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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내가 수억이나 되는 이리드를 내 개인 무력으로 할지, 제조 쪽으로 할지 제대로 정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게임계에서는 새파란 후배 녀석이 나에게 비겁한 짓을 그만두라고 소리쳐?
“애송이가 감히!”
그래. 결국 신외지물(身外之物)은 내 것이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이렇게 도움이 안 된다고 세상이 가르쳐 주는 것이겠지?
하지만 틀렸어. 나는 오히려 그렇기에 나 외의 힘에 집착해주겠다.
고맙군. 박병석이기를 거부한 오크 듀로탄.
내 길을 정했다.
“질척질척한 한의 붙들림이 너에게 있으리라! 원념의 족쇄!”
내 주변을 달리며 춤추듯 도를 내리찍던 녀석의 몸이 우뚝 하고 멈추었다. 그리고 녀석의 두 다리를 검은 무언가가 휘감았다.
“취이익! 오크의 분노는 엉덩이의 분노!”
괴상망측한 스킬을 쓰려는 거냐? 그렇게는 못하지!
“내리눌러라, 광기의 원한! 찍어 묶어라, 질투의 저주!”
촤악! 하고 녀석의 몸으로 수십 줄기의 검은 기운이 뻗어나가 녀석을 휘감았다.
“취이이익!”
그러다 푸확! 하고 검은 기운이 타오르며 사라졌다. 하지만 녀석은 지금 멈추어져 있다. 그것이면 충분해!
“언데드 브레스 일제 발사!”
쿠오오오! 하고 검은 광선 다섯이 녀석을 향해 쏟아졌다. 녀석은 그 광선을 피할 수 없었다. 다섯의 검은 광선이 놈의 전신을 두드렸다.
쿠르르르릉!
검은 사기가 지독하게 뿜어져 올랐다. 나는 그 안으로 뛰어들며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했다.
“작은 불꽃, 마력 증폭, 마력 부여, 빙결의 손!”
4개의 마법이 조합되어 도끼에 머물자 도끼가 웅웅 떠는 것과 동시에 녀석에게 도달했다.
녀석은 여기저기 피를 흘리면서 나를 향해서 도를 내리찍었다.
콰앙!
파삭파삭파삭!
난 다섯의 보호 마법이 단번에 깨지는 것을 느끼며 몸을 옆으로 굴러 그 도격을 피해냈다. 그러자 내가 있던 자리로 녀석의 도가 떨어져 내렸고, 동시에 녀석의 발이 내 몸을 후려쳤다.
“푸헉!”
아프잖아!
뒤로 밀려나며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 후, 유령의 손을 움직여 녀석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고, 뒤로 날아가려는 내 몸 역시 유령의 손을 이용해 잡아채 땅에 세웠다.
땅에 서서 본 녀석은 비틀거렸지만 다시 균형을 잡으려고 했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뛰어올랐다.
“확실한 치명타!”
도끼가 빛을 발하고, 유성처럼 녀석의 머리로 떨어졌다. 그러자 녀석의 도가 번개처럼 휘둘러지며 내 도끼를 때려 옆으로 꺾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나는 도끼를 놓았다.
캉!
도끼가 옆으로 튕겨져 날아감과 동시에 내 몸도 녀석의 얼굴 쪽으로 추락했다.
손을 뻗었다.
녀석은 아직 휘두른 도를 회수하지 못했다.
곧 손이 녀석의 머리에 닿았다. 녀석의 빈손이 내 몸을 후려치려고 움직였다.
나는 손에 마력을 모으며 빠르게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는 한편 유령의 손이 움직여 녀석의 손을 옆으로 쳐내 지체시켰다.
“강마사악의 창!”
손에서 마법이 터지자, 녀석의 몸이 급히 옆으로 피하는 게 보였다.
강마사악의 창은 녀석의 어깨를 부수고, 늑골을 찢고, 허리까지 갈라버렸다.
쿠웅!
녀석이 쓰러졌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앞에 섰다.
