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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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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앉아.”
그러고 보니 내가 하녀와 하인들을 구해놓으라고 한 지가 언제인데 집이 이렇게 썰렁해? 하여튼 엘린 이 녀석도 은근히 정신이 없다니까.
“자.”
아공간 주머니에서 강력 치료 물약을 꺼내 던져 주었다. 둘은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마시기도 하고 상처에 뿌리기도 했다.
“고렘을 동원할 정도면 꽤 강력한 길드인 모양인데, 왜 쫓기고 있었던 거야?”
“이유는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일이다.”
“라임이 이그젝션에 가담한다면 알 수 있어.”
“그러니까 우리와 함께 가자.”
이 녀석들 목소리가 똑같아서 저렇게 이어서 말하면 정말 헷갈린단 말이야. 하아! 골 아파.
“됐다, 됐어. 상처 치료하고 알아서 갈 길을 가라.”
“여기는 안전한가?”
“잠시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올 거야.”
흠? 여기를 공격한다고?
“감히 여기를 공격한다면 내가 책임지고 그놈들을 완전하게 죽여주지.”
내 말에 둘은 조용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믿겠다, 라임.”
“일주일만 여기에 있게 해주면 좋겠다.”
“일주일? 뭐··· 좋아.”
어차피 한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릴 생각이었으니까. 일주일 정도 이 녀석들을 돌보며 빈둥거린다고 해도 괜찮겠지.
“그런데 아리엔은 잘 지내냐?”
“아리엔은 잘 지내고 있다.”
“왜 물어보지?”
“그냥 궁금해서.”
한 명만 대답하면 안 되는 거냐?
나는 두 녀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둘 다 나이는 대충 열여섯, 혹은 열다섯 정도로 보인다. 아직 덜 여문 작고 여린 몸, 그리고 귀여운 외모와 복장. 거기다 무표정한 저 얼굴은 인형 같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일주일이나 있으······.”
콰르르릉!
그때 저택의 담벼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쓰벌! 또 뭐 하는 놈이 온 거야?
“왔다.”
“크리에이트 길드다.”
두 꼬마 녀석이 벌떡 일어나 검을 꺼내는 것을 보고 숨을 내쉬었다.
“그만. 내가 처리하지. 마법 결계 작동. 마법 강화 작동. 모든 방어 마법과 적 격퇴 마법 발동.”
위우웅!
집 전체가 부르르 떨었다. 마법이 발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나가볼까. 너희들은 여기 있어.”
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는 웬 고렘 2기가 내 저택에 쳐진 보호막을 두드리고 있었다.
쾅! 쾅!
그런데 보호막이 부서지지 않으니 애가 타나 보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지. 저 보호막이 보통 보호막인 줄 알아? 성벽에다 설치하는 대마법 장벽이거든.
스승님 정도의 힘을 가진 자가 와서 부수면 모를까, 보통 사람은 못 부숴. 저거 설치하려고 내가 서클릿의 지식을 여러모로 굴린 거거든. 나도 못 부수는 걸 지들이 무슨 수로 부수겠어?
“어이, 너네는 누군데 내 집에 와서 행패냐?”
안 그래도 몇 달간 궁상 부린 것을 청산할 겸 몸 풀 상대가 필요했는데 잘됐네. 하지만 저 정도면 멸신의 손만으로도 충분하려나?
쉬릭!
나는 멸신의 손을 날렸다. 아까 만들어둔 것이 아직도 내 주위에 있었던 것이다.
콰쾅!
곧 두 고렘이 뒤로 넘어졌다.
그 상태로 멸신의 손으로 두드려 팼다. 아무리 고렘이라고는 해도 5톤짜리 충격을 연달아 맞으면 여기저기 삐거덕거리기 마련이다.
쾅! 쾅! 쾅!
고렘은 별다른 손도 못 써보고 여기저기 관절이 삐거덕거리더니, 아까 나타났던 고렘처럼 연기를 내며 부르르 떨다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아! 황도의 경계가 개판이군. 어떻게 두 번이나 내 집 담장을 부수고 쳐들어오는 거야?”
난 혀를 차며 보호막의 밖으로 나가 고렘을 바라보았다.
경비병이 오면 아까 그랬던 것처럼 알아서 처리하겠지.
