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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결심
누더기 가방에서 시간 가속의 물약을 꺼내들었다. 어디 네놈이 나의 이 필살 마법 아이템 콤보를 맞고도 버티는가 보자!
녀석이 몸을 굴리면서 지팡이를 줍는 것을 보면서 바로 포션 병의 뚜겅을 따고 들이 마셨다. 쉬이익 소리가 나며 시간이 가속 되면서 모든 것이 느려 보인다.
놈이 아직 지팡이를 들고 막 일어서려는 그 모습에 달려들면서 번개와 같이 사마력이 넘실 거리는 본 엑스를 내리찍었다.
캉!
놈이 아슬아슬하게 내 본 엑스를 막아낸다. 그 사이에 발로 땅을 긁어 녀석의 안면을 향해 흙을 뿌렸다.
“큭!?”
녀석이 비틀 댄다.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느리게 보였다. 나도 상처투성이. 하지만 놈도 상처투성이다.
저 놈도, 나도 만신창이. 저 놈도, 나도 이미 죽음의 문턱을 밟고 있다. 하하하! 그냥 NPC가 아니라는 거로군?
너 역시 살아 있다고 외치고 있는 거냐?
“오크 메이지 하쿰! 네 녀석이 대단함을 인정하지. 하지만.....승자는 나다.”
내 말에 놈의 붉었던 눈이 제 색으로 돌아온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씨익 하고 웃었다. 놈의 그 웃음이 왠지 모르게 내 마음 속에 크게 박혀 들어왔다.
“인간! 너 역시 전사다! 하지만 승자는 나다!”
놈이 지팡이를 든다.
내가 도끼를 들었다.
녀석이 전면에서 일어서며 지팡이를 휘둘러 왔다.
앞으로 나서며 지팡이가 완전히 휘둘러지기 전에 어깨로 받으며 녀석의 앞에 섰다.
머리가 뜨겁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문득 계절이 겨울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녀석의 목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번쩍!
녀석이 내렸던 지팡이에서 녹색의 광채가 뿜어지는 것이 보였다.
내 도끼가 그대로 녀석의 목을 향해 나아간다.
빛이 나와 녀석을 감싸며 내 도끼의 날이 녀석의 목에 가 닿는 게 느껴짐과 동시에 문득 현실의 빌딩의 숲이 보고 싶어졌다.
콰르르르릉!
“라이이이이임!”
레나의 목소리와 거대한 폭음이 들리며 몸이 하늘로 떠오르는 것이 느껴져 왔다. 그 사이로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순간 이동.”
마지막 한번 남은 [생명의 수호자]의 힘이 번쩍이며 발동된다.
떠날 결심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
세상의 모든 것은 실로 그러하다.
달도 차면 기울고,
양이 차면 음이 되듯이.
모든 것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럴듯해 보이는 개소리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결국. 나는 살고. 그 용맹하던 오크 메이지 하쿰은 죽었다. 녀석이 최후에 쓴 마법이 뭔지는 모르지만, 녀석이 있전 자리로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 있었다.
그것도 거대한 식인 나무다. 오크 다운 마법이라고 생각하면서 레나의 도움을 받아, 남은 불사의 군대를 추려서 그 자리를 떴다.
“죽을 것 같아.”
온 몸의 근육이 너덜너덜하고, 여기저기 피가 흐른다. 거기다가 뼈도 몇 개나 부러진 상태이니 절대로 좋지 않다.
이대로 정신을 잃는 다면 필시 뒤질 것이 분명하다.
“내려놔라.”
[본 나이트]가 내 명령에 따라 들것 채로 나를 내려놨다.
“어..어떻게 해. 이렇게 다치면..이러면...”
레나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그 눈물을 매단 얼굴이 묘하게 예뻐서 아픔 와중에도 히죽 웃었다.
“하하. 괜찮아. 큭.......아직 안 죽어. 그리고 나는 네크로맨서잖아? 너를 두고 절대로 죽지 않을 테니 걱정 하지 마.”
그렇게 말해주고 옆의 나무에 손을 뻗었다.
“맞아. 그..그거. 그거가 있었지.”
“그래. 나에게는 생명흡수가 있으니까.”
자자.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진짜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해 버려야 겠군.
"전능한 마나! 강대한 의지로 생명의 일탈을 일으켜라. 약간 작은 생명 흡수.“
나무에서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그 생명력을 손에 든 체로 몸을 비틀었다.
우드드득!
“크아아아악!”
지독한 아픔. 번갯불이 튀기는 머릿속. 새하애지는 시야. 부들 거리는 나의 몸.
“허억. 허억.”
“괘...괜찮아? 괜찮은 거야?”
레나가 부들부들 떨면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후욱. 부러진 늑골을 맞춘다는게 정말 고역이로군.
파아아앗!
심장에 대고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두근두근. 심장의 고동과 함께 심장에서부터 뿜어지는 피에 담겨 생명력이 전신으로 내달려 간다.
부러진 늑골, 찢겨진 근육, 짖뭉개진 내장으로 생명력이 스며들어간다. 세포가 생명력을 받아 먹으며 몸 이곳저곳에서 재생을 시작한다.
죽어 버린 세포를 먹어치워 영양분으로 삼고, 혹은 혈관을 따라 배출하면서 다치고 상처 입은 상처를 치유했다.
부러진 뼈가 어느정도 들러붙고, 고통은 사라져 간다. 한시간동안 몇 번이나 생명력을 뽑아내어 흡수하자 내 옆의 나무는 그 생명력이 거의 없어졌는지 나뭇잎이 말라서 떨어지고 있었다.
“괜찮은 거야?”
눈물을 매달고, 당장이라도 울어 버릴 것 같은 얼굴로 레나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런 레나에게 손을 뻗어 레나의 얼굴을 매만졌다.
보드랍고 온기가 느껴지는 그 얼굴을 매만지며 말해 주었다.
“나는 괜찮아. 그러니 울지 마.”
“우..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
소리를 빼액 내지르며 아니라고 부정한다. 하지만 이미 레나는 그 예쁜 눈으로 보석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내고 있었다.
손으로 그 눈물을 닦아주었다. 화장도 없는 맨 얼굴이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레나의 얼굴을 만져 눈물을 닦아주며 웃었다.
“이렇게 울고 있잖아.”
“아..아냐 이건..이건....”
레나가 무어라 부정하려 한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쿡쿡 웃었다. 아아. 너는 정말 파릇파릇한 생명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구나.
“웃챠.”
몸을 일으켰다. 아직 여기저기가 저리다. 아무리 생명 흡수의 마법을 몇 번이나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몸이 다 나은 것은 아닌 모양이군.
“이..일어서도 괜찮은 거야? 응?”
꽈악!
“꺄..꺄앗!”
레나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레나를 껴안아 버렸다. 그 작고 부드러운 몸을 느끼면서 머리를 토닥였다.
“괜찮아. 자 괜찮지?”
내 말에 레나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레나는 내 품에 안겨 펑펑 울기 시작했다. 둑이 무너지듯이 눈물을 흘리며 내 품으로 더 파고드는 레나의 온기를 느끼며 하늘을 보았다.
어느덧 밤이 오고 있다. 한시간 가까이 울던 레나는 긴장이 풀어진 듯 울다가 지쳐 내 품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런 레나를 보며 빙긋 웃고 몸을 일으켰다. 주변에 함정을 설치하고, 나무들에게서 생명력을 뽑아내 다시금 흡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