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 크라이-263화 (26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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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엔

@아리엔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다.

-현자 모르오-

“후우!”

그리운 집이다. 집을 떠나면 고생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집 담장을 수리하고 있었던 듯, 수리공의 장비들이 널려 있었고, 일부는 보수가 완료되었다.

엘린이나 헬라가 수리를 하려고 사람을 쓴 모양이군.

적들이 부순 걸 왜 내 돈으로 고쳐야 하는 거지? 하는 불만을 가지면서 난 집의 문을 열었다.

“라임, 왔어? 응? 아리엔이잖아!”

안으로 들어서니 레나가 거실에서 책을 보다가 나를 반겨 주었다.

이제야 집에 도착했군. 힘들었어.

“어떻게 된 거야?”

“그럴 일이 조금 있었어.”

여전히 아리엔을 등에 업은 채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

“아리엔 좀 눕히려고. 정신을 잃은 상태야.”

난 아리엔을 업고서 2층으로 올라갔다.

언제 또 크리에이트 길드의 그 반쪽이 된 놈들이 덤벼들지 모르니 결계를 작동시켜야겠지?

“결계 작동.”

집 전체의 마력이 순환하며 마법의 힘을 발산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로써 어느 정도는 안전하다.

그 누구도 숨어서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거야. 부순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바로 알 수 있지.

“얼음처럼 차가워! 이거 왜 이래?”

레나가 옆에서 아리엔의 몸을 만져 보더니 호들갑을 떤다.

“얼음 안에 갇혀 있었거든. 수분은 다 날렸는데 아직 몸은 차가워.”

2층의 내 방으로 들어가 아리엔을 눕혔다. 눈을 꼬옥 감은 채 잠에 빠진 아리엔은 어쩐지 모르게 야한 느낌을 내고 있었다.

난 그런 아리엔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이불과 침대에 걸린 보온 마법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곧 침대와 이불이 따뜻하게 변하며 아리엔의 몸도 천천히 녹는 듯했다.

“무슨 일이야? 또 나 빼놓고 어디를 간 거야?”

“빼놓은 건 아니지. 너는 엘린의 일을 돕고 있었잖아.”

“에··· 그,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마법 통신은 왜 안 한 건데!”

“급한 일이었어.”

내 말에 레나가 불만인 듯 나를 쏘아보았다.

“무슨 급한 일?”

“아리엔을 구하는 급한 일. 까딱 잘못했으면 죽을 뻔했다고.”

내 말에 레나는 뭐라 말하려다 말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알았어. 더 이상은 아무 말 안 할게.”

어쩐지 시무룩해 보이는 레나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이잖아?

“왜 웃는 거야! 남은 마음이 복잡한데!”

“하하하하! 아냐, 그냥···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해서.”

아리엔도 그런 사람이 있을 거다. 그 쌍둥이 꼬맹이들만 해도 아리엔을 생각해주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란 이렇듯 무거운 것이다.

아리엔을 구하려 내가 나선 것도 사실 그 때문이다. 안면이 있었고, 간절히 도와 달라 청했기 때문에 움직였다.

레나를 구했을 때도 그랬었지. 그리고 지금은 가족이라 부를 수 있게 된 그녀들을 내치지 못한 것도 그래서다.

나는 어려운 이를 못 본 척하는 나약하고 교활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정이 깊어진 이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이율배반적이고, 엉망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스스로 들여다보면서도 전혀 나아지지 못하는 멍청이지.

“바람둥이 따위 걱정 안 해!!”

레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씩씩거리며 방을 나가버렸다.

귀엽구나.

“하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군. 왜 웃음이 나오는 거지? 뭐, 어떠랴. 기쁘다면 웃고, 슬프면 울면 그만인 것을.

“저쪽에서 습격을 해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까, 준비를 해두어야겠군.”

내 감정이 어떻든 간에 할 일을 미루어서는 안 되겠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방을 나서려 문을 열었다.

“우왓!”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문 앞에는 여인들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문에 귀를 대고 있었던 모양인데······.

“아, 아무것도 아냐. 그냥 네가 또 새로운 여자를 데려왔다고 해서······.”

엘린의 말에 옆에서 하이네가 불쑥 끼어들었다.

“경쟁자가 누군가 궁금해서요.”

“하이네!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어떻게 해!”

서로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다. 방금 전까지 유쾌했던 기분이 뒤엉켜 버렸다.

아이고, 머리야.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지?

“그런 거 아니니까 가서 볼일들 봐요! 헬라! 하인 구하는 건 어떻게 된 겁니까? 하이네! 마법은 현재 얼마나 외우셨습니까? 베나! 제가 내준 숙제는 다 하셨습니까? 엘린! 상단의 수입 관련 보고서는 왜 안 주지? 이론드! 수행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거겠죠? 아이린! 내가 일전에 가르쳐 준 제련법은 숙달했겠지?”

여인들이 모두 배시시 웃으며 딴청을 피운다.

아니, 이 사람들이 지금······!

“이 사람들이!”

“꺄아악!”

여인들이 내 외침에 뿔뿔이 흩어졌다.

머리가 지끈거리는군. 나는 지금 현실의 일에다가 이 세계의 일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하여튼 간에······.

“에휴! 내 죄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일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일이나 해야겠다.”

곧장 집 밖으로 나온 난 공구를 챙겨들고 나와 보수를 하다 만 담장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밤이니 일꾼들이 모두 돌아갔을 터.

그들에게 맡겨서 고치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물건 수리를 할 수 있는 스킬과 마법이 있으니까 그걸로 그냥 내가 고쳐 버려야지.

그나마 재료로 사용할 것은 다 여기 놓고 갔군. 이 정도면 충분하지.

“마나와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져라. 물건 수복.”

재료들을 들고 마법을 펼쳤다. 그러자 그것들이 스스로 떠올라 부서진 자리로 들어가 빛을 내며 붙었다.

그냥 수리만 할 게 아니라 담장에다가도 결계용 마법을 따로 만들어야겠군. 현재 작동하고 있는 결계는 집을 매개체로 한 것인 데다, 추가로 더 강화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저 집으로는 지금 걸려 있는 결계가 한계. 쉽게 부서지진 않지만, 혹시 모르니 이중으로 결계를 설치해서 서로 보완해 위력을 배가시켜 보는 것도 좋겠군.

머릿속에서 연산과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 연산을 통해 도출된 결과과 가능한지 지금 직접 담장에 마법을 걸며 실험해보기로 했다.

위잉!

나는 곧 담장에 추가로 건 마법이 집을 매개체로 한 마법과 연동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흠! 과연······. 현실과 다름이 없다는 건, 현실과 같이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 그래서 웬만한 건 다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것도 가능할 줄이야······.

“좋아.”

나는 담장을 보수해가며 마법을 걸었다.

“잘되어가?”

“뭐 하러 나왔어?”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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