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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死者) 전쟁의 시작
“그… 그렇지.”
“헤헷! 지금 걱정하는 거야? 내가 막 정신적 충격 먹었을까 봐? 내가 만들어진 ‘인형’이라고 생각할까 봐?”
정곡이다. 그런 나에게 레나는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빙긋 미소를 지으며 혀를 내밀었다.
“바보! 그런 건 의미 없다구. 내가 만들어졌다면 너 역시 만들어진 거야. 내가 절대신이신 아라한 님 덕분에 여기에 있듯이 너 역시 그런 거라구.”
“우아! 레나가 어려운 말 쓴다.”
“바보!”
퍽!
“쿠엑!”
레나가 내 머리를 두드렸다.
아프잖아! 그나저나 레나가 똑똑해진 건가? 으음!
“아야야! 농담했기로서니 때릴 건 없잖아. 알았다구. 너는 괜찮다는 거지? 그거면 돼. 그거면 좋아.”
나는 일어서서 레나에게 손을 뻗고는 그 작고 부드러운 몸을 꼬옥 안았다.
“더 이상의 것은 네 말처럼 의미도 없고, 필요도 없어. 이대로면 돼. 알았지? 그러니까 너무 멀리 가지 말라구.”
“으응.”
레나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녀의 얼굴이 금세 붉어져 있었다. 내가 갑자기 안아버리자 놀란 모양이었다.
그 얼굴이 귀여워서 레나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갔다.
쪽!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서 레나를 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눈이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다는 눈빛이었기에 충동적으로 더 깊은 입맞춤을 해버렸다.
부드럽고, 촉촉한, 그리고 달콤한 감각이 추억에 새겨져 간다.
@사자(死者) 전쟁의 시작
죽은 자와 산 자의 싸움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거의 대부분 사령 마법사들이 끼어 있다.
그들은 죽은 자를 움직이고, 산 자를 죽이려 든다.
그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다.
-역사서의 한 부분-
아라한 대신전을 나선 나와 레나는 주변을 가득 채운 몬스터들의 시체들을 볼 수 있었다.
불행히도 그 시체들은 공포 영화처럼 걷고 있었다. 수 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대형 몬스터의 시체가 여기저기 썩은 채로 걷고 있는 모습은 B급 호러 영화 그 이상의 박력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B급 영화에서는 저런 CG는 못 만드니까.
아라한 신전이 자리하고 있던 마을은 그야말로 완전히 쓸렸다. 여기저기가 파괴되었고, 그 잔해를 짓밟으며 언데드의 군대가 진군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멀쩡한 건물은 절대신 아라한의 신전뿐이었다. 이 신전만은 언데드가 가까이 오지 않고 비켜 가고 있었다.
아마도 시스템상의 이유 때문이겠지?
아라한 신전의 입구에서 완전히 나오지 않은 나와 레나는 언데들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
저 언데드들 모두 좀비로군. 느릿느릿하고, 몸에 힘이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수가 수만을 넘었다.
대산맥 아르혼의 몬스터들의 수는 추정 불가라고들 하지만, 내가 생각할 적에 대충 몇억쯤 될 듯싶었다.
왜냐하면 이 서대륙의 인구만 대충 1백억쯤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나라들이 대산맥 아르혼을 침범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수십억 정도의 몬스터가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나의 추측 때문이다.
“이거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기는. 돌파해야지.”
하이몰 백작성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현실로 나오기 위해서 찾은 마을이 여기다. 아라한 신전은 마을에만 있으니까.
그런데 벌써 여기까지 쓸렸다니! 내가 전에 활동하던 그 요새 도시가 이미 뚫렸다는 말이겠지!
“어디로 갈 건데?”
“하이몰 백작성!”
내 말에 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길 뚫고?”
“그래.”
“어떻게?”
“방법이 있으니 걱정 말라구.”
내 말에 레나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나는 스킬 마법 강마의 손을 사용했다. 그러자 곧 강마의 손이 내 주변에 나타났고, 나는 그 강마의 손을 이용해 나와 레나의 몸을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우앗! 이거 뭐야!”
“내 마법이야. 이걸로 하늘을 날아가자. 지속 시간이 무척 길거든.”
강마의 손. 지속 시간은 3시간. 그리고 마력을 계속 주입할 경우 마력을 주입하는 만큼 지속 시간이 늘어난다.
쐐에엑!
그렇게 나는 레나와 함께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래에서는 그야말로 검은 파도처럼 언데드의 군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수는 내 시야가 닿는 곳에만 수만 마리가 있었다.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도 언데드가 진군 중일 테니, 그 숫자는 상상을 불허할 것이다.
거의 수십만의 언데드가 움직이고 있다는 거로군! 하지만 내가 뿌려 놓은 정보들도 지금 움직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대로 젤펜다임 왕국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지!
“빠… 빨라아아아!”
“참으라구!”
강마의 손의 크기는 내 상체를 덮을 정도다. 즉, 1미터 정도의 크기다. 그런 크기의 손이 무려 4개.
하나당 1백 킬로그램을 들어올릴 수 있으며, 후려치면 웬만한 몬스터는 그대로 날아간다.
이리드를 수백만이나 쏟아 부어 업그레이드시켰으니 당연하지! 그렇기에 속도 역시 빨랐다.
게다가 강마의 손은 나의 의지에 의해서 사악한 힘을 내뿜어 적의 생기를 갉아먹고, 저주를 건다.
이 위에 추가로 다양한 마법을 덮어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한 좋은 마법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이동용으로 써야겠지!
“도착이야!”
한참을 날아서 드디어 하이몰 백작성에 도착했다. 이미 하이몰 백작성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사방의 대지를 까마득하게 메운 언데드가 전혀 지치지도 않은 채 하이몰 백작성을 향해 밀고 들어가고 있었다.
“장관이구나!”
일단 허공에 멈추어 섰다. 하이몰 백작성의 성벽의 높이는 무려 40미터나 된다. 일반적인 인간은 절대로 넘을 수 없고, 몬스터라고 해도 보통은 넘지 못한다. 마법에 의해서 건축된 그 성벽은 애초의 의도를 만천하에 내보이고 있었다.
파아아아!
성벽에서 30미터 밖으로 푸르른 반구형의 막이 생겨나 성 전체를 덮고 있었다. 마법의 장벽! 그것도 성벽을 마법진으로 삼아서 펼쳐진 거대 방어 마법 장벽이었다.
성벽은 연신 푸르른 빛의 연기 같은 것을 내뿜으며 장벽에 힘을 보내주고 있었고, 장벽은 언데드들의 육탄 돌격에 끄떡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콰르르릉!
성벽에 설치된, 약 10미터 정도의 기다랗고 기괴하게 생긴 무언가가 계속해서 거대한 화염의 구체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마법 장벽의 안쪽에서 밖으로 튀어나가더니, 언데드들의 가운데로 떨어져 내리며 폭발했다.
“뭐야, 저게…….”
“저게 전쟁이야.”
무시무시한 전투다. 성을 덮은 반구형의 마법의 장벽 주변으로 언데드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려 10여 미터나 되는 엄청난 시체의 산이 쌓이며 마법 장벽을 짓누르고 있었고, 그 시체를 또 다른 언데드가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있었다.
순수한 물량전이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