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 크라이-8화 (8/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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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

“시신을 가져왔다고? 어… 어디다 뒀냐? 아니, 썩지는…….”

“얼려 두었으니 썩지는 않았을 거예요.”

“뭐?”

“모르시죠? 얼은 것은 썩지 않아요.”

“허! 너 똑똑하구나. 그런데 어떻게 얼린 거냐?”

“마법의 도움을 받았죠.”

“허…….”

그는 입을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살아남으려면 똑똑해야죠.”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 좋아. 그렇다면 가르쳐 주마. 너도 들었겠지만 스카의 딸은 레나라는 아이다. 돈은 네가 그 아이에게 직접 가져다주거라. 네 녀석을 믿어보지.”

조합장은 믿어주지, 라는 얼굴이 아니었다. 마치 뒷조사를 하고, 도망가면 죽여 버리겠다, 라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나는 이 일을 완수할 것이다.

“그렇게 하죠.”

“스카의 딸은 여기에 살고 있지 않아.”

“예?”

“스카는 장기 출장을 온 것이다. 돈이 꽤 많이 필요했거든. 그의 딸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흔히 말하는 완치되지 않는 병이라는 것이지.”

“으음.”

“보통 신전에 가서 기부금을 내고 병을 치료하면 완치가 된다. 거의 대부분의 병은 그렇지. 하지만 신전이라고 해도 고치지 못하는 병이 있다. 그리고 그런 병은 꽤 많아. 듣기로 병의 신이 세상은 완벽하지 않아야 하기에 완벽히 고치는 병은 없게 한다, 라고 하며 그런 병을 퍼트렸다고 하지.”

그거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 세계의 신화 중의 하나이다. 이 세계에는 여덟 대신과 그들을 각각 보좌하는 2명의 하위신이 있다. 그러니까 대신 하나당 하위신이 2명씩 달라붙어 있다는 이야기다.

여덟 대신과 열여섯의 하위신이 존재하는데, 합쳐서 총 스물넷의 신들이 있다.

여덟 대신 중 하나인 이상과 균열, 병의 신인 하델아워드는 이 세상의 모든 이상과 균열을 관장한다고 했다.

그 의미와 이유는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는 병을 만들어내는 주체인 신이며, 동시에 병을 치료하는 신이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완벽히 고쳐지지 않는 병을 만들어냈다는 신화가 있다.

흔한 전래 동화로, 병의 신인 그가 모든 병을 고쳐 주자 사람들은 점차 그를 잊기 시작했고, 그것에 노한 그가 완치되지 않는 병을 만들어 퍼트렸다는 이야기이다.

재미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가 퍼트린 병 중에서 신성력으로도 치료가 안 되는 대표적인 질병은 바로 감기라고 한다.

“어디에 삽니까?”

“이 아래로 약 팔십 킬로미터쯤 가면 나오는 마을 펠텐에 살고 있다.”

“그 마을이군요.”

펠텐은 나도 가본 적이 있다. 맨 처음에 페텐에서 시작을 하고서 근처의 정보를 위해 가본 것이다. 다크 게이머에게 정보는 생명과도 같으니까.

“그래. 그 마을에 ‘무기와 용기의 집’이라는 곳이 있지. 내 옛 동료였던 ‘케달’이라는 놈이 세운 여관이지.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알겠습니다.”

“스카의 저축금은 총 팔백팔십이 골드다. 녀석의 사망금까지 해서 일천 골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조합장 한델은 있지도 않은 사망금을 말했다.

용병에게 사망금 따위는 없다. 죽으면 임무를 실패한 것으로 취급하여 돈은 지급하지 않는다.

용병 조합은 그렇게 죽어버린 용병의 가족에게 그 용병이 생전에 모아두었던 금액을 전해주는 일도 한다. 그 일에 신뢰가 없다면 조합은 성립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주머니는 가벼웠다. 안쪽에는 어음이 들어 있겠지.

