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추어졌던 비밀
“내가 가보도록 하지.”
내가 사는 집은 아파트처럼 생긴 길쭉한 건물이다. 1층에는 상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엘린의 무기와 방어구점이 있다. 주상복합의 건물이랄까?
물론 상점은 엘린의 상점뿐. 남은 공간은 전부 주거용이다.
“누구십니까.”
문을 여니 한 명의 기사가 완전무장을 한 채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무장한 병사 3백여 명 정도가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고, 마법사로 보이는 자들이 다섯 정도 있었다.
보통 일은 아닌 것 같군.
“대장장이이자 마법사인 라임 맞나?”
반말이라. 거기다가 적의도 있다.
“맞습니다만.”
“신고가 들어왔다. 더러운 사령 마법사로서 이 도시에 산다는 것은 죄악이다! 체포하라!”
그 말에 마법사 다섯이 마력을 움직였다.
호오! 그러니까 나를 체포하기 위해서 오셨다? 내가 사령 마법사라는 신고가 들어왔다는 말이지?
확실히 사령 마법사는 공적 취급이지. 그 존재성이 제대로 알려지면 쫓겨서 사냥을 당해야 하는 처지다. 그래서 사령 마법사는 대부분 음지에 숨어 있고, 음지의 조직과 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랑고트 왕국에서 사령 마법사가 공식적으로 등용된 것은 그야말로 이례적인 일로, 주변 왕국들이 그것을 빌미로 공격해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주변 국가들이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젤펜다임 왕국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를 봤기 때문이다.
하여튼 사령 마법사는 척결의 대상. 그래서 신고가 들어와서 나를 잡으러 왔다는 말이렷다?
“당했군.”
헤이론 공작이 이 일을 주도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라면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하지 않겠지. 이건 분명 그놈이 했을 거야.
“베헤만 자식…….”
이런 식으로 물고 늘어지겠다는 건가? 나를 열 받게 하는군.
“죄인은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기사가 물러서고 다섯 마법사가 빛이 이는 지팡이를 들며 다가섰다.
포박 마법의 한 종류인가? 하지만 사람을 잘못 봤다.
“마력 파장!”
손을 내밀며 마력 수치 100에 배울 수 있는 마법 ‘마력 파장’을 시전했다. 그러자 우르릉! 하고 몸에서부터 강대한 마력의 파장이 일어나 사방으로 파도처럼 뿜어져 나갔다.
“으아악!”
마법사들이 튕겨져 나가고, 병사들까지 뒤로 튕겨져 나갔다.
“누가 나보고 사령 마법사라고 하던가?”
“크윽! 증거가 있다! 만약 아니라면 너의 마나에 맹세를 해봐라!”
쳇! 마나의 맹세까지 들먹이면 곤란한데?
설정상 마나의 맹세를 저버리면 마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건 유저들에게도 통용되는 이야기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라이프 크라이’의 절대 법칙 중 하나다.
제길! 진퇴양난이군.
마나의 이름에 맹세코 나는 모든 마법을 다룬다. 같은 식으로 빠져나갈까? 그런데 그게 잘 통할지 모르겠군.
“잠깐. 아우스트 경, 그는 간교한 자요. 정확하게 질문하는 게 좋소. 말하라! 마나에 걸고 맹세하여 사령 마법을 익힌 적이 없다고 말이야!”
그때, 다시 일어서며 재정비하는 병사와 기사, 그리고 마법사들 사이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이 목소리… 그리고 저 얼굴…….
“사우전드소드?”
이놈이 언제 또 여기에 와 있었지?
“너… 캐릭터를 되살렸군?”
“하하하! 겨우 그 정도 생각밖에 못하는 건가? 일전에는 신세를 졌다, 라임.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녀석이 검을 꺼내들었다. 검에서 마나 블레이드가 줄기줄기 뻗어져 나왔다.
제길! 캐릭터 이름만큼 검 쪽에 꽤 특화된 놈이란 이야기군.
“네놈이 있으니 내 정체를 숨길 수는 없겠군. 레나! 가족들을 모아!”
젤펜다임 쪽으로 건너가서 다시 이동할 수밖에 없겠군.
“나와라!”
