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작의 전
@시작의 전
시작을 하기 전의 준비 단계,
혹은 전초전이나 탐색전은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다.
준비가 부족하다면
패배하게 될 테니까.
-준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던 차원 서기관 제가르고크의 말-
“그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인격은 숫자의 조합인 프로그램으로 만들기에는 용량이…….”
인간의 뇌는 동물적 감각 기관과 그 안에 자리한 시냅시스에서 전기 신호를 만들어내는데, 바로 그 전기 신호로 인한 뇌 세포의 자극이 인격을 만들어낸다.
즉, 인간의 자아란 수천조의 세포의 전기 신호가 유동하며 만들어지는 복잡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만큼 인격이란 육체의 영향과 전기 신호에 의해서 변화하는 뇌의 형질에 따라 여러모로 바뀌기에 그만큼 변수가 많고 불확정적이다.
큰 충격을 받아서 미쳐 버린 인간, 심장 이식 후 성격이 뒤바뀐 인간, 어떤 사고로 인해 백팔십도 달라진 인간.
그 모든 것이 인간의 자아란 그렇게 단단하지 않으며, 정신과 육신 그 2가지의 합일에 의해서 태어남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인격을 프로그래밍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그것은 극적으로 말해서 빌딩 하나 정도의 하드웨어가 아니라면 인간의 인격을 잉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겠군. 네 말대로라면… 지금의 나는 프로그램인가.”
“예, 지금의 당신은 프로그램. 그리고 당신의 본체는 지금 잠을 자고 있지요. 이쪽 프로그램의 기억과 경험, 감각. 그 모든 것은 당신 본체의 뇌로 직접 전송되고 있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다른 게임들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낸 아바타를 인간이 조종하니까요.”
“하지만 그 경우 주체는 다르다. 인간의 뇌파에 의해서 아바타가 원격조종되고, 그로 인한 감각을 피드백으로 받는 경우니까. 결국 타 게임들의, 타 가상공간의 아바타는 원격조종되는 인형에 불과해.”
“그래요. 그런 점에서는 다르지요. 이 ‘라이프 크라이’ 안에 존재하는 우리는 인형이기도 하지만, 자아를 가진 것이니까. 다르게 말하자면 거울에 비친 그림자, 그것이 지금 이 안의 우리입니다.”
“시적인 표현이로군.”
“당신도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을 테죠. 이 현실감, 이 확실한 감각. 지금의 기술로 과연 이것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 완전히 이어져 있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 그래서 결론은 뭐지?”
그녀의 눈동자는 이지적인 빛을 띠고 있었다.
“아라한 컴퍼니에 어떤 비밀이 있을까, 라는 거예요. 그들은 왜 우리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왜 가상현실에 집착하고, 안드로이드를 만들었을까요? 그것이 인류의 꿈이기 때문에? 아니, 아니에요. 그들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 많은 일들을 해왔다고 저는 믿어요.”
그녀의 입술이 닫혔다. 절대적인 확신을 가진 그 얼굴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거가 없지는 않군. 나 역시 아라한 컴퍼니의 실험의 희생자 중 하나이니까.”
그래. 근거가 없지는 않다. 추론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
“세상의 기업들은 모두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발전합니다. 하지만 아라한 컴퍼니는 달라요. 그들은 그들의 이윤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그들은 실제로 전혀 쓸모도 없는 부분에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고 있어요.”
“용케 거기까지 조사했군.”
“저 역시 디자인 휴먼이니까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너는 퍼스트 디자인 휴먼은 아니야. 하지만 나이가 맞지 않아. 디자인 휴먼이 공식적으로 태어난 것은 이십 년 전.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때는 십 년 전이었다. 그러면 너는 열 살에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는 건가?”
20세기와 21세기 때만 해도 학교의 과정은 초등학교가 6년, 중학교가 3년, 고등학교가 3년이었지만 지금은 초등학교가 4년, 중학교가 2년, 고등학교가 2년이다.
20년 전부터 이 제도로 유지되어 왔다. 8살에 입학, 나이 열여섯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즉, 이 녀석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나이가 열넷이 되어야는데, 공식적인 디자인 휴먼은 20년 전에 태어났다. 4년이라는 시간이 비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녀석이 나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다면… 그건 공식적으로 태어난 디자인 휴먼이 아니라는 소리가 된다.
공식적으로 태어난 디자인 휴먼보다도 무려 4년은 먼저 태어난 셈이다.
“후훗! 그렇죠. 그럼 어떻게 된 일일까요? 월반?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내가 도주한 후 다시 실험을 시작했다, 라는 가설도 떠오르는군.”
“그 진실은 직접 알아보세요, 라임.”
아리엔은 내 앞에서 수수께끼를 내는 듯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 여자도 상당히 개구쟁이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군.
청순하고 조용한 이미지였는데 확 달라져 버렸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이 떠오르는군그래.
“좋아. 그렇다면 내가 알아보도록 하지. 쉰 지 오래되었지만 그 정도는 가능하니까.”
“라임, 제가 당신을 안 것은… 육감이에요. 나와 비슷하다는 동질감. 당신은 저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말이에요. 그래서 당신을 찾아낸 것도 육감에 의거했죠. 사실 자료상으로는 당신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그 어떤 기록도, 자료도 없었으니까.”
“그렇겠지. 나는 일을 허술하게 처리하지는 않아. 육감이라… 기억해두지.”
“그래서… 다시 한 번 제안할게요.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어요?”
“그 전에 묻지. 네가 길드 마스터냐?”
“예. 제가 바로 이그젝션 길드의 마스터예요. 그리고 저의 길드는 저와 같은 연구소 출신의 사람들이죠.”
“같은 연구소라……. 그 말에 이미 힌트가 드러나 있군.”
“그런가요? 후훗!”
아리엔은 연분홍빛 입술을 기분 좋게 그려 내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대답은 노다.”
“왜… 왜… 거절하시는 거죠?”
“너는… 모를 거야. 너는 그 ‘연구소’라는 곳의 친구… 아니, 가족이겠지. 가족이 있으니까. 하지만 말이야, 내 가족은 이미 모두 죽어버렸어.”
그래. 내 가족은 이미 모두 죽었다. 그러니까 더는…….
“그런 의미다.”
“잠깐만요! 당신은… 당신은 그녀를 받아들였잖아요!”
그녀? 아아, 레나를 말하는 건가.
“특별해. 내가 먼저 손을 뻗었거든.”
몸을 돌렸기에 아리엔이 어떤 얼굴을 한지 모른다. 하지만 멈추지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걸음을 옮길 뿐이다.
“깔깔깔! 그게 정말이에요, 월광토끼?”
“그럼! ME는 꽤 많은 곳을 돌아다녔단 말씀! 음? 헤이요! 우리 마스터는 어떻게 하고 혼자 왔지?”
“곧 올 거야. 레나, 가자.”
“응? 벌써 가? 이 사람들 되게 재미있어.”
“갈 시간이야. 아니면 일을 해결할 동안 이 사람들하고 있을래?”
그것도 괜찮겠군. 아무래도 레나와 같이하면 목숨을 걸어야 할 때 그녀가 위험하니까. 아니, 레나도 이제 안드로이드의 육신이 있으니까 여기에서 죽는다고 해도 현실로 되돌아갈 뿐인가?
“갈 거야! 또 떼어놓을 생각 하지 마!”
레나는 그렇게 외치더니 나에게 파파팟! 달려왔다.
이 녀석도, 참.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그렇게 꽉 조이지 말… 쿠엑!”
이 녀석! 날 죽일 셈이냐! 목을 조이고 있어!
“컥컥! 야! 날 죽일 셈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