그나저나 1천 골드인가.

현재의 시세대로 해서 현금화한다면 무려 1억이나 되는 엄청난 돈이다.

사실 나는 현실의 인간이다. 이걸 모두 현금화해서 팔아버리고, 그대로 캐릭터를 삭제한 후에 다시 시작하면 이익이다.

“그럼 다음에 다시 오죠.”

“제대로 해라.”

“알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돈 자루를 누더기 가방 안에 집어넣고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이것을 꿀꺽할 생각은 없다.

겨우 NPC, 만들어진 존재라고 생각하는 이 세계의 인간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 NPC인 스카에게서 마음을 느꼈다.

‘아아… 레나… 웃는 얼굴을… 다시… 다시… 보고 싶었…….’

그렇게 말하고 눈을 뜬 채 죽어버린 스카라는 사내를 위해서도, 나는 이것을 레나라는 아이에게 가져다주어야만 한다. 그게 내 마음을 배반하지 않는 일이며, 나의 각오이다.

***

“이런 걸 어디다 쓰려는 거예요?”

“시끄러. 만들기나 해라.”

내 말에 베리얼은 투덜거리면서도 기다란 상자에 냉동 마법을 걸고 있었다.

“알아요? 이거 비싸다구요.”

“알아. 외상으로 좀 해줘. 이번에는 안 깎을 테니까 걱정 마. 정 안 되면 몸으로라도 빚은 갚을 테니까.

“모… 몸으로요? 그,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이어이, 왜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거야? 너 무슨 생각한 거야?”

“엣? 아,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이상한 상상 하지 않았다구요!”

절대로 이상한 상상했구나. 이 녀석, 내가 몸으로 갚는다니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이 녀석, 설마…….

“너… 설마…….”

“아, 아니에요! 왕자님 옷을 입혀 보고 싶다거나 하지 않았다구요!”

했네. 확실히 이상한 상상 했어. 그런데 웬 왕자님 옷을 입혀? 뭐야, 그거?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너 나를 어떻게 하려고 한 거야?

“헉! 이…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면…….”

“안 된다는 거지? 알았다, 알았어. 비밀로 할게. 그런데 왕자님 옷을 입혀서 대체 무슨 일을 시킬 셈으로…….”

솔직히 궁금하다.

“와아악! 내… 냅둬요! 제 사생활이라고요!”

아니, 그러니까 그런 사생활을 입으로 내뱉으면 안 되잖아? 이미 사생활이고 뭐고 다 까발려졌잖아? 대체 무슨 사생활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 빨리해줘.”

내 말에 녀석은 얼굴을 아예 불타는 고구마처럼 만들어서는 궤짝에 냉동 마법을 걸었다. 사람이 하나 들어갈 정도의 튼튼한 궤짝이다.

“그럼 나중에 보자.”

나는 녀석의 머리를 비벼 주고는 외상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궤짝을 든 후 펜타자곤의 탑을 떠났다. 녀석은 내가 나갈 때까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왕자님 옷은 입혀서 어쩌려는 거야?

“머리 아파.”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궤짝을 짐수레에 싣고, 스카라는 사내를 묻은 곳으로 갔다.

시체를 파보니 얼음이 아직 그대로였다.

아직 가을 날씨라서 빨리 녹지는 않는군. 아니면 마법으로 만든 얼음이라서 그런 걸까?

“너무 얼려서 새파랗군.”

정말 괴기스럽다. 여기저기 피가 묻은 스카의 시체는 새파랗게 변해서 얼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별로 감흥은 없다. 발작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인데 말이다.

나도 담력이 꽤 높은 편이었나 보군.

콱!

냉동 마법이 걸린 궤짝에 시체를 넣고, 그대로 짐수레에 실은 후 단단하게 묶었다.

스카 씨, 미안하지만 좀 참으쇼. 내 능력으로는 이게 한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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