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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이 정도면 도움이 되겠지.
레나와 나는 바포메트 소울 가드의 양어깨에 섰다. 바포메트 소울 가드보다 키가 큰 몬스터도 있지만, 이 녀석이 내가 만든 언데드 중에서 가장 강하니까.
죽음의 대지에 들어선 후 진군하면서 멀리서 터지는 폭발을 발견했다. 엄청난 빛과 소리, 그리고 공기의 파장이 여기까지 다가왔다.
멋지군! 진짜 전쟁이야.
아공간 주머니에서 평범하게 생긴 금속 반지를 하나 꺼냈다. 평범해 보이지만 내가 직접 제작한 마력철을 이용해 만든 반지이다.
“영혼의 조각 원념의 의지, 나의 생명과 의지를 부여해 여기에 너를 소환한다. 사악한 힘의 유령의 손. 숙련된 연금술과 야장술을 이용한 마법 무구 제작!”
번쩍! 하고 사악한 힘의 유령의 손이 반지에 인첸트되었다. 이 반지를 끼고 있으면 이것에 담긴 사악한 힘의 유령의 손을 사용할 수 있다.
아직 내 능력으로는 강마의 손을 반지에 담을 수 없기에, 예전에 사용하던 사악한 힘의 유령의 손을 반지에 담았다.
“레나, 이리 와.”
“응?”
바포메트 소울 가드의 왼쪽 어깨에 있던 레나는 높이 뛰어 내 옆에 떨어져 내렸다.
“뭐야, 그건?”
“네 반지. 손을 이리 줘.”
레나의 고운 손이 앞으로 내밀어졌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잡고 그 감촉을 음미했다. 그리고 레나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그걸 끼면 네 스스로도 하늘을 날 수 있을 거야. 너의 마나를 잡아먹으니까 여력을 계산해서 사용해. 시동어는 사악한 힘의 유령의 손.”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는 거야?”
“나도 성장했으니까. 그리고 명심할 게 있어.”
“뭔데?”
“나와 같이 움직여야 하고, 절대로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우리는 한 팀이야. 알았지?”
“그거야 당연하지! 걱정 마.”
“그래. 너를 믿어. 가자.”
강마의 손이 나를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레나 역시 내가 준 반지의 힘을 이용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작됐다.”
“응.”
레나와 내가 하늘로 날아올라 본 것은 거대한 전쟁이었다. 수십만의 생명과 수십만의 죽음이 부딪치는 그 전쟁은 아름다웠고, 또한 처참했다.
“공격!”
쿵! 쿵! 쿵! 척! 척! 척!
언데드의 군대가 움직였다. 수십만이 격돌하는 전장의 뒤쪽에서 또 다른 언데드 군대가 등장하자 연합군에서 여러 가지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하지만 무시했다. 나를 설득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형!”
그런데 그때, 위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다수의 마법사들이 나보다도 더 높은 상공에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베리얼!
“너…….”
“저… 저건 형이?”
“아아, 내 힘이지.”
언데드를 지배하는 힘! 그리고 언데드를 개조하여 강화하는 힘! 그것이 내가 가진 능력 중 가장 강력한 것이다.
베리얼은 긴급히 밑으로 통신을 날렸다. 새로 다가오는 10만의 언데드 출처에 대한 것과 공격하지 말라는 것.
“도와주러 오신 거군요?”
“도와줘? 아니, 이번 일은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었어.”
내 말에 베리얼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럼 십 분 뒤 진입해줘요. 지금 대붕괴 마법을 연성 중이니까.”
“알았다.”
나는 대답하고서 레나와 함께 뒤로 물러섰다. 하늘로 솟구쳐 오른 베리얼은 엄청난 마력을 발휘하며, 다른 마법사들과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마법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빛이 퍼지고, 마나가 파도가 되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하늘에 생겨나기 시작한 거대한 마법진은 입체적인 구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무려 서른다섯의 마법사가 하늘에서 마법진의 각 축을 담당하며, 마법의 언어를 쏟아내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그리고 곧 시작되었다.
“절대적 파괴의 심판!”
거대한 마법진에서부터 거대한 빛의 기둥이 뻗어져 네크로맨서들이 세운 여섯 탑의 마법진을 강타했다.
퍼어어어어어엉!
네크로맨서들의 마법진을 보호하는 마법 장벽이 빛의 기둥과 부딪치며 강력한 폭발을 사방으로 뿌려 냈다.
근처에 있던 언데드들이 그 위력의 여파에 나뒹굴고 흩어지며 찢어졌다. 또한 수천이나 되는 언데드가 단번에 가루가 되고, 거대한 마법 장벽 역시 균열을 내며 부서져 갔다.
거대한 천 년의 거암이 가루가 되듯 마법 장벽은 그렇게 부서졌다.
압도적인 파괴. 그렇군. 서른다섯의 마법사가 연성해야 하는 다중 마법진인가. 멋진 기술이군.
“공격하세요!”
베리얼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연합군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켄타우로스, 그리고 라스 가드의 고렘 병단이 앞으로 진군했다.
쿠웅! 쿠웅!
15미터나 되는 거대한 방패를 앞세우고, 20여 미터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창이 휘둘러졌다.
고렘의 숫자는 겨우 1천도 안 되지만, 그들이 일렬로 서서 앞으로 나아가며 무기를 휘두르자 언데드의 육신은 마치 모래처럼 부서지며 흩어져 갔다.
고렘들은 각각 약 20여 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서서 진군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병사들이 창검을 들고 나아갔다.
콰릉! 콰릉!
뒤쪽에서 크로커다일의 등에 매달린 거대한 대포가 빛을 폭발시켰다. 거대한 원형의 에너지 구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그대로 언데드들의 뒤쪽에 터지며 부딪쳤다.
우르르! 하고 대지가 진동하고, 순식간에 수백의 언데드가 갈가리 찢겨져 사라지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 물량 그 자체는 3배나 차이가 나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명백했다.
“이상하군.”
내 중얼거림과 동시에 하늘에 떠 있던 35명의 마법사들의 마법이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며 지상의 언데드를 부수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뭐가?”
그런 나에게 레나가 물어왔다.
“왜 네크로맨서들은 나서지 않지?”
“응? 정말 그러네?”
“언데드만으로는 저 군대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야. 그런데 왜… 네크로맨서가 없는 거지?”
설마 이 마법진은 그저 하나의 미끼일 뿐인가? 이미 여기에서 철수했다는 건가? 하지만 왜 그렇게 했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어떤 예감… 절대적인 미래의 불안감에 대한 생각.
“피해야 해!”
“무슨 소리야, 라임?”
“레나! 나를 꽉 잡아! 베리얼!”
나는 빠르게 공기를 가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마침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베리얼에게 도달하여 녀석을 낚아채고는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와앗! 무… 무슨 짓이에요!”
“마법사들에게 말해! 군대에게 말해! 빨리 도망쳐야 한다고!”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이상하잖아! 네크로맨서가 만든 곳인데 네크로맨서가 없어! 언데드만이 경비를 서고 있단 말이다! 너무 쉽다! 녀석들이 어떤 녀석들인데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처리할 것 같아?”
“그럼…….”
“함정이라고! 마법진을 구성하던 탑이 무너졌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거야!”
“하지만 지금… 아……!”
“벌써 시작된 건가?”
저 멀리서 어마어마한 힘의 파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부서진 마법진에서부터 거대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