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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엄청나잖아!”
그것은 거대한 기사였다.
혈기사. 그렇게 부르는 것이 좋을 거대한 존재는 압도적이었다.
피의 구름은 망토의 형상이 되어 혈기사의 등에 매달려서 꿈틀거렸다. 어깨에는 삐죽한 뿔이 돋아나 있고, 전신은 빈틈없이 혈광으로 번쩍이는 금속의 갑옷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전체적으로 악마를 형상화한 듯한 모습의 혈기사는 크기가 80여 미터나 되는 무지막지한 녀석이었다.
그런 혈기사가 달려드는 정령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촤아아악!
금속 건틀릿의 표면이 꿈틀거린다 싶더니, 무수히 많은 촉수 같은 것이 뻗어져 나오며 달려드는 정령들을 후려쳤다.
콰르르릉! 하고 진동음이 일어나고, 정령들이 폭발을 일으키면서 소멸해갔다. 동시에 혈기사의 거대한 손이 쩌억! 하고 벌려졌다. 그러자 그 손에서부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붉은 광선이 슈아앙! 하는 소리를 내며 뿜어졌다.
“끄아아악!”
그 빛은 순식간에 수백의 사람들을 휘감았다. 폭발이나 그런 것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엄청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앗!”
사람들의 온몸이 들끓어 올랐다. 또한 피부가 쩌적 하고 갈라지더니, 피가 거품을 내며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피가 기화되며 사람들은 말라비틀어져 죽어버렸다.
그렇게 기화된 피는 혈기사의 손으로 날아들어 흡수되었다.
“미치겠군.”
엄청난 위력이다. 저것이 비밀 병기란 말이지. 큭! 스승님을 구출할 방도가 아니라, 스승님에게 죽을 사람들을 걱정해야 되겠군.
좋은 수가… 그래! 아직 데스나이트가 남았잖아. 마법의 효과는 계속되는 건가?
“나의 명을 듣는 언데드는 물러서고, 그중 데스나이트는 나에게 와라!”
나는 강한 의지를 실어 외쳤다. 그러자 의지는 그대로 이 세계의 시스템에 영향을 주고, 나의 뇌파는 명령 체계가 되어 데스나이트를 움직였다.
푸확!
내가 놈들에게서 빼앗은 데스나이트 1백 기. 단 한 기도 부서지지 않았다. 최초에 이 지하에 들어올 때 끌고 온 녀석들은 진즉 부서졌지만, 새로 얻게 된 데스나이트는 아직 하나도 부서지지 않았다.
그것들이 귀화를 피워 올리며 내게로 달려왔다.
히이이잉!
유황의 숨결을 뿜으며 지옥마는 붉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말 위에 탄 검은 해골 갑옷의 기사들 역시 해골 투구 안의 어둠 속에 자리한 붉은 흉광을 번쩍이며 나를 보았다.
“이대로는 안 돼. 그러니까 너희들을 변형시키겠다.”
[허락한다, 군주의 대리자.]
“허? 너희들… 말할 수 있었냐?”
[본시 불가능하다. 우리는 우리의 한(恨)에 사로잡힌 자들. 그 한에 사마법을 합해 우리는 죽음에서 움직인다. 우리의 이성은 언제나 한 안에 있어서 고통을 받지. 하지만 그대 군주의 대리자가 그 속박을 풀었다. 위대하신 사자군주의 대리자여, 너의 명을 내려라. 그로써 우리의 한을 풀어다오.]
언데드는 죽은 자들. 이성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있었던 것이다. 살아생전의 이성이.
그나마 망령화된 것들은 이성을 가지고 있었다. 혼이 정신을 담으니까.
“너희들 보통의 데스나이트가 아닌 거냐?”
[보통의 데스나이트의 의미란 없다. 나름의 이유가 있기에 데스나이트가 되는 것이다. 명을 내려라, 대리자! 우리의 검은 너의 명을 따르고,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한을 풀리라!]
