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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념怨念
그래서 나는 아직 그를 본적이 없다. 그래서 그를 대신해서 그의 수제자 벨레일이 마을을 이끈다.
하지만 나는 그도 본적이 없다. 펜타자곤의 탑에 가자 베리얼이 나를 반기었다.
“형! 어서...그게 뭔 꼴이에요!? 어디 전쟁이라도 치뤘어요?”
“전쟁을 좀 하고 왔지.”
나는 쓰게 웃었다. 지금 온 몸이 걸레짝이다. 게다가 상처는 [작은 생명 흡수]로 치료를 했다고는 하지만 여기저기 피딱지가 붙어 있고, 피칠갑을 했으니 상태가 좋아 보일 리가 없었다.
“스승님이신 벨레일 님은 계시냐? 일이 있다.”
“일이요? 그 전에 상처부터...”
녀석이 포션을 꺼내는 것을 보며 나는 입을 열어 단호하게 말해 주었다.
“치료는 나중이다. 일단 벨레일 님을 모셔오너라.”
내 서슬퍼런 기색에 녀석이 주춤 하더니 말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야...”
“그만. 이미 내려 와 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려는데 이미 왠 마른 중년인이 베리얼의 뒤에 서 있었다. 나는 그의 모습을 처음 본다.
인상은 냉막해 보인다는 것이다. 마른 얼굴에 치켜뜬 두 눈은 약간 치켜올라가 있어서 사납고 매서운 눈매다.
마치 매의 눈 같은 눈을 가진 그는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자였다. 푸른 로브를 걸치고, 양 팔에 각각 팔찌를 끼었다.
그리고 슬쩍 들어 난 팔목에 문신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마법사는 쓸대 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이다. 그런 마법사인 벨레일이 쓸데 없이 문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 문신도 뭔가 이유가 있겠지.
“스승님. 내려오셨습니까.”
녀석이 벨레일에게 정중히 마법사로서의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엄격한 스승인 것 같군. 하기는 그래서 녀석이 나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거겠지만.
“처음 만나는 군. 라임군. 만나서 반갑네. 알겠지만 나는 벨레일이라고 하지.”
풀 네임은 벨레일 E 벨라스티안 이다. 벨라스티안 가문의 차남으로, 본래부터 가문의 일은 등한시 하고 마법을 좋아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그 재능과 열의를 우연히 알게 된 펜타자곤이 알아보고는 제자로 받아들여 지금은 펜타자곤의 제자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능력을 지닌 수제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의 나이는 이제 서른 여덟으로, 얼마 후면 마도사가 될 거라는 이야기가 마을에서 떠돌아 다니고 있었다.
이 왕국 젤펜다임에 마도사의 칭호를 얻은 자는 겨우 열 다섯 뿐이다. 마법사의 수는 제법 많아서, 듣기로는 한 천여명 정도 된다고 한다.
베리얼처럼 견습 마법사까지 합하면 마법을 사용하는 자가 약 삼천은 넘는다고 들었다. 인구는 총 오백만의 왕궁으로, 군사의 수는 약 이십만이라고 들었다.
그런 젤펜다임에서 마도사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인재인 벨레일은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가 마도사가 된다면 권력구조가 약간 달라지게 될 테니까.
“처음뵙겠습니다. 몬스터 헌터 라임이라고 합니다.”
“자네는...참으로 인상깊게 싸우더군. 전사도 아니고, 사냥꾼도 아니야. 그래서 매우 즐거웠다네.”
“지켜보고 있으셨습니까?”
등이 오싹하다.
“가끔 발견 할 때가 있거든. 휴식을 취하며 숲의 여기저기를 바라보는 게 취미라네. 오거를 끌어 들인 것은 결계의 경고음 때문에 단번에 알게 되었지.”
“그렇군요.”
“그래서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왔는가?”
나는 사정을 설명했다.
“으음. 오거를 일으켰다?”
“예. 분명 그랬습니다.”
“그걸 오크들의 부락에다가 붙여놓고 왔단 말이지....”
그는 침중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곧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의 솜씨는 기가막히군. 오크의 부락은 언제 또 알아냈나? 흠..자네도 꽤 노련하군.”
차도살인의 계책은 내가 예전부터 자주 써 먹던 것이다. 간단한 듯 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나는 자주 써 먹어 왔다.
“그나저나 스스로에게 저주를 걸어 스스로 언데드가 되다니. 자네에 대한 원념이 아주 큰 모양이었군. 보통 집념이 아니야. 알겠네. 놈에 대한 일은 이쪽에서 준비하도록 하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네도 마을 밖으로 나서지 말기를 바라네. 놈이 결계 안쪽으로 들어 온다면 단번에 알 수 있으니 내가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네.”
“예.”
그는 그렇게 베리얼에게 무어라 지시를 내리고는 다시 빛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탑의 내부를 이동하는 마법인가? 아니면 공간 이동의 마법인가? 어느 쪽이든 과연 보통 마법사는 아니로군.
“화아.....스승님이 저렇게 말을 많이 하시는 건 처음 봤어요.”
“그러냐?”
“예. 보통 짤막하게 말하시거든요.”
“그렇구나.”
“참 그 석궁 수리 하실 거죠? 제가 해 드릴 께요.”
“응?”
“자잘한 상처나, 긁힌 자국을 처리하는 마법이 있거든요.”
“부탁하마.”
내 말에 녀석이 씨익 웃으며 석궁을 받아 들었다. 여기저기 긁히고, 엉망이 된 석궁 슬레이터. 몇일 만에 완전히 낡아빠진 모습이 되었다.
아직 기능에 문제는 없지만, 여기저기 상처 입은 게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마나여 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라. 이곳에 나 마나의 사역자 베리일이 있도다. 움직여라, 그리고 법칙이 되어라. 본체복원.”
벨레일이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고, 그 끝 부분의 구슬에 오른 손을 올리며 주문을 외운다. 녀석의 지팡이와 몸 사이로 마나가 꿈틀 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그것이 복잡하게 얽히더니 빛의 덩어리가 되어 지팡이의 구슬에 머물다가 광선처럼 석궁 슬레이터를 향해 뻗어져 나갔다.
으직으직.
석궁의 여기저기 부서진 부분이 천천히 재생 되어 간다. 그것은 신기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슬레이터는 전과 같이 새거가 되었다.
안쪽의 주 부품은 부서진 것이 없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베리얼이 설명해 주었다.
“이건 서비스에요.”
“고마워. 이건 이번에 새로 만든 사탕인 땅콩 사탕이지. 깨물어 먹으면 맛있으니 먹어 봐라.”
“땅콩 사탕이요? 고마워요 형!”
녀석이 기뻐하며 탕콩을 받아 든다. 그 모습을 보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나는 뒤돌아 나갔다.
“그럼 또 오세요!”
“그래.”
손을 흔들어 주면서 펜타자곤의 탑을 나섰다. 하늘을 보니 슬슬 어두워 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늘을 한번 봐주고는 걸음을 옮겨 아라한의 신전으로 향했다.
레벨을 올리고, 잠시 이 세계를 떠나 현실로 가야 겠다. 인터넷을 통해서 알아볼 것이 생겼으니까 말이야.
매일매일. 인터넷으로 이 세계의 정보를 모은 것 또한 내가 해야만 하는 일 중 하나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라한의 신전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