그럼 돌아가······!
오싹!
“순간 이동!”
팟! 하고 공간 이동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니 검은 무언가가 그곳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곧 쾅! 하고 땅이 쩍 갈라지는 게 보였다.
뭐야, 저건 또?
“피했나? 내 일격을 피하다니 보통이 아니로군.”
녀석은 주먹으로 땅을 내려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먹에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휘감고 있었다.
취릭취릭!
검은 어둠이 녀석의 손을 휘감은 채로 꿈틀거렸다.
저거 보통 놈이 아니로군?
“내 이름은 섀도우 워커. 너를 죽일 자의 이름이다.”
“너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그렇게 떠드는 거냐?”
내 말에 녀석의 눈이 꿈틀했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발밑의 그림자가 길어지며 파도처럼 나를 향해 덮쳐 왔다.
얼씨구? 이건 또 뭐야? 나름 한다, 이거지?
“순간 이동.”
공간을 넘은 다음 녀석을 포착하고 바로 멸신의 손을 날려 보냈다.
콰쾅!
“보이지 않는 손에 당하지 않는다!”
그림자가 일어나 벽을 만들고, 내가 날려 보낸 손을 막아내는 게 보였다.
호오! 개당 5톤의 위력을 가진 멸신의 손을 막아? 물리적인 공격은 안 통한다는 건가? 그렇다면······.
“사자군주의 창!”
두 손을 뻗어 마법을 외쳤다. 순간 내 손 앞에 거대한 와류가 순식간에 생겨나서는 그대로 내리꽂혔다.
크기만 해도 무려 수십여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창. 이것이 바로 ‘죽음의 화살’에서 출발하여 마스터 레벨까지 올린 ‘사자군주의 창’의 진실된 모습이다!
콰르르릉!
거대한 구덩이가 내 집 앞에 생겼다.
그로 인해 먼지가 피어오르면서 녀석의 모습을 놓쳤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지!
“망령의 보호막! 원념의 방벽! 영혼의 장막! 마골의 방패! 그림자의 성벽! 죽음의 갑옷! 생명의 투구!”
일곱 가지 마법의 조합으로 발동한다! 그 이름 하여 절대 방어 마법!
파아아앗!
일곱 가지 마법이 조합되어 만들어진 보호 마법이 내 전신에 서렸다.
전신으로 검은 귀화가 타올랐다. 그 누구도 이 검은 귀화를 뚫지 못한다. 가장 강력한 보호 마법이니까.
카가가각!
보호 마법이 완성되자마자 내 그림자가 일어서며 나에게 칼날처럼 뻗어와 공격했다. 하지만 내 보호 마법을 조금 긁고는 튕겨 나갈 뿐.
놈이 내 그림자를 조종해서 날 공격한 건가?
“그림자를 다루는 능력자로군!”
이 게임에 별의별 직업이 다 있으니, 그림자 술사가 있다고 해서 딱히 놀라울 것은 없다. 그림자를 모티브로 한 스킬이나 마법은 다른 게임들에서도 많이 써먹은 거니까.
하지만 여기는 현실과도 같은 ‘라이프 크라이’의 세계. 그렇다면 더 까다로운 놈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음험한 학살자 라임, 왜 여기에 있지?”
녀석이 구덩이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지껄였다.
“야, 여기 내 집이야. 내 집에 와서 왜 내가 여기 있냐고 묻는 거냐?”
“그런가. 여기가 너의 거처인가.”
“알았으면 뒤져.”
멸신의 손이 녀석에게 휘둘러졌다. 그런데 녀석은 멸신의 손이 보인다는 듯 피해내더니, 자신의 그림자에 손을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그림자 파도!”
촤라라락!
녀석의 그림자가 물결치며 파도가 되어 나를 습격했다.
보호 마법을 믿고 정면 돌파다!
콰쾅!
그림자가 내 몸에 부딪치며 부서져 나갔다. 그리고 녀석과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 순간 녀석의 몸이 그림자로 쑤욱 들어가 버렸다.
콰릉!
그 후 내가 땅을 후려쳤을 때 녀석은 없었다.
제길! 도망간 건가?
고개를 내저었지만 녀석은 없었다.
쯧! 대체 그놈은 뭐였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또다시 경비병들이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저것들은 하여튼 늦는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