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 크라이-177화 (177/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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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합주곡

레나의 말에 나는 그저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자, 그럼 이 안쪽에 뭐가 있는지 가볼까?

쐐에엑!

그런데 그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퍼걱! 퍼걱!

그 소리는 내가 부리는 바포메트 소울 가드의 흉갑으로 이어져 흉갑을 부수었다.

바포메트 소울 가드는 추가로 장갑을 만들어 입히지 않았다. 덩치가 워낙 크니 만들기 어려워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바포메트 소울 가드의 전신을 두른 본 아머는 수십 개의 뼈를 사령 마법을 담아 이어 붙여 만들어낸 것. 망령의 힘까지 갑옷에 부여하여 보통의 화살로는 흠집도 낼 수 없는 것을 부수고 틀어박히다니?

“철시야.”

“철시라고? 그렇군. 거기다가…….”

“응. 마나를 담았어.”

보통 놈이 아니로군. 내가 사용하는 화살과 비슷하잖아? 저러면 바포메트 소울 가드의 본 아머를 뚫을 만도 하지.

쐐에에엑!

다시금 2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나와 레나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나의 오감력은 매우 발달되어 있다. 그것은 레나도 마찬가지.

채챙!

나와 레나는 화살을 쳐냈다. 묵직한 느낌의 충격력을 보니 과연 철시다. 게다가 마나도 담았다.

그러나 그래봤자 내가 레나에게 만들어준 프리징 소울 롱 소드와 나의 언데드 로드 본 액스를 어찌할 수 없지.

“누구냐!”

버럭 소리를 지르자, 저 멀리 죽은 나무의 가지 사이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날카로운 눈매에 차가운 눈을 하고 있는 그는 짙은 녹색의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단출한 레인저 복장으로, 숲의 사냥꾼 같은 이미지였다.

“언데드 마스터 라임?”

“그렇다.”

내 대답에 그는 나무에서 내려섰다.

꽤 먼 거리에서 마주 보고 있으며, 서로 그리 크게 말하지 않았음에도 의사소통이 된다. 나와 저 사내의 청력이 그만큼 발달한 까닭이다.

“실수했군. 나는 유저인 레이란이다. 다른 네크로맨서가 나타난 줄 알고 공격했지.”

“그렇군.”

레이란이라… 본 적이 없는데.

“따라와라. 길드 마스터가 보자고 한다.”

“호오? 어떤 길드가 여기에 있는 거지?

“이그젝션.”

사내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군. 이번에는 이그젝션 쪽에서 나보다 빨리 왔나? 아마 공작이나 백작 둘 중 하나의 의뢰를 받은 거겠지.

저쪽에서도 나처럼 생각한 자가 있을 것이고,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러 왔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믿어도 될까?”

“괜찮을 거야.”

내 말에 레나가 흐응! 하고 콧소리를 내며 블랙스티드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렇게 레이란이라는 레인저 유저의 뒤를 따라 우리는 이동했다.

곧 숲의 안쪽에 제법 넓은 공터가 하나 나타났다. 그 자리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몇 있었다.

일전에 겔크론의 던전에서 봤던 자들에다, 그 이외에도 내가 못 본 몇몇의 사람들이 다수.

아리엔과 아린, 아란 자매도 그곳에 있었는데,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러다 그들은 나의 접근을 알아차리고는 말을 멈추고 내 쪽을 보았다.

쿠우웅! 쿠우웅!

하기야 그럴 만도 하지. 내 뒤에 거대한 크기의 무시무시한 전투 병기, 바포메트 소울 가드가 있으니까.

“들어가라.”

아공간 주머니에 바포메트 소울 가드를 집어넣고, 10기의 소울 가드만을 대동한 채 캠프에 도착했다.

“이야… 이 사람이 소문으로 듣던 언데드 마스터… 아니, 음험한 학살자 라임인가?”

“실물은 처음이라구! 듣기로 이 사람 현실과 똑같은 모습이라던데.”

