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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들의 움직임
“왔어?”
집에 와보니 레나가 거실의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었다.
아니, 이 녀석은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빈둥거려?
“야! 너는 돌아오자마자 누워서 고양이 흉내냐?”
“좀 봐줘. 다섯 달 동안 고생했으면 충분한 거 아냐?”
“에휴! 말을 말자. 다른 사람들은?”
“다들 체력 훈련 한다고 연병장에서 달리기하고 있어.”
“너도 해!”
“내버려 둬요. 난 알아서 잘하니까. 이래 봬도 마나 트레이닝은 계속하고 있다고.”
“내가 말을 말아야지.”
레나가 마나 트레이닝을 계속하며 마나 파워를 늘리고 있는 것은 안다. 저렇게 누워서 계속 마나를 순환시켜 마나 파워를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무협 소설로 치면 내공을 계속 끌어 모으는 것과 같다.
하지만 무협에도 나오듯이 내공만 강하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다. 내공을 받쳐 줄 외공이 있어야지!
“너 육체 수련을 등한시하다가는 큰일 난다.”
“알고 있네요. 오늘만 쉬게 내버려 둬, 좀.”
“에휴…….”
저 녀석, 점점 게으른 고양이처럼 변한단 말이야. 뭐, 그래도 군살이 생기지는 않아서 다행…….
“험험!”
나는 헛기침을 하고 집을 나와서 상단의 본사로 쓰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이린은 그 본사 옆에 대장간을 차리고 요새 제법 명성을 떨치고 있다지?
길을 걸으며 아직도 눈이 가득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랑고트 왕국은 1년 중 3분의 1은 눈으로 뒤덮여 있다. 덕분에 민간인들은 추위를 막기 위한 집을 짓는 데 능숙하다. 냉기를 차단하고 온기를 오랫동안 보존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터득했기에 그들의 집은 독특하다.
그런 거리를 구경하면서 상단의 본사에 도착했다. 이 랑고트 왕국 특유의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제법 큰 5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고, 그 옆의 높지 않지만 널찍한 대장간에서 열기가 후끈후끈 뻗어나가고 있었다.
“제법 크게 했군.”
엘린이라면 내 이름이나 스승님 이름을 잘 팔았겠지. 지난 5개월간 제법 자리를 잡은 모양이야.
“여어… 나 왔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상단주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엘린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나를 보고 있었다.
“뭐야? 소식도 없이 언제 온 거야?”
“이제 숲에서의 수련은 슬슬 그만두어도 될 것 같아서 돌아왔지. 장사는 잘돼가?”
“장사 걱정은 하지 말라구. 랑고트는 여러모로 문명이 낮아서 특히 무기 장사가 잘되더라니까. 전사들이 아이린의 무기라면 아주 그냥 껌뻑 죽던데? 너도 무기나 좀 만들어봐.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거야.”
“무기 장사만 하는 거야?”
“아니! 네 이름을 팔아서 마법사들을 좀 고용했지. 사령 마법사 조합에서 농업 개혁을 위한 환경 조성을 시작했다잖아? 그래서 나도 농지를 대량으로 사들여서 환경 조성을 했지. 이미 사들인 가격보다 땅값이 세 배나 뛰었다구! 지금 되팔아도 이익이지만, 내년에 수확된 곡물로 더 큰 이익을 얻을 거야.”
“그거 잘됐네.”
“그 외에도 네 충고대로 여러 유통업에 손을 댔어. 네 이름을 대니 만사형통이던데! 곡물, 주류, 필수품, 광물 등의 유통업에 뛰어들어서 생산자와 계약을 하고, 유통을 위한 상행단을 조직해서 지금 활동 중이야.”
“어이, 그 많은 기본 자금은 어디서 난 건데?”
“네 스승님이 주시던걸?”
“못 말리겠군.”
나는 혀를 찼다. 여하튼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막대한 부를 축척할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게다가 귀족들인 전사들에게는 아이린의 무기를 뇌물로 바쳤지. 모두 눈이 돌아가던데?”
“뭐, 이곳의 무기가 그리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
질 좋은 광산은 많지만, 제철 기술이 다른 나라에 비해 그리 발달하지 않은 곳이 이 랑고트 왕국이다.
강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왕국. 그렇기에 강국으로 남은 왕국.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음에도 이 왕국이 존속하는 이유다.
그런 이 왕국에 새로운 생명을, 새로운 문명을 퍼트리는 것이 바로 스승님과 사령 마법사의 역할이 될 것이다.
나야 뭐 그사이에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는 수준이지만.
“알게 모르게 네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어. 네 이름하에 진행되는 계획이 많아.”
“뭔 소리야, 그건?”
“네가 네 스승님께 건의한 게 여러 가지라며? 지금 그중 몇몇 개가 진행되고 있고, 벌써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어. 네 스승님은 이미 사령 마법사들의 왕이야. 그 누구도 그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지. 듣기로는 마력 수치가 400을 넘으셨다며? 누가 감히 네 스승님께 도전하겠어? 하지만 네 스승님의 사후가 문제지. 그런데 지금 네 이름으로 여러 가지 일이 진행되어서 그들의 시선이 너에게 모아지는 중이야.”
“이야… 이거 권력 다툼인가.”
여기의 NPC들이 살아 있는 현실 사람들의 인격을 복사해서 재구현한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지만… 어쩜 그렇게 현실 같냐. 아니, 여기는 이미 또 하나의 새로운 현실이겠지.
내가 사실 그렇게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이 퍼스트 디자인 휴먼으로서 아라한 컴퍼니의 실험의 실패와 성공의 기로에 섰던 녀석이고, 신분 세탁까지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녀석은 아니다. 내가 없어도 아라한 컴퍼니는 디자인 휴먼 계획을 계속했고, 지금은 디자인 휴먼이 합법화된 지 20년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를 조작하여 더 나은 두뇌와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는 현실에서 내가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
물론 나는 퍼스트 디자인 휴먼으로서 그 무지막지한 실험에서 살아남은 대가로 다른 이들보다 능력이 뛰어나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인세를 초월한 천재나 능력자는 아니기에, 아라한 컴퍼니를 무너트릴 정도는 아니다.
또한 무슨 권력 투쟁이니, 비련의 슬픔이니 하는 것까지 느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지금 충격적인 느낌이다. 나를 중심에 두고 이 만들어진 세계에서는 권력 투쟁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유저 라임인가? 아니면 이 세계의 사령 마법사 라임인가? 나를 둘러싼 이들은 만들어졌지만 살아 있는가? 아니면 죽어 있는가?
“그래서 뭐 하러 온 거야?”
“잘 지내나 확인하려고 온 것이기도 하고, 다른 것을 주려고 온 것이기도 하지.”
“뭘 줘?”
“이 반지를 받아라.”
엘린에게 5개의 반지를 던져 주었다.
“반지 하나당 총 이백 기의 하급 고렘이 저장되어 있다. 총 일천 기의 하급 고렘이지. 하급의 고렘이지만 일반 병사로서는 절대로 부술 수 없고, 마스터라고 해도 쉽사리 상대하지는 못하는 녀석들이지. 너를 보호하고, 아이린과 상단을 보호하는 데에 써라. 권력 암투가 조합에서 시작되면 너에게도 손을 뻗을 테니까.”
“헤에! 나 걱정해주는 거야?”
녀석이 기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성큼 걸어가 녀석의 머리를 내리누르며 머리카락을 흩어트렸다.
“그래. 걱정이다. 그러니 몸 관리 잘해.”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서는 동안 엘린은 아무런 말없이 나를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