 하나를 골라 누웠고, 곧 눈을 감았다.
“로그아웃.”
빛과 어둠이 교차하면서 나를 감쌌다. 그리고 나는 ‘라이프 크라이’에서 빠져나온 것을 느꼈다.
차가운 액체의 느낌과 내 몸을 감싼 이질적인 차가운 금속의 느낌들.
푸쉭!
연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회복되었다. 내가 들어 있는 기계, 플레인 워커에 불이 들어오며 뚜껑이 열린 것이다.
출렁!
안에는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액체야말로 가상현실의 감각을 나에게 완벽히 전해주는 중요한 핵심 도구라고 들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몸을 일으키자 축축하게 젖은 몸에서 액체가 쪼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몸을 일으킨 후 방의 바닥으로 움직였다.
“후우!”
그리고 숨을 내쉬고는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보들보들한 수건으로 몸을 닦는 이 기분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저축도 얼마 안 남았나.”
데스크 탑의 컴퓨터를 이용해 은행 인터넷에 접속했다. 가상현실의 인터넷을 이용해도 되지만, 돈이 얼마 남았는지 확인하는 데는 이쪽이 더 간편하다.
“얼마 안 남았군.”
남아 있는 잔금은 4천만 원가량 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이다. 1년을 살 수 있는 돈이지만, 말 그대로 그뿐이다.
보통 새로운 게임에 들어가 제대로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은 약 한 달이 지난 후이다. 그 전에는 새로운 게임의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아서 시가와 물가가 제멋대로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용해 한몫 벌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운과 직결된다. 쉽게 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행히 ‘라이프 크라이’는 큰 돈벌이가 될 것 같군.
죽음에 대한 페널티가 강한 탓인 데다, 여타 게임과는 전혀 다른 방식과 그 세계의 현실성은 중독성이 있다.
특히 인간과 다를 바 없는 NPC들의 모습은 큰 충격이다. 그 인공지능을 군사적 목적에 사용한다면? 그 인공지능을 그대로 컴퓨터와 각종 프로그램에 도입한다면? 인류는 더 나은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그런 것을 게임을 위해서 만들다니. 생각해보면 아라한 컴퍼니도 터무니없는 회사다.
“밥이나 먹고 와야겠군.”
2088년. 자연이란 것이 거의 없어진 지 오래인 이 세계 속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한국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아직 북한산이라는 것이 남아 있으니까.
휘이이이!
내가 사는 집은 메트로 타워라 불리는 거대한 아파트의 30층이다. 총 높이 702미터. 폭은 3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직사각형의 탑이다.
이 아파트 역시 아라한 컴퍼니의 소유.
아라한 컴퍼니는 한국에서 태어난 회사다. 아라한 컴퍼니가 무섭게 성장하면서 경제, 정치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그 후로 인구가 무섭게 불어났다.
아이를 4명 이상 가진 사람들에게는 세금 면제라는 말도 안 되는 법률의 제정. 그리고 그 결과, 부자든 아니든 아이를 4명 기르는 것이 대세가 되어버렸다.
그뿐인가. 육아에 들어가는 모든 돈을 국가에서 책임진다. 그 뒤에는 아라한 컴퍼니가 있었다.
한국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고, 아라한 컴퍼니가 세계로 뻗어나가 세계 전체가 그런 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인구는 폭주를 거듭하여 아라한 컴퍼니는 우주 진출 계획을 세우며, 화성을 테라포밍(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을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과학적 작업)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 지구에는 120억이라는 인구가 들어차 있다.
안 그래도 좁았던 한국은 산을 평지로 깎아버리고, 도심지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래서 자연이 보존된 지역은 극히 일부이고, 그런 지역 대부분은 부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부자는 낮은 집에서 살고, 나 같은 서민은 오히려 이런 거대한 탑에서 살아가는 시대이다.
“어서 와라!”
메트로 타워에는 무려 20만여 명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중심에는 상가 같은 것이 만들어져 있다.
나는 상가에 있는 한 음식점 안으로 들어섰다. 내가 자주 오는 돈가스 전문 음식점이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왔구나. 집에서 라면이나 먹지 말고 자주자주 오렴. 돈 없으면 공짜로도 주마! 어디 너하고 보통 사이냐?”
“고마워요, 아저씨. 하지만 공짜로 먹는 것은 다음 기회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돈가스 곱빼기!”
“하하! 그래야지.”
근육질에 대머리의 아저씨. 인상은 험악하지만, 앞치마를 한 모습이 묘하게 귀엽다는 평가로 메트로 타워에 사는 아주머니들의 선망을 받고 있다고 한다.
독신. 현재 나이 서른다섯. 물론 외관은 마흔은 넘어 보인다.
그렇게 내가 식사를 할 무렵,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제 오후 세 시,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에 사는 박 군이 캡슐을 통한 게임을 하고 난 후 난동을 부려 주위의 기물들을 파손하고, 인명 피해를 입힌 후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박 군은 오랫동안 가상현실을 통한 게임에 심취해 있었고, 평소 언행이 이상했다는 주위의 제보에 의해 게임 중독증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앞으로 이런 일과 유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어 수사망을 확대한다고 하였으며…….」
꼭 저런 놈들이 하나 둘씩은 나온다니까.
캡슐을 통한 게임의 접속은 현실과 구분할 수 없다. 그런 진짜 같은 것들을 접하면서 사람들은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어지고, 종국에는 저렇게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미쳐 버리게 되는 것이다. 만들어진 세계가 실제의 세계라 믿으면서.
만들어진 것은 어디까지나 만들어진 것. NPC가 아무리 인간 같아도 그것은 어차피 정보로 이루어진 조각일 뿐, 진짜는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왜 그런 것일까?
물론 이번에 나온 ‘라이프 크라이’는 정말 현실 같은 게임이지만, 결국 게임이다. 나는 저런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너도 게임 많이 하면 안 된다.”
아저씨가 문득 나를 돌아보면서 말씀하셨다.
“저는 환상과 현실을 잘 구분한다고요.”
내가 저런 어린아이인 줄 아시나.
“잘 먹었습니다. 여기 돈가스 값이요.”
“그래. 잘 가라.”
“안녕히 계세요.”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갑갑한 강철의 세계. 그것이 지금의 지구다. 이 지구 위에서 나는 그냥 살아가고 있다.
사실 원하는 것도 없다. 친구라고는 몇 명 있지도 않다. 내가 비사교적인 녀석이기는 하지만.
휘이잉!
바람이 불었다. 메트로 타워 내부는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안에서 순환하게 되어 있기에 이런 바람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 바람을 느끼며 나는 내 집으로 향했다.
다시 게임에 접속할 시간이다. 그리고 다시금 환상의 세계를 즐길 시간이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 현실의 세계에서 탈피하여 환상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갔다.
삶의 외침이라.
그래, 이게 내 삶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