한이라. 그래, 사자가 움직이는 것은 한 때문이지.
“좋아. 시작하지.”
나는 지하 공동의 가장 외곽의 구석에 있었고, 지하 공동의 중심에서는 계속해서 엄청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혈기사는 아직 몸이 제대로 적응되지 않는지 약간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위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하지만 혈기사의 움직임이 느린 덕분에 연합군은 그 공격을 어느 정도 잘 회피하며 반격하고 있었다.
지하 공동이 터무니없이 넓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리 넓지 않았다면 연합군은 진즉 몰살했겠지.
저기다가 1백 기의 데스나이트를 추가하면 분명 도움은 될 터다.
“신기(神機)의 제작!”
강력하게 이미지하며 신기(神機)의 제작을 사용했다. 그러자 사마력이 빠져나가며 데스나이트의 갑주가 변화했다.
우우우우우우우!
아까보다도 더 위엄차게, 그리고 흉험하게 모습이 바뀌었다. 검었던 해골 갑옷은 검붉은 색이 되어 번뜩이고, 전신에 가시가 난 듯한 그 모습은 위압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멋이 있었다.
“가라!”
[그대의 명을 따르리!]
모습이 바뀐 데스나이트가 지옥마를 달리며 허공을 질주했다. 다른 데스나이트의 무구 역시 뒤바꾸어 보내버렸다.
그 후 나는 포션을 꺼내어 마시고, 저 멀리를 보았다. 데스나이트가 날아다니며, 데스 마나 블레이드를 두른 대검을 휘둘러 혈기사의 몸을 두드리고 있었다.
콰쾅!
마스터급 캐릭터의 공격은 무섭다. 마나 블레이드의 공격력은 강철을 무 베듯이 썬다. 웬만한 마법은 그대로 베어서 소멸시키는 위력이 있는 것이 마나 블레이드다.
마스터급 캐릭터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마나 블레이드의 길이가 검의 길이의 50퍼센트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1시간 이상 유지시킬 수 있어야 한다. 데스나이트들은 그런 면에서 보면 상급의 마스터 캐릭터다.
게다가 지옥마는 허공을 자유자재로 질주한다.
그런 1백 기의 데스나이트가 공격하자 혈기사의 촉수가 성컹! 성컹! 잘려 나가고, 본체 역시 공격당해 여기저기가 갈라지며 부서져 내렸다.
“좋아!”
그사이에 연합군 측의 유저들이 나섰다.
“우리도 질 수 없지! 간다!”
“우오오! 나의 필살기를 받아라! 나의 주먹은 하늘을 울리는 주먹! 경천일신권!”
뭐야, 저 무협틱한 기술 명칭은?
한 명의 사내가 도포를 휘날리며 천장까지 높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직선으로 떨어져 내리며 주먹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압!”
콰릉! 하고 사내의 전신에 충격파 비스무리한 뭔가가 생겨나 요동을 쳤다.
뭐야, 저거? 만화를 너무 본 것 아냐?
“합!”
쾅! 하고 혈기사의 투구를 정통으로 때렸다. 그러자 거대한 혈기사의 투구가 금이 쩌억 가며 갈라졌다.
“나의 필살기도 있다고! 죽음의 추종자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힘을 봐라!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인간을 버린다! 우하하하핫!”
인간을 버려서 어쩌려고? 라고 의문이 들어보니 정말 인간을 버리고 있었다.
슈와아아악!
불의 왕과 인간을 버린다고 소리친 놈이 번쩍! 소리와 함께 합체가 되었다. 녀석의 몸은 불이 되어 거대해지고, 불의 왕은 인간형의 불의 정령이 되어버렸다.
-정령 합신! 누가 이 나의 힘에 도전하겠느냐!
쿠아아아! 하고 거대한 화염이 회오리치며 혈기사를 향해 쏘아졌다.
그런데 그때 혈기사의 망토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