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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
그렇군. 몬스터 헌터는 보통 사냥을 떠나면 한달간은 마을로 돌아 오지 않는다. 애초에 여자 용병이 낀 파티라면 모를까. 한달간 사내놈들만 지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여자를 같이 데리고 가는 놈들도 있다고 들었다. 여자 노예를 하나 사서, 훈련을 시키고 성노예로 쓰기도 한다.
노예는 마법에 의해서 제어되기 때문에 주인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했었지. 그런 식의 계약을 한 건가?
완전히 노예가 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기분 나빠. 기분이...아주 더러워.
“살아남기 위해서군.”
“예. 하지만 언제까지나 몸을 팔 생각은 없었어요. 게다가 그들 사이에서 같이 움직이려면 최소한의 훈련은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리 잘 가르치지는 않은 듯 싶군. 내 말이 맞나?”
내 말에 그녀는 침묵하며 모닥불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성격 좋고, 선의를 가진 용병이 흔할 리가 없다.
놈들은 최소한의 것만 가르치고, 다른 것은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끌고 다니며 성욕을 처리할 노리개로 썼겠지.
죽으면 안 돼니 치료는 해 줘가면서. 한 달에 300골드 짜리 노예인가? 싸군. 아무리 싼 노예라도 1천골드는 넘는다.
노예는 말보다도 비싸다. 노예를 굴려서 벌 수 있는 돈은 평생동안 얻을 수 있는 돈이니까 그만큼 비싼 거다.
놈들도 한달에 300골드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을 테지. 아니면 아예 치료도 안하고 데리고 놀다가 죽일 심산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 스스로에게 조소를 날렸다. 그렇게 살인에 대한 것을 정당화 하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다.
마음을 방어하기 위해서 죽음을 만한 이유가 있어서 죽었다. 라고 말하고 있다.
“크큭.”
스스로를 비웃고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넌 속았다.”
“그래요. 속았죠. 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아야 해요.”
그녀의 말에는 단호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고통스럽고, 슬픔에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단단하게 그녀를 지탱한다.
그녀는 왜 살아가고 싶어 하는가? NPC인 그녀는....대체 왜?
“아직 어린 아이인데.......말은 어른과 다를 바 없군.”
“당신도 어린 아이잖아요?”
“나 말인가?”
쓰게 웃었다. 그래 내 겉 모습은 열 여섯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나이가 열 여섯인 것은 아니지.
내 나이도 이미 스물이나 된다는 것을 그녀가 알까? 현실의 세계에서는 기술의 발달로 노화 조차도 느리게 오며 평균 수명이 90살이나 된다는 것을 그녀는 알까?
“동안일 뿐이야.”
내 말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슬픔과 공허, 삶에 대한 욕구로 차 있는 그녀의 눈을 볼수록 슬픔이라는 감정이 잔잔히 내 마음에서 퍼져 나간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동안 어떤 충동이 갑자기 생겨났다. 그것을 제어하기도 전에 나는 그것을 입으로 내뱉고 말았다.
“나는 네크로맨서지.”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의 생명 유실도 내가 그렇게 치료한 거야. 네크로맨서는 생명력을 직접 다루거든.”
나도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른다. 알 수 없다. 혼란이다. 하지만 이왕 한 김에 나는 말을 내뱉으며 손을 뻗어 옆의 나무를 쓰다듬었다.
"전능한 마나! 강대한 의지로 생명의 일탈을 일으켜라. 약간 작은 생명 흡수."
스킬마법이 발동하며 나무의 생명력을 빨아들인다. 그 생명력이 손안에서 녹색의 찬란한 빛을 내 뿜었다.
“이렇게 나무의 생명력을 뽑아. 네 몸 안에 채워넣었다. 신관들의 신성력 보다도, 마법사들의 마법 보다도 효과적이고 매우 간단하지.”
내 말에 그녀는 그 눈으로 나를 그저 담담히 본다. 과거 잠깐 본 그녀는 이제 거의 없고, 변화된 그녀의 모습만이 내 눈 앞에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열 여섯의 꿈 꾸는 소녀가 아니다. 세상을 알고 변해 버린 여인이 내 눈 앞에 있다.
“흑마법, 사령마법이라고 해서 사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거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유가 있어서 생겨난 것이며,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매우 큰 도움이 돼지. 그래서 나는 사령마법인 네크로맨시를 익혔다. 그리고 그 힘으로 너를 치료했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와 함께 간다면 이 마법을 가르쳐 주지. 그리고 네 스스로 대지 위를 걸어다닐 수 있도록 도와 주겠다. 나와 함께 가자.”
나의 말에 그녀늬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내 몸을 원하는 건가요?”
“아니.”
그리고 나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역시 아직 젊은 몸으로 여인의 몸을 멀리하지는 않아. 나는 고자도 아니고, 젊고 건강한 젊은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색욕 때문에 모든 것을 제쳐 놓지도 않지. 나는 나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면 여인도 마다하는 성격이니까.”
“원칙?”
“사랑이 없으면 안지 않는다 같은 어설픈 이야기는 아냐. 그저......서로 확실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관계는 싫어하지. 너를 돕겠다는 것에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아. 너 역시 내 곁에 있다가 힘을 기르고,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나도 된다.”
모닥불이 타닥타닥 하고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마침 조수가 필요 하 거든.”
혼자서도 잘 해 왔다. 조수가 이제 와서 필요할 것은 없다. 이건...그래. 내 심장의 안에서 퍼지는 내 마음의 변덕일 뿐이다.
“조수...인가요?”
“그래. 조수가 필요해. 그리고 말은 높이지 않아도 돼. 어차피 비슷한 나이대이니까.”
“좋아요. 아니. 좋아.”
그녀는 당차게 나를 바라보았다. 과연 스스로 몸을 팔기로 작정했던 여인 답다. 아까까지의 무기력함과 고통과 슬픔은 이제 그녀에게 없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결국 계약한 놈들과의 계약을 저버리지는 않은 그 강인한 심성이 독보인다.
그녀에게 실제적인 힘이 있다면 그녀는 화려한 꽃과 같이 화사하게 피어나겠지. 아니라면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 이름은 라임. 랭크 없는 자유 용병이야. 너는?”
“내 이름은 레나. 몬스터 헌터 스카의 딸 레나야.”
그녀는 이제는 고통도, 슬픔도 사라진 투명한 보라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문득 입을 열었다.
“한가지 묻고 싶은게 있어.”
“뭐지?”
“왜 나에게 잘 대해주 거야?”
그녀의 말에 나는 웃어 버렸다. 그리고 단호하게 대답해 주었다.
“내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고 있으니까. 바로 연민 때문에.”
난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레나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