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뢰
나는 막 ‘라이프 크라이’에 접속하려고 했단 말이다!
그런 내 생각은 무시하고 레나는 냉큼 신발을 꺼내 신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신발을 꺼내 신었다. 지금 나는 헐렁한 면바지 하나에 티셔츠만 걸치고 있지만 뭔 상관이랴.
“그런데 어디 가려고?”
“이쪽에 온 김에 이쪽 음식 잔뜩 먹고 가자. 응?”
“에휴! 알았어.”
나는 마지못해 승낙하고서 레나와 함께 집을 나섰다.
어디 보자, 그럼 오랜만에 아저씨네나 갈까.
“내가 자주 가는 음식점 있으니까 그리로 가자.”
“응? 뭔데?”
“돈가스 전문점이야. 소스랑 고기가 끝내주지.”
막 걸음을 떼려는데 레나가 옆에 착 달라붙어서는 팔짱을 꼈다.
얘가 지금…….
“헤헤! 좋다아.”
“에휴! 그래, 좋냐.”
나는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약간 부끄럽기는 하지만… 뭐 어때.
“그런데 여기는 정말 신기해. 이것저것 많이 있구.”
“여기도 사람 사는 세계인데, 뭘.”
‘라이프 크라이’는 비록 만들어졌지만 자아 카피, 인격 복사를 통해서 만들어진 세계이기 때문에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또 하나의 현실이지. 그러니까 비슷할 수밖에. 사람이 사는 데는 어디든지 비슷하니까.
“어서 옵쇼. 어? 오랜만이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어… 그런데 뒤에 분은?”
오랜만에 찾아온 단골집. 일본식처럼 조리대 앞에 손님이 앉아서 밥을 먹는 곳이다. 그런데 그 조리실에 못 보던 여성이 한 명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며, 검은 머리를 뒤로 넘겨 묶은 차분한 인상의 미녀였는데, 그녀는 앞치마를 하고 머리에 작은 수건을 동여매고 있었다.
“하하! 이번에 새로 들였단다. 정말 일도 잘하고 착하지 뭐냐. 한나, 인사해. 단골이야.”
“안녕하세요, 한나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이쪽은 제 친구예요. 이름은 레나.”
“안녕하세요, 레나예요.”
레나가 꾸벅 인사를 했다.
“호오! 예쁜 여자 친구인데? 그래, 드디어 여자 아이에게 관심이 생긴 거냐? 응?”
“아저씨도, 참……. 그나저나 언제나처럼 정식으로 두 개 주세요.”
“흐흐! 이 녀석이 빼기는……. 좋아. 조금만 기다리거라. 한나, 정식 두 개.”
“예.”
한나라고 불린 미녀는 조용히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쁜 언니다.”
레나의 말에 나는 풋 웃었다.
“왜 웃어?”
“너도 충분히 예쁜데 왜? 샘나냐?”
“우씨!”
내 말에 레나가 흥분해서 화를 냈다.
그나저나 저 미녀 누님 뒷목에 접속 코드가 있는 것을 보니 리셉티클이로군.
“아저씨도 리셉티클을 구입하셨네요.”
“이벤트에 당첨되었지, 뭐냐. 맨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지금은 얘가 없으면 곤란할 지경이야. 혼자 살던 홀아비라서 어찌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래요?”
나는 레나를 힐긋 바라보았다.
왠지 한숨이……. 이 녀석은 별로 도움도 안 되고, 집안일도 꽝이라서.
“뭐야, 그 기분 나쁜 눈초리는?”
“에? 아무것도 아냐.”
“뭐냐고요! 응? 빨리 안 불어?”
“켁… 케켁! 놔… 놔줘.”
헉! 레나가 사람 잡는다.
“아하하! 너네 둘 사이가 좋구나. 자, 이거라도 먹고 있어라.”
아저씨는 새우튀김 4개를 접시에 담아주셨다.
서비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한나가 일은 정말 잘해. 내가 가르쳐 준 것을 하루 만에 능숙하게 익혔더라니까. 정말 한나를 보면 나도 늙었다는 게 느껴져.”
