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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살자 베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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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합니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마 마검사이실 줄은.”
공작가의 기사 중 한 명이 예를 갖추어 나에게 말을 건네었다.
나는 도끼를 쓰니까 마부사(魔斧士)겠지. 그런데 마부사는 어감이 좋지 않군. 그냥 마전사가 낫겠다.
“마검사라기보다는 마전사겠죠.”
“그렇군요.”
“일단 저는 안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식솔들을 대피시기를. 레나, 가자!”
“응!”
살아남은 자들을 내버려 두고 저택의 안쪽을 향해 움직였다. 안쪽에서는 아직 폭음과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다. 성 밖의 군대가 지금 막 문을 통과해 들이닥치고 있었으니까. 소란을 일으킨 녀석들도 얼마 후면 물러나게 될 테지.
그러나 그건 습격자 놈들도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형의 고렘까지 사용하여 소란을 부려서 얻으려는 목적이 있을 터.
암살인가?
헤이론 공작의 암살이야말로 가장 먼저 할 만한 일이다. 우선 그걸 생각하며 움직일까.
“엇차! 이건 내가 가져야지.”
부서진 고렘 중 한 기를 아공간 주머니에 챙기고 날아올랐다. 레나 역시 내가 준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날아올랐고, 우리는 공작의 내성 저택의 가장 높은 곳의 벽을 박살 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처리해라!”
우리의 등장과 동시에 처리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앞을 보니 아까 아래의 복면인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놈들이 검에 마나 블레이드를 생성하고 달려들고 있었다.
좀 하는 놈들이로군? 그래봤자지!
“강마사악의 창! 작은 불꽃! 몰아치는 바람!”
시동어만으로 사용 가능한 마법의 3가지 조합이다! 먹어라!
쿠와아아아!
검은 불꽃이 회오리가 되어 앞으로 뻗어나갔다. 그에 놀란 녀석들이 급히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녀석들은 내 마법에 노출되었다.
“끄아악!”
온몸이 찢기며 불타는 모습은 과연 끔찍한 것이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런 마법이! 조합 마법을 사용하는 자인가! ‘대가’가 이곳에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미안하지만 아직 대가는 아니다.”
나는 나불거리는 은색 복면인에게 바로 도끼를 던졌다.
“마법 장벽!”
쩌엉! 하고 도끼가 허공에서 튕겨 나왔다.
하지만 마법 장벽 역시 부서졌군. 이때가 기회지.
“이놈… 그 정도로… 크악!”
허공에서 빙글 돌은 도끼는 놈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그에 푸확! 하고 피가 튀는 것이 매우 잔인했다.
“내 도끼는 마법의 도끼거든.”
“이… 이놈!”
쩌적! 쩌저적!
상처 부위가 빠르게 얼어붙으며 검은 연기를 뿜어냈다. 바로 내 도끼의 또 다른 능력들이 발휘된 것이다.
휘릭휘릭! 척!
나는 허공을 날아 손에 되돌아온 도끼를 들고 녀석에게 다가갔다.
“어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냐?”
“말할 것 같으냐!”
“그럼 죽어.”
나는 퍽! 하고 머리를 부수고 걸음을 옮겼다. 안쪽에서 전투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직 상당히 많은 놈들이 남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잖아.”
“이런 놈들은 꼭 뒤통수를 때리거든.”
내 말에 레나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잔인해.”
“그럴지도……. 서두르자.”
고개를 끄덕인 레나는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누구냐!”
“확실한 치명타!”
나는 막아서는 놈에게 위웅! 하고 소리를 내는 도끼를 들어 후려쳤다. 그렇게 놈의 무기를 박살 내고, 그대로 녀석의 머리를 쪼개면서 계속 달렸다.
레나 쪽을 보니 그녀의 검이 깔끔하게 심장을 꿰뚫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과연 레나로군.
그렇게 몇 명을 처리하며 내달렸다. 본래라면 아이템을 챙기느라 바빴겠지만, 레나도 있고 하니 지금 이 상황에서 아이템 챙기게 시간 좀… 했다가는 그녀에게 칼 맞겠지?
“크크큭! 이봐, 이봐! 공작 전하! 힘을 내보라구! 약하잖아!”
복도를 지나자 상당히 널찍한 공간이 나왔다. 거실로 쓰이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개의 푹신해 보이는 의자도 있고, 벽면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그림도 걸려 있었다.
대충 1백 평 정도의 널찍한 공간에는 여러 구의시체가 뒹굴고 있었고, 몇 명의 사람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내가 아는 자도 있었다. 마법사 메자이, 그리고 헤이론 공작과 랜서드였다.
그런 그들의 반대편에는 검은색 광택이 도는 전신 철갑으로 완전하게 중무장한 자들이 다섯이 있었다.
복면인의 시체는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지만, 그중 전신 철갑의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는 다섯 기사와 닮은 복장을 한 시체는 없었다.
강자라는 거군. 그럼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검은 기사들의 앞에 선 녀석이다. 저 녀석… 설마…….
“뭐야? 저쪽은 처리를 맡겼을 텐데…….”
녀석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려졌다. 두 손에는 두툼한 철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그것에 뾰족한 가시가 박혀 있었다. 두 팔 역시 튼튼하고 단단한 금속 갑옷이 둘러져 있고, 몸에는 그저 가죽으로 만든 하드 레더를 걸치고 있을 뿐인 자.
“응? 푸하하하하하핫!”
제길! 그놈이 맞는가 보군.
“어이, 이런 데서 볼 줄은 몰랐는데? 너 젤펜다임에 있던 거 아니었냐?”
“이쪽으로 이사 왔거든. 그쪽 동네가 살기가 힘들어서.”
“그래? 마침 잘됐군그래. 과거의 빚을 조금 갚을 수 있겠어. 안 그런가, 음험한 학살자 라임?”
“닥치시지, 베헤만. 그 더러운 주둥이를 어디에서 나불대는 거지?”
하필이면 이 재수 없는 새끼를 여기에서 만날 줄이야.
“흐흐흐! 그래. 그게 내 이름이지. 광살자 베헤만! 그게 내 이름이야!”
녀석이 포효하며 두 손을 추켜올렸다.
나는 피와 살점이 엉겨 붙은 역겨운 철장갑을 들어올린 녀석이 낄낄거리는 소리에 속이 뒤집어졌다.
@광살자 베헤만
살인 중독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정신 질환의 하나이다.
하지만 어떤 학자는 그것은 정신병이 아니며
인간 그 자신으로서의 진화 중 하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살인 중독증-
찰캉! 찰캉! 찰캉! 찰캉!
녀석은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 철장갑으로 박수를 치니 철이 부딪치는 소리와 정말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하! 하! 하! 하! 오랜만이야, 라임. 이런 데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그래, 그 대장장이가 너였나 보군? 네가 대장장이 직업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녀석의 얼굴은 그 미치광이 같은 행동과 사상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평범하다. 약간 가는 인상의 회사원 같은 얼굴을 한 녀석이 기괴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나불거렸다.
“그만 꺼지시지. 과거처럼 호된 맛을 보고 싶나?”
“호된 맛이라! 그거 좋지. 나는 죽이는 것도, 죽는 것도 아주 좋아해. 크크큭!”
“미친놈.”
내 입에서 저절로 쌍소리가 나오게 만드는 놈은 이 녀석뿐일 것이다.
“크큭! 미쳤다니? 나는 아주 멀쩡해. 이 세계는 우리들이 이렇게 놀라고 만든 세계가 아니었던가? 응? 욕구의 충족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