“헤이, 요 맨! 만나서 반가워. 나는 음유 래퍼 문라이트래빗. 그냥 문래빗이라고 불러줘.”

다채로운 사람들이 나에게 몰려들었다. 나는 간단하게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어서 오세요, 라임. 결국 당신도 여기로 왔군요.”

“내 스승님이 관계된 일이니까요. 그런데 이그젝션 길드 분들이 꽤 많이 오셨군요.”

현재 여기 모인 사람들의 수는 약 마흔. 하나하나가 모두 강력한 힘을 지닌 실력자로 보였다.

“저희 길드원의 팔십 퍼센트가 모였습니다.”

나는 아리엔의 말에 놀랐다.

그렇다면 이그젝션 길드는 다른 길드처럼 대형이 아닌 소규모의 친목 길드와 같다는 의미다.

요새 전문 길드들 대부분이 절반은 다크 게이머 짓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 소속원을 많게는 2천, 적게는 5백 정도 유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 이하로는 대부분이 친목 길드일 뿐.

그런데 이그젝션 길드가 하는 짓을 보면 친목 길드는 아닌데, 숫자가 그렇게 적다니…….

아마도 부족한 수를 커버할 정도의 실력자이겠지. 나처럼 말이야.

“그런 비밀을 가르쳐 줘도 되는 겁니까?”

내 질문에 아리엔이 살포시 미소 지었다.

“대부분이 아는 사실인걸요. 그런데 겨우 두 명이서 오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안쪽은 꽤 위험한데 어떻게 두 분만이…….”

아리엔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 네크로맨서는 네크로맨서가 상대하는 법이죠.”

그래. 어차피 네크로맨서는 네크로맨서가 상대해야 한다. 특히 언데드의 경우 나의 통제력이 더 강력하기 때문에, 네크로맨서의 장점 중 하나인 언데드를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이용까지 가능한 내가 여기 온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온 게 아니지. 물론 상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은 약점이지만.

“그런데 전부 강하신 분들이군요. 그리고 저보다 먼저 와 있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베리얼의 도움이 있었죠. 그 아이가 안내해주었습니다.”

“음… 베리얼이?”

“예. 이번 일은 보통의 일이 아니니까요.”

그녀의 말대로다. 이번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젤펜다임 왕국 전체가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ME’가 하지.”

그때 아까 문라이트래빗, 그러니까 월광토끼라고 자신을 밝힌 사내가 다가왔다. 전형적인 한국인 청년으로, 조금 평범하게 생겼는데 왠지 말투가 미국인스러웠다.

“에에… 그러니까 젤펜다임의 정규군 오십만이 현재 움직이고 있다구. 그들 중 이십만은 이미 세 백작령의 중요 요새로 이동을 완료, 몬스터들과 박빙의 전투… 이예~”

뭔가 더 이상하게 들려.

“그리고 ‘YOU’의 정복 공작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지. 모두 파티를 즐기듯 날아오고 있다구.”

내가 뿌린 떡밥에 낚인 자들이 많은가 보군.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지. 그리고 전쟁의 합주곡이 널리널리 퍼질 거야.”

월광토끼의 말은 기묘한 것이었다.

음유시인이라더니, 뭔가 시적인 표현을 하는군.

“그래서 왕국에서는 이번 일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서 우리를 보낸 겁니다. 그리고 이번 일이 성공하면 정식 작위와 영지를 얻게 되겠지요. 다시 한 번 요청합니다, 라임. 우리와 함께해주세요.”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안타깝군요. 그건… 당신이 퍼스트 디자인 휴먼이기 때문인가요?”

나는 그녀에게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나의 진실 중 하나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디자인 휴먼. 실제적으로 디자인 휴먼이 나타난 지는 딱 20년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유전자의 해석이 완료되고, 유전자 치료가 가능해지면서 인류는 자신들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그 실험의 결과로 완성된 도해를 이용해 20년 전부터 디자인 휴먼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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