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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과 실상
“그럼 문답 무용이군. 쳐라!”
크어!
내 뒤에 있던 언데드 오크 워리어가 흉성을 터트리며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베헤만을 포함한 12명이 움직인 것도 그와 동시였다.
“그림자 칼날!”
그림자가 길어지며 칼날이 되어 뻗어져 왔다. 그것은 언데드 오크 워리어의 몸에 부딪치며 상처를 냈다.
카가가강! 소리가 나고, 그 위로 망치를 든 전사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중력 망치!”
콰아앙!
큰 소리가 나고, 언데드 오크 워리어 하나의 몸이 찌부러지며 박살 났다. 그런데 망치를 든 놈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이 녀석들 단단해!”
“음험한 학살자 라임의 언데드다. 강한 것이 사실.”
“지랄 같군. 누가 라임을 끌어들인 거지? 이그젝션 길드에 라임이 있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구.”
이 녀석들, 되는 대로 떠들고 있군.
차앙!
그때, 뒤에서 아린과 아란이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내 좌우로 와서 섰고, 나 역시 나의 병기 언데드 로드 본 액스를 꺼내들었다.
12명은 언데드 오크 워리어를 막아내며 갖가지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도 처음 보는 그런 스킬들.
하지만 저 녀석들,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나도 슬슬 시작해볼까?
“어이, 준비해.”
나는 아린과 아란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외쳤다.
“나와라!”
쿠릉!
그러자 빛과 함께 50여 미터의 언데드 타이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성의 지붕과 벽이 박살 나며 부서져 흩어졌다.
콰쾅!
“우앗! 저 미친놈!”
“크하하하하! 멋진걸, 라임!”
좋아하는 놈은 역시 베헤만뿐이다. 뭐, 저놈이야 미친놈이니까.
우르르르릉!
무너져 내리는 천장. 그 사이에 우뚝 선 나의 언데드 타이탄. 언데드 오크 워리어와 12명의 유저들.
그 혼란의 사이에서 나와 아린, 아란이 움직였다.
“아리엔을 데려가지! 변환!”
번쩍! 하고 몸에 마갑이 장착되었다. 난 간단한 보호 마법을 사용한 채로 마력을 전신에 두르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 정면으로 베헤만이 튀어 올라 나를 막아섰다.
“크하하하! 어디를 가시나, 라임!”
이 미친 베헤만 새끼! 왜 자꾸 방해야?
“꺼져!”
“크헉!”
쾅! 하고 멸신의 손을 휘둘러 녀석을 옆으로 치워버렸다. 녀석이 피를 토하며 옆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지만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회전!”
12개에 달하는 멸신의 손이 내 주변에서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이것이 바로 멸신의 장막이라는 녀석이다!
물론 정식 스킬은 아니고, 그냥 멸신의 손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 주변에서 회전시키는 것뿐이지만, 하나하나가 5톤의 힘을 지니고 있기에 회전 반경 안에 들어오는 것은 완전히 박살이 나지!
“막아!”
“이런, 썅! 저건 뭐야?”
내 주변으로 다가온 모든 것이 박살 나 흩어지는 것을 본 녀석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떨어지는 천장 조각도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 후, 내 주변에 작은 회오리와 같은 것이 생겨나고, 공기가 왱왱거리는 소리를 냈다.
앞으로 아리엔에까지 약 50미터.
“이런, 미친! 번개의 필살검!”
번쩍! 하고 옆에서부터 엄청난 기세의 찌르기가 다가와 나를 공격했다. 삐쩍 마른 놈이었는데, 꽤 큰 검을 들고 있었다.
녀석의 검은 멸신의 손의 회전 사이에 끼어 투다다다당! 하는 소리를 내며 튕겨지며 비참하게 박살 나버렸다.
“우왓!”
순간에 일어난 일. 그리고 아리엔과 나 사이는 30여 미터밖에 남지 않았다.