“네가 현실의 너를 왜 버렸는지, 그리고 왜 이런 전쟁을 일으켰는지, 또한 왜 나를 아는 척하며 죽이려는지 모르겠다. 관심은 가는데, 묻는다고 가르쳐 줄 것 같지도 않고.”
녀석이 후욱후욱! 거리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너는 한 가지를 간과했다. 내가 누군지 아냐? 나는 라임이야. 음험한 학살자 라임. 십 년간 다크 게이머로 세상에 명성을 떨쳐 온 게 바로 나다! 내 명성이 거저 얻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너의 오산이라고. 전설적인 무술의 후계자인 검왕 칼츠도, 그 미치광이 베헤만도 내 앞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거든. 그런데 네가 혼자서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냐?”
녀석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꿈틀거렸다.
이놈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오크들은 달려들 생각을 안 하고 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내 뒤로는 5기로 줄어든 언데드 타이탄이 서 있었다.
곧 녀석이 꿈틀거리며 겨우겨우 일어섰다.
“취이이익! 이 전쟁은··· 성전이다.”
“하?”
웬 성전?
“세계를 지키기 위한··· 우리들 모두의 삶을 위한··· 취이이이······!”
“어째서 랑고트 왕국에 쳐들어오는 게 세계를 지키는 일이 되는 거지?”
“취이익! 간단하다. 취이익! 네가 여기 있으니까.”
내가 여기 있으니까?
잠깐 머리가 멍해졌다.
“그럼 이 전쟁은 나 잡자고 일으킨 거냐?”
녀석은 대답 없이 비틀거리는 몸으로 도를 들어올렸다.
“나 오크 최강의 전사 듀로탄, 너 죽인다.”
녀석의 몸에 붉은 기운이 다시금 만들어졌다. 그리고 부서졌던 그 불꽃 같은 갑옷이 생겨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오크들이 소리를 질렀다.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쿠와아아아아아!”
“쿠와아아아아아! 를 위해서! 죽어라, 라임!”
녀석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녀석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다. 오크 매직이 아무리 기괴해도 신성 마법이 아닌 한 단번에 상처를 치료하지는 못한다.
나는 녀석의 목으로 도끼를 날리며 짧게 말해주었다.
“잘 가라, 듀로탄.”
녀석의 목이 잘렸다. 그리고 저 멀리로 거대한 언데드 워커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삶이란······.”
무엇일까?
***
이곳이 또 하나의 삶이 펼쳐진 세계라면, 나 역시 이 세계의 또 다른 주민으로서 이 세계의 운명에 끼어들 권리가 있겠지.
그게 나의 삶을 외치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야. 현실에서의 나는 비밀 인체 실험으로 태어난 디자인 휴먼이지. 그런 디자인 휴먼으로서 현실에서 회피하여 가상공간의 주민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그건 가짜지. 허상이야. 그런데 지금 나는 진심으로 그 허상의 세계에 속한 주민이 되었다고 느끼고 있어.
그건 내가 별종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나의 퍼스트 디자인 휴먼으로서의 능력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레나가 살아 있기 때문일까?
어느 쪽인지는 나도 모르지.
왜 이런 뜬금없는 생각이 든 걸까? 오크들의 피 맺힌 외침 때문에? 아니면 듀로탄이자 박병석인 그 녀석 때문에?
하지만 그 녀석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바로 사우전드소드 녀석과 같이.
여기는 또 하나의 현실. 하지만 여기는 만들어진 세계.
녀석은 왜 현실의 자신을 버리고 만들어진 세계의 주민이 되기로 한 것일까? 그리고 왜 내가 세상을 파멸시킬 거라고 생각한 걸까?
내 이름은 어디까지 알려져 있는 걸까? 이제는 나도 유명인이군. 퍼스트 디자인 휴먼이란 비밀스러운 이름을 웬만한 녀석들은 다 알고 있으니까.
“나는 복귀하겠다.”
“예. 위에 알려 두겠습니다.”
언데드 워커.
스승님이 만드신 괴물은 과연 가공할 만했다.
가슴팍에서 거대한 사마력의 광선을 쏘았는데, 그 위력이 막강하여 일격에 수천이 쓸려 나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