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 크라이-44화 (4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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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

어디선가 본 여자다. 아니. 여자라고 하기에도 어린 소녀다. 열여섯. 혹은 열 일곱 정도로 보이는 소녀.

겉 모습만은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녀가 눈물 자국이 남은 얼굴로 나를 본다.

“왜..왜 죽였죠?”

그녀의 말은 도움에 대한 감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되물음이었다. 그 되물음에는 원망과 슬픔, 그리고 고통과 고마움이 같이 섞여 있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죽이면 안 되는 건가?”

“그들은......저와의 계약자에요. 싫지만....그런 일을 당하는 것은 싫지만...그게 계약이었는데..”

“뭐?”

그녀의 말에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방금 전까지의 분노와 흥분이 빠르게 식어갔다.

“아........나는 이제..................”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그대로 눈을 감으며 쓰러졌다.

“이봐!”

그녀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기력이 쇄하여 기절한 것을 깨닫고, 급히 마법을 실행했다.

죽은 놈들을 언데드로 만들어 놈들의 장비를 놈들 스스로 들게 시키고, 그녀를 모포로 말아 등에 업고 은신처로 이동했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다. 화창한 점심 무렵의 시간에서 착잡한 마음을 끌어안고 걸음을 옮겼다.

타닥타닥.

은신처의 중심에서 모닥불을 피웠다. 소녀는 깨어나지 않는다. 응급처치로 생명 흡수의 마법을 사용해서 주변의 나무의 생명력을 뽑아내어 그녀에게 들이 부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명력을 들이 붓자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을 확인하고서 나는 자리를 잡고는 내가 직접 죽인 녀석들의 장비를 탈탈 털었다.

놀랍게도 내것 보다도 좋은 공간확장의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등에 매는 식의 갈색의 배낭으로 공간 확장이 내 것의 세배 정도는 된다. 이 정도면 트롤을 세 마리나 집어 넣을 수 있을 듯 싶다.

그리고 또한 녀석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 되는 장검과 둥근 라운드 쉴드. 그리고 큼직한 배틀엑스와 긴 장창도 특별한 물건이었다.

세 무기 전부 마력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보아 마법무구임에 분명하다. 그렇게까지 비싼 것은 아닐테지만 쓸만한 무기임에는 분명하겠지.

녀석들이 입고 있는 가죽 갑옷들은 별 다른 능력을 가진 것들은 아니었다.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나는 녀석들의 무기와 가방을 챙기고, 녀석들에게 옷을 입혀 대산맥의 아르혼의 안쪽으로 계속해서 걸어들어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수확이라면 큰 수확이다. 녀석들의 갈색 공간확장가방 안에는 이러저러한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돈, 식량, 약초, 포션, 그리고 지도 같은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웃기는 놈들이다. 경험이 꽤 있는 놈들이었는데 어째서 숲 한가운데에서 이 소녀를 범하며 놀고 있었단 말인가?

몬스터가 다가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꽈악.

손아귀를 꽈악 하고 쥐어 보았다. 상처는 생명 흡수를 이용해서 치료 했지만 아직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를 두쪽 내는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NPC라고는 하지만 현실과 같지 않은가?

나는 결국 사람을 죽인 것이다. 다른 게임들에서도 NPC를 죽인 적이 꽤 있었지만, 이런 느낌은 없었다.

“후우.........”

모르겠군. 정말 모르겠어.

타탁. 타탁.

타오르는 모닥불에 장작을 하나 더 넣고, 그대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 깨끗하고, 맑았다.

“맛깔나는 요리 만들기.”

스킬을 발동 시키며 요리를 만들었다. 만드는 요리는 돼기고기 볶음이다. 치익 하고 냄비가 잠시 끓어 오르더니, 돼지고기와 양념이 뒤섞이며 빛이 난다.

다 되었군. 아직 요리 스킬이 레벨이 낮아서 별 다른 능력이 요리에 부여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맛 없는 것을 먹는 것 보다는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냄비에서 음식을 펐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돌려보니 내가 구해준 소녀가 그 동그랗고 예쁜 보라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어났나?”

잠시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어디서 그녀를 보았는지 기억해 내었다.

스카의 딸 레나. 완치 되지 않는 병인 생명 유실이라는 병에 걸린 소녀다. 그 생각이 갑자기 났다. 그런가....왜 계약자 인지 알겠어. 생명 유실 때문인가.

“몸이...개운 하네요.”

“생명 유실 이라면 걱정 하지 마라. 내가 적당한 조치를 취했으니까.”

내 말에 그녀는 흠칫한 얼굴이 되더니 상체를 일으켰다. 아직도 나신인 그녀의 뽀얀 가슴이 달빛과 모닥불빛에 비쳐지며 색기를 발했다.

새하얀 둔덕에 분홍빛 유실이 내 눈을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어떻게 내 병을.......”

“기억 못하나? 너에게 유산과 유물을 가져다 준게 나였지.”

내 말에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뜨여진다. 나신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어떤 처참한 생활을 해 왔을지 알만 했다.

“당신.......라임....”

“그래. 라임이 내 이름이지.”

나는 돼지고기 볶음을 담은 접시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먹어둬. 배가 고플 거야. 생명을 채워 넣었다고 해서 허기까지 채워지는 건 아니니까.”

그녀는 내 말에 고기가 든 접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접시를 하나 다시 꺼내고, 냄비에서 고기를 전부 덜어 접시에 담았다. 누더기 가방 안에서 큰 수통을 꺼내 냄비를 대충 닦아내고 누더기 가방 안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식사를 했다. 매콤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양념에 질좋은 돼지고기의 맛이 괜찮다.

요리 스킬의 능력이 상당히 좋군. 그렇게 생각하며 식사를 끝내었다. 레나는 상체를 가릴 생각도 없이, 모포를 어깨에 두르고 조용히 식사를 했다.

“물이야.”

수통을 건네자 묵묵히 수통을 받아 물을 마셨다. 조용한 식사는 그렇게 한 동안 계속 되고 결국 끝이 났다.

그릇을 대충 닦아서 누더기 가방안에 넣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보랏빛 눈동자로 나를 본다.

그때 보았던 활기도, 명랑함도 그녀에게는 없다. 그런 그녀를 보자 가슴이 왠지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과는 무슨 관계지?”

내 말에 그녀는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 그리고 나의 눈을 피해 모닥불로 시선을 내렸다.

“계약관계에요. 저는 몸을 주고, 그들은 돈과 전투법을 가르쳐 주었죠.”

“돈과 전투법?”

“그래요. 이제 혼자 살아가야 하니까요. 더 이상 케달 아저씨에게 큰 부담을 드릴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몸을 판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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