앞으로 30미터. 몇 초면 아리엔의 옆에 도달하게 된다!
“흐··· 엄청 세졌는데?”
오싹!
“순간 이동!”
귓가에 나직한 소리가 들리자마자 오싹함을 느끼며 긴급하게 공간을 넘어 피해냈다. 그러자 뒤이어 쾅! 하는 폭음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니 전신에 피처럼 검붉으며, 끈적끈적하고 불길해 보이는 기운을 칭칭 휘감은 베헤만이 바닥을 쩌억 갈라놓고 서 있었다.
역시··· 쉽게 해결할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
우르릉!
천장에서부터 큰 돌덩이가 녀석과의 사이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나는 보호 마법의 조합식을 발동하기 위해 마법을 외쳤다.
“망령의 보호막! 원념의 방벽! 영혼의 장막! 마골의 방패! 그림자의 성벽! 죽음의 갑옷! 생명의 투구!”
위웅!
몸에 검은 기운이 휘감겼다.
그때 콰쾅! 하고 바위를 부수며 녀석이 쇄도해왔다. 녀석도 전신에 검붉은 기운을 휘감고 나를 향해 손을 내뻗고 있었다.
쾅!
멸신의 손이 녀석의 몸을 후려쳤다. 그에 녀석이 옆으로 튕겨져 나가며 분노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더니 몸이 뒤집어지며 갑자기 직선으로 땅에 떨어졌다.
물리법칙을 위반한 모습이군! 무슨 기술이지?
“천근추라는 거다. 갑자기 무게를 늘리는 기술이지.”
무협 세계인 동대륙에서 살다 왔다고는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 라고 생각하며 멸신의 손을 움직여 녀석을 후려쳤다.
그러자 녀석의 두 손이 기묘하게 움직인다 싶더니 멸신의 손을 막아내는 게 아닌가?
“한두 번 당한 걸로 족해. 보이지 않는 손이라니··· 반칙 기술이잖나?”
“반칙이 어때서 그러지? 반칙은 좋은 거다.”
슬쩍 옆을 보니 아린과 아란이 양쪽에서 마나 블레이드를 엿가락처럼 주욱 뽑아내 적들과 교전을 벌이는 모습이 보였다.
무협으로 치면 검사(劍絲)의 경지인가. 뭐, 어쨌든 좋지.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한번 해볼까, 베헤만? 그러고 보니 이번에 네놈을 죽이게 되면 네놈을 죽인 게 벌써 세 번째가 되는 거로군.”
‘라이프 크라이’에서는 처음 죽이는 것이지만, 과거 했었던 여러 가상현실 게임들에서 녀석과 충돌해 두 번 죽인 적이 있었지.
“크크큭! 해보자구!”
쾅! 하고 녀석이 폭발을 일으키며 날아들었다. 나는 본 액스를 휘둘러 녀석의 몸을 갈라갔다.
“파룡수!”
콰쾅! 하고 도끼에 부딪힌 놈의 손이 폭음을 일으켰다. 하지만 나의 몸 역시 일곱 마법의 조합에 의한 조합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확실한 치명타!”
번쩍! 하고 본 액스가 빛나며 녀석을 찍어갔다. 그러자 녀석이 공중에서 몸을 뒤집는다 싶더니 손을 흔들었다.
“와룡장!”
우르릉!
녀석의 손에서 장풍이 쏟아졌다. 그에 퍼펑! 하고 내 몸이 뒤로 밀려나는 게 느껴졌다.
“사자군주의 창!”
부오오오!
먹어라!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사자군주의 창이 바닥에 구멍을 뚫으며 박혀 버렸다. 녀석도 감히 맞서지 못하고 피하는 게 보였다.
“휘아! 그거 뭐야? 대단한데?”
“뭔지 가르쳐 줄 것 같냐?”
말을 거는 척하면서 멸신의 손으로 후려치기!
퍼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