아공간 주머니에서 20기의 데스나이트가 튀어나왔다.
내가 개조하여 더욱 강력해진 데스나이트가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드러내며 데스 마나를 퍼트리기 시작하자, 히익! 하고 놀란 마법사들의 질린 얼굴이 보였다.
“하하하하! 그래! 그거다! 그런 모습이 바로 너 라임의 진실된 모습이지! 공격해!”
그 말에 사방에서 약 10명의 유저들로 보이는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흥! 이 정도로 나를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다 나와라!”
쿠웅!
어딘지 모르게 드래곤의 모습을 닮은, 이족 보행에 쌍수의 거대한 괴물이 땅을 딛고 섰다. 그 키가 6미터에 달하고, 온몸에는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장착시킨 금속의 비늘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언데드 드래고닉 솔저도 전부 잃지 않았지! 꽤 남았단 말이다!
쿠오오오오!
“죽여라!”
언데드 드래고닉 솔저가 유저들을 향해 두툼한 손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콰앙! 소리가 나며 유저 한 명의 몸이 옆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푸화아아악!
언데드 드래고닉 솔저는 황산 가스를 입으로 뿜어냈다.
언데드 드래고닉 솔저의 원형은 본시 트라간트. 녀석들은 광석을 먹어치우며 발화하기 쉬운 가스를 체내에 저장하고 있지!
화르르륵!
“피해!”
쿵! 쿵!
언데드 드래고닉 솔저가 앞으로 나아가자 유저들이 뒤로 물러났다. 병사들은 도망친 지 오래고, 기사와 마법사는 저 멀리서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쯧! 네놈 때문에 또다시 거처를 버려야겠군.”
1기의 언데드 드래고닉 솔저와 20기의 데스나이트를 앞에 두고 사우전드소드 놈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네놈 덕분에 죽을 뻔했다! 그 원한을 잊을 것 같냐!”
“어차피 게임 속에서 죽는 거면서 원한 운운하다니, 참 할 짓 없는 놈이군.”
“흐… 게임 속에서 죽는다고?”
녀석이 기괴하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아직도 모르는구나.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저 게임일 뿐이라고?”
“여기가 완전하게 만들어진 세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우리의 정신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뇌와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도 말하고 싶은 거냐?”
“호오! 그걸 어떻게 알아냈군?”
“나름의 정보통이 있어서.”
“크큭! 이봐, 네가 보기에 나는 살아 있냐?”
이 새끼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NPC의 정신을 다운로드해서 리셉티클에 부여한다. 그로써 안드로이드가 완성되지.”
“그 이야기는 또 왜?”
다 아는 이야기를 나불거리네. 시간 끌기인가? 그럼 공격 명령을…….
“그렇다면 말이야, 그 반대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뭐?”
“지금 이 세계의 우리는… 정확히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우리의 생각과 기억은 뇌로 전송되고 있지. 아주 고등의 인형술과 같은 거야. 안 그래? 그런데 말이지, 여기의 정보를 현실의 리셉티클이라는 육체에 불어 넣는 게 가능하다면 말이야. 아예 현실의 나를 지우고 여기로 완전히 전송해서 정보로서의 나, 정신체로서의 나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거냐!”
“으하하하하하! 현실의 나는 죽었거든! 불치병이었어! 그래서 평생 침대에 누워 있다가 죽어버렸단 말이다! 지금의 여기에 있는 나는 정신만이 남은 유령일 뿐이야. 일전에 말했잖아? 이곳이 평범한 게임의 세계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말이야. 여기에서의 죽음은 나에게 진정한 죽음이다! 하지만 이미 정보의 생명체가 되어버린 나는 죽음에서조차 부활할 수가 있거든! 으아하하하하하하! 이 게임은 보통의 게임이 아니다! 나와 같은 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불사의 생명체를 만들기 위한 실험장이야! 그리고 너는 그 실험의 방해물이지, 라임! 아니… 퍼스트 디자인 휴먼이라고 불러줄까!”
“이 새끼…….”
여러 가지 이야기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충격이 내 뇌를 강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를 악물고 할 일을 했다.
“공격해라!”
의문은 나중에! 우선은 적을 죽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