“아저씨, 나이 드신 건 맞… 아야!”
콩! 하고 머리를 맞았다.
아야야야!
“이 녀석이 못하는 말이 없어!”
“우물우물! 우아! 맛있어요!”
“하하! 레나라고 했었나? 내가 한 요리가 맛이 없을 리 없지. 이 녀석이 얼마나 까다로운 녀석인데?”
아저씨의 손가락질에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그런데 더 기분 나쁜 것은 레나도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이다.
아니, 이 녀석이!
“내가 뭘 어쨌다고!”
“몰랐어? 라임 엄청나게 까다롭잖아!”
“그럼, 그럼. 이 녀석이 우리 집에 식사하러 온 지 벌써 몇 년이라서 지금에야 조용하지, 맨 처음에 왔을 때는 뭐가 그렇게 불평불만인지…….”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어이구! 안 그랬다고 또 우기고 있네. 이거 안 되겠군.”
“헤에! 라임이 그랬구나.”
이… 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모함을 하는 거야!
“다 되었습니다.”
그때 한나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의 손에 음식이 들려 나왔다.
“감사합니다.”
“하핫! 맛있게 먹어라.”
레나와 함께 젓가락을 들었다.
적당하게 잘려진 돈가스 위에 소스가 뿌려져 있고, 옆에는 된장국이 하나. 일본식과 한국식을 합친 돈가스다. 고기는 노릇노릇 잘 튀겨져 있고, 바삭 하고 씹으면 약한 후추의 향과 고기의 맛, 그리고 소스의 맛이 어우러져 맛이 있다.
“맛있어!”
레나가 깜짝 놀란 듯 말했다.
그럼, 맛있고말고.
“하핫! 우리 한나가 아주 일을 잘하지.”
“아저씨도 게으름 부리시면 안 되겠는데요?”
“당연한 말 아니냐!”
그때, 드륵! 하고 다른 사람이 들어섰다.
“어서 옵쇼!”
아저씨는 새로 들어온 손님을 상대했다. 그러는 동안 나와 레나는 맛있게 식사를 계속했다.
“아, 맛있게 잘 먹었다. 그럼 많이 파세요!”
“오냐.”
그 후, 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섰다. 레나가 다시금 팔짱을 끼며 찰싹 들러붙어 왔다.
“맛있었어.”
“그럼 내 단골인데. 후식은 무엇으로 할까?”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사줘!”
“니가 애냐…….”
나는 혀를 차면서도 아이스크림을 사주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레나의 헤실헤실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즐거웠다.
아아, 이 맛에 여자 아이를 사귀는 걸까? 나도 참 주책이군. 생긴 건 이래도 내 나이가 벌써 서른둘인데.
“헤헷! 라임 정말 좋아!”
레나의 귀여운 말에 나는 약간 멍해져 버렸다.
이렇게 귀여운 소리를 해대다니, 정말 어쩔 수 없구먼.
“레나, 잠깐 여기 봐.”
“응?”
쪽!
나는 기습적인 키스를 해버렸다. 그러자 레나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그렇게 귀여운 소리 하면 참을 수 없다구.”
“라… 라임.”
“자, 가자.”
멍하니 선 레나의 손을 잡고 싱글벙글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레나의 손은 따뜻했다.
@의뢰
유명한 장인에게는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보통 이야기-
“어이어이.”
이거 좀 미친 듯.
“정말이야?”
이리드가 이제는 억을 돌파했다.
뭐냐? 이 엄청난 이리드의 숫자는? 인간을 초월해버린 거냐, 나? 물론 혈기사를 잡을 때 이런저런 엄청난 활약을 하기는 했지. 그렇다고 해도 억을 돌파하면 어떻게 해?
무려 1억 1천 5백만의 이리드가 쌓여 있었다.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이리드였다.
내 레벨이 지금 75인데 이걸 단번에 120까지 올릴 수 있는 양이었다.
휘유! 미치도록 엄청난 수치잖아? 레벨 120대의 캐릭터는 이 세계의 NPC로 치면 마스터급이다.
“어떻게 할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